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각으로 행복해지고, 행복의 덫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우리의 이야기를 다룬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
제자들은 입을 모아 “썩은 사과요”라고 대답했다. 맨 먼저 썩은 사과를 먹고, 그 다음 조금 상한 사과, 마지막으로 싱싱한 사과를 먹겠다고 했다. 하지만 스승이 원한 대답은 그게 아니었다.
“처음에는 썩은 사과가 10개뿐이지만 썩은 사과부터 골라 먹는 동안 나머지 싱싱한 사과까지 조금씩 썩기 때문에 결국 너희들은 한 달 내내 썩은 사과를 먹게 된다.”
사람들은 경제학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비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상하지 않은가. 싱싱한 사과가 맛있는 줄 알면서 기꺼이 ‘맛이 간’ 사과부터 먹겠다니. 사과야 싱싱한 것부터 먹든 썩은 것부터 먹든 대세에 영향이 없다고 치자. 그렇다면 인생을 좌우할 연봉은 어떨까.
A안 : 첫 해에 3만달러를 받고, 그 다음해에 4만달러, 그리고 3년째에는 5만달러를 받는다. B안 : 첫 해에 6만달러, 그 다음해에 5만달러 그리고 3년째에는 4만달러를 받는다.
A와 B 중 어느 쪽을 원하느냐고 물어보면, 해마다 봉급이 늘어나는 쪽을 택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러나 3년이라는 시간을 통틀어 보면 전자는 12만달러를 받고, 후자는 15만달러를 받는다. 게다가 처음에 많은 돈을 받으면 그것으로 투자를 해서 새로운 수익을 얻을 수도 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A를 선택하는 걸까.
배은망덕한 ‘미래의 우리’
이런 상황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당신의 지갑에 20달러짜리 지폐 한 장과 20달러짜리 콘서트 티켓 한 장이 있다. 그런데 콘서트장에 도착한 순간 티켓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알았다. 새 티켓을 사겠는가? 많은 사람이 다시 티켓을 사는 대신 콘서트를 포기한다.
이번에는 티켓이 아닌 20달러짜리 지폐 두 장을 가지고 있다고 하자. 똑같이 콘서트장에 도착해서 그중 한 장을 잃어버린 것을 알았다. 자, 콘서트 티켓을 사겠는가? 이때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겠다고 말한다.
하버드대 심리학과 교수인 대니얼 길버트의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김영사)는 행복한 미래를 상상하며 ‘스스로에게 속는’ 인간 심리에 대한 보고서다. ‘현재의 우리’는 ‘미래의 우리’를 상상하며 이런 ‘짓’을 한다.
퇴직 후 가족과의 단란한 행복을 꿈꾸며 월급의 일부를 떼어 매달 저축한다. 그리고 ‘미래의 우리’가 그것을 좋아하며 ‘현재의 우리’가 기울인 노력과 탁월한 판단에 찬사와 존경을 보낼 것이라고 기대한다. 하지만 배은망덕한 자식들처럼 ‘미래의 우리’는 ‘현재의 우리’가 해놓은 결과들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현재의 우리가 한 선택을 후회하고, 흠을 잡고, 버리고 싶어 한다. 왜?
대니얼 길버트에 따르면, 우리의 뇌는 우리를 미래의 상황으로 옮겨 그곳에서 우리가 어떻게 느낄지를 물어본다(상상). 정교한 수학적 공식을 이용해 효용을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상상을 통해 미래 상황에 들어가서 느껴보는 것이다. 시간을 뛰어넘어 우리에게 닥치지 않은 일들을 미리 경험해보는 것은 분명 실수를 막아주고 미래를 준비하게 하는 놀라운 능력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오류도 존재한다. 우리는 미래를 상상하면서 현재의 감정에 좌우되고,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채워 넣기도 하고, 존재하는 것들을 빠뜨리는 실수를 범한다. 그래서 정확한 예측이 불가능하며 늘 인간은 미래를 예측하며 ‘착각’ 하게 되는 것이다.
‘끝이 좋으면 다 좋다’
자, 다시 앞의 문제로 돌아가보자. 연봉의 총액에 관계없이 3만달러에서 시작해 매년 1만달러씩 느는 쪽을 선호하는 이유는, 비교대상을 과거에 두기 때문이고 인간의 느낌은 절대성보다 상대성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100달러짜리 라디오를 50달러에 살 수 있다면 기꺼이 다른 도시까지 차를 몰고 가는 수고를 하지만 10만달러짜리 자동차를 50달러 깎아보겠다고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 100달러짜리를 50달러 깎아서 샀다면 횡재한 기분이 들지만, 10만달러짜리 자동차에서 50달러는 ‘새발의 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100달러에서 50달러를 깎든, 10만달러에서 50달러를 깎든 돈의 가치는 동일하다.
