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사람 만나는 재미에 푹 빠진 농부 김광화씨. 이번엔 집을 멀리 떠나 강원도 인제의 한 가족을 만나고 왔다. 성공적인 도시 생활을 꾸려가던 양손이네 가족. 이들은 어느 날 홀연히 도시를 떠나 시골로 들어갔다. 좌충우돌하면서 몸과 마음이 거듭나는 경험을 했다는데…. 농부를 따라 양손이네 가족을 만나보자.
원푸리와 초록손이가 나무를 옮겨 심고 있다. 원푸리는 아직도 일머리는 부족하고 마음은 바쁘다며 사람들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인터뷰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눈으로 본 거 외에는 잘 떠오르지 않는다. 그럼 녹음한 내용을 풀면서 그 사람을 다시 이해하곤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상대방 이야기가 조금씩 귀에 들리는 거다. 아니 ‘들린다’기보다 ‘귀담아 듣는다’는 말이 더 정확하겠다.
글쓰기가 한결 쉬웠다. 녹음한 걸 풀어 참고 삼아 한 번만 더 들으면 됐다. 이야기를 귀담아 듣는 게 무언지를 어렴풋이 느꼈다. 글자 그대로 말을 흘려버리지 않고 귀에 담아두는 거다. 사람 공부를 하면서 나 스스로 사람이 되고 있다고나 할까.
이번에 만난 주인공은 저 멀리 강원도 인제에 사는 양손이네 가족이다. 이 가족과 만나기 전 나는 ‘가족’이라는 주제를 염두에 두었다. 요즘은 가족 사이 소통이 무엇보다 절실한 시대가 아닐까. 점점 바쁘고 전문화한 삶을 살아가는 요즘, 가족끼리 얼굴조차 보기가 어렵다. 심지어 명절에도 온 가족이 함께하지 못하는 집도 적지 않다. 가족은 세상과 소통이 어려울 때 마지막으로 기댈 언덕이고, 성장을 위한 발판이 되기도 한다. 가족 간에 소통이 잘된다면 세상살이의 어려움을 이겨내는 것도 그리 어려울 것 같지 않다.
‘원푸리와 초록손이’
양손이네 식구들은 별명을 짓고 부르는 걸 좋아한다. 양손이는 열네 살 남자아이다. 왼손잡이인데 왼손만이 아니라 오른손도 함께 쓰면 좋겠다고 양손이라고 지었단다. 이름은 김정환. 양손이 누나는 김자원, 열여섯 살 여자아이다. 어려서부터 책을 워낙 좋아해 책벌레라고 별명을 지었다. 요즘은 책뿐만 아니라 사람도 좋아해 여기저기 캠프랑 여행을 자주 다녀 부모로부터 사람벌레란 말도 가끔 듣는다.
한창 사춘기를 겪고 있는 이 아이들의 부모는 원푸리 김영수(金永洙·49)씨와 초록손이 고현희(高賢姬·45)씨다. 아이들 별명보다 어른 별명이 더 재미있고, 사연도 많다.
원푸리. 글자보다 입말을 해보면 묘한 느낌을 받는다. 원푸리는 원풀이로 들린다. 소원을 풀리라. 본인에게 물으니 처음 만든 별명이 ‘자유를 원한다’는 뜻의 Want Free였단다. 문장 발음이 자연스럽게 원푸리가 된다. 원푸리는 중견 기업에서 컨설팅 업무를 담당하며 고속승진을 하던 어느 날 삶의 방향을 바꿨다. 자신의 별명대로 자유롭게 살아보려고.
초록손이는 생명을 살리는 손이다. 초록손이는 서울 살 때 학원을 경영했다. 그런대로 학원을 잘 꾸렸지만 원장 생활 10년에 몸과 마음이 극심하게 지쳤다. 일주일에 한 번 가족들 얼굴조차 제대로 보기 어려운 삶. 살아가는 에너지가 거의 바닥날 무렵 도시를 떠났다. 이제 더 이상 돈만 밝히는 미다스(Midas)의 손이 아닌 초록손이가 되려고.
