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월 중순 오후 6시, 한겨울의 창문 밖으로 보이는 서울 논현동 거리는 쓸쓸하게 느껴졌다. 도로를 꽉 메운 자동차들은 전조등을 켜고 바쁜 길을 재촉했다. 인도를 걷는 사람들은 스산한 겨울바람에 코트 깃을 꼿꼿하게 세우고 종종걸음으로 바삐 어디론가 사라졌다. 저마다 각자의 분명한 목적지를 향해 확신을 가지고 길을 재촉하는 것 같았으나 나는 이곳을 떠나면 가야 할 곳이 마땅치 않아 마음이 착잡했다.
A협회에서 2년을 잘 버티어왔지만 이제는 한계에 도달했음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기에, 어디론가 떠나야 한다는 마음은 굳어졌다. 그러나 59세에 갈 곳이 마땅하지 않았다. 젊은 시절의 화려한 경력과 야망도 1997년 금융위기 쓰나미에 휩쓸려 퇴색했고, 일에 대한 열정도 서서히 식어가고 있었다.
깊은 상념에 빠져 있던 나는 전화벨 소리에 놀라 후닥닥 수화기를 들었다. 현대건설의 이 전무였다. 뜬금없는 전화에 의아했지만 반가웠다.
“오랜만입니다. 이 전무가 이 시각에 전화를 하다니 웬일입니까?”
“한번 뵙고 싶어서요. 시간 좀 내주시지요.”
“회사가 망합니다!”
다음 날 저녁, 이 전무의 주선으로 토목본부장과 만났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홍콩 CT-9 프로젝트는 큰 위기에 처해 있었다. 착공 20개월째인 현재 공사기간이 많이 지연되면서 발주처가 현장조직을 완전히 바꿀 것을 요청했고 급기야 계약 해지를 들먹이는 긴급 상황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이 프로젝트가 잘못되면 회사가 망합니다. 홍콩에 출장 중인 김 특보께서 특별히 백 사장을 현장소장으로 추천했으니 부탁합니다.”
그의 태도는 사뭇 비장해 나조차 긴장될 지경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나로서는 새로운 직장을 구하려고 고민하던 중이었기에 김 특보의 추천은 좋은 기회로 생각됐다. 내 생애 첫 직장으로서 20년간 청춘을 바친 현대건설이 아니던가. 개인사업을 하기 위해 뛰쳐나온 지 정확히 11년 만에 다시 옛 직장으로 복귀하게 된 것이다.
홍콩 공사의 발주처는 한 회사나 정부기관이 아닌 3개의 서로 다른 회사가 대표를 파견해 구성된 공동체였다. 발주처의 공식적인 업무는 한시적으로 설립된 사업관리사무소(PMO)에서 대행했지만 실질적인 권한은 각 투자회사와 그 대표에게 있었다. 이 때문에 모든 의사결정이 늦고 진행이 까다로워 현장을 운영하는 데 애로가 많았다. 설상가상으로 엔지니어 회사도 서로 다른 2개의 설계회사가 합작, 운영하고 있었다. 그들은 무기력해 자기 역할을 하지 못하고 발주처의 눈치만 보는 상황이어서 간섭만 심하게 할 뿐 막상 필요한 의사결정을 끌어내지 못했다. 게다가 사업시행허가를 내준 홍콩 관청의 온갖 간섭까지 겹쳤다.
너무 낮은 가격으로 공사를 수주한 것 외에도 이러한 주변 환경의 악재가 겹쳐, 공사기간은 1년 이상 지연됐고 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 공사를 끝낼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했다.
현장소장을 비롯한 임직원은 각종 간섭과 불신에 시달려 의욕을 상실하고 체념상태에 있다고 했다. 기회만 있으면 이 현장을 벗어나 다른 곳으로 전출되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이었다.
2002년 1월31일 나는 홍콩행 비행기에 올랐다. 지난 2주간의 분주함을 떨쳐버리고 휴식을 취하려고 했으나 나의 뇌는 휴식을 거부했다.
김 특보와 함께한 1980년대 해외토목부의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그가 해외토목부 책임자로 있을 때 나는 그의 부하였다. 내가 말레이시아 페낭대교와 캐나다 밴쿠버 교량 건설 현장의 소장으로 활동할 때는 숱한 즐거움을 함께했다. 페낭대교는 1982년에 착공해 1985년에 완공됐는데, 교량 길이가 14km나 되어 동양 최장의 교량으로서 유명세를 탔다. 현대건설은 이 공사에서 많은 이익도 챙겨 당시 이 공사의 현장소장이던 나 자신이나 토목부 본부장이던 김 특보는 회사에서 특별한 대우를 받았다.
정주영 회장의 기쁨
밴쿠버 교량공사는 1986년에 착공하여 1988년에 완공됐는데, 큰 이익은 챙기지 못했으나 현대건설이 최초로 북미에 진출한 특수교량 공사로서 유명했다. 당시 정주영 회장은 현대건설의 선진국 진출 가능성을 확인하고 매우 기뻐했다.
다음 날인 2월1일, 홍콩 CT-9(컨테이너터미널 9의 약자) 현장에 첫 출근을 했다. 김 특보를 보자 가슴 한구석이 찡하게 울려왔다. 차가운 느낌이 들 만큼 깔끔하고 단정한 모습은 여전했으나, 장기간 출장생활의 고달픔과 현장의 어려움으로 많이 시달린 듯 초췌하고 피곤한 표정이 나를 안타깝게 했다. 그분은 매우 반가워했다. 그러나 구차한 설명이나 당부의 말씀을 하지는 않았다.
“소신껏 잘 해보시오.”
짧은 한마디에 수만 가지의 설명과 당부가 있음을 알고 있었다.
현장 임시창고에서 소장취임식이 시작된 것은 오전 9시였다. 토목본부장의 소개가 있자 모여서 웅성대던 직원들이 대열을 정리하고 연단에 선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안녕하십니까? 내가 백이호입니다.”
나는 한마디 던진 후에 입을 다물고 앞줄에 선 부장급 직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눈을 맞추어갔다.
최 부장, 박 부장, 변 부장 등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아는 얼굴이 없었다. 한동안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긴장이 고조되는 듯했다. 부풀 대로 부풀어 이제 더는 견디지 못하고 터져버릴 것 같은 긴장을 깨고 나는 다음 말을 이어갔다.
“여러분, 모든 어려움에는 반드시 해결책이 있는 법입니다. 나는 지난 1970∼80년대에 현대건설에 근무하는 동안 크게 세 번의 위기를 맞았지만 그 위기를 극복한 경험이 있습니다. 바로 파푸아뉴기니, 사우디, 페낭 프로젝트에서 공사를 포기해야 할 정도의 위기를 맞았지만 결국 해결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따라서 이번 홍콩 프로젝트의 사정이 아무리 어렵다 해도 반드시 해결책을 찾아낼 것입니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려면 딱 한 가지 원칙을 지켜야 합니다. 즉 담당직원들이 강한 의지를 가지고 문제해결에 골똘해야 합니다. 낮이나 밤이나 심지어 꿈속에서도 오로지 해결방안만을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합니다. 문제해결을 위해 집중하는 여러분이 방해를 받지 않도록 나는 소장으로서 최선을 다하여 여러분을 지원하고 보호할 것입니다.
신뢰회복 운동
또 하나, 이 현장의 급선무는 그동안 실추된 신뢰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본사, 지사, 하도급업자, 엔지니어, 발주처, 홍콩 관공서로부터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또 급한 일입니다. 이러한 상호신뢰 없이는 아무 일도 해낼 수 없다는 사실을 여러분도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현재는 불신의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지만 이제 나는 그 악순환의 고리를 과감하게 절단하고, 믿음의 고리로 바꾸어놓을 것입니다.
본사 사장님 이하 관련 임원들로부터 약속을 받아왔습니다. 앞으로 우리 현장에 대해 불필요한 간섭을 일절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모든 의사결정은 내가 할 것이며 본사와의 의견조율도 내가 직접 할 것입니다. 과거에는 본사의 각 부서에서 중구난방으로 수많은 보고서를 요구하는 등 생산에 도움이 되지 않는 잡무를 시켰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 때문에 여러분의 시간낭비는 물론이려니와 일관성이 없는 혼란스러운 보고서가 전달되어 현장은 의심을 받고 신뢰가 실추되는 일이 종종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바로잡겠습니다.
하도급업자에게 약속한 대금 지급기일을 절대 지킬 것입니다. 잦은 약속 불이행이 결국 하도급업자들의 신뢰를 좀먹게 했고 그 영향으로 그들은 더 비싼 견적을 제시하고 업무수행에도 열성을 내지 않게 되어 그 손해가 고스란히 우리에게로 돌아온 것입니다.
까탈 부리는 발주처
발주처는 공기연장 협정 초안의 골격만 제시해놓고는 느긋한 자세로 일관했다. 떡 버티고 서서 우리가 초조해하는 모양을 즐기는 듯했다. 우리는 매달 뼈 빠지게 일하고 수령한 기성대금에서 상당한 부분을 지체상금으로 공제당하고 나면, 현장 운영자금이 턱없이 부족했다. 매번 본사에서 엄청난 자금을 지원받아야 겨우 지탱할 수 있었다. 채권단에서는 당연히 이 자금지원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매번 까탈을 부렸다.
그렇다고 공사를 중단하고 현장을 폐쇄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나마 해결책은 공기연장 협상을 조기에 타결해 지체상금 금액을 대폭 축소하는 것이었다. 급기야 사장이 현장을 방문하고 발주처 인사들을 만나게 됐다.
2월19일 화요일. 사장이 홍콩공항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1시50분이었다. 발주처 사무소로 출발하기 전, 현장 회의실에서 지사장의 보고를 받은 사장은 매우 흥분했다. 공기연장 협상에 대한 발주처의 태도가 너무 미온적이고 고자세라는 보고 때문이었다. 그런 실정이라면 더 이상 공사를 수행해 나갈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 그는 심지어 “내가 오늘 발주처 관계자를 만나면 더 이상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없다고 포기 선언을 하겠다”고까지 했다.
