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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지식의 불확실성’

역사적 선택에 대한 과학적 분석이 가능한가

  • 강문구 경남대 교수·정치외교학 kang77@kyungnam.ac.kr

‘지식의 불확실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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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불확실성’

‘지식의 불확실성’ 월러스틴/유희석 옮김/창비/296쪽/1만5000원

언제부터인지 월러스틴은 행복한 학자 혹은 이론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마지막 분단체제로 명명되는 이 한반도에서는 그렇다는 말이다. 정확히 집어내기는 어렵지만, 월러스틴은 권위주의가 기승을 부리던 박정희·전두환 정권 때에는 종속이론 계열의 진보사상으로, 이 땅에 민주화 이행이 시작되고 전세계적으로 지각변동이 감지되던 1980년대 후반에는 대안적 진보이론으로 수용됐다. 그리고 이후에는 좌파 이론가들이 경직되게 해석하던 여러 사건과 운동에 독특한 해석을 내려 널리 수용되는 행운을 누렸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주목받는 몇 안 되는 ‘실천적’ 이론가가 월러스틴이다.

자본주의 세계체제 분석

월러스틴의 저작 (공저도 포함해서) 대부분이 국내에 번역 소개되지 않았나 싶다. 그의 저술은 이해하기 만만치 않은 내용을 담고 있지만 그럼에도 일정한 독자층이 있다고 얘기되는데, 필자는 ‘자유주의 이후’를 번역하는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그러한 속설에 다소 공감하게 됐다.

오래전 세계체제이론으로 우리에게 알려진 월러스틴은 이론 대신 분석, 즉 자본주의 세계체제에 대한 분석을 강조했다. 이는 마르크스가 자신의 사상에 ‘체계’라는 레테르(letter)를 붙이는 것을 지나칠 정도로 거부하고, 자신의 연구가 언제나 비판이자 분석으로 이해되기를 바랐던 것과 일맥상통해 보인다.

월러스틴은 혁명 당시 프랑스가 편입돼 있던 자본주의 세계경제는 이미 ‘자본가적인’ 사람들이 지배계급으로 자리잡은 체제였기 때문에 부르주아 혁명일 수 없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그런가 하면,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데올로기를 자본주의 세계체제에 속한 반(半)주변부 국가의 국가 중심 경제발전전략으로 상정하고, 그 이데올로기가 실패한 원인은 자본주의 세계경제 틀 내에서 (일)국가 발전이란 환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이 대목에서 월러스틴의 결론은 ‘마르크스에 대한 진정한 독해는 마르크스적인 방법을 통해서 마르크스의 근원적인 통찰력(새로운 과학적 인식론, 새로운 역사편찬관)과 가치들을 통합해, 더 민주적이고 더 평등한 세계를 건설할 수 있게 해주는 새로운 지양(止揚)으로 나아가는 것’이다(‘자유주의 이후’(당대) 385쪽).

지식체계의 기본 단위, 불확실성

이런 맥락에서 아프리카 분석으로 시작한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분석이 다시 새로운 사회과학 패러다임 추구로 이어지는 상승 하강 궤적은 견실해 보인다. 특히 그가 공들여왔던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분석 틀이 최근에는 새로운 학문적·이론적 패러다임 추구의 토양이 돼, 사회과학의 탈피와 개방, 재구성 요구로 연결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

‘과학자이자 인문학자였던 일리야 프리고진’에게 헌정된 이 책 ‘지식의 불확실성’은 ‘시간의 불확실성들’이라는 서문으로 시작된다. 월러스틴은 이 책 전반에 걸쳐 자연과학자 프리고진에게서 중대한 영향을 받았음을 밝히고 있다.

현재는 찰나적이고, 과거는 끊임없이 변하기에(월러스틴은 현재의 행위가 과거의 재해석을 요구하며, 이런 점에서 ‘현재의 정치학’은 고집스럽고 끈질기다고 평한다), 인간은 미래를 붙들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가 얼마나 큰 혼돈과 낭패를 초래했는지는 자명해 보인다. 굳이 ‘종말론’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미래를 알 수 없는 것이 바로 시간의 불확실성이며, 이 불확실성을 지식체계의 기본 구성단위로 수용한다면 “현재의 역사적 선택들에 집중하고 해법을 발견하는 데 유용할, 실재에 대한 이해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론이 이 책의 기저를 이루고 있다.

옮긴이도 밝히고 있듯이, 최근 나온 몇몇 저서와 마찬가지로 이 책 또한 참신한 사유(思惟)의 개진이라기보다는 자본주의 세계체제 분석으로 시작된, 혹은 그 분석을 토대로 한 새로운 지식이나 사회과학 패러다임 모색의 장기 프로젝트로 이해하는 것이 무리 없어 보인다.

욕망에서 앎을 분리할 수 있나

월러스틴은 역사적 자본주의, 역사적 세계체제, 역사적 사회체제에 대한 분석으로부터 역사적 지식, 역사적 사회과학에 대한 관심으로 옮겨가고 있다. 그는 현재에도 계속되며 아직 완결되지 않은 과거를 뜻하는 ‘복합과거(La passe compose)’ 혹은 ‘역사적 과거(de passe historique)’ 같은 프랑스어를 강조하는데, ‘역사적’이라는 단어를 강조하는 것에서 그의 사유가 가진 특징을 추측할 수 있다.

‘역사적 선택들에 대한 (과학주의적이 아닌) 과학적 분석을 제시하는 것은 가능한가’ 질문하고, 가까운 과거의 경향과 가능성 있는 연속적인 궤적들, 가능한 사회적 선택의 지점들을 밝히는 것이 최선이라면서 그 과제를 ‘역사적 구성, 현재의 도전, 가능한 대안’으로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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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문구 경남대 교수·정치외교학 kang77@kyungna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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