이들 가족이 도시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자 인제 점봉산 자락에 둥지를 튼 지 6년째. 이들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원푸리 소원대로 자유롭게 살고 있을까. 가족을 품고자 하는 초록손이의 꿈은 얼마나 이루어지고 있나? 아이들은?
이들 가족을 만난 첫날 저녁,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고 말머리를 꺼내니 할 말이 많은 듯했다. 가족간에 서로 바라는 점에 대해 거침없이 이야기가 오고간다. 때로는 조금 시끄러울 정도다.
“아버지는 더 부드러워져야죠”
농구에 대해 ‘강의’하는 원푸리. 자식들과 이렇게 대화를 나눈다는 건 애초 원푸리 소원에는 없었다. 양손이 표현에 따르면 지금 아버지 주름은 웃으면서 생겼다고 한다.
“너는 어떻고. 누나한테 잘하면 안 되나?”
부모라고 무게 잡거나, 부모라고 아이들이 봐주는 법이 없다.
“어머니는 현실로 좀 돌아오세요. 아버지는 좀 딱딱해. 더 부드러워져야죠.”
네 식구 모두 개성이 강해 상대방 이야기에 그냥 물러서는 법이 없다. 그나마 아이들이 핵심을 잡아 이야기를 간단히 풀어간다면 어른들은 이야기가 길다. 그렇게 이들 가족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시간이 훌쩍 흘러 밤 12시가 넘는다. 말잔치라 해도 좋을 듯하다.
요즘 아이들은 초등학교 고학년만 돼도 자기 방문을 걸어 잠그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런데 양손이네는 잠잘 때나 옷 갈아입을 때 빼고는 방문이 거의 열린 상태다. 그런 만큼 가족끼리 서로를 대하는 태도에 스스럼이 없다. 하지만 양손이는 낯선 사람은 조금 가리는 편이다. 나 역시 양손이 눈치가 조금 보인다.
아이들과 친해지기 위해 첫날 저녁에는 인터뷰에 집중하기보다는 같이 수다를 떨었다. 양손이와 책벌레는 집에서 일하고 공부하며 지낸다. 이따금 가는 캠프나 여행이 아니면 네 식구가 거의 함께 지낸다.
양손이네서 이틀 밤을 지내면서 본 이들 가족의 단면을 쓰자면 이렇다. 원푸리는 동이 틀 무렵 밖으로 일을 나간다. 조금 지나자 초록손이가 아이들을 깨운다. 먼저 일어난 책벌레가 잠옷차림으로 거실에 있는 디지털 피아노 앞에 앉는다. 터키행진곡이 거실 가득 울린다. “딴딴따~안~! 딴딴따~안~! 딴딴”
양손이는 졸음이 덜 깬 눈으로 거실에 있는 흔들의자에 앉아 떠오른 햇살에 해바라기를 한다. 누나 피아노곡에 맞추듯 의자를 흔들흔들 흔들며. 초록손이는 아침을 준비한다. 조금 지나자 원푸리가 집안으로 들어온다. 간단히 씻고는 책벌레가 치는 피아노를 보더니 참견을 한다. 아침을 함께 먹으면서도 수다가 그치지 않는다.
이들 가족이 지금과 같은 분위기를 갖기까지는 가족끼리 많이 다투기도 했고 노력도 많이 했다. 어찌 보면 이들 가족은 소통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환경에 놓여 있다. 도시와 달리 가족이 늘 얼굴을 맞대고 있기에.
가족이 같이 지낸다고 사이가 더 좋아진다는 법은 없다. 이 가족도 처음에는 눈물겨운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초록손이는 자장면 한 그릇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돈이 없어 서러운 게 아니었다. 누가 자장면을 먹지 말라고 하지도 않았다. 자기 스스로 생태적 삶을 지향해야 한다는 둥, 채식주의가 좋다는 둥 온갖 ‘고상한 철학’으로 자신을 포장하다보니 그게 또 다른 억압이 됐다.