오후 6시경 발주처 사무소에서 발주처 관리소장 홈즈와 발주처 대표인 크리스, 호레이와 만났다. 에디는 일이 있어 참석하지 못하고 대신 존이 참석했다. 우리측에서는 지사장과 내가 수행했다. 사장의 첫 발언은 거의 공사포기 선언 수준이었다. 그는 굳은 표정을 짓고 엄숙하게 말했다.
“우리가 제안한 공기연장을 안 해주면 우리로서는 더 이상 공사를 수행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홈즈는 더 강력하게 역공세를 취했다. 안경 너머에 깊숙하게 자리잡은 파란 눈을 껌벅이지도 않고 사장을 똑바로 응시하면서 또박또박 말했다.
“그 말은 계약포기를 공식 선언하는 것입니까? 그에 따른 계약해지 절차를 밟아도 되겠습니까?”
사장은 한참 동안 입을 열지 못했다. 이마에 땀방울이 맺히고 안색은 붉게 변하는 것 같았다. 그는 작은 목소리로 힘없이 대답했다.
“공사포기 선언은 아닙니다. 다만 당신들이 충분히 공기연장을 해주지 않으면 공사수행이 어려워진다는 뜻입니다.”
공사포기를 선언한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함으로써 우리는 수세에 몰리고 입지는 약해지고 말았다. 그 뒤를 이어 지사장이 보완설명을 했고, 나도 한마디 거들었다.
“어느 정도 가능성이 보여야 우리도 신바람이 나서 열심히 일할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전혀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면 우리도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닙니까. 공사를 성공적으로 끝내려면 당신들의 현실상황 이해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그 이해를 바탕으로 적절히 공기연장을 해주어야 우리도 노력해볼 것 아닙니까.”
희미한 불빛
그러나 그들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 후에 양측에서 실무적인 대화가 계속됐지만 서로의 생각만 확인했을 뿐, 이 만남에서 얻은 것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발주처를 건드려 우리의 협상 입지만 더 약화된 셈이었다.
현장에 돌아와 저녁식사를 끝내고 8시30분부터 2시간 동안 사장이 내부회의를 주재했는데, 낮에 보이던 강경한 태도는 많이 누그러져 있었다. 발주처 인사들을 만난 후 그들의 강경한 분위기에 충격을 받은 듯했다. 그는 이렇게 단적으로 표현했다.
“오늘 회의에서 홈즈의 자세는 매우 강경했고 전혀 변화가 없었다. 따라서 우리는 발주처의 양보를 기대하지 말고 내부적으로 공기 단축 방안을 모색하는 수밖에 없다.”
그동안 현장에서는 공구장들과 수많은 토론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때로는 내가 설득하고 윽박질러 공기단축이 가능하다는 희망적인 분위기가 조성됐다. 공구장들이 초기에는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태도를 취했으나 계속된 의논 끝에 겨우 동의한 것이다. 아직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발주처에서 수용할 수 있을 만한 수준에 거의 근접해 있었다. 협상 성공의 희미한 불빛이 보이는 듯했다.
그러나 날씨 등 예상하지 못한 리스크가 많아 공구장들이 해낼 수 있다고 하는 공정계획보다 최소한 1개월은 더 여유를 가지고 발주처와 협상할 필요가 있었다. 일단 공구장들을 모두 불러 단축된 공정계획을 기필코 달성할 수 있다는 서명을 일일이 받았다. 그러고는 이 서명서를 본사 사장에게 보냈다. 공구장들의 비장한 각오를 공식화해서 그들을 옭아매려는 게 내 의도였다.
그 대신 각종 인센티브를 약속했다. 우선 이론적으로는 가능한 공정계획이니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공구장들이 노력하면 달성할 수 있을 것임을 기대해 그에 대한 보상으로서 인센티브를 약속했던 것이다. 당근과 채찍 중 나는 당근을 선호했다. 내부결속이 되었다고 판단되어 3월 하순부터는 발주처를 더 적극적으로 만나기 시작했다.
현대를 위한 배려
3월26일 화요일. 예정대로 오후 2시 반에 에디를 만났다. 협상전략의 일환으로 발주처의 속사정을 알아낼 필요가 있다는 판단이 서 적극적으로 이들을 만났다. 나는 가능하면 말을 적게 하고 그에게 말을 많이 시켜서 그쪽 정보를 얻어내려고 했는데, 그는 원체 솔직하고 직선적인 성격의 소유자라 특별히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많은 발언을 했다. 그 요지는 이러했다.
“우리 H사는 공기보다는 품질과 공사비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또 현대상선 등 현대그룹과의 비즈니스 관계 유지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현대건설이 언젠가는 현대그룹으로 돌아갈 것을 기대하기에 이번 협상에서도 상당히 배려했다. 발주처 3사가 서로 경쟁관계로서 이해관계가 상충된 상황에서 정부의 권유에 마지못해 공동 참여해 시행하는 이 프로젝트는 태생적으로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이번에 발주처 사무소에서 제시할 협정 초안을 받아들이는 것이 현대를 위해서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A사는 공기 단축이 최우선인 반면에 H사는 품질을 우선으로 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나. 더 이상의 양보안은 그들 내부갈등 때문에 나올 수 없다는 의미일까. 그의 발언내용이 상당부분 사실이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오후에 있을 공식회의를 겨냥한 전략적인 의도도 포함된 것 같았다.
오후 늦게 열리는 공식 협상회의에는 지사장과 함께 참석했다. 에디와 크리스는 약속시간보다 약 10분 늦게 나타났다. 함께 오는 것을 보니 회의 전에 저희들끼리 또 다른 음모라도 꾸민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퍼뜩 들어 순간적으로 그들이 얄밉게 보였다. 회의실의 상석을 차지하고 앉아 있던 홈즈는 간단히 수인사를 마친 후 쪽수가 제법 되는 협정 초안서를 참석자들에게 나눠줬다. 각 조항에 대한 세부설명을 마친 그는 서서히 지사장과 나를 번갈아 쳐다보면서 마무리 말을 이어갔다.
“미스터 공, 미스터 백, 이것이 우리 발주처가 제시할 수 있는 최종 협정 초안입니다. 빠른 시일 안에 수락 여부를 통보해주기 바랍니다.”
“차라리 철수합시다!”
어차피 사무실에 돌아가 서류를 자세히 읽어보면 모든 내용을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한 나는 홈즈의 설명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보다는 발주처의 진짜 의도가 무엇일까 하는 의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이것저것 궁리하고 있었다. 크리스는 이 사람 저 사람을 흘끔흘끔 쳐다보면서 반응을 떠보는 것 같았다. 지사장이 잔뜩 찌푸린 표정을 지었다.
“오염토 사건을 검토해보면 우리의 잘못보다는 발주처의 책임이 큽니다. 공기 지연의 가장 큰 이유는 오염토 사건이므로 발주처에서는 공기를 충분히 연장해줘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협정 초안에 제시된 공기는 달성하기가 거의 불가능합니다. 다시 고려할 것을 부탁합니다.”
오전에 만났을 때와는 딴판으로 에디가 고개를 앞으로 쑥 내밀면서 엄숙한 표정으로 공격적인 발언을 했다.
“홈즈가 이미 설명한 것처럼 이 초안은 우리 발주처 3사가 양보할 수 있는 최종안입니다. 동의 여부는 현대에서 결정할 일이지만, 협상이 타결되지 않으면 결국 현대에 더 큰 손실이 발생할 것임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나는 이곳에서의 입씨름은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들을 이길 수 있는 근본적인 방안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기에 한마디 발언도 하지 않은 채 서둘러 사무실로 돌아왔다. 지사장은 지사 사무실로 돌아가 이 초안의 내용을 본사에 보고하겠다고 했다. 나는 내 사무실에서 문디를 포함한 부장들을 불러 회의를 시작했다.
반복해서 초안을 읽어보았지만 변호사들이 써놓은 문구여서 확실하게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 조항이 많았다. 심지어 영국인인 문디조차 확실하게 개념 정리를 못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았다. 공기연장 날짜는 변한 것이 없는 반면에 우리가 양보해야 할 조건만 추가되어 나열됐다. 마치 바다 밑 파일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조개껍데기와 이끼처럼 불결하게 느껴졌다.
우리는 발주처의 초안을 읽은 후 모두 실망했고 그 실망은 곧 발주처에 대한 분노로 변해갔다. 특히 전체적인 초안의 흐름을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되는 문디가 가장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차라리 이쯤에서 프로젝트를 포기하고 철수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나는 그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 사장도 포기하고 싶은 심정이었는데 결국 그 포기선언을 하지 못했다. 과연 내가 계약포기를 주장할 수 있을까. 포기한다면 우리 현대가 받을 손실은 4억달러가 넘을 것으로 계산한 보고서가 내 뇌리에 순간적으로 떠올랐다. 그뿐 아니라 이행보증을 위반한 벌로 해외 공사를 더는 수주하지 못할 것이다. 어찌 이 엄청난 일을 하자고 주장할 수 있겠는가.
‘작전에 말려드는 것인가?’
발주처로부터 더 많은 양보를 받아낼 전략적 무기로 사용할 수 있다면 몰라도 진정 공사를 포기한다는 것은 내 권한 밖의 일임을 알면서도 나는 문디에게 물었다.
“만일 우리가 계약을 포기하면 저들은 계약상 어떠한 절차를 밟게 됩니까?”
그도 흥분을 가라앉힌 듯 차분하게 내 질문에 답했다.
“저들은 계약조건에 의해 이행보증 등을 우선 요청할 것입니다. 이 상태에서 재입찰에 부치겠지요. 신규 계약자와 계약금액이 결정되면, 그 금액과 우리 잔공사 금액의 차액을 우리가 변상해야겠지요. 다만 이 변상과정이 복잡해 소송을 거쳐야 하므로, 장기화할 것입니다. 또 신규계약자가 공사를 실질적으로 재개하기까지는 아무리 서둘러도 1년이 걸릴 것입니다. 그래서 저들도 쉽게 결단을 내릴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규 계약금액이 얼마나 될지 예측도 못하겠군요?”
