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월호

소년의 호기심으로,첫 인사 드립니다

  • 소동기 변호사, 법무법인 보나 대표 sodongki@bonalaw.com / 일러스트·박진영

    입력2007-01-08 13: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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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의 골프실력은 보잘것없으며 또한 골프에 대해 알고 있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더 많습니다. 어린 시절 뒷산에 올라 더 넓은 세상을 궁금해하던 바로 그 마음으로, 이제 골프에 관해 품었던 짧은 생각들을 나누어보려 합니다.
    소년의 호기심으로,첫 인사 드립니다
    제가 태어난 마을 앞쪽으로 좌우에 산이 하나씩 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왼쪽에 있는 산을 안산이라고 불렀고 오른쪽의 산을 연대봉 또는 봉호라고 불렀습니다. 가뭄에 시달리던 해, 연대봉에서는 주변에 사는 사람들이 모여 기우제를 지냈습니다. 그래서 연대봉의 정상에는 나무가 한 그루도 없을 뿐 아니라 정상 바로 밑 양지바른 곳에는 10여 평 되는 잔디밭까지 생겨났습니다. 안산과 연대봉 사이로 더 멀리에는 삼태봉이라 하는 산도 있습니다.

    그리고 안산과 연대봉과 삼태봉 사이로는 굴포만이 자리합니다. 굴포만의 일부는 아주 오래전부터 간척지로 개발됐는데, 어려서 어른들이 그 제방을 고산 윤선도 선생이 와서 축조한 것이라고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또한 삼태봉 너머로는 다도해국립공원을 이루는 수많은 작은 섬이 점점이 떠 있으며, 더 멀리에는 보이지는 않지만 제주도가 있고, 그보다 더 먼 곳에는 동지나해로 이어지는, 넓고 넓은 바다가 끝없이 펼쳐져 있습니다. 연대봉에 올라가면 어쩌다 한 번씩 삼태봉 뒤쪽 저 멀리 한라산을 볼 수 있었습니다. 즉 비가 올 듯한 아주 특별한 날 연대봉에 오르면 바다 저 멀리 수평선 구름 위로 흐릿하게 보이는 것이, 한라산이라고 마을 어른들이 일러주었습니다.

    저는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연대봉에 올라가서 놀기를 좋아했습니다. 동네의 또래 아이들과 어울려 다니며 놀기보다는 혼자서 연대봉에 올라 큰소리로 책을 읽거나 산에 가려 보이지 않는 곳과 수평선 너머에 있을지도 모를 또 다른 세계를 상상하기를 더 좋아했습니다. 왜냐하면 연대봉에 오르면 우리 동네뿐 아니라 인근의 신동 굴포 남선 백동 송월 송정 상만 등 여러 마을을 한눈에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곳에서는 바다도 보이고 인근에 있는 섬들도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저의 집 마당에서는 볼 수 없는 산들도 보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연대봉에 올라 저 산 너머에는 어떤 세상이 있을까 궁금해하며 놀았던 것입니다. 연대봉에 올라갔을 때 보이던 산 너머에 있을 세계에 대하여 궁금해하던 버릇은, 마을 옆에 있던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면소재지에 있던 중학교를 다닐 때까지, 전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중학교를 졸업하고 저는 서울로 왔습니다. ‘지게 지기 싫거든 면서기나 하라’시던 어머니의 만류를 뿌리친 걸음이었습니다. 산 너머의 세계는 어떨까를 궁금해하다가 바다를 건너 마침내 서울까지 왔던 것입니다. 서울에 와서 처음에는, 이제 더는 가볼 곳이 없으리라, 이제부터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일만 남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중 저는 처음으로 남산에 올라간 적이 있습니다. 3분기 등록금을 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자꾸만 교무실로 불려 다니는 것이 싫어서, 형님에게 학교를 그만두고 다시 진도로 내려가겠다고 편지를 낸 후의 일이었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리라는 형님의 답장을 받고 나서 마음을 고쳐먹고 하느님과 담판하기 위해 서울에서 가장 높은 남산을 찾은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가보지 못한 세계

    남산에 올라가서 보니 서울은 참으로 넓었습니다. 그리고 서울의 북쪽에는 남산보다 훨씬 높은 북한산이 있고, 남쪽에는 관악산이 있으며, 동쪽에는 수락산과 불암산이 있고, 그 뒤쪽에는 천마산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대학을 마칠 때까지 북한산에 오르내리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아직도 제가 가보아야 할 곳이 끝없이 남아 있음을 염두에 두고 살게 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저는 어른이 되어서도 친구들과 술을 마시기보다는 해외여행 다니기를 더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사법시험에 합격한 다음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고 나서 여러 사정 때문에 법원이나 검찰에서 근무해보지도 않은 채 곧장 변호사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판사나 검사를 지망하던 거개의 동료 연수생들과는 다른, 그리고 대한민국 변호사란 판사나 검사로 근무하다가 전관예우를 받아도 될 시점에 퇴직하고 나와서 하는 것이라는 세간의 인식과는 다른 행로였습니다.

