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액주주 운동을 일으킨 참여연대는 노무현 정부의 시장개혁 방향타를 제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80년대 초반부터 1990년대 초반에 이르는 10년은 ‘동아시아의 시대’였다. 서구의 언론과 학자들은 일본의 도요타 모델과 대만의 중소기업, 한국의 재벌체제 등 동아시아 특유의 비즈니스 모델의 성공비결을 알아내려고 분주했다. 일본과 한국, 대만에서 뚜렷했던 정부의 산업정책과 인허가 정책, 은행통제, 외환통제, 외국인 지분 제한 같은 다양한 개입주의 정책과 제도가 성공비결로 알려졌다. 시장주의 경제학의 관점을 강력히 옹호하는 세계은행마저 1993년 ‘동아시아의 기적’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동아시아의 높은 투자율과 저축률, 낮은 인플레율, 균형재정, 그리고 상대적으로 양호한 빈부격차 등의 성과를 극찬했다.
‘시장개혁’의 일방적 승리
그러나 일본의 1990년대 장기 불황에 이어 1997년 동아시아 금융위기는 이러한 긍정적 논의 지형을 극적으로 뒤집었다. 정부의 다양한 개입조치,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성공요인으로 간주되던 대기업집단의 선단식 경영, 은행을 통한 자금조달, 평생직장 같은 한국 특유의 제도는 모두 정경유착과 관치금융, 모럴 해저드, 고비용 저효율의 원천으로 무차별 공격을 받았다.
IMF 위기를 계기로 국내외 여론과 정책형성 과정을 좌우하게 된 시장주의, 즉 신자유주의의 이데올로기는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시장개혁’ 방향타를 장악했다. 주주자본주의적 재벌개혁과 금융개혁을 포함한 ‘시장개혁’은 개혁진보 시민단체의 열렬한 후원과 압력을 받으며 진행됐다. 재정경제부의 변양호, 참여연대의 장하성 등 한국 경제의 시장주의적 재편을 꿈꾸던 사람들에게 IMF 위기는 그야말로 하늘이 내려준 기회, ‘위장된 축복’이었던 것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시장개혁가들은 과거의 잘못된 경제체제를 고치려고 노력했다. 정부의 지나친 개입, 특히 관치금융과 재벌의 독점적 지배라는 반(反)시장적 요소를 개선하기 위해 자본시장 완전개방, 공기업 민영화, 외국투자자에 대한 규제 폐지, 금융규제 완화, 기업지배구조 개혁 조치가 이뤄졌다. 이러한 개혁 정책이 시장원리와 규율을 확산해 경제와 기업의 효율성을 높이고 재벌의 독식을 막아 경제의 공정성을 높이고 분배를 개선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이들은 지식기반 경제 또는 혁신주도형 경제를 이룩하기 위해 과거와 같은 ‘요소 투입형’ 경제성장보다는 기술혁신에 기초를 둔 ‘총요소 생산성 기여형’ 성장이 더욱 바람직하며 이를 위해 기술혁신 지향적이라고 가정된 영미 모델을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겼다.
외환위기 이후 투자 위축, 왜?
이들의 목표는 대부분 실현됐다. 재벌개혁 과정에서 30대 그룹 중 대우 등 10여 그룹이 해체됐다. 살아남은 그룹들도 부채비율을 급격히 낮춰 재무구조를 개선했고 계열기업 수를 줄여 핵심역량을 강화했다. 또한 소액주주권 신장과 적대적 인수합병(M·A) 활성화 조치와 결합된 출자총액제한 강화, 그리고 사외이사제도 도입 등과 결합된 주주가치 경영 패러다임이 정착되면서 오늘날 상장기업은 주식투자자의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은 일견 효과가 있는 듯 보였다. 한국은 다른 아시아 국가보다 빨리 외환위기에서 탈출했다. 구조조정에서 살아남은 대기업과 은행은 사상 최대의 경상이익과 순이익을 기록하고 있다. 한국은 세계 5대 외환보유국이 됐고 수출 또한 사상 최대 규모를 달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