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월호

‘문화 신도시’로 거듭나는 헤이리·출판도시

“행복한 바보들이 ‘마음 치장’ 하며 사는 동네”

  • 김순희 자유기고가 wwwtopic@hanmail.net

    입력2007-01-15 17: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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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예술인들의 삶터이자 여흥의 공간인 파주 헤이리와 출판도시. 초기 분양 때보다 4, 5배나 땅값이 올라 예술인들과 출판사들의 새로운 ‘수익모델’이 됐다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이곳에선 ‘시세’에 초연한, 큰 욕심 없이 하루하루 즐겁게 사는 재미를 누리고픈 ‘행복한 바보’들의 낭만적 정서가 더 도드라져 보인다.
    ‘문화 신도시’로 거듭나는 헤이리·출판도시
    한동안 일산 신도시에 가려 부동산시장에서 ‘서자’ 취급을 받던 경기도 파주시가 문화예술의 공간으로 거듭나면서 각광을 받고 있다. 서울의 인사동과 대학로, 홍대 앞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문화예술인 마을 헤이리와 파주 출판도시가 그 핵심이다.

    겨울이 천천히 깊어지기 시작한 지난 11월, 헤이리(경기도 파주군 탄현면 법흥리)로 향하는 자유로는 기분 좋게 뚫려 있었다. 행주대교에서 임진각 쪽으로 달리다 통일동산 방면으로 우회전하면 ‘예술마을 헤이리’란 표지가 눈에 들어온다.

    헤이리는 이른 시각부터 사람들로 북적였다. 어린 자녀의 손을 잡고 나들이 나온 가족들과 카메라 셔터를 연신 눌러대는 아마추어 사진작가, 그리고 친구끼리 연인끼리 담소를 나누는 이들이 눈에 띄었다. 곳곳에 건축 중인 건물이 철골 뼈대를 드러내 헤이리의 첫인상은 그리 말쑥하지 않다. 그러나 황량한 벌판의 공사장 같은 풍경 가운데서 만나는, 마치 예술작품 같은 건축물과 그것이 풍기는 묘한 매력은 지나는 이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통일동산 내 야산 자락 15만여 평에 들어선 이 예술인 마을은 입소문을 타고 관광명소로 자리잡았다. 다양한 문화 장르가 한 장소에서 소통하는 헤이리는 예술가의 삶터이자 창작 기지이면서 일반인에게는 일상에서 문화예술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헤이리’라는 이름은 ‘어 허허허 허허이 허허야 헤헤이 헤, 헤이리…’라고 부르는 파주 농요(農謠)에서 따왔다.

    “공기 맑은 곳에서 맘 편히 살 사람만”



    헤이리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독특한 건축물을 비롯해 다양한 문화예술 시설들이 ‘콘텐츠’가 풍부한 볼거리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세계의 희귀한 선인장을 한곳에 모아놓은 선인장 하우스 고막원, 동아시아 인도 서남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등 70여 개 나라에서 수집한 500여 점의 악기를 전시한 세계민속악기박물관, 도예가를 위한 갤러리로 생활도자기 작가의 작품을 전시·판매하는 소담갤러리. 그리고 4000여 권의 책이 타원형 벽면 가득 꽂혀 있는 북카페 반디, 도자기처럼 은은한 곡선이 아름다운 건물에 근대 옹기를 상설 전시하는 한향림 갤러리, 클래식 음악감상실인 ‘황인용의 카메라타’ 등 각양각색의 문화 공간이 들어서 있다.

    헤이리는 ‘아, 이런 데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번쯤 하게 만드는 동네다. 갤러리와 박물관, 소극장을 갖춘 각각의 건물에는 주인이 거주하는 주거용 공간이 딸려 있다. 집마다 약간 차이는 있지만 크고 작은 마당에는 야생화가 멋들어지게 피어 있고, 차를 마실 수 있는 소박한 벤치를 갖춘 집이 적지 않다.

    “야생화가 좋아 지난 5월 헤이리에 집을 짓고 뿌리를 내렸다”는 고막원 주인 임지수(60·작가)씨는 “복잡한 도심을 떠나 맑은 공기를 마시며 내가 좋아하는 식물을 맘껏 키우고 감상할 수 있어 행복하다. 1층에 식물이며 선인장을 판매하는 가게가 있지만 큰 이익을 바라고 하는 ‘장사’가 아니라 취미와 즐거움을 얻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고 했다.