“그렇지만 지나치게 큰 금액이 나올 때는 소송과정에서 이의를 제기할 수 있겠지요.”
과연 어느 정도면 저쪽에서 계약해지라는 모험을 단행할 수 있을까. 이 한계를 확실하게 파악하는 것이 우리 협상의 전략수립에 가장 중요한 요소가 아닐까.
4월8일 월요일. 사전 연락도 없이 지사장이 갑자기 현장에 나타났다. 에디를 만나러 가기 전에 현장에 들러 이미 제출한 대안의 세부내용을 다시 한 번 확실하게 파악하려는 의도인 것 같았다. 정말 열심이다. 나도 내일 오전에 홈즈와 회의가 예정돼 있어 미리 철저한 준비를 해서 만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오전엔 활기 있었던 지사장이 오후에 나에게 전화했을 때는 그만 풀이 죽어 있었다. 에디로부터 우리 대안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듣고는 매우 실망했고, 그래도 혹시나 하고 바로 홈즈에게 전화해 확인했으나, 역시 나쁜 반응이 나왔다면서, 나에게 전화할 때는 거의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사나흘 전에 우리 현장을 방문한 루핀 사장의 반응은 꽤 긍정적이었는데 왜 이렇게 분위기가 변했을까. 지사장이 그동안 H사 사장과 호레이를 번갈아가며 만난 후에 항상 잘되어 간다고 긍정적인 분위기를 전달하곤 했는데.
오늘은 상황이 전혀 딴판으로 바뀌었다. 이해할 수 없었다. 발주처에서는 우리가 모르는 또 다른 인사가 의사결정을 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이 사람들이 작전을 펴고 있는 것일까. 홈즈와 에디의 작전에 말려드는 것은 아닐까.
그동안 협정서 초안의 내용에 대한 오해가 풀려 대안을 다시 작성했으며, 수많은 검토를 거쳐 정식 공문으로 발주처에 제출했다. 4월15일에 A사 사장이 우리를 호출했다. 지사장과 함께 오후 4시에 사장실에 도착했다. 미리 기다리고 있던 크리스가 우리를 반갑게 맞았다.
무너진 인내심
일반적으로 시공회사가 수립한 공정계획을 정식 공문으로 엔지니어에게 제출하면 그들이 검토한 후에 발견된 문제점을 가지고 시공회사와 협의과정을 거친다. 그 후 다시 수정 정리된 것을 발주처에 보고하는 것이 정상적인 업무집행 절차이다. 발주처와 계약자가 직접 공정계획을 따지는 것은 매우 특이한 경우다.
그러나 공기연장을 받아내야 하는 특수한 사정 때문에 현장소장인 내가 발주처 사장을 찾아가 공정계획을 설명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이러한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더구나 한번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고 벌써 수차례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으니 이제는 나도 지쳤다.
그렇지만 지사장이 루핀에게 아쉬운 부탁을 하는 처지임을 고려해서 나는 꾹 참아왔다. 오히려 지사장의 끈질긴 노력을 가상하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싫은 감정을 억누를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 만남은 내 인내심의 한계를 무너뜨리고 말았다. 루핀이 순수하게 공정계획에 대해서 알고 싶어하고 또 진심으로 공기를 단축할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서 이러한 만남을 반복한다고 공감했다면 나는 바로 승복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 그가 보여준 언행은 나를 실망시켰다. 그는 성격적으로 남을 공격하면서 우쭐대는 것을 좋아하는 타입이었다. 더 심하게 말하면 나나 지사장을 불러 비꼬고 비난하는 것을 즐기는 비정상적인 성격의 소유자라는 생각이 나를 화나게 만들고 말았다. 나는 더는 고분고분한 태도를 지탱할 수가 없어 솔직한 심정을 토로하고 말았다.
“당신도 회사의 최고책임자인 사장이니까 잘 이해하리라 믿습니다. 나는 160명의 직원과 1000여 명의 근로자를 책임지고 있는 현장소장입니다. 현장소장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이 160명이나 되는 직원을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좋은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현장에서는 매일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는데 이때 신속하고 정확한 의사결정을 해주는 일입니다.
이러한 일에 집중하지 않고 현장소장이 당신이 질문한 것들, 즉 서류를 언제 제출했는지, 공정계획표상에 공정항목 수가 몇 개인지 같은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숫자 나부랭이나 기억하는 데 신경을 쓰고 있다면 현장은 엉망이 될 것입니다. 나무 하나에 얽매여 큰 숲을 보지 못한다면 이야말로 오히려 공정계획 목표달성을 그르치는 일이 될 것입니다.”
갑작스러운 나의 항변에 그는 다소 주춤하는 것 같았고, 화해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몸짓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렇게 성격이 이상한 사람에게 계속 공손하게 대하면 오히려 기승을 부리면서 상대편을 아예 밟아 뭉개버리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가끔은 쇼크를 줄 필요가 있다.
은근한 암시
발주처에서 보내온 협정 초안을 검토했다. 검토 결과 그들이 숨겨놓고 고심하던 설계상의 문제점을 드디어 이번 협정 초안에서 모두 해소하려는 의도를 드러낸 것으로 판단했다. 10년 전에 계획한 컨테이너 운반선박 및 하역장비가 현재로서는 한물간 것들이라 새로운 기술 발전으로 개발된 소위 차세대 장비를 수용할 수 있는 터미널 구조가 필요했고, 이에 따른 각종 설계변경이 불가피했을 것이다.
그러나 섣불리 설계변경을 하려고 들면 현대건설에서 이에 대한 클레임을 제기하고 나올 것이 명백하므로 고심했을 것이다. 그러나 공기연장 협정 초안에 이 설계변경 건을 끼워 넣고, 현대로부터 일절 클레임을 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받아낸다면 그들은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다고 계산했을 것이다.
이들이 우리의 대안을 검토하는 데 시간을 끈 이유가 확연해진 것이었다. 순진하게도 나는 우리의 대안에 불만이 있어 그들이 시간을 끄는 것으로만 짐작했다. 그들 자신의 문제점들을 한꺼번에 해결하기 위해 시간이 지체된 것임을 오늘 그들의 새로운 초안을 보고 확실히 추정할 수 있었다.
이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이득을 얻을 수 있을까. 이것들을 빌미로 더 유리한 조건을 제시해야 할까. 그러나 본능적으로 경각심이 들었다. 이 약점을 지나치게 부각한다면, 본사의 강경파들이 들고 일어나 더 큰 것을 요구하는 탐욕을 부리지 않을까. 상황이 그렇게 전개되면 협상 타결에 오히려 역효과가 나지 않을까. 차라리 이 약점을 직접 건드리지 말고 은근히 암시하면서 다른 조건들을 야금야금 양보받는 것이 더 유리하지 않을까. 신중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5월8일 수요일. 그동안 서로 눈치를 살피면서 밀고 당기던 협상에 일단의 결말을 낸 날이었다. 에디가 이끄는 발주처 팀은 나름대로 이 협상에 대한 권한을 위임받은 듯 자신 있는 태도로 오늘의 모임을 요청했다.
지사장은 호텔 식당의 큰방 하나를 별도로 예약해 철저한 협상준비를 갖췄다. 그 방은 벽이 거의 다 유리거울로 되어 있어 더 넓어 보였다. 한가운데에 의자 넷이 딸린 두꺼운 흑색 유리테이블을 배치하고 테이블 위에는 협정 초안서류와 녹차가 준비되어 있었다. 동쪽 구석의 보조 테이블 위에는 바스켓에 포도주 병이 비스듬히 담겨 있었다. 단색의 간결한 가구뿐이어서 더욱 방이 넓고 분위기가 우아해 보였다. 지사 직원 한 사람이 복도를 통해 들어올 발주처 인사를 안내하기 위해 방문 입구에 부동자세로 서 있었다.
가벼운 마음, 그리고 저녁식사
약속된 오후 5시 반에 나타난 에디와 호레이는 깜짝 놀라는 표정이었다. 회의장이 이처럼 우아하리라고는 예상치 못한 듯했다. 에디의 깜짝 놀라던 얼굴표정이 쫙 펴지면서 미소와 함께 즐거운 탄성이 나왔다. 호레이 또한 기분이 좋아 보였다. 둘은 지사장과 나에게 번갈아 악수를 청했다. 발주처 대표 셋 중에 크리스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에디가 모든 권한을 위임받았다고 선언했으므로 우리는 바로 테이블로 다가가 의자에 앉았고, 그 위에 놓여 있던 협정 초안을 집어 들고 한 구절씩 읽어가면서 서로 이견이 있는지 검토 확인하기 시작했다.
이 초안은 개괄적으로 요약하면 목표공기, 지체상금 부과일자, 주요공정 완료목표일, 부두별 안벽크레인 도착예정 일자, 파일내부 및 빔 콘크리트 철근 변경 스케치, 엔지니어와 분쟁 중인 사안 목록 등으로 구성됐다. 이 항목들을 처리하기 위해 서로 지켜야 할 조건들과 만일 현대건설이 목표공기를 지키지 못했을 경우에 부과되는 책임이 계약조건으로 나열됐다.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목표공기 및 지체상금 부과 개시일자에 대해서는 이미 수많은 의견교환을 거쳐 상호 파악하고 있는 상태여서 오늘의 협상대상은 아니었다.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일자에 대해서는 차후에 각 회사를 상대로 개별적으로 해결하기로 잠정 합의했다.
세부 협정조건을 심의하는 과정에서 우리측은 일종의 피해의식이 밑바닥에 깔려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변호사가 초안한 구절들에 어떠한 함정이 있지 않나 의심하면서 눈을 부릅뜨고 꼬치꼬치 캐물었으며 에디는 별것 아니라는 식으로 그 의미를 우리에게 설명했다.
