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웬만한 분이 와서는 운영 못한다”
- 코메디프랑세즈(공익) vs 하드코어(반항)
- 서울시 감사팀 “기준 없는 인사가 단원들의 불안 원인”
- ‘델라구아다’의 실패…카피는 장기적일 수 없다
- 시민의 문화 향유 기회 확대는 성공적
- “예술계에선 ‘세종’을 피붙이로 보지 않아요”
2003년 새 서울시장이 부임한 뒤 세종문화회관에는 대대적인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당시 ‘세종’은 무수한 ‘작업’ 전문가를 사장과 임원급 영입대상에 올렸고, 결국 2005년 12월 김주성 코오롱그룹 부회장을 사장으로 발탁했다. 그룹 구조조정본부 사장을 지낸 김 부회장은 코오롱그룹 임원들 사이에선 ‘해결하기 힘든 일이 있으면 김주성을 보내라’는 말이 있을 만큼 ‘해결사’로 통했다.
세종문화회관 사장은 재단이사회에서 추천하고 서울시장이 임명한다. 따라서 구조조정 전문가를 필요로 하는 주체는 재단이사회다. 그렇다면 왜 이들은 늘, 거친 해결사를 염원했던 것일까.
2005년 초겨울, 새로운 사장을 선임할 목적으로 재단이사회 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에 참석했던 한 인사는 회의의 결론을 이렇게 전한다.
“세종문화회관은 웬만한 분이 와서는 운영을 할 수 없다. 지금도(2005년 당시) 밖에는 노조가 천막을 치고 농성하고 있지 않나. 노조의 핵심은 예술단 멤버들이고, 이들을 관리하지 못하면 계속 시끄러울 수밖에 없다. 이들이 노조에 기대지 않고 자기 실력을 높일 수 있도록 설득하지 못하면 세종의 미래는 없다.”
재단이사회의 바람대로 대기업 구조조정본부 사장 출신이 들어왔고 개혁 작업은 진행 중이다. 그러나 ‘세종’은 아직 시끄럽다. 문제가 수면으로 드러나지 않아 외부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안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여러 가지 갈등으로 내홍을 겪고 있음을 목격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세종’의 예산권을 쥔 서울시는 지난 2월, 8년 만에 처음으로 감사를 실시했고, 비슷한 시기에 감사원도 두 차례에 걸쳐 ‘세종’을 조사했다. 어떤 문제가 있기에 평화로운 ‘예술인 마을’에 구조조정 전문가가 들어오고, 감사관이 들이닥치는 것일까.
감사관이 들이닥친 이유
강북의 세종문화회관과 강남의 예술의전당은 같은 공연기관이지만 명확하게 다른 것이 있다. 세종문화회관엔 예술단이 있다는 사실이다. 예술단은 국악, 극단, 무용단, 뮤지컬단, 합창단, 오페라단, 청향(청소년 오케스트라), 소년소녀합창단, 청소년국악단 등 9개. 이들 중 재단이사회에서 문제 삼는 예술단은 국악, 극단, 무용단, 뮤지컬단, 합창단 등 5개 단체다. 이들은 세종문화회관의 정규 직원으로 대부분 노조에 가입돼 있다.
세종문화회관 노조는 1999년 서울시 기관이던 세종문화회관이 재단법인으로 독립하면서 함께 발족했다. 그 뒤 노사관계는 크고 작은 논란이 일면서 삐걱댔다. 서로 반목한 이유는 예술단원의 평가 방식 때문이었다. 예술단의 실력을 높이려면 정기적으로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회사의 주장과 평가를 빌미로 구조조정을 하려 한다는 노조의 반박은 만날 수 없는 평행선 같았다.
급기야 사측은 2005년 11월 국악단 단원 12명을 해고하고, 2명은 노조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직위해제했다. 이에 노조는 80일이 넘도록 천막을 치고 농성을 벌였다. 이즈음 예술단을 ‘세종’에서 분리한다는 소문도 나돌았다.
이렇듯 극단적인 사태가 빈발하면서 세종문화회관 노조는 강성으로 알려지게 됐다. 예술단의 한 인사는 “우리들은 보수적이고, 변화를 싫어한다.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해 노조활동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 이들은 왜 강경한 사람들이 됐을까.
예술단은 신문사 조직으로 치면 기자들과 같다. 기자 한 사람, 한 사람의 빼어난 필력이 신문사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듯, 예술인도 마찬가지다. 한 사람의 예술계 스타는 공연기관의 자랑이자 나라의 자랑이기도 하다. 개인의 기량이 그만큼 대접받는다는 얘기다.
