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기업들의 가격정책은 상품 수준이 업그레이드된 데 비해서는, 아직 세계적인 수준에 오르지는 못했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주력 수출품인 자동차는 물론, 몇몇 고가 제품이 라인업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진 디지털기기의 가격 사정도 크게 다를 바 없다.
세계적인 가격전략 전문가로 손꼽히는 미국의 존 호건(John Hogan) 박사를 만나 기업의 가격정책에 관한 최신이론, 점점 커지고 있는 가격전략수립의 중요성, 한국 기업들의 가격정책에 대한 조언 등을 들어봤다. 현재 전략 컨설팅사 모니터그룹 계열사인 SPG(Strategic Pricing Group)의 부사장으로 재직 중인 그는 그동안 컬럼비아대, 시카고대, 보스턴칼리지 경영대학원 교수로 재직하며 마케팅과 가격전략 과목을 가르쳤다.
1987년 그가 현 SPG 사장 토마스 네이글 박사와 함께 펴낸 책 ‘프라이싱 전략(The Strategy and Tactics of Pricing)’은 지난 20년간 미국 유명 경영대학원의 필수교재로 채택돼왔다. 지금까지 4번의 개정판을 찍었는데, 최근 찍은 4판은 모니터그룹 한국본사의 송기홍 부사장과 공저(共著)한 것이다. 호건 박사는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출신인 송 부사장의 도움에 힘입어 한국 기업 가격정책에 관한 케이스 스터디에도 밝은 편이라고 한다.
한국산, 아직 상대적으로 저가
▼ 한국 기업 얘기부터 해보죠. 현대자동차가 미국시장에서 지금보다 선전하려면 먼저 차의 수준에 걸맞은 ‘제값’을 받아야 한다고 했는데요.
“한국에서 현대차는 고가 이미지가 강하지만 미국시장에서는 약간 애매한 상태입니다. 전반적으로는 경쟁 차종인 일본차의 비슷한 모델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어요. 지금 인기를 끌고 있는 장기 품질보증, 즉 10년 10만마일 무상 애프터 서비스 정책도 장기화하면 수익성을 침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무작정 도요타의 렉서스처럼 프리미엄 브랜드만 론칭한다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닙니다. 프리미엄 마켓도 이미 덩치가 커져버렸어요. 미국 전역으로 서비스 인프라를 확충하는 데만도 엄청난 돈이 들어갈 겁니다.
현대의 품질은 이미 정상급이에요. 전반적인 가격을 제품수준에 맞게 높여 받으려면 20년 전 첫 미국시장에 진출할 때 심어준 중저가 이미지를 빨리 없애야 합니다. 이를 위해 생각해볼 만한 것이 ‘리미티드 에디션(한정품)’입니다. 창의력과 상상력을 동원해봅시다. 대도시에 몇 개의 매장을 열어 화려하고 우수한 제품만 만들어 판매하는 겁니다. 매장 판매부터 서비스까지 모두 멤버십으로만 이용하도록 하면 비록 판매대수는 수천대에 불과하더라도 전체 브랜드 이미지에 미치는 영향은 엄청나게 커질 수 있어요.”
▼ 디지털 가전 등에서는 한국 기업들이 이미 고가 전략을 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삼성이나 LG가 유럽이나 중국시장을 공략할 때 일부 기종의 휴대전화나 LCD TV를 고가에 팔면서 수익률을 올린 사례는 많아요. 하지만 이것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진정한 의미의 프리미엄 프라이싱 전략과는 다소 거리가 있죠. 프리미엄급뿐 아니라 엔트리(초기 진입), 매스(중기 대량생산) 단계의 모델에서도 상황은 비슷해요. 한국 제품들은 각 단계 안에서만 놓고 보면 아직도 상대적으로 싸다고 평가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