틱 현상을 앓던 아들이…
‘자발적 가난’도 마찬가지. 돈을 많이 벌기보다 되도록 덜 쓰고 살자던 다짐으로 먹고 싶은 욕구를 억누르며 계속 자신을 몰아갔다. 그러나 생각을 바꾸었다고 바로 몸이 따라주는 건 아니다. 수십년 몸에 밴 습관을 하루아침에 버리기는 어려운 법이다. 도시 살 때는 학원 원장으로 꽤나 능력 있던 사람인데 어느 순간 자장면 한 그릇이 눈에 아른거리며 자기 설움에 북받쳐 울었다.
늘 가족이 붙어 지내다보니 서로가 서로에게 어떤 식으로든 민감할 수밖에 없다. 가족 가운데 한 사람이 울면 같이 슬프고, 한 사람이 웃으면 같이 웃게 된다. 양손이도 초록손이 가슴을 곧잘 태우곤 했다.
양손이는 예민한 성격. 몸이 약하고 자주 짜증을 냈다. 학교를 그만둘 무렵 그 증세가 심각했다. 아이는 온갖 짜증에 고개를 까닥까닥하는 틱(Tic) 현상까지 생겼다. 시골로 내려가, 가족이 함께하는 시간을 많이 가져보자던 꿈은 현실이 됐지만 집안은 늘 살얼음 위를 걷는 것처럼 위태위태했다.
가족이 서로 변하지 않으면 안 됐다. 우선 서로를 돌아보아야 했다. 양손이가 시골로 내려온 건 초등학교 1학년 때. 동네 골목대장을 할 만큼 친구들과 잘 어울리던 아이였지만 시골로 내려오자 양손이는 완전히 ‘도시촌놈’이었다. 아이들에게 곧잘 놀림감이 됐다. 그렇다고 부모가 아이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다. 부모부터 시골에 자리잡는 과정이 시행착오 투성이니 아이들을 찬찬히 돌볼 여유가 없었다.
‘엉킨 실타래는 풀리고’
가족이 함께 땀 흘려 만든 농구장. 양손이와 책벌레가 농구를 하고 있다.
“그 무렵 우리 양손이가 자신감이 없었어요. 그것 때문에 저는 참 마음이 아팠어요. 몸이 약하니까, 기분이 붕 떴다가 가라앉았다가 하거든요. 정말 건강해야 한다는 생각이 절실했어요. 그렇지 않으면 공부를 아주 힘들어하고 시간을 무기력하게 보내는 거예요. 나중에는 아이가 밤낮을 바꾸고 싶어하더라고요. 그런 생활을 한 보름쯤 했나. 그러니까 몸이 더 나빠져요. 짜증도 더 내고. 마냥 자유롭게 내버려둘 수만은 없겠더라고요. 여러 가지 시도를 했는데 그 과정에서 부부 싸움도 많이 했어요.”
이렇게 혼돈으로 빠져들자 초록손이는 급기야 양손이를 위해 100일 기도를 시작했다. 상황이 이러하니 원푸리 역시 아이를 달래기도 하고 혼도 내보았지만 앞이 안 보였다. 1년 가까이 공부를 손놓고 있는 아이를 보다 못한 원푸리가 양손이에게 새로운 제안을 한다.
“공부를 안 하려면 일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냐, 농사일을 할래? 집짓기를 할래?”
그러자 양손이는 선선히 집짓기를 해 보겠단다. 여기서 집짓기는 한 세 평쯤 되는 아주 작은 구들집이다. 아이가 일을 하면 얼마나 할까. 그런데 막상 제 아버지랑 일을 같이 하자 아이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였다. 초록손이는 아이가 일을 통해 치유될 수 있다는 데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가을걷이가 끝나고 하루에 여섯 시간씩이나 일을 했어요. 어떨 때는 추운데도 아이가 손을 호호 불어가며 일을 하니까 내 마음이 많이 아팠는데, 아이는 어떻게든 견디더라고요. 그렇지만 집이 완성돼가면서 달라지는 게 너무 많은 거예요. 우선 밤에 잠을 푹 자요. 차츰 얼굴도 밝아지고. 나중에는 희한하게도 아버지와 친해지더라고요. 양손이는 서울 살 때부터 제 아버지를 싫어했거든요. 그런데 집짓기를 같이 하면서는 부자 사이가 부쩍 좋아지는 거예요. 공정이 어쩌고저쩌고 하며 둘이서 이야기를 나누는 데 얼마나 보기 좋던지.