20달러짜리 콘서트 티켓도 마찬가지다. 한번 구입했다 잃어버린 티켓은 ‘과거’가 있다. 그래서 다시 사려니 2배의 돈을 치르는 것 같아서 아깝다. 반면 20달러 지폐를 잃어버린 것은 ‘과거’가 없다. 그래서 20달러짜리 콘서트 티켓을 사는 게 아깝지 않다. 똑같이 20달러를 손해 본 것인데도 이렇게 감정은 큰 편차를 보인다.
싱싱한 사과를 아껴두고 썩은 사과를 먼저 먹는 심리는 ‘끝이 좋으면 모든 게 좋다고 믿는 착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몸을 아주 차가운 물속에 60초 동안 담그고 있었던 경우와, 같은 온도의 물 속에 60초 동안 담갔다가 그보다 약간 덜 차가운 물속에 30초 동안 담갔던 경우 나중에 고통의 정도를 물어보면, 60초 동안 담갔던 사람이 90초 동안 담갔던 사람보다 더 고통스러웠다고 회상한다. 90초 동안 담갔던 사람은 아주 차가운 물에서 덜 차가운 물로 옮기면서 좀더 따뜻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인간의 기억은 결말 부분에 큰 영향을 받기 때문에 ‘착각’을 유발한다.
60세까지 화려한 삶을 살다 60세 이후 그럭저럭 살다 죽는 쪽보다, 화려한 삶에는 비교할 수 없지만 죽기 전까지 멋진 삶을 사는 쪽을 더 선호한다. 삶에서 누린 즐거움의 총량보다는 삶이 마감되는 시기의 질적인 측면을 더 중시하기 때문이다.
대니얼 길버트는 인간을 행복한 착각에 빠지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로 ‘합리화’를 꼽았다. 새 차를 뽑기로 마음먹은 뒤 도요타냐 혼다냐 고민 끝에 혼다 쪽으로 결정한 다음 사람들은 어떤 태도를 보이는가. 도요타 광고는 대충 훑어보더라도 혼다 광고는 샅샅이 본다. 광고는 제품의 장점만 담고 있는 불완전한 정보다. 자신이 선택한 제품에 대한 광고만 보는 것은 결과적으로 자신의 선택을 ‘합리화’하는 것이다.
한 연구에서 사람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고 각각 외향적인 사람과 내향적인 사람이 성공한 증거를 제시한 다음, 자신이 외향적인지 내향적인지 판단할 수 있도록 과거의 구체적인 행동을 회상해보라고 했다. 결과는? 앞의 집단은 자신이 낯선 이들에게 다가가 스스로를 소개했던 외향적인 상황을 기억해내고 뒤의 집단은 누군가 좋아하면서도 수줍어서 말을 건네지 못했던 일을 기억하는 경향을 보였다.
상상력의 오류로 행복해지다
수많은 심리학적 연구결과를 제시하면서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상상력이 범하는 오류다. 미래의 행복을 기대하며 오늘을 희생하는 것이 이런 착각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자, 이제 결론을 내리자. 미래에 대해 어쭙잖게 안다고 생각하는 상상력의 결함은 사실 한 사회를 유지하는 중요한 시스템이다. 경제학자들은 부가 ‘한계효용체감’의 원리를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즉 연간 5만달러를 버는 사람은 1만달러를 버는 사람보다 행복하지만 매년 500만달러를 버는 사람이 10만달러를 버는 사람보다 훨씬 행복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일정 수준 이상이 되면 돈은 갈수록 쓸모가 없어지기 때문에 일을 그만하고 놀아야 합리적이다.
하지만 실제로 사람들은 자신이 즐기고 누릴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돈을 벌고자 계속 일을 한다. 그리고 그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자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자녀를 양육하는 데 드는 비용이나 수고보다 사랑스러운 아이를 대하는 즐거움이 훨씬 크다고 믿는다. 자녀와 돈이 행복을 불러올 것이라고 믿는 것, 그것이 거짓 신념이라고 의심해본 적이 있는가? 사회는 개인들에게 이런 행복의 신념을 계속 퍼뜨려야 유지될 수 있다. 행복이라는 덫에 빠진 기분이 들지 않는가? 그래서 이 책의 제목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원제 Stumbling on Happiness)는 의미심장하다.
자신의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다른 사람의 실제 경험을 사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이 남과 다르다’고 믿기 때문에, 오류투성이인 자신의 판단에 의지하고 그래서 늘 행복한 착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이 책을 집으면서 행복해지는 방법을 알 수 있을 거라는 착각 또한 버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