음모와 신뢰
내 관심사인 주요공정의 완료목표일이 달성 불가능함을 호소했으나 이 문제에 대한 결정은 일단 뒤로 미루기로 했다. 파일 및 빔 설계변경에 관련한 리드타임에 대한 협상에서는 전에 내가 주장하던 90일을 양보하여 45일과 30일로 타협했다. 그 대신 철근 설치의 복잡성을 충분히 이해시켰고 엔지니어와 별도로 협의하여 현장에서 시공이 가능하도록 발주처에서 적극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또 추가물량은 정식 설계변경으로 인정해 본 계약조건에 의한 비용보상을 받는 것으로 합의했다. B1N 공기 달성의 어려움을 설명했으며 이 또한 에디가 적극 지원하여 목표공기를 어기는 일이 없도록 설계변경을 적극 추진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협정초안의 문구 중 매우 경미한 일부를 수정하는 정도로 합의가 이뤄졌다. 에디의 성실하고 상세한 설명을 들은 후 초기에 문서로 접했을 때 느낀 거부감이 많이 사라졌고 그들의 뜻을 충분히 선의로 해석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된 덕분에 이러한 합의가 가능했다. 협상을 끝낸 후에 우리는 가벼운 마음으로 그 자리에서 저녁식사를 함께했다.
저녁 10시 반이 지나서 닛코호텔로 돌아와 본사에서 출장 나온 토목본부장과 계약부 책임자에게 회의결과를 보고했다. 11시 반까지 이어진 보고와 의논과정에서 계약부 책임자는 합의내용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면서 계속 따지고 들었다.
제1부두에서 6부두까지와 B1N을 합해서 7개의 목표공기 중 단 하나라도 지키지 못할 경우에는 이 협정은 무효가 되고, 그동안 면제됐던 지체상금을 모두 변상하도록 되어 있는 조건 때문에 그는 크게 우려하고 있었다. 그가 고개를 살래살래 저으면서 물었다.
“만일 발주처에서 나쁜 마음을 먹으면 언제라도 엔지니어를 시켜서 공기를 지키지 못하도록 공작할 수 있지 않겠어요?”
나는 발주처 인사들과 협정문을 검토하는 데 심혈을 기울인 뒤라 진기가 다 빠져 지쳐 있었다. 대답하는 것조차 힘이 들었지만 겨우 입을 열어 말했다.
“물론 마음만 먹는다면 어느 정도는 가능하겠지요.”
어쩔 수 없는 조건
그는 옆 사람들을 흘낏 훑어보던 안경 너머에 감추어진 날카로운 눈빛을 곧추 세워 나를 빤히 쳐다보면서 또박또박 질문했다.
“그렇다면 앞으로 1∼2년간 현대를 괴롭히면서 한껏 부려먹다가 적당한 시기에 그런 식으로 엔지니어를 시켜 트집을 잡아 공기를 못 지키도록 할 수도 있겠군요. 그래서 면제해주었던 지체상금을 다시 받으려고 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 음모에 대한 대책이 있습니까?”
그의 주장에도 일리가 있었다. 문제는 상호신뢰였다. 만일 이 신뢰가 깨진다면 아무것도 약속할 수 없고 결국 아무것도 이룰 수가 없다고 나는 믿었다. 일단 내가 상대편을 믿어야 상대편도 나를 믿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지치고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그의 주장에 대한 내 생각을 말했다.
“그러한 가혹한 조건을 내걸 수밖에 없는 그들의 처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이 처음부터 그런 악랄한 의도로 이 조건을 내걸었다기보다는 우리의 과거실적이 나쁘므로, 장래 계획도 믿지 못해 그런 조건을 내걸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고 판단됩니다. 우리가 먼저 그들의 신뢰를 잃었기 때문에 자초한, 어쩔 수 없는 조건 아니겠습니까. 지난 2년간 공사를 수행하면서 제대로 공정계획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로서는 이러한 극단적인 보증을 받지 않고는 공기연장을 해줄 수 없다는 것 아닙니까? 그들 말마따나 9억홍콩달러의 지체상금을 면제해주는 만큼 이 정도의 위험조건은 감수해야 된다는 것이지요.
가령 1년 후에 우리가 또 공기를 지키지 못해 계약을 해지하고 다른 업자를 선정하려면 그때는 이미 너무 늦다는 것이 그들의 논리입니다. 그래서 그들도 우리에게 확실한 보장을 받은 후에 공기연장을 해주겠다는 것이지요. 나는 이해가 갑니다.
엔지니어를 시켜서 공사를 적극적으로 방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원체 많은 사람이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비밀스럽게 그러한 음모를 꾸미고 시행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또 내가 상대해보니 발주처 인사들이 자기 회사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렇게 비윤리적이고 부정한 음모를 꾸밀 정도로 도덕적으로 타락한 사람들은 아니라고 판단합니다.”
장황한 내 설명에 그도 체념한 듯 푸념투의 반응을 보였다.
“그렇게 순진하게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조용히 듣고만 있던 지사장이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이뿐만 아니라 현재 홍콩 시장에 큰 변화가 생겼다는 것도 감안해야 합니다. 작년에는 컨테이너 물동량이 시원치 않아 발주처가 공기를 무리하게 단축할 필요가 없었지만, 최근에 호황 기미가 보이면서 발주처가 진정으로 공기단축을 원하고 있기 때문에 굳이 엔지니어를 시켜서 공기지연을 획책할 이유가 없다고 봅니다.”
일단락은 됐으나…
이 정도면 마무리할 때가 됐다고 판단한 내가 마지막으로 쐐기를 박았다.
“어쨌든 현장에서 내가 책임지고 목표공기를 맞추면 될 것 아닙니까. 그 부분은 내가 확실하게 책임질 터이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나의 단호한 선언으로 이 문제는 일단락됐으나, 그는 또 다른 상업조건에 대해서도 따졌다. 많은 사안에 대해 의심과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그의 업무자세가 갈길이 바쁜 우리의 발목을 잡는 것 같아 곤혹스러웠다.
지사장의 표정에는 싫은 기색이 역력했다. 그동안 발주처를 접촉해 온갖 노력을 다해서 이만큼 이뤄놓았는데 오히려 시비와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게 못마땅했고, 더는 발주처로부터 빼앗아 올 것도 없었기에 답답했을 것이다.
파일 안에 설치할 철근 숫자가 28개에서 32개로 변경된 것에 대하여 지사장과 내가 이미 시공 가능하다고 동의해 공기연장협정에 포함시킨 바 있는데, 이제 와서 문디는 굳이 시비하는 공문을 보내고 싶어했다. 우리는 이 문제로 많은 토론을 벌이면서 서로 극명한 인식차이를 드러냈다. 문디가 먼저 제안했다.
“파일 내부 단면에 꽉 차 있는 철근을 실제 크기로 그린 도면을 첨부한 공문을 보내서, 이 공문을 읽는 모든 사람에게 시공이 불가능함을 인식하도록 하면 어떻겠습니까.”
나는 그의 발언을 신중하게 들은 후에 내 의견을 천천히 설명했다.
“그것도 좋은 생각입니다. 그렇지만 막상 실물 크기로 도면을 그린다고 해도 시공이 불가능하다는 판정을 받기는 힘들 것입니다. 일부 철근은 겹쳐서 배치하고 또 40mm 철근 일부를 50mm 철근으로 대체한다면 충분히 시공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올 것입니다. 이미 에디 등과 이러한 가능성을 의논한 바가 있기 때문에 우리도 동의한 것입니다. 그보다는 차라리 우리가 시공이 편리한 철근 배치 방법을 그림으로 그려서 제안하면 어떨까요.”
게임의 상대가 바뀌다
나의 소위 건설적인 의견이 문디에게는 안 먹히는 것 같았다. 그는 엔지니어의 책임 문제를 들먹이기 시작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시공 가능한 안을 내는 것은 엔지니어의 책임이지 우리의 책임이 아닙니다. 엔지니어에게 좋은 안을 내도록 촉구하는 공문과 함께 32개의 철근이 서로 얽혀 있는 상태를 그림으로 나타내 새롭게 설계 변경된 부분은 시공 불가능함을 보여주는 것이 추후에 클레임이나 중재에서 유리합니다.”
그의 목소리는 높아졌고, 안색도 붉게 상기됐다. ‘저 나이에도 논쟁에 지는 것이 싫어서 아집을 부리는구나. 추하게 보이는구나’라고 속으로는 언짢게 생각하면서도 겉으로는 표를 내지 않고 조용하게 말했다.
“며칠 전에 건설적인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공문을 보낸 것에 대해서도 발주처에서 신경을 곤두세워 지사장에게 압력을 넣고 있는 판국에 당신이 제안하는 식으로 공문을 보낸다면 상당히 큰 혼란이 올 수도 있습니다. 나는 시비하느라 시간을 소비하는 것보다는 발주처, 엔지니어, 시공자가 함께 협조하고 연구해 좋은 안을 조속히 만들어 이 공사가 성공적으로 이뤄지게 하고 싶습니다.”
“미스터 백의 좋은 뜻을 알지만, 발주처나 콜린은 매우 교활한 사람들입니다.”
“압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그만큼 교활하고 아는 것이 많아서 오히려 계약내용이나 홍콩의 각종 규정을 대상으로 책임문제를 따지는 게임을 해서는 우리가 결코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이 현장에 부임한 기간도 짧고, 기본적으로 그들보다 계약내용에 대한 지식이 부족합니다. 따라서 이 게임에서 이길 수가 없습니다. 이기지 못할 게임은 아예 시작하지 않는 것이 현명합니다. 그들을 이기기 위해서는 게임의 상대를 바꾸어야 합니다. 책임과 규정을 따지는 게임보다는 공정 진척을 누가 더 잘하느냐 하는 게임을 하는 것이 우리에게 유리합니다.