노사가 극한 대립으로 치달은 2005년, 노조원들이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시위하고 있다.
기자와 예술인의 공통점은 또 있다. 자극하면 고슴도치처럼 빳빳한 가시를 사방으로 세운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업에서 홍보를 업(業)으로 하는 사람들은 기자를 거칠게 다루지 않는다. 때론 비굴해 보일 정도로 기자를 예우하는 척한다. 진짜 존경스러워서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니다. 기자의 특성이 그렇기 때문에 맞춰주는 것뿐이다. 노련한 홍보쟁이들은 기자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자신이 원하는 대로 기자를 컨트롤한다.
세종문화회관의 예술단원들도 마찬가지다. 개인적으로 만나보면 이런 특성은 고스란히 드러난다. 성격이 다혈질이어서 찻집에서 만나도 얼음이 듬뿍 들어간 사이다나 콜라를 주문해 벌컥벌컥 들이켠다. 가슴에 활활 타오르는 불을 안고 살기에 뿜어내지 않으면 자신을 태워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이들은 ‘필’이 꽂히면 밤을 새워서라도 연주하거나 노래할 사람들이다. 그러나 하기 싫으면 손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감성이 발동하지 않는데 어떻게 움직이겠는가. 이렇듯 까다롭고, 섬세하고, 때론 불 같고, 때론 얼음 같은 성격 때문에 예술단을 다루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세종문화회관이 1999년 재단법인으로 독립했다는 의미는 예술기관을 기업화하는 실험에 들어갔다는 뜻이 된다. 그러나 정작 이 기업에서 생산하는 제품이자 생산자인 예술단이 경영진과 마찰을 빚고 있다는 사실은 기업화 실험에 성공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세종문화회관의 한 고위 간부는 “8년 동안 실험한 결과, 남은 건 특색 없는 이름뿐”이라고 자조(自嘲)했다. 자조는 분노를 낳았고, 분노는 무기력을 낳았다.
‘천원의 행복’은 좋은 반응
세종문화회관은 서울시로부터 매년 200억원의 예산을 지원받는다. 이처럼 수입의 대부분이 서울시민의 세금이기 때문에 세종문화회관의 설립 목적은 ‘문화예술의 진흥 및 시민의 문화 향유 확대’에 맞춰져 있다. 따라서 예술단원들은 시민이 좀더 쉽고, 편하고, 값싸게 ‘문화 주사’를 맞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김주성 사장이 부임한 뒤 세종문화회관은 공익성을 확대하는 쪽으로 정책의 가닥을 잡았다. 시민을 찾아가 무료 공연을 하는 ‘함께해요 나눔예술’은 연간 240회로 확대됐다. 100회에 불과하던 과거에 비해 2배 이상이다. 봄과 가을, 세종문화회관 뒤뜰에서 무료 공연하는 ‘세종 뜨락축제’ ‘도심 별밤 페스티벌’ ‘서울숲 별밤 페스티벌’ ‘청소년 렉처 콘서트’ 등도 신설했다. 올해 들어서는 매월 한 차례, 1000원만 내면 멋진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천원의 행복’을 마련해 좋은 반응을 얻기도 했다.
“이럴 때 약이 오른다!”
예술단원들은 재단의 ‘공익성 확대’라는 목적에 대해 동의한다. 그러나 이들은 공익성 확대라는 명분으로 예술단을 순치(馴致)하려는 것은 아닌지 다소 불안해한다. 우석훈 성공회대 외래교수는 그의 블로그(economos.egloos.com)에서 “프랑스 (나폴레옹) 정부가 공익을 내세우면서 이데올로기 장치로 예술계를 포섭한 것이 (18세기 말엽) 코메디프랑세즈(프랑스 국립극장)의 재발족이었다”며 “이명박 서울시장 이후 세종문화회관에서 진행되는 일은 (예술인을) 자본 혹은 국가의 이데올로기로 포섭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의미심장한 지적이 아닐 수 없다. 이에 대해 예술단의 한 직원은 “그렇게 거대한 의미가 있는 줄은 몰랐다”면서도 “그러나 국회의원 행사 때나 특정 정당의 전당대회에 불려나가 노래를 부를 때면 비참한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이럴 때는 약이 바짝 오른다. 반항하고 싶어진다”고 털어놓았다. 코메디프랑세즈의 흐름에서 반항의 정신을 일컫는 ‘하드코어’가 태동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실증하는 셈이다. 구부리려고 하면 더 뻣뻣해진다고 할까.
