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시 신드롬' 앙리 루소 지음/ 이학수 옮김/휴머니스트/ 664쪽/2만5000원
프랑스인은 암울한 과거를 어떻게 기억할까
식민통치, 전쟁과 학살, 독재로 얼룩진 암울했던 우리 과거사에서 가장 오래된 과거이자 종종 다른 과거들의 ‘원죄’ 격으로 간주되는 과거는 단연 일제강점기일 것이다. 일제 강점기에 대한 청산, 더 정확하게는 그 시기의 친일 반민족행위(자)에 대한 진상 규명이 과거청산의 대명사가 되고 법 제정 단계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에 관해 가장 격렬한 논란이 빚어진 것도 ‘친일’이라는 유령(혹은 잔재)의 뿌리가 여전히 깊음을 말해준다.
그러면 우리와 비슷하게 이웃 나라에 점령당하고 비슷한 시기에 ‘해방’을 맞이한 프랑스는 과연 암울하고 수치스러운 과거를 어떻게 청산했을까. 최근에 번역 출간된 ‘비시 신드롬’은 바로 그러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렇다고 좁은 의미의 과거사 청산, 즉 우리가 철저하고 단호한 과거사 청산의 ‘모범적’ 사례로 간주하는 프랑스의 대독(對獨)협력자 처벌에 국한하고 있는 건 아니다. 훨씬 넓은 의미의 과거사 청산, 아니 과거사 ‘청산’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과거와의 대면, 즉 해방 후 반세기 동안 프랑스인이 자신의 암울했던 과거를 어떻게 기억해왔는지, 그리고 그러한 기억이 프랑스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를 이 책은 다룬다.
‘비시 신드롬’의 저자인 앙리 루소(Henry Rousso)는 현대사연구소 소장을 역임하고 현재 파리 제10대학 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역사가다. 1987년에 처음 출간된 이 책(국역본은 1990년 개정판을 번역했다)은 그에게 국제적인 명성을 안겨준 대표작이다.
그러면 ‘비시(Vichy)’란 무엇인가? 우리에게 ‘광주’가 단순한 지명을 넘어서 1980년 5월이라는 특정한 역사적 시기를 떠올리게 하듯 오늘날 프랑스인에게 비시는 단지 중부의 온천휴양도시가 아니라 무엇보다도 독일 강점기(1940∼44)라는 ‘암울했던 시절’과 대독 협력이라는 수치스러운 행위를 떠올리게 하는 단어이다. 1940년 6월 패전에 이은 휴전협정(사실상 항복)에 따라 국토가 반으로 쪼개지고 파리를 포함한 북쪽 절반 지역에는 독일 군당국이, 남쪽 절반 지역에는 비시를 수도로 하는 프랑스인 정부가 각각 들어섰는데 이 ‘비시 정부’는 독일의 괴뢰 정부는 아니었지만 공식적으로 대독협력을 천명하고 그러한 협력을 존재이유로 삼았다.
자발적 대독협력의 대가
1972년에 ‘비시 프랑스’를 내놓아 비시 체제에 대한 기존 인식을 획기적으로 바꾸어놓은 것으로 평가받는 미국인 역사가 로버트 팩스턴(Robert Paxton)에 따르면 비시 정부의 대독협력은 기본적으로 독일의 요구나 압력에 따른 것이 아니라 자발적이고도 적극적인 것이었다. 비시 정부 인사들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결국 독일이 승리할 것이라 예단하고 전후(戰後) 독일이 지배할 ‘새로운 유럽 질서’에서 프랑스가 제2의 지위를 차지하도록 하기 위해 적극적인 대독협력을 추구했던 것이다.
이러한 비시 정부의 ‘국가적 대독협력’의 대가는 끔찍했다. 7만6000명의 유대인이 아우슈비츠를 비롯한 ‘절멸’수용소로 보내졌고, 6만3000명의 레지스탕스 활동가, 정치범, 인질 등이 강제수용소로 끌려갔으며, 약 3만명의 민간인이 인질로서, 혹은 레지스탕스 활동을 이유로 총살당했고, 65만명이 독일의 공장들로 징용됐다.
앙리 루소가 ‘강점기 신드롬’이나 ‘친독 신드롬’이 아니라 ‘비시 신드롬’이라고 저서의 주제명을 정한 것도 상당 정도 팩스턴의 문제의식을 이어받은 것이다. 독일의 지배나 강점이 아니라 ‘비시’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무엇보다도 협력의 자발성과 프랑스인들 사이의 내분을 강조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