    그런데 변호사란 직업은 자유롭기는 하지만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하는 고달픈 밥벌이입니다. 옛 선비들처럼 가만히 사무실에 틀어박혀 있어서는 직원들 월급을 주지 못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내자에게 생활비를 가져다주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그렇다고 남대문시장의 장돌뱅이처럼 소리 높여 호객행위를 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변호사법에는 광고를 금지하는 규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이 변호사 사무실을 개설하고 나면 재충전의 기회를 갖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법원이나 검찰에 근무하는 사법연수원 동기생들은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해외연수를 가거나 국내에 있더라도 여러 가지 방법으로 근무처에서 제공하는 재충전의 시간을 누리는 걸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변호사에게 해외연수는 꿈도 꾸기 어려운 호사입니다. 물론 변호사협회에서 1년에 두 차례씩 연수를 실시하고는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학문은 흘러가는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배와 같아서 나아가지 않으면 즉시 퇴보한다(學問如逆水行舟不進卽退)”는 선현의 경고에 대처하기에 턱없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저는 앞서 밝힌 바와 같이 미지의 세계에 대한 궁금증 탓이기도 하지만, 재충전의 기회를 갖는 하나의 방편으로 해외여행을 자주 다니고자 노력하게 됐습니다. 휴가철이 되면 어김없이 해외로 돌아다녔습니다. 또한 출국할 때마다 골프채를 가지고 다녔습니다. 그렇게 해외여행을 자주 다니다가 세무조사를 받은 적도 있습니다. 일선 세무서의 세무조사가 아닌 국세청 조사국의 세무조사였습니다. 그 결과, 세무조사를 담당했던 조사반장의 이야기로는 자기네 조사국의 세무조사 사상 가장 적은 액수라고 하지만 저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엄청난 액수의 세금을 부과처분 받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엄청난 비용을 치르며 해외여행을 하고 난 지금도 저는 여태까지 보아온 세상보다는 아직도 제가 가보지 못한 세상이 훨씬 더 많다는 생각을갖고 있습니다. 여전히 재충전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토록 절실하게 재충전의 필요성을 느끼는 까닭은 다른 게 아닙니다. 인생을 아는 데 필요한 저의 지혜뿐 아니라, 변호사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필요한 지식마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골프친구의 결재(潔齋)

    저에게는 여러 가지 흠이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친구가 적은 점입니다. 골프친구도 적습니다. 골프를 하면서도 모임에 참가하는 일이 드뭅니다. 그런 와중에 저는 스님 한 분을 골프친구로 삼고 있습니다. 그 스님은 1년 열두 달 중 6개월은 결재(潔齋) 생활을 하십니다. 스님의 설명에 따르자면 결재란 절 안에만 머물며 바깥출입을 일절 하지 않는 생활이라고 합니다. ‘안거에 들어간다’고도 합니다. 서울에 나오셨다가 동안거 또는 하안거에 들어가신다며 산으로 돌아가실 때 그렇게 설명해주셨습니다.

    저는 대학 시절 1년에 두 차례씩 사흘 동안 단식해본 적이 있습니다. 단식을 마치고 나면 마치 새로 태어난 듯 야릇한 기분이 들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때문에 저는 성인이 되어서도 재충전을 위해 생업에서 잠시 손을 떼고 자기를 둘러보거나 재충전을 위한 안식년을 가지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20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 안식년을 가져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던 차에 연중 반은 자기성찰을 하며 살아가는 골프친구를 만난 것입니다.

    스님을 만나고부터는, 매일 생업에 쫓기며 살아간다는 핑계로 어른이 된 이후 좀처럼 공부를 하지 않는 제 자신이 더욱 더 부끄러워졌습니다. 그리고 비록 안식년을 가지지 못할지라도 틈나는 대로 공부는 좀 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그래서 스님을 알게 된 이후로 뒤늦게나마 단행본으로 나온 심리학책을 읽었습니다. 기초물리학, 생물학 관련 서적을 사서 읽기도 했습니다. 건축미론에 관한 책도 몇 권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인도신화에 대한 책도 샀습니다. 이슬람문화사도 읽었습니다. 그런 저를 지켜보던 내자는 변호사가 말년에 이르러 그런 책들은 왜 읽느냐며 웃습니다.