    “돈 벌 생각으로 이곳에 둥지 튼 사람은 없을 것이다. 쾌적한 공간에서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마음 편하게 살기 위한 사람들이 모인 공간이 헤이리다. 나이가 들어도 문학과 예술에 대한 열정이 남아 있고 세상을 좀더 부드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행복하게 살고 싶은 사람들, 그런 이들이 모여 산다.”

    도회지와 시골마을의 ‘멋’과 ‘맛’이 적당히 버무려진 헤이리의 태동은 1994년 4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기웅 파주출판단지 이사장(열화당 대표)과 헤이리 아트밸리 전 이사장 김언호(한길사 대표)씨는 부부동반으로 영국 ‘에이 온 웨이’를 방문했을 때 큰 감동을 받았다. 보잘 것없는 중세 풍경 그대로인 이 시골 마을에서 전세계적인 문학 페스티벌이 열리고 고서(古書)를 중심으로 한 문화교류도 활발히 벌어지고 있었다. 두 사람은 ‘한국에도 저런 문화예술촌을 하나 세우자’며 의기투합했다.

    헤이리에서 일산 방면으로 10여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출판단지 건설에 여념이 없던 김언호·이기웅씨를 비롯한 출판인 20여 명은 1997년 3월 ‘서화촌(書畵村·헤이리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전의 마을이름)’ 건설위원회 발기인 모임을 가졌다. ‘에이 온 웨이’처럼 책마을을 만들자는 데 뜻을 함께한 사람들이었다.

    발기인 멤버인 출판인들은 출판단지를 기획하면서 책을 만드는 데 필요한 출판사, 인쇄 및 제본, 그리고 서점과 출판 관계자들의 주거시설까지 한데 어우러진 ‘도시’를 꿈꿨다. 그러나 법의 테두리는 이들의 소망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결국 출판단지는 주거시설과 상업 공간이 배제된 채 산업단지 형태로 개발됐다. 예상치 못한 법률적 제약에 부딪혀 주거와 문화시설 도입이 어렵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출판인들은 애초에 출판도시를 통해 구현하고자 했던 ‘도시’ 기능의 일부를 다른 곳에서 보완해야 했다. 그 공간이 바로 헤이리다.

    문화예술마을을 만든다는 소식은 급속히 퍼져 나갔다. 출판계 사람들 외에 화가, 도예가, 건축가, 영화인, 문화기획가, 갤러리 운영자 등이 헤이리 참여를 희망해 책마을이 아닌 문화예술마을로 그 개념이 확대됐다.

    미술계 인사로는 백순실 전광영 임옥상 화백, 음악계에서는 양성원 연세대 교수, 조민정 스페인 왕립오케스트라 부악장, 서현석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교수, 영화계에서는 강우석 강제규 김기덕 박찬욱 감독이 이들과 뜻을 함께했다. 한복려 궁중음식연구원장, 송인길 국립국악원 예술감독, 극연출가 김정희씨, 소설가 윤후명 박범신씨, 방송인 황인용씨, 탤런트 최불암 김미숙씨도 헤이리 회원이다. 이들은 문화예술 마을을 만들기 위한 조합을 결성했다. 현재 회원은 370여 명.

    예술인의 부동산 개발 첫 사례

    이들은 1998년 7월 통일동산 내 부지(현재 통일동산 주차장으로 사용되는 땅 중 절반에 해당하는 3만평)에 대해 한국토지공사와 계약을 체결했다. 당시 회원수는 200여 명. 그러나 계약한 땅 주변의 3분의 2 이상이 사유지로 둘러싸여 향후 난개발이 이뤄질 경우 회원들이 꿈꾸는 마을의 취지가 퇴색할 수 있는데다 국제적인 예술마을을 만들기에는 부지가 좁아 다른 땅을 찾아 나섰다. 단지 설계를 마치고 회원 전체(당시 회원은 200여 명)가 필지선택을 한 시점에서 모든 것을 ‘없었던’ 일로 하고 새로운 땅으로 옮긴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

    헤이리를 찾은 사람들은 ‘하필이면 왜 공동묘지 바로 옆에 마을을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을 한번쯤 해봤을 것이다. 헤이리가 대규모 공원묘지 옆에 들어선 까닭은 무엇일까. 헤이리의 태동부터 함께 한 ‘문화예술마을 헤이리’ 사무총장 이상씨는 이렇게 설명했다.

