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월호

변호사 최정환 - 노래모임

“친구들과 노래하고 연주하는 맛, 레몬셔벗처럼 상큼해요”

  • 글·구미화 기자 mhkoo@donga.com / 사진·지재만 기자 jikija@donga.com

    입력2007-01-04 17: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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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타 치며 유행가 부르느라 시간가는 줄 모르던 시절의 낭만을 뒤로하고 앞만 보며 내달려 어느새 40 고개를 넘었다. 다들 뭔가 이룬 듯 보이지만 채워지지 않은 그 무엇이 있었다. 쭈뼛쭈뼛 모여서 오랜만에 목청을 가다듬으니 가던 청춘 뒤돌아보며 환히 웃는다. 노래가 있고, 친구가 있어 나이 듦이 두렵지 않다.
    변호사 최정환 - 노래모임
    빨간색 스웨터가 무난하게 어울리는 이 남자의 사무실엔 전자 드럼과 콩가가 있다. 책장엔 재즈며 클래식에 관한 책들이 꽂혀 있고, 음악 CD 수십 장이 곳곳에 쌓여 있다. 책장 한쪽에 놓인 법전과 의자 위에 가득 쌓인 서류들이 비로소 그가 변호사임을 말해준다.

    최정환(崔正煥·44) 변호사는 국내 ‘엔터테인먼트 변호사 1호’다. 가수 백지영, 비 등 연예인 관련 소송을 맡아 얼굴이 알려졌지만, 2005년 30개 음반사를 대리해 인터넷 음악제공 사이트를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고소할 만큼 저작권법에 있어서 국내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는다.

    그는 1989년 김·장 법률사무소의 초짜 변호사 시절, 한국시장에 첫발을 내딛는 UIP, EMI 같은 해외 영화·음반사의 법률 자문에 응해준 게 계기가 돼 미국 뉴욕대에서 엔터테인먼트법을 공부했다. 현재는 엔터테인먼트와 저작권 관련 업무를 전문으로 하는 법률사무소 두우를 이끌고 있으며 2006년 봄, 한국엔터테인먼트법학회를 만들었다.

    동료들이 기업 인수합병, 국제 통상, 금융이 최고라고 여기던 무렵 그가 엔터테인먼트 분야로 빠져든 건 엔터테인먼트 시장이 활성화되리라는 전망도 있었지만 워낙 그쪽에 관심과 취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서울대 법대 시절, 사법고시를 준비하던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악기 연주하고 노래 부르기를 좋아해 주위로부터 ‘음악 시험 준비하냐’는 소리를 듣곤 했다”며 웃는다.

    변호사 최정환 - 노래모임

    사무실에서 틈이 날 때마다 악기 연습을 하는 최정환 변호사. 몇 해 전 드러머 남궁연에게서 처음 드럼을 배웠다고 한다.(왼쪽) 스노보드를 즐기는 최정환 변호사.(오른쪽 아래)

    엔터테인먼트 관련 법률자문 및 소송을 진행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영화계, 가요계, 공연계 인사들과의 교유도 확대됐다. 그러면서 각종 문화행사에 참여할 기회도 늘고, 의무도 커졌다. 색소폰이며 드럼을 배웠고, 연극과 발레 공연에 출연한 적도 있다. 남다른 경험이었지만 무료해지기 십상인 40대에 활기를 불어넣기엔 한계가 있었다.



    그러다 한 친구가 제안했다. 중창단을 만들어보자고. 그는 시큰둥했다. 공부한다는 핑계로 한남동에 모여서는 노래하며 놀던 ‘한남학파’가 뿔뿔이 흩어져 제 갈길을 간 지 20년이 가까워온다. 제각각 변호사, 판·검사가 되어 점잔을 빼고 있는데 중창단이 가능할까. 그런데 다들 어떤 갈증을 느끼고 있었나보다. 처음엔 연습은커녕 잘 모이지도 않았는데, 두어 달이 지나니 화요일 저녁 8시면 아무리 급하고 바쁜 일이 있어도 8명이 다 모였다. 모임 이름도 생겼다. ‘레몬셔벗 싱어즈.’ 2005년 초의 일이다.

    “제각각이던 음색이 다듬어지고 그럴듯하게 화음이 만들어지면 묘한 카타르시스가 느껴졌어요. 가요에서부터 클래식, 오페라 아리아까지 부르다보면 2시간이 금방 갔어요. 삶이 무료해지고 지칠 나이에 오아시스를 만난 것 같았죠. 다시 학창시절로 되돌아간 것 같고.”

    뭔가 하고 있고, 제대로 되어간다는 성취감은 공연을 해보자는 용기로 이어졌다. 2005년 여름, 100석 공연장에 가족들을 초대해놓고 무대에 섰다. 노란색 넥타이를 맨 아빠의, 남편의, 그리고 아들의 진지한 모습에 눈물을 찔끔 흘리는 가족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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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2월10일, ‘레몬셔벗 싱어즈’의 네 번째 공연이 열렸다. 최 변호사는 최근 한국엔터테인먼트법학회를 만들고 관련 정보 공유 및 연구에 힘쓰고 있다.



    변호사 최정환 - 노래모임

    문화계 인사들과 폭넓게 교유해온 최 변호사는 발레와 연극무대에 서기도 했다. 2005년 국립발레단의 ‘해적’(작은 사진), 2006년 연극인복지기금마련을 위한 연극 ‘당나귀 그림자 재판’에 출연했을 때 모습.

    “이제 철들었구나 하는 거죠(웃음). 가족들이 감동한 것 이상으로 저희도 감동하고 열광했어요. 해냈다는 느낌. 그 뒤로 자신감을 얻어 악기 연주도 시작했어요. 콩가도 그때 사서 배우기 시작했죠.”

    첫 공연을 보고 동참하겠다고 나선 친구도 있었다. 심각한 음치였는데, 따로 레슨을 받아가며 연습에 참여해 ‘절대음감’이 되는 대단한 의지를 보여줬다.

    첫 공연 이후 6개월에 한 번씩 공연을 열고 있다. 지난 12월10일엔 ‘레몬셔벗 싱어즈’의 네 번째 공연이 열렸다. 빨간 넥타이를 맨 중년 남성들이 아기자기하게 공연을 풀어갔다. 가족들도 참여해 학예회 혹은 가족음악회 분위기를 냈다.

    “저를 비롯해 친구들의 자녀가 대부분 중학생이에요. 그 아이들이 결혼할 때 아버지의 친구들이 축가를 불러주면 멋지지 않겠어요? 그렇게 늙어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40대를 유혹하는 유희는 많다. 그러나 대개가 소모적이다. 최 변호사는 얼마 전부터 거의 매주 용평에 간다. 등산을 하거나 자전거를 타고, 골프와 롤러블레이드는 물론 계절에 따라 윈드서핑과 스키도 가능해 자주 찾는다. 지난 여름부턴 매일 아침 테니스를 치는데, 20∼30분 땀 흘리는 게 좋아서 저녁 술자리 모임은 가급적 피한다고 한다. 최 변호사는 “자연스럽게 나이에 맞는 취미들이 생긴 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합창단 활동을 하면서 그는 쾌락과 확연히 구분되는 건강한 즐거움을 발견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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