예술단 직원들이 패배주의적 상황에서 허우적대는 이유는 또 있다. 재단법인으로 바뀐 뒤 8년 동안 예술계 출신 사장이 연임된 적이 없고, 예술단장도 계속 교체됐으며, 경영본부장이나 공연본부장 등 주요한 자리에 예술계 출신이 올라가지 못했다. 현재 공연본부장과 경영본부장은 삼성과 코오롱 등 모두 민간 기업에서 영입됐다.
이런 인사시스템은 서울시 감사에서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지난 2월 실시한 서울시의 세종문화회관 감사에서 “세종문화회관의 인사계획은 체계적이지 않고 투명하지도 않아 직원들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있다”며 “임원의 자격기준이 애매하고 내부 승진의 비율도 명시하지 않아 혼란스럽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 때문에 세종문화회관은 기관경고를 받았다.
세종문화회관은 서울시민에게 문화 향유의 기회를 확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세종 별밤 축제 광경.
“세종문화회관은 ‘투서 천국’이다. 서울시에만 한 해 100건이 넘는 내부 직원들의 투서가 접수되는 것으로 안다. 사내에 다양한 라인이 있기 때문이다. 사장이 바뀔 때마다 자기 사람을 데리고 와서 계파를 만든다. 구(舊) 서울시 공무원파, 공채파, 사장파, 또 다른 사장파…. 패거리가 많으면 이해관계도 복잡해진다. 어떤 정책으로 인해 손해를 본다고 판단하면 누군가 투서한다. 이 때문에 서울시에서 조사도 나오고 감사원에서 감사도 나온다. 여기에 휩쓸리다보면 아무 일도 하지 못한다.”
이에 대해 세종문화회관측은 “파벌의 중심에 있던 사람들이 대부분 퇴사해 지금은 파벌 문제가 없다”고 해명했다.
객원을 쓰다보면…
이번엔 예술단장을 맡았던 B씨의 경우.
“내가 단원으로 있을 때, 단장은 최고권력자였다. 실력 없는 단원은 내보내고, 뛰어난 예술인은 발 빠르게 영입했다. 예술단끼리 선의의 경쟁을 벌였고, 협조도 잘돼 그야말로 태평성대였다. 그런데 재단법인으로 전환하고 얼마 뒤 단장으로 와보니 단장은 사장의 꼭두각시에 불과했다. 우선 사람을 뽑아주지 않았다. 단원을 내보내는 것은 허락하면서도 충원하는 것은 허락하지 않았다. 좋은 작품을 위해선 좋은 단원이 있어야 한다.
예술인은 단순하다. 좋은 작품에 대한 욕심밖에 없다. 경영진은 이 욕구를 인정하고 채워줘야 한다. 당시 나는 책임운영제를 제안하기도 했다. 인사권과 운영권을 단장에게 주고, 필요한 돈은 외부에서 끌어와 쓰겠다고 했다. 수준 높은 공연을 만들어서 브랜드를 높이자면 자율권이 보장돼야 한다. 이런 의지를 경영진이 알아주지 않아 섭섭했다.”
이에 대해 세종문화회관측은 “예술단에 지원하는 공연비를 해마다 증액했고, 예술단 운영과 관련해서는 각 단장에게 모든 권한이 위임돼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충원 문제가 아직 과제로 남아 있다. 뮤지컬단과 무용단의 경우 3~4년째 신규 단원을 채용하지 않고 있다. 무용단의 정원은 50명이지만, 현재 25명에 불과하다.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는 무용단의 한 단원은 “경기도립무용단도 60명이나 되는데, 우리는 그 절반도 안 된다”며 “객원(아르바이트)을 쓰다보면 좋은 공연을 만들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사측의 공식적인 답변은 없었지만, 주요 관계자들에 따르면 예술단원을 충원하면 노조원이 늘어날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세종문화회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예술단은 부나방 같아서, 키워주면 나중에 달려든다”고 말했다. 아직 서로 신뢰하지 않는 상태임을 확인할 수 있다.
예술단원들이 가시를 세운 채 공격적인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장기 계획 없는 외국 공연의 수입이다. 2002년 세종문화회관은 미국에서 이색적인 퍼포먼스로 인기를 끌었던 ‘델라구아다’를 들여왔다. 17m 높이의 공간에서 배우들이 벽을 기어오르거나 공중제비를 돌며 물을 뿌려대는 역동적인 공연이었다. 세종문화회관은 상설무대를 설치했고, 한국 배우들이 공연 노하우를 전수받아 1년 뒤 공연의 바통을 이어받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서커스 선수를 능가하는 동작을 한국 배우들이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다. 물을 맞으면서 봐야 하는 공연의 특성상 겨울엔 쉬어야 했다. 이런 이유 탓에 델라구아다 공연은 흐지부지 막을 내렸고, 전용관은 애물단지가 됐다. 서울시 감사팀은 가설건축물인 델라구아다홀을 임차인의 반발로 뜯어내지 못해 공원화사업 추진에 지장을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예술단 관계자는 “외국 공연의 카피는 장기적일 수 없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말했다.