그러면서 뭔가 양손이에게 엉킨 실타래가 풀어지는 느낌이 오는 거예요. 건강도 많이 좋아지고, 정서도 안정되고, 얼굴도 환해지고. 잘 웃고, 질문도 적극적으로 하고, 키도 쑥쑥 크고. ‘내가 전에는 이걸 못 들었는데 오늘은 들었다’며 자랑스럽게 말을 하고. 일하면서 자기 힘에 대한 자부심을 계속 느끼더라고요. 그렇게 두 달 정도 집을 지어갔는데 그동안 아이가 확 크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일하면서 만족감을 얻고 자기가 성장하는 느낌을 받으니 너무 고마웠죠.”
해야 하는 일, 하고 싶은 일
이렇게 자신감을 얻은 양손이는 다른 일에도 부쩍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이제는 공부도 하고 싶다며 미뤄둔 초등학교 책을 꺼내 한달음에 다 해버린다. 자신이 공부를 싫어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당시 양손이가 쓴 일기 제목이 한동안 ‘공부’였을 정도로 아이는 공부를 다시 느낀다. 그때 일기 한 토막.
공부 습관이 확실하게 붙은 거 같다. 일요일 지나고 월요일 되니까 바로 공부 시작해서 지금 공부가 다 끝났다. 이제 스타크래프트하는 것만 남았는데 기뻐서 죽을 지경이다. ㅋㅋ 이렇게 내가 공부를 열심히 했던 적이 첨이라 기쁘고 신기할 정도다. |
양손이는 올해 초등학교 졸업 검정고시를 친다. 공부에 자신감이 붙자 내친 김에 “내년 4월에 고입 검시 보고, 바로 8월에 고졸 검시 볼까?” 그런다. 이제는 누구도 양손이가 공부를 싫어하던 아이라는 걸 믿을 수 없을 정도다.
공부든 일이든 오래 하기가 어렵다. 하고 싶은 것들은 과정도 좋고, 그 성과도 오래간다. 똑같은 공부인데도 해야 하는 게 아니라 하고 싶은 걸로 바뀌니 그 에너지는 가히 폭발적이라 할 만했다. 학교를 넘어서니 학년도 교과서도 다 넘어서게 된다. 한 가지 자신감은 또 다른 자신감을 불러오나보다.
이 집 아이들은 부모 연애시절도 시시콜콜 알고 있다. 그 비리도. 초록손이가 원푸리에게 보낸 연애편지 한 구절. ‘나는 당신 바위에 붙은 따개비.’ 지금이 바로 그 자세다.
이뿐만이 아니다. 농구대와 농구공을 마련하는 데 드는 돈은 거의 양손이가 냈다. 그러고도 양손이는 농구장 만드는 데 가족이 힘을 보태준 데 감사하다며 가족들에게 한턱냈다. 어찌 보면 농구장 만드는 일은 부모나 지역사회가 아이들을 위해 ‘해야 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양손이가 주인이 되니 같은 일이 이렇게 달라지는 거다.
해야 하는 일이 하고 싶은 일로 바뀌는 경험은 아이들만 한 것이 아니다. 이 집 부부도 조금씩 그 맛을 느끼고 있다. 이 집 소득구조는 농사보다는 민박집 수입에 더 많이 의존하는 구조다. 처음에는 불안정한 소득구조를 안정시키고 농산물을 직거래하기 위해 민박집을 시작했다. 집을 지어야 했고, 손님을 맞아야 했다.
“나는 민박집 아줌마!”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민박집을 운영하는 재미를 느끼기 시작한다. 이 집은 민박집 운영 방식이 좀 독특하다. 규모가 작아 방이 고작 세 칸뿐이고, 시설도 그 일대 다른 집과 견주어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그런데도 계절을 크게 타지 않고 주말이면 손님이 꾸준히 찾아온다.
