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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IMF 사태’ 10년

‘IMF 체제’ 의미 논쟁

기업 모험 가로막는 ‘주주자본주의 시장개혁’

  • 정승일 국민대 겸임교수·경제학 sijeong11@hanafos.com

‘IMF 체제’ 의미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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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시장개혁 성과가 가시화하는 2001년부터 한국 경제는 심각한 문제점을 드러냈다. 단적인 예로 제조업 설비투자는 1990년대 초반의 3분의 2 수준으로 떨어졌다. 같은 기간 국민경제 규모가 2배 이상 성장한 것을 감안하면 3분의 1로 떨어진 셈이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극소수의 글로벌 우량기업을 빼면 대다수 대기업은 지난 8년간 설비투자규모를 줄여왔다.

연구개발(R·D) 투자도 마찬가지다. 삼성, LG, 현대차, SK, 포스코 등 20∼30개 대기업이 투자를 늘리고 있을 뿐, 나머지는 지난 8년 동안 거의 제자리걸음을 했다. 중소기업의 사정은 더욱 심각한데, 1999년 이후의 벤처투자 붐 때 잠깐 늘었던 중소·벤처기업의 기술개발 투자는 2003년 이후 감소하고 있으며 설비투자도 줄었다.

무엇보다 주목할 점은 대기업의 현금보유고가 급격히 늘고 있는데도 투자는 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대기업이 보유한 현금성 자산은 2002년 47조원으로 1991∼97년 평균인 20조원보다 2.3배나 늘어났다. 2006년 중반에는 다시 78조원으로 늘어났다. 적어도 대기업의 경우 돈이 없어 투자를 못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유’ 때문에 투자를 주저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다른 이유란 무엇일까.

보수논객들은 2003년 출범한 노무현 정부가 성장보다 분배를 중시하고 반(反)기업적 정서를 고무해서 기업이 투자를 주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국내 투자는 기피하고 해외 투자만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한 시각이다. 투자 부진 현상은 최근에 불거진 것이 아니라 외환위기 이후 지속됐기 때문이다.

보수논객들은 하이에크식 신자유주의 시각(국가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노동의 유연성을 높여 기업활동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자는 것)에서 규제완화 만능론을 내세우는데, 무분별한 규제완화는 경제에 큰 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불필요한 규제는 물론 폐지돼야 한다. 하지만 IMF 위기는 1990년대 초·중반 김영삼 정부가 금융규제 및 산업규제를 무분별하게 완화한 결과였다. 해외 차입이 폭증하고 종금사가 난립하면서 외환위기가 발생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김대중 정부가 집권 후반기에 신용카드업 규제완화를 단행한 것도 결국 카드대란으로 불거졌다.



기업은 불안하다!

이에 반해 청와대와 열린우리당, 그리고 시민단체에 포진한 이른바 ‘개혁 성향’ 인사들은 박정희 시스템의 유물인 관치금융과 재벌체제 개혁이 아직도 불충분하다고 주장한다. 지금의 경제 문제는 시장원리가 뿌리내리지 못했기 때문이며, 따라서 재벌개혁과 금융개혁을 더욱 과감하게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제자본시장이 요구하는 대로 기업지배구조의 투명성을 더욱 높이고 소액주주권 강화 및 상시적인 적대적 M·A 위협을 통해 기업의 체질을 강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이 견해에 동조하면서 출자총액제한 강화와 순환출자 금지, 금융계열사 의결권 제한(금융과 산업의 분리) 등의 개혁조치를 밀어붙이고 있다. 재정경제부를 비롯한 열린우리당의 경제정책 라인도 대동소이하다. 이들은 재계가 요구하는 차등의결권(지배주주에게 보통주의 수십배 의결권을 주자는 것)과 ‘독약처방(기존 주주에게 싼 값에 신주를 제공하는 것)’ 등 선진국들이 허용하는 다양한 경영권 방어장치 도입에 대해 ‘국제자본시장 투자자의 요구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완강히 반대한다.

지금 경제가 어려워진 것은 1997년 환란 이후 추구한 개혁정책이 불충분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 정책의 방향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환란 이후 추구한 시장개혁의 궁극적인 목표가 주주자본주의라는 점이 문제다. 1998년 이후 도입된 금융구조와 기업지배구조를 핵심으로 형성된 새로운 제도적 환경, 주주자본주의는 기업의 장기 투자를 구조적으로 양극화하고 있다.

첫째, 소액주주권 강화와 적대적 M·A 활성화, 그리고 이를 위한 출자총액제한 강화 및 금융계열사 의결권 제한과 각종 경영권 방어제도의 폐지, 회계투명성 강화, 사외이사 권한 강화 등을 축으로 진행된 기업지배구조 개혁의 결과, 국내외 주식투자자들이 기업의 투자의사결정(기업지배구조)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졌다.

둘째, 기업들의 대대적인 부채비율 감축과 함께 추진된 금융개혁은 은행 등 금융기관의 해외 매각과 외국인 지분보유 급증, 그리고 ‘바젤1과 바젤2(기업의 신용에 따라 대출금리 차등화)’ 등 은행의 자기자본 건전성 규제와 결합돼 은행의 행태를 획기적으로 변화시켰다.

투자 리스크 홀로 감당

선진국보다 경쟁력이 떨어지는 후발 공업국은 높은 투자위험, 즉 손실 가능성을 사회적으로 분산, 공유하는 투자 리스크 공유체제를 가동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기업은 적극적으로 투자하지 않는다. 과거 한국의 재벌은 투자위험을 1차적으로 계열사들과 공유했다. 다양한 계열사를 거느린 그룹이 내부 자본시장을 형성해 위험을 분산했다. 어떤 계열사가 새 사업을 벌이면 영업이 본궤도에 오를 때까지 현금흐름이 양호한 다른 계열사가 지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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