    “다른 부지를 찾고 있는데, 원래 계약했던 땅 인근에 있는 15만여 평(민속촌 용도)의 땅이 팔리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그 땅의 3분의 1가량이 동화공원묘지에 접해 있어 기업이나 관공서 등이 기피하는 쓸모없는 땅이었다. 공원묘지 문제만 놓고 보면 이전 부지에 비해 결코 더 좋은 조건의 땅이라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사유지와 접한 부분이 적은데다 향후 개발이 된다 해도 그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점이 높게 평가됐다. 헤이리 마을의 취지를 구현할 수 있는 땅을 선택한 것이다. 우리는 공원묘지보다 사유지의 난개발이 더 두려웠다.”

    ‘문화 신도시’로 거듭나는 헤이리·출판도시

    헤이리에 있는 북카페 ‘북하우스’의 외관과 내부. 기하학적 디자인과 높게 뚫린 천장에서 창조와 자유의 에너지가 발산된다.

    1999년 12월. 예술마을 헤이리는 토지공사로부터 원형지(도로나 기반 시설이 전무한 논과 밭, 늪과 구릉지 상태의 땅) 상태인 15만여 평을 평당 35만여 원에 불하받았다. 헤이리는 회원들이 갹출해 땅을 사고 각자의 건축비를 부담하고 공동경비는 나눠서 부담하는 방식으로 개발, 운영된다. 회원이 개발주체가 되어 개발하는 방식을 택했다. 지난 2000년 제반 기반시설 부담금을 포함한 회원 분양가는 평당 100여만원. 평당 조성원가가 65만원이 든 셈이다.

    개발 경험이 전무한 회원들이 원형지 상태의 땅을 불하받아 개발한다는 것은 난제인 동시에 한편으로는 기회이기도 했다. 헤이리가 단지 기본설계에 의거해 실시설계를 마치고 파주시로부터 조성사업 승인을 받은 것은 2001년 2월, 시공사를 정해 조성공사에 들어간 것이 같은 해 6월이다.

    헤이리는 ‘친환경적인 생태유지형 마을’을 조성하는 데 설계의 목적을 뒀다. 자연지형과 지세를 최대한 살린 상태에서 도로와 녹지, 토지 분할이 되도록 했다.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공존하는 범위 안에서 마을을 만들자는 데 반대하는 회원은 없었다. 길이나 수로 등은 통일동산이 조성되기 전 이곳에 살던 사람들의 삶의 흔적을 반영해 설계됐다. 원래의 지형 탓도 있지만 이런 연유로 곡선도로가 많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가로등과 도로, 그리고 다리 하나에까지 세심하게 신경을 썼다.

    작고 앙증맞은 다리 위에서 갖은 자세를 취하며 여자친구와 사진을 찍던 대학생 김모(24)씨는 “아름답게 지은 다리 하나가 마을 전체의 분위기를 바꿔놓는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헤이리는 사소한 소품에 적잖이 공을 들인 마을”이라고 평가했다.

    헤이리의 크고 작은 다리 또한 모두 ‘작품’이다. 헤이리는 2000년, 마을 한 가운데를 흐르는 하천 등에 건설될 5개 다리의 설계 아이디어를 공모해 선정했다. 헤이리 다리 현상공모는 미학적 고려 없이 건설되기 일쑤였던 우리나라 교량설계 역사에서 보자면 일대 충격이었다. 규모가 제법 큰 교량의 경우에도 현상 설계가 거의 없는 현실에서 15∼25m에 지나지 않는 작은 다리에 문화예술적 숨결을 불어넣으려는 시도 자체가 전례 없는 일이었다.

    마을 전체가 ‘건축 전시장’

    헤이리는 크게 상업시설(박물관, 갤러리, 카페 등)과 주거가 공존하는 건축물, 상업시설을 배제한 채 작업실과 주거 공간인 ‘작가 스튜디오’로 나뉜다. 2000년 착공한 이후 지금까지 문화예술인 100여 인 몫의 건축물이 완공됐고 130여 채의 건물이 세워지고 있다.