그 비법이 뭘까. 내가 보기에는 세상과의 소통이다. 가족끼리 소통하는 만큼 세상과도 소통이 가능하다는 걸 이 집은 잘 보여준다. 이 집이 세상과 소통하는 일차적인 문은 인터넷 홈페이지 ‘풀꽃처럼’(www.pulkkot.com)이다. 양손이네 가족은 여기에다가 각자 글을 올린다. 시골에 자리잡으면서 겪은 여러 가지 일과 느낌을 고스란히 홈페이지에 올린다.
손님들은 대부분 직접 오기 전에 인터넷 홈페이지를 방문해 이 집의 상황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온다. 그러니까 단순히 쉬러 오는 게 아니라 이 집 식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 온다. 막상 만나면 서먹하지 않고 예전에 익힌 알던 사이처럼 온갖 이야기를 다 나누게 된다. ‘풀꽃처럼’의 키워드는 생태, 대안교육, 홈스쿨링, 가족 소통이다. 그러다보니 단순한 민박집을 넘어 삶을 깊이 있게 돌아보고 또 충전해준다.
민박집 아줌마가 자랑스럽다는 초록손이. 처음에는 손님맞이가 낯설고 서투르고, 손님들이 묵고 간 방과 욕실을 쓸고 닦는 일을 힘들어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아니란다. 이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옮겨가 살아도 민박집을 하고 싶단다.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이제는 하고 싶은 일로 바뀐 거다. 그이는 심지어 내게도 민박집을 해보라고 권한다. 어차피 시골에 살면 손님을 많이 치르는데 그걸 살리면 좋지 않냐는 거다.
이렇게 이야기를 주거니받거니 하다가 아이들이 먼저 잠이 들고 어른들은 좀더 수다를 떨다가 잤다. 그렇게 보통 때보다 늦게 잠이 들었지만 잘 자고 이튿 날은 일찍 깼다. 새벽부터 가랑가랑 비가 온다. 앞산에 안개구름이 산허리를 천천히 감싸며 흐른다. 오늘은 밭에서 일하기는 어렵겠다. 초록손이가 집 가까이에 있는 강선리라는 계곡으로 같이 산책을 가잔다. 이 일대는 정말이지 산과 계곡이 대부분이다. 그래서인지 곳곳에 민박집이 보인다. 새로이 짓고 있는 집도 제법 눈에 띈다.
강선리 계곡으로 들어서자 물소리가 엄청나다. 길 따라 온갖 풀꽃이 피어 있다. 원푸리가 사진을 찍으면서 이름을 알려준다. 얼레지, 노루귀, 바람꽃…. 이름도 예쁘고 꽃도 예쁘다. 서어나무도 알려준다. 이 나무는 영어 별명이 ‘muscle tree’, 근육나무란다. 줄기가 짙은 잿빛에 보디빌더의 근육 모양이 터질 듯 울퉁불퉁하다. 보는 것만으로도 에너지가 느껴진다.
계곡을 따라 하염없이 올라가는데도 곳곳에 사람들이 살고 있다. 이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단다. 겨울이면 눈이 너무 많이 와서 철수하는 사람들과 겨우내 계곡을 지키는 사람들로. 이 계곡에서 친분이 있는 사람 집에 들러 차 한잔 얻어 마시자 했지만 주인은 집을 비우고 없었다. 점심을 먹고 오후에 원푸리는 오미자 버팀대를 세울 자재를 사왔고, 비가 잠깐 멈춘 사이 선물로 보낼 오미자 효소를 거른다.
사춘기를 기쁘게
이 집 원두막과 평상에서 점심식사 하는 손님들. 초록손이는 서울 살 때 가족 밥상조차 제대로 차려본 적이 없었다. 이제는 한창 일할 때면 하루 세 끼 밥 하고, 두 끼 참 내고, 이따금 손님들 밥도 해낸다. 그렇게 바뀐 자신이 정말 대견하단다.