고통 속의 영감(靈感)
이렇듯 비틀거리는 사이에 예술단은 창작극을 내놓은 지 오래고, 국제적인 예술계의 흐름과도 점차 멀어지고 있다. 좋은 작품을 만들지 못하니까 장기 공연 계획을 수립할 수도 없는 형편이다. 예술단의 한 관계자는 “세종문화회관의 자랑이라고 할 만한 공연이 없다”며 “창작극 아이디어를 내면 단장은 관객을 끌어모을 수 없다며 시도조차 용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같은 불만에 대해 예술단을 지원하는 사무국의 한 직원은 “예술단이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사실상 주저앉아 있는 꼴”이라며 “이들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실력이 줄고, 의욕도 줄었음을 인정하고 반성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예술단원은 귀담아 들어야 할 것 같다.
반면 예술단원들은 사무국 직원들을 언급하며 “우리는 영화 ‘라디오스타’의 박중훈과 안성기의 관계처럼 따뜻한 매니저를 원한다”고 말한다. 사무국 직원은 귀담아 들어야 할 것 같다.
앞의 사무국 직원은 예술단의 사기를 높일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는 “9개 예술단을 총괄하는 예술감독을 뒀으면 한다”며 “그가 각 예술단장을 선임하고 작품 활동에 책임을 지며 경영진으로부터 내려오는 부당한 간섭을 막고, 예술단의 요구사항을 전달하는 통로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는 경영진이라면 귀담아 들어야 할 제안이다.
한편으로 그의 말은 경영진과 예술단의 대화 통로가 막혀 있는 것처럼 들린다. 이에 대해 ‘세종’측은 경영층과 예술단의 대화 채널은 다양하게 열려 있고, 실제로 많은 얘기를 나눠 요구사항을 들어주고 있다고 주장한다. 홍보팀의 한 관계자는 “사장과 정기적으로 대화의 시간을 갖고 있으며, 온라인으로 ‘세종 톡talk 뉴스’를 발간해 예술단의 목소리를 담아내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문제는 예술단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발생하고 있다. 예컨대 지난해 가을에 있었던 일을 들어보자. 당시 사무국 직원과 예술단원들은 2박3일 일정으로 교육 연수 여행을 다녀왔다. 목적은 서먹한 관계를 해소하고 새로운 생존의 복안을 모색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일부 예술단원들은 고통의 시간이었다고 털어놨다. 예술단원 C씨의 말이다.
“오랜만에 단합대회를 한다고 해서 기대를 가졌다. 재미있게 놀다보면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노는 것 하나는 끝내주지 않는가. 그런데 막상 가보니 ‘동물의 왕국’이란 비디오를 보고 적자생존에 대한 강연을 들었다. 질문을 하니까 질문하지 말라며 혼냈다. 4시간 동안 보물찾기도 했는데, 경쟁적으로 보물을 찾느라 정작 사무국 직원과 대화 한마디 나누지 못했다. 우리에게 뭐가 필요한지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 아닌가.”
물론 새로운 교육 방식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단원도 있다. 한 예술단의 고참 단원은 “한 달에 한 번씩 조회를 열어 변화와 혁신에 대한 강연을 하는데, 꽤 들을 만하다”며 “우리와 다른 분야에서 성공하는 사람들의 스토리는 우리의 일에도 영감을 준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회사의 방침에 대해 좋은 점수를 주는 단원은 많지 않았다. 물론 개혁이란 누구에게나 환영받는 일은 아니다. 고통스럽기 때문에 한쪽에선 불만의 목소리를 내게 마련이다.
하지만 세종문화회관의 ‘고슴도치’는 일반 회사의 골칫거리와는 상당히 다르다. 이들을 이해하는 방법을 달리할 수는 없을까. 고슴도치는 반항의 정신이 없으면 존재의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반항의 정신이란 창작의 욕구이고, 그 욕구는 칭찬을 해줄 때 폭포수처럼 터져 나온다고 한다.
“나에겐 꿈의 무대”
이쯤에서 합창단원 D씨와 나눈 대화를 옮겨보자. 그를 통해 예술인에게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조금은 엿볼 수 있었다.
