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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연재 | 종횡무진, 21세기 중국 문화-문학

‘중국적인 것’의 부활에서 찾는 ‘이야기 소설’ 전통

  • 이욱연 서강대 교수·중국현대문학 gomexico@sogang.ac.kr

‘중국적인 것’의 부활에서 찾는 ‘이야기 소설’ 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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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적인 것’의 부활에서 찾는 ‘이야기 소설’ 전통

중국 문화대혁명 기간에 열린 군중집회. 이 시기 중국은 모든 전통적인 것을 후진적인 것으로 규정하고 이를 제거하기 위해 애썼다.

만일 상대가 중국인이 아니라 서양인이었다면 달랐을 것이다. 애초에 한국인과 다르다고 전제하고 문화적 차이를 인정하면서 소통했을 것이다. 하지만 중국인의 경우에는 한국식으로 소통하려 하고, 그러다 충돌을 빚는 순간 그 차이와 다름을 곧장 틀린 것으로 규정해버린다. 한중 합작과정에서나 중국인 종업원과 한국인 관리자 사이처럼 민간에서 일어나는 두 나라 사람들의 갈등은 태반이 여기에서 비롯된다.

한국인에게 중국을 연구하거나 이해하려는 노력이 부족한 것도 마찬가지 이유 때문이다.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이미 잘 알고 있는 대상으로 여기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는 중국이 워낙 낯선 타자인 까닭에 중국을 이해하기 위해 정부, 학계, 연구소, 민간인들까지 나서서 연구하고 노력을 기울인다. 하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다. 중국어 한마디 못하고 중국에 대해 전혀 공부하지 않은 채 바로 베이징으로 달려가는 한국 기업인들처럼 무모한 사람들은 세계 어디에도 없다.

중국을 잘 알고 있다는 착각에서 오는 피해와 손해는 온전히 한국의 것이다. 한중 수교 15년, 어차피 앞으로 중국과 밀접하게 교류하면서 살 수밖에 없다면, 이제 한국인은 중국과 중국인을 잘 안다는 착각 때문에 생기는 피해와 손해를 줄여야 한다. 중국과 중국인을 잘 알지 못한다는 새삼스러운 인식이 절박한 것이다. 미국, 일본과 더불어 중국과도 밀접하게 교섭하면서 살 수밖에 없는 여건이라면, 이제 중국 공부를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상상 속의 계서(階序)구조

두 번째 질문, 한국인은 중국을 보는 스스로의 눈이 있는가. 불행히도 한국인은 중국을 보는 스스로의 눈을 아직 제대로 갖고 있지 않다. 점차 확보해가고 있긴 하지만 아직 멀었다. 근대 이후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그럴 만도 하다. 중국과 직접 소통하고 교류할 수 있는 길이 단절된 현대 이후, 한국인은 스스로의 눈으로 중국을 보지 못하고 대부분 타자의 눈으로 중국을 보았다. 대표적인 것이 일본과 미국의 눈이다. 일본과 미국을 통해 중국을 인식하거나 일본과 미국의 중국관(觀), 일본과 미국의 대(對)중국 관계를 통해서 중국을 인식한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일제 강점기 조선인들이 중국을 근대화에 실패한 나라, 문명개화의 낙오자로 본 것은 일본의 시각으로 중국을 보았기 때문이다. 문명화의 정도, 요컨대 ‘문명-반(半)문명-미개’의 구도를 놓고 ‘일본-조선-중국’의 순서로 위치한다고 여겼다. 일본을 정점으로 한 동아시아 국가의 계서(階序)구조가 식민지 조선인의 인식 속에 자리잡은 것이다. 중국을 더 이상 문명의 중심이 아닌 ‘천하고 어리석으며 더러운 나라’로 여기고 우리가 중국보다 문명의 수준에서 앞서 있다는 인식이 형성된 게 이 무렵이다.

김동인의 소설 ‘감자’나 최서해의 ‘홍염’ 같은 일제 강점기 문학작품에서 중국인은 악질이나 저질, 추악한 인간 등, 한결같이 부정적 이미지로 그려진다. 일제 강점기에 중국인을 무시하는 한국인과 중국인 사이에 갈등이 자주 일어난 이유 중의 하나도 이것이다.

동아시아에 냉전체제가 성립되고 두 나라가 서로 적성국가가 된 후에는 ‘비인간적인 사회주의 국가’라는 이미지가 추가된다. 사회주의라는 죽(竹)의 장막에 갇힌 어둠의 나라, 홍위병 운동과 문화대혁명 등 야만적이고 비인간적인 사회주의 역사경험을 가진 나라, 인권이 없는 나라라는 이미지가 보편적인 중국 이미지로 한국인의 뇌리에 확고하게 자리잡은 것이다. 일제 강점기 ‘일-한-중’이던 계서구조는 냉전체제 이후 ‘미-일-한-중’으로 바뀌었을 뿐 그대로 한국인의 인식 속에 새겨진다. 여기서도 중국은 가장 아래, 우리보다 밑에 있다.

이러한 인식은 지금까지 강하게 남아 있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아예 강한 신념으로 굳어지기도 했다. 수교 이후 쏟아져 나온 한국인의 중국 여행기 속에 천한 이미지, 문명화가 덜 되고 아직도 사회주의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진 낙후된 중국의 이미지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본질주의적 시각’의 한계

물론 현실의 중국에 그렇게 볼 만한 요소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한국인의 중국 여행기에서 그렇듯 천편일률적으로 낙후된 이미지로 묘사되는 것은 한국인들이 집단적으로 중국에 대해 갖고 있는 공통적인 인상 탓이 크다. 중국은 경제뿐 아니라 민주화나 인권,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우리보다 뒤떨어져 있다고 생각하는 한국인이 많기 때문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한국인의 우월의식과 중국 비하의식은 이렇듯 대부분 제국주의와 냉전시대를 거치면서 형성된 역사적 산물이고, 그런 만큼 일본과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탈(脫)냉전시대인 지금 중국의 의미는 일본에, 미국에, 한국에 각기 다를 수밖에 없다. 이제 중국을 보는 한국 스스로의 눈이 필요하다.

다시 다가온 중국에서 우리는 무엇을 발견할 것인가. 지금 우리는 ‘중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라고 피동적으로 묻는 게 아니라 ‘우리에게 중국은 무엇이어야 하는가’라고 능동적으로 물어야 할 시점에 서 있다. 이 물음을 통해서 친중(親中)과 반중(反中), 모화(慕華)와 척화(斥華)의 양극단을 오가는 중국 인식의 적폐를 청산하고 중국을 이해하는 새로운 길을 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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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욱연 서강대 교수·중국현대문학 gomexico@sog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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