이 게임은 내가 경험이 많아 우리가 이길 확률도 높고 설령 진행하다가 지더라도 크게 잃을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추후 중재나 재판에 임했을 때도 우리가 더 성실하게 공사 진척을 위해 노력했다는 증거가 나타날 것이므로 재판관도 우리의 손을 들어줄 것이라 믿습니다. 아마도 발주처는 내가 상당히 많은 것을 양보하고도 시비하지 않는 것에 대하여 의아해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비는 상대적인 것이어서 내가 먼저 중단하면 그들도 중단할 것이고 자연히 게임의 대상도 바뀌게 될 것으로 믿습니다.”
나의 길고 강경한 설명에 문디도 지친 듯 한발짝 뒤로 물러섰다.
“당신의 원칙을 존중하지만, 그들이 너무 교활한 사람들이어서 걱정됩니다.”
물론 나도 발주처에 바보처럼 당하고만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회의가 생겨 고민할 때가 가끔 있었다. 그러나 원래의 원칙을 고수하기로 결심했다.
험난한 앞날
2002년 6월27일, 호화로운 홍콩 호텔식당에서 저녁 6시45분에 시작된 칵테일파티는 7시30분경 저녁만찬으로 이어졌다. 발주처 사장들과 우리측 사장 일행이 한 테이블을 차지했으며 나머지 테이블에는 에디, 크리스, 호레이 및 콜린 등이 나와 자리를 함께했다. 나도 오랜만에 그들과 어울려 지난 주말에 한국이 월드컵 축구에서 스페인을 이기고 4강에 오른 것을 자랑했다. 4강전에서 독일에 패한 것은 심판들이 일방적으로 독일 편을 들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등 비교적 많은 말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불평만 하던 문디도 오늘은 포도주도 많이 마시고 말도 많이 하면서 파티를 즐기는 것 같았다. 에디나 다른 엔지니어들도 매우 즐거워하는 모습이다.
만찬이 끝난 후 손님들이 모두 떠나고 우리끼리 모여 앉아 잠깐 대화를 나눴다. 모두 들뜬 분위기에 젖어 있었지만, 김 특보는 시종일관 별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우리가 홍콩의 깊은 함정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은 것일까.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길에서 다가올 무거운 책임과 험난한 앞날에 대해 걱정하고 있음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오늘 보니 백 전무가 일당백을 합디다.”
그 와중에 나를 치켜세우는 사장의 말이 공허하게 들렸다.
발주처나 엔지니어와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으로 어떠한 경우에도 한번 한 약속은 지킬 것입니다. 거짓말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도 나와 함께 우리 현장의 신뢰회복 운동에 적극 참여할 것을 촉구합니다.”
현장부지 안에 직원들의 숙소를 임시로 지어 모든 임직원이 함께 생활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홍콩의 경우는 달랐다. 50여 채의 아파트를 빌려 한 채에 두세 사람씩 공동으로 숙식하고 있었다. 가족이 함께 나와 있는 직원은 몇 되지 않았다. 대부분은 가족을 한국에 남겨놓고 와 외롭고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닐 터였다. 그래서 그들은 더욱 일에 열중하고 직장동료들과의 우정에 더 매달리고 있는 듯했다.
직원들은 출퇴근시 아파트에서 현장까지 운행하는 임차버스 3대를 이용했으며, 나는 내 전용 기사나 관리부장이 운전하는 승용차로 출퇴근했다. 출근하면서 관리부장에게 필요한 의논과 지시를 할 수 있었다.
출근시간은 오전 7시, 퇴근시간은 오후 9시였다. 물론 야간작업 때문에 더 늦게까지 남아 업무처리를 하는 직원이 많아 퇴근시간이 꼭 지켜지는 것은 아니었다. 어떤 직원은 모두 퇴근한 뒤 조용할 때 홀로 계산을 하거나 도면을 검토하면서 밤을 새우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고는 다음 날 오전 제시간에 출근하지 못해 상사에게 꾸중을 듣기도 했다.
각 직원의 특성을 살리지 못하는 획일적인 출퇴근 제도엔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특별히 한 직원에게 늦게 출근해도 괜찮다는 특권을 부여한 적이 있다. 그 뒤 그는 더 좋은 성과를 냈다.
퇴근시간 당기기
그러나 대부분의 직원은 밤 9시까지 사무실에 남아 있으면 피로를 느끼는 것 같았다. 실제 효율성도 떨어졌다. 본사의 눈치가 보였지만, 나는 과감하게 1시간을 단축해 8시에 퇴근하도록 규정을 변경했다. 그 대신 본사에서 요구하는 잡무를 대폭 줄이도록 조치했더니 직원들의 눈에 생기가 돌고 업무의 실수도 많이 줄어들었다.
2층으로 지어진 현장사무실은 한국인 직원 100여 명과 현지인 직원 100여 명을 합해 200여 명의 직원을 수용하고, 또 주요 하도급업자 사무실까지 내줄 정도로 넓었다. 현장식당으로 한국인 전용식당과 현지인 식당이 별도로 하나씩 있었고 주로 점심과 저녁식사를 제공했다. 이 식당은 홍콩에 이민 온 한국인이 회사로부터 하도급 받아 운영하고 있었는데, 맛이 좋아 직원들에게 인기였다.
현장에는 내 밑으로 상무보, 부장, 차장, 과장, 대리, 사원과 임시직들이 있었는데 상무보는 얼마 되지 않아 복귀시켰다. 현장조직은 크게 관리부·공무부·설계부·공사부로 나누고, 공사부는 다시 준설공구·육상공구·해상공구·전기기계건축공구로 나누어 그 책임자들은 부장으로 임명하고 공구장이라고 불렀다. 각 공구는 다시 소규모 부서로 분할해 책임자를 뒀다. 차장급 이상 직원에게는 매일 각자가 계획한 일과 시행한 일을 기록해 내게 제출하도록 했다. 매주 토요일이나 일요일에는 공구장 회의를 열었다.
나흘째 되던 날, 육상공구장인 이 부장의 안내를 받아 현장에 나갔다. 그날 아침은 쾌청했다. 현장사무실 바로 앞으로는 넘실대는 바다물결이 들고나는 통선의 움직임에 따라 퍼레이드를 펼치는 응원단처럼 양옆으로 쫙 갈라져 길을 내주면 그 파도에 밀려 작업 바지(barge)들이 뒤뚱댔고, 그 위의 현장직원과 근로자들은 흔들리는 몸의 균형을 바로잡으면서 작업을 다시 시작했다. 눈의 각도를 조금 더 높여 바다 중간을 보면 거대한 준설선 파이프에서 모래 섞인 물줄기가 기세 좋게 뿜어져 나와 주변에 물보라를 선사했다. 마치 무지개를 보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준설선으로 퍼온 모래로 바다를 매립해 부지를 조성하는 이 작업의 명칭이 ‘레인보’였다.
‘레인보’ 작업
북쪽 바다에서는 석재, 모래, 파일을 적재한 운반 바지, 크레인을 적재한 작업선 및 그 바지를 끌고 다니는 예인선이 어우러져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60m 높이의 리더를 장착한 항타선이 강관파일을 찬 채 늠름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군계일학(群鷄一鶴)처럼 우뚝 솟은 항타선이 최근에 화제에 많이 오른 장비답게 시선을 오랫동안 머물게 했다.
바다 건너 맞은편 콰이청의 컨테이너 부두에서는 대형 컨테이너선들이 접안하여 화물 하역작업이 한창이었다. 5만t급은 되어 보이는 화물선에 산더미처럼 높이 쌓여 있는 컨테이너들이 홍콩경제의 번성함을 과시했다. 그중에는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의 이름도 있었다.
더 멀리 보이는 홍콩 섬은 밝고 화려한 색의 고층 빌딩 숲으로 가득 채워져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어 보였다. 좁은 섬에 빼곡하게 들어선 콘크리트와 강재의 빌딩은 겉보기는 화려하지만 인간적인 따뜻함이나 삶의 여유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다행히 빌딩 숲 너머로 아련하게 보이는 녹색의 산등성이가 있어, 그나마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번호판도 없는 허름한 현장차를 타고 울퉁불퉁한 작업로를 통과하면서 차 천장에 머리를 부딪히기도 하고, 때로는 걸으면서 이 부장의 설명을 들었다. 그가 안내할 수 있는 면적은 전체 부지의 반도 되지 못했다. 아직도 대부분의 부지는 검푸른 바닷물 속에 잠겨 있었다. 이 부장이 들고 다니던 평면도를 꺼내 펼치면서 보고했다.
“소장님, 이곳이 바로 R2 도로입니다. 현재 ‘마스’라는 현지 하도급업자가 맡아서 시공하고 있는데 공기가 많이 늦어졌습니다.”
공사기간이 지연되었다는 보고를 듣자 내 목소리가 절로 높아졌다.
“겨우 800m밖에 되지 않는 짧은 구간인데 손을 댄 지 1년이 지나도록 완공하지 못한 이유가 뭐요?”
“세부설계가 늦어지는데다 그나마 자주 바뀌는 것이 문제입니다. 계약도면에는 기본설계만 나와 있고, 실제 시공하기 위한 각종 세부도면은 저희가 설계하게 되어 있습니다. 세부설계를 감독에게 제출하면 바로 승인이 떨어지지 않고 수차례 수정해야 되는 등 마지막 승인을 받아내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하도급업자가 애를 먹고 있습니다.”
“방향을 못 잡은 이유가 뭐요?”
사무실에 돌아와서는 공무부 책임자인 최 부장의 브리핑을 받았다. 브리핑 자료에 요약된 공사개요와 표준도를 보면 이 공사 또한 여느 터미널 공사와 별 차이가 없어 보였다. 항만공사의 공통항목이라고 할 준설, 매립, 석재 호안, 강관파일, 콘크리트 안벽구조물, 배후단지 시설 및 정부 위임 공사가 전부였다. 이는 현대건설이 지난 50여 년에 걸쳐서 국내외에서 수없이 경험한 것이었다. 나는 최 부장의 설명을 잠시 중단시킨 후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최 부장, 초기에 견적(추산)을 실수했고 계약조건을 꼼꼼히 따지지 못해서 이렇게 큰 문제가 발생했다고 칩시다. 그러나 착공한 지 20개월이 지난 지금도 방향을 못 잡고 갈팡질팡 흔들리는 데는 더 핑계를 댈 것이 없을 것 같아. 지금쯤은 확고한 방침이 서 있어야 되는 것 아니요?”