    특히 스님께서 지난해 늦가을 동안거에 들어갈 무렵에 읽은 ‘벽암록(碧巖錄)’이라는 책이 저를 오래 괴롭혔습니다. 백일이 지나도록 읽었지만 도무지 책의 내용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심리학이나 물리학, 생물학 책 등을 읽을 때 느낀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필자의 앎이 부족하다는 것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요즘 들어 저는 남 앞에 나아가 이야기하는 것을 더욱 더 조심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못나고 부족한 것을 뼈저리게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새 공기가 된

    연대봉에 오르다 쪽 뻗은 소나무를 보면 톱으로 베어 낫으로 팽이를 깎아 놀던 아이가, 이제 골프를 알게 된 지 벌써 20년이 넘었습니다. 방학 책을 찢어붙이고 대나무로 연대를 깎아 종이연을 만들어 논두렁을 뛰어다니며 놀던 제가 골프를 시작하고 벌써 강산이 두 번이나 변할 만큼 오랜 세월이 흐른 것입니다. 그 사이에 언필칭 ‘골프 대중화’에 기여한답시고 이곳저곳에 골프에 관한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20여 년을 하루같이 연습장을 다닌 덕분으로 어쩌다 재수 좋은 날에는 언더파를 치기도 합니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로부터 골프를 잘한다는 칭찬을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직도 골프를 잘 모릅니다. 한동안 골프가 잘 되어 이제는 어떤 경지에 이른 게 아닐까 자랑하려는 마음을 먹으면, 또 어느 날 갑자기 영문도 모르게 골프가 잘 안 되는 경우를 자주 경험했습니다. 그럴 때면 골프에 쏟아 부은 정성을 익히고 싶은 판소리에 기울였더라면 아마도 지금쯤은 명창의 반열에 올랐을지도 모를 일이라고 투덜대며 골프를 알게 된 것을 후회하곤 했습니다. 그런 날에는 골프장에 갔다가 집에 들어오면 캐디백을 아파트 베란다에 내동댕이치면서 골프를 그만두겠노라고 다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도 사나흘이 채 지나지 않아 식구들 몰래 다시 캐디백을 가지러 베란다로 가곤 합니다. 베란다로 나가면서 “골프는 내게 있어 공기나 물과 같은 모양이다. 평상시에는 아무런 값어치가 없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이르거나 깊은 명상에 잠기면 내 삶에 있어서 골프가 생명 유지의 관건 중의 하나임을 깨닫는 너무나도 소중한 존재가 된 모양이다”라고 중얼거립니다. 그러니 비록 100타를 넘게 친다고 할지라도 어떻게 골프를 그만둘 수 있겠습니까.

    이런저런 이유로 저의 골프실력은 보잘것없으며 또한 골프에 대해 알고 있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더 많습니다. 또 누군가가 제게 골프에 대해 말을 걸어오면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이 앞섭니다. 이런 제가 얼마 전 ‘신동아’로부터 원고 청탁을 받았습니다. 거듭되는 부탁에 결국 저는 쓰겠노라 승낙하고 말았습니다.

    탑을 세우는 마음

    글을 쓰겠다고 마음을 먹었으니 앞으로 어떤 글을 써야 할 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잠시 “골프를 보면 볼수록 인생을 생각한다. 아니 인생을 보면 볼수록 골프를 생각한다”는 영국의 골프 평론가 헨리 롱허스트의 말을 묵상합니다. 그리고 얼마 전 유명을 달리한 막내여동생이 여고생일 무렵에-그러니까 벌써 사반세기 전입니다-제가 보낸 편지에서 인용했던 글을 떠올려봅니다. 앞으로 여러분과 나누게 될 골프에 관한 이야기도 대략 이러하지 않을까 합니다.

    “한 사람의 인생을 완성하는 것은 탑을 세우는 것과 비슷합니다. 커다란 탑을 세운 사람이 있습니다. 아주 조그마한 탑을 세운 사람도 있습니다. 또 거의 완성되어 가는 것을 도중에서 그만 포기해버린 사람도 있습니다. 높은 탑도 있고 낮은 탑도 있으며, 가느다란 탑이 있는가 하면 훤칠한 탑도 있습니다. 아름다운 탑, 보기 싫은 탑, 균형이 잘 잡힌 탑, 좌측으로 기울어진 탑, 우측 어깨가 올라간 탑, 그리고 구부러진 탑, 혹은 아주 엉터리로 만들어진 탑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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