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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놀란 ‘대단한 실험’

인류 구하는 돌연변이는 선조들의 선물?

  • 이한음 과학평론가 lmgx@naver.com

인류 구하는 돌연변이는 선조들의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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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식이나 증식을 하려면 주형 노릇을 할 유전물질, 즉 DNA나 RNA가 있어야 했다. 단백질은 정보의 원천이 아니기에, 다른 생물의 몸에 들어가서 활동을 할지언정 자체 증식은 할 수 없다는 것이 상식이었다. 따라서 단백질이 전염병 매개체라는 주장은 터무니없어 보였다.

프루시너도 그 점은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자기 연구진의 자료와 다른 사람들의 조사 결과를 토대로 볼 때 두 가지 모형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하나는 단백질이 핵산을 꽁꽁 감싸고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핵산이 없이 단백질 자체가 감염 매개체라는 것이었다. 그는 전자가 설득력은 더 있지만 단백질 안에 핵산이 들어 있다는 증거를 전혀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연구진이 찾은 후자가 사실에 더 가깝다고 주장했다.

후자가 옳다면 단백질인 프리온이 어떻게 새 숙주에 들어가서 복제를 할 수 있는가라는 골치 아픈 문제가 남는다. 핵산이 없으면 단백질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게 상식이니까. 프루시너는 프리온이 미지의 핵산을 포함하고 있을 때와 없을 때를 상정해 가능한 복제 메커니즘을 논의했다. 핵산이 있다면 그 핵산이 프리온 단백질을 만들거나 숙주의 유전체에 있는 프리온 유전자를 활성화할 수 있으므로 별문제가 없다. 핵산이 없다면 프리온 자체가 숙주 유전체의 프리온 유전자를 활성화하거나, 단백질에서 핵산을 만든 다음 복제를 하거나, 프리온 자체가 다른 프리온을 합성하는 부호를 지니고 있어야 했다. 어느 쪽도 만만한 가설이 아니었다.

여러 동물과 인간의 뇌에 퇴행성 장애를 일으키는 원인 물질이 단백질임을 시사한 그의 논문은 과학계의 광범위한 반대에 직면했다. 하지만 프루시너는 굴하지 않고 오히려 프리온이 전염병을 일으킬 뿐 아니라 유전병을 일으킬 수도 있다고 더 강력한 주장을 내놓았다. 이어서 프리온이 무해한 단백질 분자의 형태 변화를 유도함으로써 정상 단백질을 유해한 단백질로 전환시키는 식으로 증식을 한다는 기발한 이론까지 내놓았다. 이런 주장은 끊임없이 과학자들의 반발을 불러왔다.

양에서 소로, 다시 사람으로



그러나 후속 실험 결과들은 프루시너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실험 증거가 하나 둘 쌓여갈수록 프리온이 정말로 기이한 특성을 지닌다는 것이 드러났고, 단백질을 변형시킴으로써 유전병과 전염병을 일으킨다는 것이 밝혀졌다. 게다가 프리온이 전염병도 유전병도 아닌 산발적인 질병도 일으킨다는 것이 드러났다. 또 프리온이 여러 가지이며 종류별로 일으키는 퇴행성 질환들이 다를 가능성도 제기됐다. 처음에 이단적이라고 여겨졌던 업적이 인정을 받으면서 1997년 프루시너는 노벨상을 받았다.

프리온이 유명세를 탄 것은 광우병 때문이다. 1984년 영국의 한 농장에 있는 암소 한 마리가 머리를 떨어대고 걸음을 이상하게 걷는 등 기이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이어서 그 농장의 다른 소들도 같은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결국 목장 주인과 수의사는 검사를 의뢰하기로 했고, 검사를 담당한 병리학자는 진전병에 걸린 양의 뇌처럼 그 소의 뇌도 구멍이 송송 뚫려 있음을 발견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농장에서도 같은 증상을 보이는 소가 발견됐고, 그 소도 마찬가지로 뇌가 비정상이었다. 그 소들이 걸린 질병의 정식 명칭은 소해면상뇌증이었고, 일반적으로 광우병이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첫 발병 사례가 나타난 뒤 해마다 그 병에 걸린 개체수가 늘어났고, 1992년에는 영국에서 무려 3만5000마리의 소가 그 병에 걸렸다.

문제가 소에 국한된 것이었다면, 아마 가축 전염병이 발생했을 때처럼 소를 도살처분하고 끝냈을지 모른다. 하지만 예상치 않은 상황이 벌어졌다. 1989년 한 30대 여성이 크로이츠펠트-야콥병(CJD)에 걸렸다. 이 병은 대개 노인에게 나타나며 젊은층에게 나타나는 경우는 드물었다. 문제는 그 여성이 광우병이 발생한 농장에서 살았다는 점이었다. CJD는 광우병과 증상이 비슷했으므로 사람들은 혹시 그 여성이 소에게서 전염된 것이 아닐까 우려했다. 당국은 그럴 가능성이 없다고 부인했지만, CJD 환자가 계속 나타나자 말문이 막혔다. 환자들은 주로 광우병 발생 농장과 관련이 있거나 쇠고기를 즐겨 먹은 사람들이었다.

1996년 로버트 윌 연구진은 영국 의학 전문지 ‘랜싯’에 광우병과 CJD의 관련성을 다룬 논문을 발표했다. 그들은 영국에서 최근 급증한 CJD가 기존 노인층에게 나타나는 CJD와 다른 새로운 변종 CJD이며, 직접적인 증거는 없지만 그것이 광우병과 관련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영국 보건당국도 결국 가능성을 인정했다.

영국 당국이 수많은 소를 도살하는 동안 과학자들은 소들이 처음에 어떻게 그 병에 걸리게 됐는지 찾아 나섰다. 그들은 진전병에 걸린 양이 원인이 아닐까 의심했다. 혹시 양의 진전병 매개체가 소에게로 옮겨간 것이 아닐까. 하지만 진전병은 수세기 전부터 있었고 양과 소는 그보다 더 오랜 세월 함께 방목됐는데, 그 병이 최근 들어서야 들불처럼 퍼진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연구자들은 기계화한 대규모 사육 방식이 원인이 아닐까 추측했다. 풀만 베어다 먹여서는 가축을 대규모로 사육하기가 어렵다. 인공 사료를 줘야 한다. 문제는 사료에 있었다. 사료업자들은 내장, 뼈 등 도축할 때 버려지는 부위를 모아 가축의 사료로 썼다. 즉 소 같은 초식동물에게 육류를 먹인 것이다. 풀 같은 저단백 먹이를 먹던 소에게 고기와 뼛가루가 들어간 고단백 사료를 먹이자 발육 속도가 빨라졌다. 거기에다 사육되는 양의 수가 늘어나면서 더 많은 양의 사체들이 소의 사료로 쓰였고, 거기에 진전병에 걸린 양이 얼마나 섞였는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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