    홍익대 건축학과 명예교수 전명현(72)·이명희(60)씨 부부는 서울 목동에서 살다 얼마 전 헤이리에 둥지를 틀었다. 정원이 온통 수경식물과 야생화로 뒤덮인 이 집의 안주인 이씨는 노란색 장화에 트레이닝 바지를 입고 정원을 가꾸는 일에 여념이 없었다. 걸친 옷은 볼품없어도 그의 온화하고 편안한 미소는 ‘100만달러짜리’였다.

    “친구들을 만나면 ‘니들은 아직도 도시에 사니?’라고 묻는다. 이곳에 살면서 정원을 가꾸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재미는 돈으로 살 수 없는 행복이다. 아직 집을 짓지 않은 빈 땅에도 내가 좋아하는 꽃을 심는다. 마을 사람이나 헤이리에 놀러온 사람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이 꽃들을 바라보면서 잠시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헤이리로 이사온 뒤에는 옷 대신 맘에 드는 야생화를 구입한다. 겉모습보다는 마음에 치장을 하고 싶다.”

    헤이리는 마을 전체가 건축물 전시장이다. 그중에서 주 건축물인 ‘집’ 외에 주목받는 부분 중 하나는 블록으로 만든 도로를 꼽을 수 있다. 헤이리의 도로는 아파트 단지에 설치된 것과 같은 ‘단지 내 도로’가 아니다. 도시계획법에 의해 만들어진 ‘도시 공공시설’이다. 조성된 도로는 지방자치단체로 귀속된다.

    ‘자연과 더불어’

    도로에 아스팔트나 콘크리트가 아닌 블록 포장을 한 사례는 국내에서 처음 있는 일. 빗물이 땅속으로 잘 스며들게 해 살아 있는 땅, 숨쉬는 땅으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이 원칙은 주차장, 광장 등 공공영역뿐 아니라 개별영역으로까지 확대 적용됐다. 포장이 필요한 공간은 블록이나 목재 등으로 제한하고 포장면적을 최소화함으로써 다양한 야생식물과 생물이 서식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었다. 헤이리는 이처럼 보통사람들 눈에는 ‘별것도 아닌 것’에 관심과 애정을 쏟았다.

    도로를 블록으로 포장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시공사나 감리사 등에서 수도 없이 이의를 제기해왔다. 그들은 우선 국내에 사례가 없다는 점을 손꼽았다. 또 품질을 보증할 수 없다고 했다. 하자보수에 대한 책임소재 문제도 지적됐다. 회원들 내부에서도 동요가 일었지만 외국 사례에 대한 조사와 자문을 통해 안전성에 특별한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확신과 원칙을 고수함으로써 시공사와 감리사를 설득했다.

    ‘자연과 더불어 존재한다’는 헤이리의 철학은 마을 곳곳에 세심하게 배어 있다. 플라타너스, 소나무 등을 피해서 길을 닦고 수로 공사를 했다. 나무 한 그루를 보호하기 위해 1000만원의 공사비가 더 들었다. 시공을 맡은 엔지니어들의 눈에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나무를 살리기 위해 피우는 난리법석이 황당할 따름이었다.

    헤이리는 전체 건축물이 자연친화적이다. 용적률을 100%로 제한하고 건물 층수도 3층으로 규제했다. 페인트, 장식용 돌 등 자연에 거스르는 치장행위도 엄격히 금지했다. 산이 있으면 산을 깎기보다 비탈에 순응하는 방법을 찾았다. 울타리도 없애고 간판은 최소화했다.

    “헤이리는 행복한 바보들이 사는 동네다.”

    국내 최초로 사설 정치박물관을 운영하는 연세대 정치학과 신명순 교수의 부인 정필숙(57)씨의 말이다.

    “부동산에 투자한다는 생각으로 헤이리에 집을 짓고 터를 잡은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나도 박물관을 운영하고 있지만 이곳의 수입으로는 전기요금과 가스비 등 관리비를 충당하기에도 모자란다. 하지만 주중엔 찾아오는 손님이 거의 없어 조용히 지낼 수 있어 좋고 주말에는 박물관을 찾는 사람을 만날 수 있어 행복하다. 큰 욕심 없이 하루하루 즐겁게 살아가는 것보다 더 큰 수입이 어디 있을까 싶다.”