성격이 예민하던 양손이는 다정다감하고 섬세한 성격으로 변한다. 양손이는 요즘 코밑수염이 거뭇거뭇해지고 있다. 보통 아이들이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짜증을 낸다거나 이유 없는 반항을 한다는데 양손이는 그 반대다. 다정다감하고 여유 있고 유머 감각도 뛰어나 이 집을 곧잘 웃음바다로 만든다. 킹 메이커가 아니라 ‘스마일 메이커’다. 몸과 마음이 부쩍 자라는 걸 다른 누구보다 자신이 먼저 느끼고 이를 기쁘게 받아들인다. 게다가 양손이는 어두운 과거를 갖고 있기에 더 빛이 나는지도 모르겠다. 양손이 자신은 “반항하는 사춘기가 영원히 없을 것”이라고 너스레를 떤다.
사춘기를 짜증이 아닌 기쁨으로 받아들이기는 책벌레도 마찬가지. 초경을 하는 날 기뻐서 소리를 치며 엄마에게 알리기도 했고, 이제까지 생리통이란 걸 겪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자신이 본 책에는 사춘기 증상에 대해 온갖 부정적인 이야기가 있는데 왜 자신에겐 그런 증상이 없느냐면서 오히려 걱정할 정도다.
이렇게 부정적인 사춘기를 겪지 않는 데는 건강은 물론 스트레스나 가족 사이의 소통도 큰 몫을 하리라. 이 가족이 지금처럼 소통을 해가는 데는 많은 노력이 있었다. 함께 일하고 함께 밥 먹는 것은 물론 좀더 ‘의도적인 노력’도 있었다. 성격유형을 검사하는 프로그램인 MBTI도 함께 해보고, 영화를 본다거나 인문학 토론도 곧잘 했다. 원불교에서 하는 법회도 일주일에 한 번씩 참여하면서 서로의 마음을 알아가는 소중한 계기로 삼았다. 이 집 가족은 한동안 한자 공부도 함께 한 적이 있는데 책벌레가 들려준 재미있는 일화 하나를 소개한다.
“한자로 ‘온(툘)’ 자가 있잖아요, 그럼 이게 왜 성낼 온 자인가. 우리 네 사람이 한자를 하나하나 뜯어보면서 얼렁뚱땅 떠오르는 대로 막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툘자를 뜯어보면 마음 심, 가둘 수, 그릇 명이 합쳐진 글자잖아요? 가둘 수(囚)는 다시 감옥처럼 갇힌 틀(口)안에 사람(人)이 갇혀 있단 말이에요. 그런데 그 감옥 밖에 밥그릇(皿)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감옥에 갇힌 건만 해도 답답한데 밥그릇마저 손이 안 닿는 곳에 있으니 화가 날 수밖에 없는 거다(웃음). 이렇게 하니 재미도 있고, 식구끼리 서로 잘 알게 되고, 잘 잊어먹지도 않는 것 같아요.”
“책임을 다할지어다”
이렇게 가족 사이 소통이 활발하자 이는 또 다른 구심점으로 나아간다. 양손이네 가족이 시골로 간다고 했을 때 양손이 외가에서는 반대가 심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반대다. 자주 들러 일도 도와주고 삶의 고민을 함께 풀어주신다. 그게 여의치 않을 때는 홈페이지를 통해서 수시로 의견을 나누고, 때로는 자식들이 못마땅하면 호통을 치기도 한다. 그 일부를 옮겨본다.
이 집 원푸리와 초록손이는 도대체가 책임감이 결여된 애비/어미들이여 시방. ㅉㅉㅉ. 양손이가 여러 날을 배가 아팠다는 데 병원 한번 안 데리고 가고. 미식가인 양손이가 밥을 못 먹어. 현기증이 나고 배가 하루 종일 바늘로 콕콕 찌르는 것 같이 아픈 아들을 병원은커녕 유기농이라는 미명을 붙여 낙엽 모으는 작업장으로 끌고 다니면서 혹사를 시켜도 되는 겨! 시방. 아무쪼록 이 글을 접하는 즉시 모름지기 애비/어미로서 책임을 다할지어다. |
그러자 놀란 가족들이 줄줄이 댓글을 달고, 외할아버지는 오해를 푼다.