그는 한참을 머뭇거리다 겨우 말문을 열었다.
“글쎄요. 그동안 발주처와 본사의 간섭도 심했고, 현장운영 조직도 자주 바뀌는 등 현장 지휘체계에 문제가 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 방향설정이 제대로 안 됐다고 봐야죠.”
브리핑 과정에서 다시 확인한 공사내용은, 북쪽에서 시작해 남쪽으로 이어지는 2012m의 파일안벽을 6개의 부두로 구분해 18대의 안벽크레인을 수용할 수 있도록 배치됐으며 5만t급 이상의 컨테이너선이 자유롭게 접안하도록 수심 16.5m 항로를 유지하기 위해 준설작업을 하도록 설계됐다. 배후단지가 들어설 부지는 기존의 바다 밑을 준설해 나쁜 토질의 흙은 버린 후, 양질의 모래로 매립하도록 설계됐다. 이 준설 물량이 무려 2500만㎥, 매립재로 사용하는 모래의 양은 3600만㎥나 됐다. 이렇게 매립해 약 30만평의 부지를 조성하게 되어 있고, 기존의 부지를 포함해서 모두 45만평의 부지가 이 터미널의 배후단지 및 정부 위임공사 부지로 활용되도록 설계됐다.
조성된 배후단지를 보호하기 위해 바다와 맞닿은 길이 2012m의 안벽 뒤에, 석재 호안을 축조하는 데 250만㎥의 다양한 규격 석재가 소요됐다.
내 전임자로 전무와 상무 두 사람이 함께 현장을 책임지고 있었는데, 그들은 내가 잘 아는 대학후배들로서 매우 유능한 인재들이었다. 현대건설 최고 수준의 유능한 현장소장인 그들이 발주처의 심한 구박을 견디지 못하고 이렇게 쫓겨나다시피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은 이 현장의 환경이 얼마나 열악한지, 또한 발주처나 엔지니어 대표들이 인간적으로 얼마나 못된 족속인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였다.
전임 전무와는 부임 직전에 국제전화로 통화만 했을 뿐 대면조차 못했다. 그는 이렇게 쫓겨나는 것에 대해 참담해하기보다는 내 앞날에 대해 진심으로 걱정해주면서 내게 미안해했다. 멋모르고 이제 막 지옥문을 들어서려고 위태위태한 발걸음을 내디딘 어린아이를 대하듯 그는 조마조마해하는 것 같았다.
부소장으로 있는 ‘문디’라는 엔지니어는 부임한 지 3개월 됐다고 했다. 그는 60세의 영국인 토목기술자로서 홍콩에서 20년 가까이 활동하면서 대단한 명성을 얻었고, 특히 5년 전에 완공된 CT-8 현장의 소장으로 혁혁한 공을 세우기도 했다. 당시 함께 활동하던 영국 엔지니어들이 현재 이 현장 엔지니어 회사의 주요 직책을 담당해 여러 가지로 유리한 처지였다.
‘지옥문 들어서는 어린아이’
현대건설 현장을 대표해서 발급되는 모든 공문은 그의 명의로 되어 있었다. 키가 크고 미남형이지만 자존심이 매우 강해 보이는 그는 공사내용에 대해 다음과 같이 추가 설명을 해주었다.
총 연장 2012m, 평균 폭 30m의 부두구조물 기초는 직경 1m 철판 두께 19mm의 강관으로 설계했다. 강관은 장기간 해수에 접촉하면 부식해 수명이 단축되기 때문에 보완책으로 강관 내부에 철근콘크리트를 채워 100년 이상 구조물을 지탱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나쁜 흙을 준설해 버린 후에 모래로 치환하며 그 위에 1m 두께로 자갈을 깔아놓고 그 자리에 강관을 박게 되어 있다. 강관의 개수는 1906본이며 1본의 길이는 북쪽에서는 비교적 짧은 40m로 시작해 남쪽에서는 60m를 넘는 긴 강관이 필요하다. 북쪽은 암층이 비교적 얕지만 남쪽으로 가면 암층이 깊어지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었다.
한편 지사장의 성화가 빗발쳤다. 발주처 실무대표를 만나라는 것이었다. 권한이 막강하고 또 성미가 고약한 사람들이라는 말을 부임 전부터 귀가 따갑도록 들었기 때문에 그들과 대면하기가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어차피 한 번은 통과해야 할 절차였다.
전날 약속한 대로 오전 10시에 지사 사무실에 도착했다. 홍콩 섬에서 가장 번화한 센트럴 빌딩 50층, 지사 사무실의 창문 밖으로 보이는 홍콩 섬과 주룽반도를 가로지르는 바다는 아침 일찍부터 각양각색의 선박들로 꽉 차서 붐볐다. 건물 바로 밑의 도로 또한 차량과 인파로 붐비고 있었다. 홍콩 경제는 분명히 활기를 띠고 있었다.
성미 고약한 사람들
사무실을 둘러보면서 직원들을 소개받은 후에야 지사장의 방으로 돌아와 차분하게 커피를 마시면서 담소를 나눌 수 있었다. 그동안 여러 경로를 통해서 그에 대한 이런저런 소문을 들었지만 이렇게 맞대면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는 솔직하고 개방적이며 순발력이 매우 뛰어난 인재로 보였다. 그가 말문을 열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12시에 발주처 대표들과 점심약속을 했습니다. 그들을 만나기 전에 설명드릴 것이 있어서 이렇게 미리 전무님을 뵙자고 했습니다.”
그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발주처는 아시다시피 3개의 회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회사들을 대표해 모든 실무를 처리하는 사람들이 H사의 에디, M사의 호레이, A사의 크리스입니다. 전무님이 새로 부임했기 때문에 상견례를 해야 하는데 첫인상이 중요합니다. 그들에게 신뢰감을 심어줘야 이번 공기연장 협상을 성공시킬 수 있습니다.”
나는 듣기만 할 뿐 별로 할 말이 없었다. 그는 발주처와의 관계를 더 자세하게 설명해 나갔다.
“현장에서는 준설 오염토 처리 문제로 클레임을 걸어놓은 상태이고 공기는 거의 1년이 지연됐습니다. 발주처 인사들은 만날 때마다 공기지연에 대해 심한 불평을 늘어놓고 계약해지 운운하면서 겁을 줍니다. 발주처의 3인방 위에는 물론 사장이 있는데 그중 한 사람인 H사 사장과 제가 친분이 두텁습니다. 그는 다행히 우리의 처지를 이해하고 공기연장 협상을 진행하기로 원칙적인 합의를 해줬습니다. 대신 우리가 제기한 각종 클레임을 포기하고 현장조직을 완전히 개편해 실행 가능한 공정계획을 제시하라는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지금 현장에서는 실현 가능한 공정계획을 짜고 있는데 이것을 전무님께서 맡아주셔야겠습니다.”
출발시각이 되어 지사장은 하던 말을 다 끝내지 못한 상태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차 안에서 얘기를 계속했다.
“들으셨겠지만, 발주처 인사들이 매우 까다롭습니다. 그들은 의심과 불평이 많아 상대편을 괴롭힙니다. 물론 우리측에서 공정계획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것이 주원인이기는 합니다만. 어쨌든 전임 소장이 그들 때문에 마음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잘 알았습니다. 한번 만나봅시다.”
나는 자신 있게 대답했지만, 공포의 대상인 그들의 모습을 요모조모 상상해보면서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공포의 3인방
12시 정각에 약속장소인 중국음식점에 도착했다. 아직 점심 먹기에는 이른 시간인지 음식점에는 손님이 많지 않았다. 흰색 제복을 입은 종업원들이 접시를 나르거나 새로운 테이블을 준비하느라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화려한 문양의 접시들은 깨끗했으나 그것들이 식탁에 놓일 때 나는 소음은 내 귀를 괴롭혔다.
예약된 방에 들어섰으나 발주처 대표들은 아직 도착해 있지 않았다. 약 10분 후에 에디, 크리스, 호레이가 함께 도착했다. 우리는 의례적인 인사를 나눈 후에 자리에 앉았다. 그들 중 나이가 제일 많은 크리스가 운을 뗐다.
“미스터 백은 현장경험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지연된 공기를 만회할 방안이라도 있습니까?”
50대 초반의 그는 보통의 키와 고운 피부를 가진 미남형 중국인으로 지성이 넘쳐 보이는 인물이었다. ‘괴물’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아직 구체적인 방안을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다만 여러분께 하나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공기를 만회하기 위해서는 우선 모든 관련자가 믿고 협조해야 합니다. 내가 이곳에 부임하면서 서울 본사의 적극적인 지원협조를 약속받은 바 있습니다. 이제는 발주처와 엔지니어 차례입니다. 여러분이 진심으로 지원만 한다면 반드시 약속한 공기를 맞출 수 있습니다.”
“전임 소장은 우리의 충고도 무시하고, 약속한 공기도 지키지 못했어요. 그래서 우리도 협조할 수 없었습니다.”
에디는 키도 작고 몸집도 작은데다 어두운 색의 피부를 가졌지만 꼭 다문 입술을 보니 매우 다부진 성격의 인물인 듯했다. 홍콩 중국인의 전형적인 영어발음을 하고 있어서 가끔은 알아듣기 힘들었다. 그러나 영국에서 교육을 받은 엘리트답게 그가 구사하는 단어나 문법은 정확했다. 그가 셋 중 나이는 중간이지만 가장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있었다. 그의 발언내용은 구체적이었다.