    헤이리의 ‘이란성 쌍둥이’

    2006년 현재 헤이리의 표준지 공시지가는 단독주택이 평당 200여만원, 상업용지가 270여만원 수준이다. 5년여 전 분양가에 비해 배 이상 올랐다. 하지만 헤이리의 땅은 돈이 있어도 ‘맘대로’ 살 수 없다. 회원자격 기준이 엄격하기 때문이다. 원칙적으로는 사유재산이기에 사고파는 데 법적인 제재를 가할 수 없다. 그러나 헤이리는 자체적으로 회원의 기준을 정하고 철저한 검증을 거쳐 회원자격을 부여한다. ‘현재 문화예술업종에 종사하는 사람이냐’보다는 ‘헤이리에 들어와 어떤 형식의 문화예술공간을 창출할 것이냐’를 중점적으로 심사한다.

    헤이리는 파주 출판도시와는 ‘이란성 쌍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헤이리보다 먼저 조합이 결성되고 부지 선정 또한 1년여가 빨랐던 출판도시가 ‘형’이고 헤이리가 ‘동생’인 셈이다. 헤이리의 구상은 출판도시를 만드는 과정에서 싹이 돋았다.

    낙후된 출판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1988년 ‘출판인 협동조합’이 결성됨으로써 시작된 출판도시 추진사업은 오랫동안 답보상태를 면치 못하다가 1995년 경기도 파주시 교하면, 문방리, 신남리 등 일대의 자유로변 인근 부지를 선정함으로써 발 빠른 행보를 보였다. 출판도시를 만들고자 하는 이들의 목표는 ‘인간성 회복과 인간을 위한 공간’을 만드는 것.

    ‘문화 신도시’로 거듭나는 헤이리·출판도시

    헤이리에서 이따금씩 볼 수 있는 격문. 예술인의 정서가 물씬 묻어난다.

    출판도시를 개발하는 법적 근거는 ‘산업입지 및 그 개발에 관한 법률(산입법)’과 ‘공업배치 및 공장설립에 관한 법률(공배법)’이었다. 출판업이 국가 전략산업으로 인정받아 국가산업단지 지정을 받은 것이다. 출판도시의 가장 큰 목표는 출판기획, 편집에서부터 인쇄, 물류, 유통 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하나로 묶어내 우리나라의 출판문화산업 발전을 이뤄내는 것이다.

    출판문화정보산업단지(출판도시)는 다른 산업단지와 ‘태생’만 같을 뿐 생김새는 전혀 다른 ‘도시’를 창출했다. 무미건조한 공장들이 줄줄이 들어선 일반 산업단지와는 달리 건축물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파주 출판도시는 산업단지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취재차 방문한 출판도시의 첫 느낌은 정갈하면서도 강렬했다. 출판사와 인쇄사 등 각종 건물들은 감상하는 즐거움을 선사했다. 건축물 자체가 작품이다. 출판도시를 만들면서 가장 신경을 쓴 부분은 헤이리와 마찬가지로 ‘건축’이다. 건축가 민현식·승효상씨가 건축 코디네이터를 맡는 외에 영국 북런던대 플로리안 베이글 교수와 젊은 건축가 김종규·김영준씨 등 다섯 건축가가 출판도시 건축지침을 작성했다.

    모든 건축은 이 지침을 따르게 돼 있다. 출판도시의 건축물은 주인이 원하는 대로 지을 수 없다. 까다롭기 그지없는 건축지침을 따라야 한다. 고유의 도시경관을 유지하기 위해 건물의 주 외장 재료는 엄격하게 제한된다. 어떤 유형의 건물이든 지정된 벽돌, 내후성 강판, PC콘크리트 판, 유리를 쓸 수 있다. 그러나 알루미늄판 크래딩(aluminium panel crading), 화강석 판재(granite panel crading), 유리 커튼 월(glass curtain wall), 타일, 붉은 벽돌은 사용을 통제한다. 출판인들이 황량한 대지 위에 ‘출판도시’라는 한 권의 크고 아름다운 책을 멋들어지게 편집하기 위해 애를 썼다.

    습지에서 꽃피우다

    출판도시는 조성이 완료된 1단계(26만4000여 평) 사업과 현재 조성 중인 2단계(20만7000평) 사업으로 나뉜다. 1단계에선 출판과 출판유통, 문화시설이 들어섰고, 2단계에선 영상산업 관련 업종이 들어설 예정이다.