양손이 : 할아버지, 오해를 푸세요. 어머니 아버지가 무지 걱정 했고, 죽도 쒀 주구, 손발 따주고 배 주물러 주구 다 했어요. 원푸리 : 열심히 만져 보고, 들여다보고 했사옵니다~. 시간 지나면 나을 것 같아서 (안타깝지만) 내버려두었사옵니다~. 방치한 것 아니오니 노여움 푸시옵소서~. (덧붙임) 양손이가 아프다고 한 뒤로 낙엽작업엔 책벌레만 데리고 다닙니다요~. 초록손이 : 아부지, 오늘 아주 잘 먹고 있어요. 그동안 못 먹은 거 먹는다고 해서 말리는 중^^. 아부지 손자 잘 돌보고 있으니, 걱정 마서요. 할배 : 양손아! 그랬니? 아버지/어머니가 걱정 해 주었구나. 이곳 이 외할배뿐만 아니라 외할머니도 너의 식사하는 습관에 몹시 못마땅해 하신단다. 모든 음식을 오래오래 꼭꼭 씹어서 먹을 것을 다시 한번 강력히 충고하니 철저히 지켜서 부모님께 걱정 끼치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 쓰거라. 양손이 홧팅이다! |
이렇게 할아버지가 거침없이 쓴소리를 할 수 있는 바탕에는 양손이가 배 아프다는 일기를 홈페이지에 올렸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들은 부모 처지라면 솔직히 숨기고 싶거나 가리고 싶은 부분이다. 자식이 아프다는 걸 만천하에 알리고 싶은 부모가 있을까. 그래도 이 집 아이들은 기쁜 일, 슬픈 일 가리지 않고 거의 날마다 일기를 쓰고 이를 세상에 고스란히 공개한다. 나와 함께 지내던 날도 컴퓨터 앞에 앉더니 잠깐 사이 컴퓨터 자판을 두들겨 일기를 올린다.
“기계 안 팔면 남편 죽어요!”
아버지와 아들이 구들방 있는 집을 짓고 있다. 집짓는 과정에서 부자지간에 많은 대화를 나누며 그동안 엉킨 실타래를 풀어냈다.
이 집 손님들은 그냥 지나가는 손님이 아니다. 이러저러한 인연을 맺고 삶을 나누고 싶어 한다. 그러다가 가끔은 아주 특별한 사람들을 만나기도 한다. 가장 인상 깊은 손님을 이야기해달라니까 부부가 한 사람씩 들려준다. 먼저 초록손이.
“한번은 무당처럼 신기(神氣)가 있는 사람이 왔는데 그분이 나를 보고는 아줌마 인상이 참 좋다고, 이 집은 지금 아줌마 덕으로 산대요. 그러면서 우리 농장을 둘러보더니 대뜸 ‘저 포클레인 파세요. 안 그러면 남편 죽어요’ 그러는 거예요. 당시 남편은 농장 일군다고 기력이 아주 쇠약해져 있을 때였거든요. 자기 에너지가 다 빠져 있을 때는 기계가 사람을 잡는대요. 그 말 듣고보니 정신이 번쩍 들잖아요. 그 다음날 당장 기계를 팔았어요. 그 손님이 얼마나 고맙던지.
나중에 알고보니 그분은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사에서 일을 한대요. 1년에 한 번 휴가차 마음 훌훌 터는 기분으로 한국의 명산을 찾아다니다가 우리 집으로 들어온 거래요. 그분은 말씀도 아주 희한하게 하세요. 자기는 아무 곳이나 들르지 않는데 이 집을 지나가면서는 왠지 끌려서 왔다고 하니까. 이렇게 특별한 손님들을 가끔 보다보니 어떨 때는 오시는 손님이 이번에는 또 무슨 메시지를 주려고 하시나 하고 기대도 하거든요(웃음).”
원푸리가 들려주는 또 다른 손님은 차에서 내려 인사를 하고 나자 곧 마당에 심어둔 과수에 대해 조언을 시작했단다.
“초보치고는 전정을 잘 하셨네요. 하지만 제대로 배운 적은 없구만요.”