“미스터 백, 환영합니다. 아시겠지만, 현대건설의 준설작업에 차질이 생겨 그 동안 많은 공기를 잃었습니다. 요사이는 또 파일 재하시험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고 있어요. 이런저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더 효율적인 현장조직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되는데 그에 대한 대책을 세우고 있습니까?”
“옳은 지적입니다. 본사에서 더 수준 높은 직원들을 보내주기로 했습니다. 업무를 파악하는 대로 조직을 보강하려고 준비작업에 착수했습니다.”
40대 중반으로 가장 젊은 호레이는 키가 크고 이목구비가 뚜렷했으며, 약간 검은 피부의 소유자로서 싱글싱글 웃고 있었다. 그는 호주에서 공부했다는 소문에 걸맞게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했다. 홍콩 중국인의 티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영어발음이 깔끔했다. 그는 덕담만 늘어놓을 뿐 업무에 관련된 발언은 별로 하지 않았다. 다른 두 사람의 말을 들으면서 자주 웃었다.
수정, 또 수정…
이런 사람들을 겁내고 괴물로 상상했던 내가 너무 겁쟁이였을까. 아니면 이들이 겉만 부드럽고 속은 무서운 괴물들일까.
공정계획담당인 박 차장의 요약보고에 따르면 그들은 지난 20개월간, 수없이 공정표를 작성하고 또 수정하는 과정을 반복해왔다고 했다. 계약서에 첨부된 공정표와, 착공 후 3개월마다 제출하는 공정표가 서로 맞지 않아 혼란을 겪었다.
주원인은 준설공정이 계획보다 원체 지연된 때문이었다. 첫 공정이 지연되니까 지레 겁을 먹고 계획을 수정하면서 작업기간을 지나치게 느슨하게 잡아 계약상 공기인 2004년 11월에서 7개월이나 지연된 2005년 6월에 완공되는 것으로 예측했다.
당장 진행 중인 공정계획은 세부항목이 누락되는 등, 부실한 계획이 되어 매번 목표달성에 차질을 빚었다. 그래서 발주처나 엔지니어들은 우리 공정계획을 아예 믿지 않았다.
부임한 지 일주일이 지났건만 정작 가장 중요한 공정계획을 제대로 검토해보지 못했음을 생각해내고 박 차장을 전화로 불렀다.
“최 부장과 함께 최근에 작성한 공정표를 가지고 내 방으로 오시오.”
그들은 금방 내 사무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박 차장은 20년 전 말레이시아 페낭 교량현장에서 내가 소장으로 있을 때 대리로 근무했기 때문에 친근하게 느껴졌다. 20년의 세월이 흘렀건만 옛날 모습이 많이 남아 있었다. 안면에 주름살이 늘었지만 그만이 지닌 독특한 표정과 분위기는 결코 지워지지 않았다. 그 친근감 때문일까. 그는 머뭇거림이 없이 두루마리로 말아 온 종이를 펴서 사무실 벽에 자석 핀으로 붙여 걸었다. 그 종이 위에는 문자와 숫자 그리고 선과 원으로 구성된 공정표가 있었다. 다음으로 그는 평면도를 테이블 위에 쫙 펼쳐놓고 최 부장과 함께 의자에 앉았다.
나는 애초에 이 프로젝트를 6개 부두의 안벽공사와 배후단지공사로 크게 나눠 단순하게 생각했다. 또 해상구조물이 더 중요하고 급한 공사라고 여겼고, 그에 대한 경험도 많았기 때문에 솔직히 온통 그 일에만 관심을 쏟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평면도를 보니 배후단지공사가 엄청났다. 45만평 부지가 124개 지역으로 촘촘하게 분할되어 있었다. 124개 지역은 소속 부두와 기능에 따라 각각 고유의 명칭과 목표 공기가 있었다.
“머리가 돌 것 같아”
기능별로 보면 정부에 반환할 부지, 도로, 사면보호, 변전소, 건물부지, 컨테이너 야적장, 차량 입출구, 냉동컨테이너 야적장, 주차장, 야드크레인(RTGC) 이동통로, 장비 정비장, 부두안벽, 선박항로 등으로 되어 있다. 여기에 이 기능을 지원하는 전기, 통신, 물 공급, 배수, 소방시설, 조명시설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처음 대하는 생소한 명칭과 날짜가 각양각색의 유령으로 변해 어지럽게 춤을 추는 듯했다. 나는 혼란에 빠졌고 급기야 머릿속이 하얘졌다. 나는 평면도를 더는 들여다볼 수가 없어 고개를 들고 최 부장과 박 차장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숨을 돌린 후 천천히 물었다.
“이거 너무 복잡해서 머리가 돌 것 같아, 도대체 윤곽이 잡히질 않네.”
“….”
“이 표에 있는 PS1.58은 또 뭐지?”
“그것은 특별시방서 조항1.58인데요. 그 조항에서 각 지역에 대한 준공조건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어떤 한 지역의 준공승인을 받으려면, 단순하게 그 지역의 공사만 끝내서 되는 것이 아니고 그와 관련된 다른 지역의 공사까지 정해진 기간 안에 끝내야 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얼른 이해되지 않았다. 최 부장이 답답했는지 박 차장의 말을 가로채 설명을 다시 시작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전체 124개 지역 중에서 제1부두에 필수적으로 속하는 지역은 21개입니다. 그중에 Q1A는 G, H, I, J의 4베이(bay)로 구성된 안벽구조물입니다. 마찬가지로 Q1B는 K, L의 2베이로 구성됩니다. 여기에서 단순히 4베이의 안벽구조물 공사만 끝내면 Q1A가 준공되는 것으로 착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방서 규정에서는 그 준공승인을 받으려면 6개의 또 다른 관련 지역도 공사를 끝낼 것을 요구합니다. Q1B의 준공조건은 더 까다롭습니다. Q1A를 42일 전에 끝내야 하며, B2N/B3N을 270일 전에 끝내야 하고….”
나는 손을 들어 그의 말을 중단시켰다. 최 부장의 설명을 들어도 복잡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 설명을 더 들어봐야 어차피 기억할 수도 없을 것이다.
“알았어, 그 복잡함은 이해하겠어요. 더 세부적인 것은 내가 시방서를 보고 다시 공부할게.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아도 대충 짐작하겠어.”
나는 최 부장과 박 차장의 설명을 들으면서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을 느꼈다. 수많은 해외공사를 경험한 나로서도 처음 당하는 비정상적인 조건이었다. 조금 진정한 내가 다시 말을 시작했다.
“그러니까, 결국 주변의 거의 모든 공사를 다 끝내야 각 지역의 준공승인을 받을 수 있다는 결론이구만.”
박 차장이 얼른 대꾸했다.
“바로 그렇습니다. 그래서 공정계획 수립이 참으로 복잡하고 어렵습니다. 더구나 지역별로 지체상금 액수가 다르기 때문에 그 경중까지 고려하려면 머리가 터질 지경입니다. 물론 컴퓨터를 사용하고 있지만 그래도 우리 머리로 분명히 이해하고 있어야 하거든요.”
특별시방서 조항 ‘1.58’
최 부장과 박 차장을 보내고 난 후에 나는 조금 쉬었다가 다시 시방서와 보고서들을 찾아 공부했다. 분할지역 124개 중 115개 지역은 그 목표공기를 달성하지 못하면 매일 막대한 지체상금을 물어야 한다. 지체상금 요율은 분할구역에 따라 다르지만 적게는 지역별로 매일 2000홍콩달러에서 많게는 45만달러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그 지체상금으로 공제당한 금액이 벌써 1억홍콩달러를 상회했다. 계약금액 39억달러 중에서 지난 20개월간 벌어들인 기성금액이 8억6000만홍콩달러인데 그중 1억달러를 지체상금으로 공제당했으니 어찌 현장을 정상적으로 운영할 수 있겠는가.
빨강, 노랑, 파랑, 분홍, 보라 등으로 구분해 표시한 각 지역의 명칭과 목표공기일자가 저마다 손을 내밀어 지체상금을 달라고 아우성을 치는 채권자들처럼 나를 괴롭혔다.
마구 헝클어져 어디에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난감했다. 그러나 여기에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마음을 진정하고 자료들을 다시 차분하게 검토했다. 다른 부분은 제쳐놓고 우선 1부두만 집중적으로 검토했다. 어제 최 부장에게 들었던 특별시방서 조항1.58을 펼치고 제1부두에 관한 부분을 다시 천천히 읽어 내 머릿 속에 쑤셔넣었다.
360m의 안벽구조물(Q1A, Q1B), 그 배후지 도로 2개소(R1A, R1B), 트레일러 및 차량의 입·출구(B2N, B3N), 변전소 2개소(S1N, S2N), 야드 2개소(Y2N, Y3N), 컨테이너 야적장 3개소(C1A, C1B, C1C), 야드크레인 조립장(T1)의 명칭들이 조금씩 익숙해지고 그 용도도 이해됐다.
개선할 방법을 찾아라!
시방서 조건들을 파악하면서 서서히 처음의 충격에서 벗어난 나의 뇌는 왕성한 활동을 시작해 이 지역들의 각 요소 공정에까지 관심을 확장했다. 그리고 몇 가지 희망을 찾아냈다.
요소공정의 으뜸이라고 할 수 있는 ‘파일 항타’ 공정을 단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본사에서는 “현재 사용 중인 항타선 한 척으로는 부족할 것 같으니 1척을 더 투입하자”고 주장하고 있으나, 곰곰이 따져보니 지금 장비 1척만 가지고도 공기를 단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년간 항타작업을 해본 나는 어느 정도 가속도가 붙으면 현재 하루에 5개씩 항타하는 것을 거의 2배로 효율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파일하중 시험, 소음규제 등에서 대(對)정부, 대엔지니어 관계를 서툴게 처리한 탓에 현재는 작업에 제한을 받고 있으나, 이 부분을 개선하면 확실히 그 실적이 증진될 것이다.
