
열린우리당이 ‘불임(不姙)정당’ 소리를 들은 것은 어제오늘이 아니다. 고건 전 총리의 대선 출마가 가시화되지 않던 한때 정동영 전 의장이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15%선을 턱걸이한 적은 있지만 그 후로는 10%는커녕 5%대에 진입한 당내 인사도 찾기 어려웠다. 최근 한두 달 사이 여론조사 동향을 보면 김근태 현 의장을 비롯해 한명숙 총리, 이해찬 전 총리, 천정배 전 법무부 장관, 정세균 산자부 장관,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 등 비교적 지명도가 높은 인사들의 지지율도 1~4% 수준이다. 그래서 ‘반올림하면 모두 0%’라는 웃지 못할 농담도 오간다. 정당 지지율 또한 일부 조사에서는 열린우리당이 민노당이나 민주당과 비슷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현재의 여당과 ‘여권’의 잠재력은 다르다. ‘여권’이란 단일화든 옹립이든 유사시 반(反)한나라당 전선에 언제든 포함될 수 있는 세력을 뜻한다. 여론조사기관 매트릭스의 2006년 11월 조사에서 ‘노무현 정부 이후 원하는 정부 성향’을 묻는 질문에 ‘보수안정’이 48.2%, ‘진보개혁’이 45.1%로 비슷하게 나온 사실은 이런 관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그렇다면 여권의 유력후보는 누구인가. 2006년 중반까지만 해도 ‘대세론’에 ‘대안부재론’까지 합쳐지며 고건 전 총리쪽으로 정리가 되는 듯했다. 그러나 한때 30%가 넘던 고 전 총리 지지율은 최근 15%대까지 떨어져 3위에 머물러 있다. ‘애매한 중도 성향 인사들의 소극적 참여’로 회자됐던 희망연대 역시 공식 출범한 지 4개월이 지나고 있지만, 정당도 아니고 결사체도 아닌 채 뒷심을 잃어가고 있다는 평가다. 한때 고 전 총리에게 매달리다시피 하던 민주당도 “고건 중심의 정계개편은 절대 없다”며 해이해진 당내 분위기를 추스르고 있다.
‘작전상 중도’와 ‘원조 중도’
앞서 언급한 현 정부 주요 국무위원 출신 여당 의원들이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과거나 지금이나 회의적인 시각이 우세하다. 박원순 희망제작소 이사가 대안으로 거론되지만 아직은 대중성이 약하다.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은 새 사업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은 2006년 서울시장선거 때 한순간에 내려앉은 ‘지지율의 추억’ 탓인지 선뜻 옹립하자는 목소리를 듣기 어렵다. 이런저런 이유로 ‘강력한 여권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은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현 경제학부 교수)밖에 없는 듯하다.
정 전 총장은 이미 여권에서 ‘영입 1순위’로 점 찍어놓은 지 오래다. 김한길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는 2006년 12월 기자간담회에서 오픈프라이머리 계획에 대해 언급하며 최근 고건 전 총리와 만나 이야기를 나눈 사실을 공개한 데 이어 ‘정운찬 전 총장을 만나 서로 좋은 감정을 가지고 헤어졌다’는 말을 꺼냈다. 공개석상에서도 이미 정운찬 전 총장은 고 전 총리와 함께,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여권으로부터 ‘원투 펀치’의 예우를 받는 상황이다. 이미 여당 내에서는 다음과 같은 대권 시나리오가 나돌고 있다.
▲2007년 3, 4월에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지지율의 바닥을 찍는다 ▲재창당이건 리모델링이건 정계개편을 한 뒤 정운찬 전 총장을 영입하고 오픈프라이머리를 띄운다 ▲막판에 가면 결국 단일화든 러닝메이트든 정리가 될 것이므로 고건 전 총리가 꼭 오픈프라이머리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상관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