▼ 세종문화회관에서 일하면서 가장 짜릿한 순간은 언제인가.
“지난해 오케스트라와 협연했을 때다. 베르디의 ‘레퀴엠’을 부르는데, 관객의 눈동자를 보니 나에게 온통 집중하고 있었다. 가슴이 벅찼다. 노래가 잘될 때는 내가 부르는 노래가 마치 남이 부르는 것처럼 들린다. 그때가 딱 그랬다. 내 자신이 정말 대견했다.”
▼ 음대 졸업생에게 세종문화회관은 최고의 직장이 아닌가.
“100대 1의 경쟁을 뚫고 들어왔다. 나에겐 꿈의 무대였다. 음악가에게 무대를 보장받는다는 것만큼 행복한 것은 없다. 세종은 아직도 최고의 직장이다. 그러나 5년 뒤에도 그럴까 하는 질문엔 자신 있게 대답하기 어렵다.”
▼ 왜 그런가.
“우리는 자존감 빼면 ‘시체’인데 점차 사라지고 있다. 솔직히 요즘엔 누굴 위해 노래를 부르는지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나의 정체성? 나만의 컬러? 모르겠다. ‘파워풀하다’는 소리를 듣고 싶은데 그렇지 못하다. 뛰어난 동료들은 벌써 퇴사했다. 때론 그들이 부럽다.”
▼ 그래도 좋아하는 일을 하니 행복하지 않나.
“인정한다. 그러나 전문직의 고통이라는 것도 있다. 노래 빼면 할 줄 아는 게 없다. 사회성도 떨어진다. 장사도 못한다. 직장 나가면 막막하다. 그런데 회사가 불안을 조성하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다. 공연에 집중하기 힘들다.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사실인 걸 어쩌겠나. 때론 공연 티켓을 할당받아 팔기도 해야 한다.”
적자생존에 대한 불안감은 대한민국 전체가 안고 있는 것이다. 예술계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평가는 받아야 하고, 능력이 없는 것으로 드러나면 회사를 위해 나가야 하는 게 현실이다.
예술단원들도 이런 추세를 잘 알고 있다. 이 때문에 3년 동안 체결하지 못하던 임금협약 및 노사합의서를 지난해 4월 체결했다. 노사간 고소고발을 취하하기도 했다. 예술단 평가에도 합의했다.
‘세종’은 예술계 자산인가
그러나 본질적인 고민, ‘세종문화회관이 5년 뒤, 10년 뒤 자신 있게 내놓을 수 있는 예술의 형태는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는 아직 누구도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 질문은 작지 않은 의미를 담고 있다. 서울시민이 자랑할 만한 공연기관이 되느냐, 그렇지 않으냐의 갈림길이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을 보고 훌륭한 교양인이 되는 꿈을 꾸느냐, 그렇지 않으냐의 갈림길이기도 하다.
극장경영을 전공한 이승엽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예술의전당에 대해서는 할 이야기가 많은데 세종문화회관에 대해선 없다”며 “회관이 예술계의 자산이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국립극장만 해도 예술계 인사가 극장장을 하는데, 세종문화회관엔 예술계 인사가 없어 피붙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는 지적도 했다.
그의 지적은 단순히 인사 문제만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다. 평가할 만한 작품을 생산하지 못하기 때문에 평가할 것도 없다는 지적인 것이다. 이 교수는 중요한 건 세종의 정체성인데,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개별 프로그램의 성공보다는 프로그램의 포트폴리오가 중요하다고 했다. 어느 자산의 가치가 올랐냐는 확인보다는 전체적인 목표 수익률을 정하고 그걸 달성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지적은 비단 경영진만을 향한 것이 아니다. 세종문화회관 경영진 뒤에 서울시 문화과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 예술계 인사는 없다. 문화과는 ‘세종’의 운영에 관여하고 있지 않다고 항변하지만, 여러 경로를 통해 ‘세종’의 운영에 간섭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는 문화관광부가 예술의전당을 산하단체로 두고 있지만, 운영에 간섭하지 않는 것과 대비된다.
한 사회에서 예술인이 갖는 의미에 대해, 음악인이 되려는 꿈을 꾸는 한 경제학자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진짜로 음악을 사랑하게 되면, 그 음악에 관여하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 음악인들은 지역의 역사와 전통, 그리고 그 사회가 지향하는 목표와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그래서 예술인 노동자는 일반 노동자와 다르고, 그렇기 때문에 문화가 깊은 것이고 예술의 세계가 오묘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