“네!”
“자르는 거는 이만큼 남겨놓는 게 아니고 바싹 잘라야 하고, 꽃눈이 잘 형성되려면….”
원푸리는 아직 농사가 서투르니 기회다 싶어 집 둘레 과수들을 돌아다니며 손님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러고는 저녁에 같이 약주를 한잔하며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이분은 금융권에서 일하는 분으로 연봉도 1억원이라니 놀랄 수밖에. 자라면서 부모님과 함께 과수원을 돌보며 어렵게 대학을 마쳤다고 했다. 그런데 이 손님은 술이 한잔 들어가고, 자기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앞에 있자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단다.
집 밖의 거울
“이렇게 민박집을 하다보니 저도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사람 공부가 나름대로 됐나봐요. 저분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있구나. 들어주자. 그런데 이야기를 듣다보니 그분 모습에서 제가 배우는 바가 많거든요. 그러다보니 어떨 때는 누가 누구에게 돈을 주어야 하는지 헷갈리기도 한다니까요(웃음).”
이 집 식구들과 함께 한 이박 삼일. 네 사람 다 개성이 뚜렷해 한 사람씩 따로 글을 써도 좋을 만큼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아버지 자리와 웃음을 되찾은 원푸리는 말이 아닌 몸으로 살아가는 삶에 무게 중심을 둔다. 도시 살 때 학원 운영한다고 밥 한 끼 제대로 한 적이 없는 초록손이는 농사일이 바쁜 철에는 밥 세 끼에 참 두 끼, 여기에다가 이따금 치르는 손님 밥상까지 손수 차린다. 때로는 손목이 결릴 만큼 안 쓰던 손을 원 없이 쓰고 있다.
이 집을 떠나오면서 내 귓전에 가장 또렷이 남은 말은 양손이가 부모에게 한 말이다. 가족이 함께 ‘부부 싸움’에 대해 즉석 토론을 벌이던 때였다. 부모가 서로 자기 주장이 옳다고 고집하자, 양손이가 더 이상 못 봐주겠다는 듯이 이렇게 말했다.
“부부 싸움을 하려면 집 밖에 나가서 싸워요. 그리고 집 안에 들어올 때는 얼굴을 펴고 들어오세요(웃음).”
‘부부 싸움을 하려면 집 밖에 나가 싸우라’는 말은 우리 집 작은아이도 가끔 우리 부부에게 하던 말이다. 그런데 양손이는 그 다음을 주문한다. ‘들어올 때는 얼굴을 펴고 들어오라’고. 이 말은 그야말로 내 귀에 담아졌나 보다. 가족과 함께 살아가는 한 결코 잊고 싶지 않은 말이다. 아침에 문을 나설 때 우리는 거울을 본다. 옷차림에 잘못은 없는지, 머리는 단정한지, 얼굴 표정은 밝은지. 그리고 집 밖에서 남을 만나면 상대가 조금 싫어도 싫다는 표정을 잘 짓지 않고 되도록이면 좋은 얼굴을 하려고 애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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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가족들에게 이렇게 하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집을 나설 때 마음으로 다시 집으로 들어올 수는 없을까. 밖에서 만나는 남보다 가족이 더 소중하면 소중했지 적어도 덜 소중하지는 않다.
그렇게 집 안에 거울이 있다면 집 밖에도 거울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렇다고 부담을 가지고 싶지는 않다. 해야 하는 게 아니라 그렇게 해보고 싶다. 집을 나섰다가 다시 돌아와 가족을 만나기 전에 치르고 싶은 의식이라고나 할까. 후줄근한 옷이야 어쩔 수 없다고 치더라도 얼굴은 굳어 있거나 찡그려서는 안 되겠다. 몸 전체를 볼 수 있는 큰 거울은 아니더라도 얼굴만이라도 볼 수 있는 작은 거울 하나, 벽에 걸어두고 싶다. 오늘 하루, 내가 만난 사람, 내가 한 일들을 돌아보는 그런 거울. 일기장 같은 거울을. 양손아, 내게 영감을 주어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