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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 여성들의 절규 “우리는 이렇게 당했다”

촛불쇼, 바나나쇼, ‘인간 다트’… 생리 때는 솜 틀어막고 관계 강요

  • 구미화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hkoo@donga.com

성매매 여성들의 절규 “우리는 이렇게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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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주의 소개로 별의별 인간을 다 만났다. 평소엔 멀쩡해 보이는 어느 가게의 사장이라는 사람도 둘만 있으면 별의별 변태 짓을 서슴지 않았다. 20만원을 벌기 위해, 그래서 빚을 갚기 위해 짐승보다 못한,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으면서도 참고 견뎌야 했다. 낮에는 멀쩡하게 성당에서 미사를 보고 하느님, 예수님 찾으면서 밤이면 나를 찾아와 스트레스를 풀었다. 낮과는 너무도 다른 얼굴이 너무 무서웠다. 화장실에 가두어놓고 계속 신음소리를 내라고 시키고, 자신은 밖에서 그 신음소리를 들으며 자위를 했다. 때론 문을 열어달라고 소리치는 내 모습을 즐겼다.

모텔이나 여관으로 차 배달을 가면 티켓을 끊어준다고 1시간만 있다 가라고 하면서 커피에 가래침을 뱉어달라고 한 남자도 있었다. 옷을 벗어라, 다리를 벌려라, 춤을 추라고 하기도 했다. 허리띠를 풀어 겁을 주고 겁탈하듯 관계를 갖는 남자도 있었고, 칼을 머리맡에 두고 겁에 질린 나에게 욕하고 협박하면서 관계를 갖는 남자도 있었다.

아버지보다 나이가 많은 남자가 나를 보고 흥분된다면서 손으로 자신의 성기를 만져달라고 하는가 하면 자신이 사정을 할 때까지 입으로 해달라고 하는 손님들도 있었다.

‘인간 다트’ ‘인테리어’

커튼 뒤에 숨어서 ‘까꿍’ 하면 돈을 주겠다고, 관계는 맺지 않을 테니 안심하라고 해놓고 커튼 뒤에 있으면 귤이나 사과, 그밖에 별의별 이상한 것들을 던지면서 얼굴을 맞히면 5만원, 팔이나 다리를 맞히면 3만원, 배나 가슴을 맞히면 2만원, 이런 식으로 ‘인간 다트’ 놀이를 즐기는 남자도 있었다.



자신의 성기에 ‘인테리어’(구슬 등으로 성기가 커 보이도록 장식하는 것)를 하고는 내 치마를 강제로 내리고 내가 움직이지 못하게 억센 힘으로 누르면서 관계를 갖는 남자도 여러 명 있었다. 그런 사람들은 대개 자신이 사장과 친하다면서 자신이 그랬다는 걸 다른 사람에게 말하면 얼굴을 멀쩡히 들고 다니지는 못할 거라고 협박했다.

그런 협박이 무섭지는 않았다. 다만 부모님이 아시게 될까봐, 친구들이 알까봐 입을 다물었다. 강간을 당하는 것만큼이나 수치스러웠고 죽고 싶을 만큼 창피했다. 집에 계시는 부모님이 너무도 보고 싶었다. 내가 멀쩡한 직장을 잘 다니는 줄 아는 친구들한테도 떳떳치 못하고, 가족을 속이면서 이런 일을 하는 내 자신이 밉고 수치스러워 자살까지 생각했었다.

그나마 2차를 나가서 돈을 제대로 주는 손님은 매너가 좋은 거였다. 2차 나가서 할 짓 안 할 짓 다 해놓고 자기 기분이 상했다면서 돈을 줄 수 없다고 떼를 쓰는 사람도 있었고, 돈을 덜 주고 가는 사람도 부지기수였다. 순순히 2차를 가지 않으면 내게 치욕스러운 욕을 해대며 손님들 앞에서 모욕을 줬다. 그런 손님 중에 사회적 지위가 낮거나 멀쩡하지 않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 사람들은 전부 낮에는 가면을 써 시커먼 얼굴을 가리고, 밤에는 본색을 드러내는 야누스였다.

‘나의 유일한 재산은 몸뚱어리’

‘레인보우’라는 가명의 이 여성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 취업해 경리·비서 등으로 일했다. 평범한 사회인으로 지내던 어느 날 집에 불이 나 모든 재산이 일순간 잿더미가 됐고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다. 친척집에서 어렵게 생활하던 중 직장 후배로부터 아르바이트를 소개받았다. 25세 때다.


“그냥 손님 옆에 앉아서 술만 따라주면 되는 거야. 그럼 테이블당 7만원씩 챙겨준대, 그것도 선불로.”

너무나 간단했다. 손님에게 술만 따라주면 돈을 벌 수 있다니 솔깃했다. 먼발치에서만 보던 화려한 네온사인의 룸살롱, 그 시커먼 속내를 알지 못한 채 그 세계로 첫발을 내디뎠다. 낮에는 직장에, 밤에는 업소에 나가기 시작한 지 한 달이 채 안 됐을 무렵, 업주는 내게 선불금(500만원)을 핑계로 성매매를 강요했고, 나는 선불금을 갚기 위해 업주의 말을 따라야 했다. 얼마 못 가 이중생활의 고초를 이겨내지 못하고 직장을 그만뒀다. 갖가지 수모를 겪으며 내 몸은 점점 타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렇게 3∼4개월 지내다 너무 힘들어서 선불금을 갚고 일을 쉬었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친척집에서 사는 게 눈치가 보였다. 집을 마련할 돈을 구하기 위해 아는 사람 소개로 ‘보도’에 갔다. 차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룸살롱에서 전화가 오면 들어가 손님을 상대하는 것이다. 룸에 들어가면, 거기에 소속된 아가씨가 ‘술 작업’(술을 몰래 버리는 것)을 하다 걸려도 모든 화살이 내게로 꽂혔다. 내가 그 룸살롱 소속이었다면 마담이 와서 상황을 모면하게 해줬을 텐데 마땅히 하소연할 곳도 없고, 나는 하지도 않은 일을 했다고 시인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고 반발하면 손님이 술값을 낼 수 없다고 소동을 피우고, 그러면 마담은 내게 일거리를 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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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화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hk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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