    출판도시의 기본 디자인은 서울대 환경대학원의 황기원 교수팀이 맡았다. ‘책을 기획하고 생산하고 그것을 독자에게 제대로 전달하는 산업시스템을 짜달라.’ 출판인들이 황 교수팀에게 한 주문이었다.

    출판도시는 오랜 역사 속에 발전해온 것이 아니라 허허벌판에서 새로 탄생했다. 원래 한강 하류의 저습지였으나 자유로 건설로 인해 제내지(堤內地·둑 안에 있어서 보호를 받는 땅)로 바뀌면서 생긴 폐천부지(하천의 신설 또는 개축으로 인해 생긴 땅)다. 헤이리와 마찬가지로 별로 쓸모없는 땅인 습지에 도시를 건설한 것이다. 습지는 물의 범람을 막는 기능을 한다. 물을 품고 정화하면서 재사용할 수 있는 지표수를 만들어 하부 토양으로 공급한다. 비가 적고 일조량이 많은 시기에는 수분이 증발하고 비가 많이 오면 물을 충분히 보듬고 수로와 갈대 등 식물에게 물을 공급한다. 개발부지로는 별로 인기가 없는 습지의 단점을 장점으로 활용한 것이다. 수로를 적절히 이용해 거주자와 방문자에게 좋은 휴식공간으로 탈바꿈시켰고 습지에 자생하는 갈대밭과 수로의 수공간은 훌륭한 공원이 됐다. 출판도시는 헤이리와 마찬가지로 땅 위에 흐르는 빗물도 자원의 일환으로 소중히 다룬다.

    출판도시는 산업단지이기는 하지만 단순히 관련 산업부문의 회사나 제작업체가 밀집되어 업종 종사자들 간에 긴밀한 연관관계가 성립되는 수준의 ‘사무공원(office park)’을 원치 않는다. 이 단지를 구성하는 공간, 건축물, 시설물과 그것을 운영하는 프로그램이 문화적으로 승화돼 출판산업 종사인력의 창의력을 높일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각종 문화행사 및 단지 자체를 관광자원으로 만드는 파급효과를 기대했다.

    출판사 잠재 시세차익 ‘4배 이상’

    현재 출판도시에는 한길사, 열화당, 창비, 푸른숲, 도서출판 보리, 나남출판사 등 내로라하는 출판사와 인쇄사가 대거 입주해 있다. 2006년 9월18일 현재 155개의 업체 중 114개 업체가 입주를 마쳤고 나머지는 설계 및 착공준비 중이거나 공사 중이다.

    1998년 토지공사의 분양가는 필지에 따라 평당 65만~75만원선. 현재 시세는 250만~300만원이다. 당시 여력이 있었는데도 출판도시 땅을 분양받지 않은 출판사는 요즘 땅을 치고 후회한다는 후문이다.

    1998년부터 5년 동안 출판사를 운영한 K(41·국회의원 보좌관)씨는 “당시 200평의 분양대금이 1억5000만원 남짓했다. 출판도시를 바라보는 시각이 회의적이고 부정적인 출판사는 참여하지 않았다. 그때 발을 담그지 못한 출판사 관계자는 ‘그 동네 출판사들은 책 팔아서 남는 돈보다 땅(출판도시에서 분양받은) 때문에 먹고살게 생겼다’며 자조 섞인 농담을 한다. 실제로 책을 만들어서 큰 이익을 남기는 출판사는 드문 실정이다. 출판사들이 일부러 땅에 투자한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땅 덕분에 많은 돈을 번 것은 사실이다”고 말했다.

    출판도시는 도시가 완공되고 나면 600여 개의 출판관련 업체가 입주할 것으로 예상한다. 출판도시는 벨기에 레뒤, 네덜란드의 브레드보트 등 유명 책마을과 그 성격은 다르지만 이들 도시와 지속적인 교류를 통해 대한민국의 출판문화 발전에 기여한다. 이 도시는 헤이리와 더불어 자연과 호흡하는 친환경적인 문화공간이자, 그 아름다움을 세계에 내보일 수 있는 건축미가 넘쳐나는 곳이다. 관광객의 발길도 늘고 있다.

    파주 출판도시, 통일동산, 문화예술마을 헤이리. ‘자유로’와 맞닿아 있던 ‘버려진 땅’이 거대한 문화벨트를 이루며 멋들어진 옷으로 갈아입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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