본사에서는 세부내용을 검토하지 않은 채, 겉으로 나타난 현상만 가지고 미래를 예측했기에 당연히 공기가 많이 지연될 것으로 나와 걱정했을 것이다. 이 때문에 엄청난 추가비용 소요를 무릅쓰고라도 항타선 1척을 추가 투입하자고 주장했던 것이다. 단순한 실적만 가지고 미래를 예측하는 비기술자적인 행태의 일면이 여실히 드러난 사례라 하겠다.
빔 콘크리트의 철근설치에 베이(60m)마다 1개월이 소요되는 것으로 사이클 타임을 계획해놓은 것도 내 시선을 끌었다. 그 공법을 바꾸면 15일은 단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대부분의 철근을 육상의 공장에서 미리 제작 조립해놓았다가, 해상의 빔 현장에 운반, 설치한 후에 서로 연결되는 부분만 마지막으로 조립한다면 현장에서의 ‘크리티컬 타임’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거푸집도 강재로 제작해 쉽게 조립, 해체할 수 있는 시스템 폼으로 설계하면 시간과 비용을 훨씬 더 절약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부분은 이미 선정된 제작 전문 업체와 협의하면 확실한 성과가 있을 것이다.
호안 석재의 공급과 설치도 문제였다. 이 부분은 현지 업자에게 하도급하기 때문에 그들과 다시 구체적으로 협의해봐야 할 것이다. 다만 물량이 250만㎥나 되고 홍콩에는 마땅한 석산이 없기 때문에 중국 본토에서 조달해야 하는 것이 큰 위험요소였다. 중국에서 수입해 들여오는 모든 자재는 세관통관 때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하고, 이익집단들이 얽히고설켜 위험요소가 내재해 있다. 그러나 이것도 우리가 잘 관리하면 될 것이다. 자원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매립 후에 시행하는 지반개량도 까다로운 시험절차를 포함하고 있어, 공정을 진행하는 데 위험요소로 떠올랐지만, 이 또한 철저히 관리하면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작업중단, 공정부진
나머지는 육상공사 부분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경험이 별로 없기 때문에 육상설계팀과 이 부장을 불러 별도로 소상히 의논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지만 눈에 보이는 공정이며, 그 항목들은 단순하니 인력을 충분히 투입하고 세부설계 승인만 미리 받아낼 수 있다면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아직은 구상단계이지만 이런 식으로 어림짐작해보니 공법을 일부 변경해 최선을 다한다면 대략 6개월은 단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며칠간 나름대로 연구한 끝에 박 차장을 다시 불러 내 아이디어를 반영해 새로운 공정계획표를 작성해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그는 얼른 이해가 안 되는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면서 반문했다.
“소장님, 1부두는 2003년 9월에 완공하기에도 빡빡하다고 전에 보고드렸는데요. 경험이 많으신 소장님까지 이렇게 밀어붙이면 어떡합니까. 6개월 단축이 과연 가능하겠습니까?”
“물론 어려운 일이지. 그러나 내 생각에는 말이야, 새 공법을 도입하고, 또 엔지니어와의 관계를 개선하면 가능성이 있다고 봐요. 실제 집행은 내가 공구장들과 협의해 그 방법을 모색할 테니까 박 차장은 공정계획표나 작성해봐요.”
현장에서 직접 공사를 집행하는 공구장들을 한 사람씩 불러 공법에 대한 토론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파일항타 하도급업자인 웅건설 책임자는 불만이 많았다. 초창기에 현대건설에서 항타선 투입을 지나치게 서둘러 요청하는 바람에 현장에 들어와 작업에 손도 못 댄 채, 거의 1년을 대기했으며, 그로 인해 상당한 손실을 입었는데도 현대건설에서는 그 손실에 대한 보상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차일피일 미루고만 있다는 것이다. 또 항타선 요원들의 숙식 상황이 너무 열악해 도저히 일할 기분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소음규제 때문에 아침 8시나 되어야 작업을 시작할 수 있으며, 오후 7시에는 작업을 중단해야 했다. 또, 파일동하중시험(Capwab Test) 및 정재하중시험(Load Test) 등을 병행하면서 발생하는 잦은 공정 간섭 및 작업중단도 공정부진의 이유로 지적되었다. 나는 이 문제를 모두 긍정적으로 해결해주기로 일단 약속했고, 덧붙여 목표 달성한 물량에 대해 상금을 지급하는 인센티브제를 검토하도록 공무부에 지시했다. 웅건설에서도 이에 화답해 매우 적극적인 자세로 작업에 임하겠다고 약속했으며, 내가 예상하는 작업성과를 올릴 수 있겠다는 희망적인 보고서와 협약서를 제출했다.
해상구조물 공구장과 설계책임자인 과장들도 철근을 공장에서 미리 제작조립한다는 아이디어에 원칙적으로 동의했다. 문제는 공장에서 조립하는 양과 현장에서 마무리 조립하는 양의 비율을 결정하는 데 있었다. 당연히 공장에서 조립하는 양의 비율을 높여야 공기를 더 단축할 수 있었다.
도박은 시작되고…
하도급업자로 지정된 ‘카포’라는 현지 업체 사장을 불러서 그와 더 구체적인 협의를 진행했다. 그들은 샘플로 빔 한 구간의 철근을 실제로 공장 조립하여 운반 설치하는 과정을 시현해 보이기로 약속했다. 한편 설계담당 과장에게는 우리의 아이디어를 제안서로 구체화해 엔지니어에게 사전승인을 받아내도록 지시했다.
2월 중순에 들어서야 겨우 공기연장 협정안을 틈틈이 들여다볼 수 있었다. 계약 및 클레임 담당 박 부장이 보고한 자료를 살펴보고 대략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었다.
‘지난해 12월19일 발주처가 처음으로 오염토 투기장 사용료와 지체상금이 눈 덩이처럼 불어나고 공기는 지연되어 더 이상 정상적으로 공사를 수행할 수 없다고 판단, 우리에게 그 해결방안을 제시하라고 요구했다. 1월7일, 우리는 발주처 사무실에서 설명과 함께 공기연장 제안서를 발주처에 넘겨주었으며, 주요 골자는 다음과 같다. 최종 공사 준공일은 2005년 6월30일로 연장. 1부두 2003년 3월 말, 2부두는 2003년 11월 말, 3부두는 2004년 4월 말, 4·5부두는 2004년 11월 말, 6부두는 2005년 3월 말로 준공일을 연장. 마폴 트러킹, 여성토 기간 단축, 남쪽 타이픈 앵커 삭제 등의 조건을 완화해주면 위 2, 4, 6부두의 공기를 2∼3개월 더 단축할 수 있다.’
그 후 2월8일에는 발주처의 대안이 비교적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냈다. 그중에서도 특기할 만한 것이 소위 ‘Back-end’ 조건이었다. 즉 우리가 약속한 일자를 지키지 못하면 이 협정은 무효가 되고, 면제됐던 지체상금을 원 계약대로 다시 부과한다는 조건이었다.
4억달러의 손실?
우리에게는 큰 도박이었다. 김 특보를 비롯한 본사 경영진은 벌집을 쑤셔놓은 듯 요동을 쳤다. 이 조건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우리측은 즉시 이 조건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점을 명백히 하고 조건 없는 공기연장을 요청하는 서신을 발송했다. 이 서신을 발송한 후에 지사장이 홈즈를 면담했으나 호의적인 반응은 없었다.
지난 1개월간 머물면서 협상을 진두지휘하던 김 특보와 토목본부장 일행은 실망감을 안고 본사로 복귀했다. 현지 변호사인 매슨 지사장, 현장 계약담당 부장은 나름대로 의견을 개진하면서 그들과 협상을 시도하고 있었으나, 아직 초보단계에 머물러 있었다.
근본적으로 발주처에서는 우리의 제안을 불신했다. 우리도 공정계획에 대한 확고한 자신감이 없고, 계획의 구체성도 결여되어 있으며, 그들이 양보할 수 있는 기준에 전혀 근접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협상이 정상적으로 진행되지 않은 것이 오히려 당연했다.
발주처는 1년 이상 지연된 공기를 어떻게 만회할 것이며, 그에 따라서 어느 정도까지 공기를 연장해줄 것인지, 연장된 공기는 확실하게 지킬 수 있을지, 이러한 호의적인 계약변경에 대해 현대건설에서는 발주처를 위해 무엇을 양보할 것인지를 묻고 있었다.
이 협정 초안의 주요 개념이 소위 ‘Milestone(목표공기)’과 ‘지체상금 부과일자’였다. 115개의 분할지역에 대한 지체상금 부과일자는 원래의 계약서에 규정되어 있었다. 다만 그 일자를 어느 정도 연장해줄 것인지가 이번 협상안의 주요 포인트였다.
목표공기 일자는 원래의 계약서에는 없는 새로운 개념이었다. 전체공사를 제1부두에서 6부두 및 B1N의 7개 분야로 나눠 각각에 대한 새로운 목표공기를 설정한 것이다. 만일 현대건설이 새롭게 합의된 목표공기를 달성하지 못하면, 이 협정은 무효가 되고 원 계약서에 규정된 지체상금 부과일자를 기준으로 계산한 지체상금을 모두 변상한다는 내용이었다. 목표공기 일자는 당연히 지체상금 부과일자보다 더 늦게 도래하게 되어 있었다. 이 공기연장의 대가로 현대건설은 그때까지 제기했던 모든 클레임을 포기한다는 것이 전제조건이었다.
내부적으로 현장 실무자들이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반대하는 공정계획을 윗선에서 억지로 맞추어 1월7일자 제안서가 제출되었고, 또 포기하려는 클레임의 정확한 가치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이 협상이 결렬되어 계약해지 사태에 이르면 과연 어떠한 손실이 현대건설에 발생할 것인가. 대충 미화 4억달러의 손실이 거론되고 있었으나 정확한 계산은 아닌 듯했다. 다만 앞으로 해외건설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만은 확실한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