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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 김광화의 사람 공부, 이웃 이야기6

거침없이 마음을 열자, 아버지 자리 찾고 웃음도 찾고

  • 김광화 농부 flowingsky@naver.com

거침없이 마음을 열자, 아버지 자리 찾고 웃음도 찾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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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더 부드러워져야죠”

거침없이  마음을 열자, 아버지 자리 찾고 웃음도 찾고

농구에 대해 ‘강의’하는 원푸리. 자식들과 이렇게 대화를 나눈다는 건 애초 원푸리 소원에는 없었다. 양손이 표현에 따르면 지금 아버지 주름은 웃으면서 생겼다고 한다.

“누나도 나한테 좀 잘해봐.”

“너는 어떻고. 누나한테 잘하면 안 되나?”

부모라고 무게 잡거나, 부모라고 아이들이 봐주는 법이 없다.

“어머니는 현실로 좀 돌아오세요. 아버지는 좀 딱딱해. 더 부드러워져야죠.”



네 식구 모두 개성이 강해 상대방 이야기에 그냥 물러서는 법이 없다. 그나마 아이들이 핵심을 잡아 이야기를 간단히 풀어간다면 어른들은 이야기가 길다. 그렇게 이들 가족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시간이 훌쩍 흘러 밤 12시가 넘는다. 말잔치라 해도 좋을 듯하다.

요즘 아이들은 초등학교 고학년만 돼도 자기 방문을 걸어 잠그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런데 양손이네는 잠잘 때나 옷 갈아입을 때 빼고는 방문이 거의 열린 상태다. 그런 만큼 가족끼리 서로를 대하는 태도에 스스럼이 없다. 하지만 양손이는 낯선 사람은 조금 가리는 편이다. 나 역시 양손이 눈치가 조금 보인다.

아이들과 친해지기 위해 첫날 저녁에는 인터뷰에 집중하기보다는 같이 수다를 떨었다. 양손이와 책벌레는 집에서 일하고 공부하며 지낸다. 이따금 가는 캠프나 여행이 아니면 네 식구가 거의 함께 지낸다.

양손이네서 이틀 밤을 지내면서 본 이들 가족의 단면을 쓰자면 이렇다. 원푸리는 동이 틀 무렵 밖으로 일을 나간다. 조금 지나자 초록손이가 아이들을 깨운다. 먼저 일어난 책벌레가 잠옷차림으로 거실에 있는 디지털 피아노 앞에 앉는다. 터키행진곡이 거실 가득 울린다. “딴딴따~안~! 딴딴따~안~! 딴딴”

양손이는 졸음이 덜 깬 눈으로 거실에 있는 흔들의자에 앉아 떠오른 햇살에 해바라기를 한다. 누나 피아노곡에 맞추듯 의자를 흔들흔들 흔들며. 초록손이는 아침을 준비한다. 조금 지나자 원푸리가 집안으로 들어온다. 간단히 씻고는 책벌레가 치는 피아노를 보더니 참견을 한다. 아침을 함께 먹으면서도 수다가 그치지 않는다.

이들 가족이 지금과 같은 분위기를 갖기까지는 가족끼리 많이 다투기도 했고 노력도 많이 했다. 어찌 보면 이들 가족은 소통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환경에 놓여 있다. 도시와 달리 가족이 늘 얼굴을 맞대고 있기에.

가족이 같이 지낸다고 사이가 더 좋아진다는 법은 없다. 이 가족도 처음에는 눈물겨운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초록손이는 자장면 한 그릇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돈이 없어 서러운 게 아니었다. 누가 자장면을 먹지 말라고 하지도 않았다. 자기 스스로 생태적 삶을 지향해야 한다는 둥, 채식주의가 좋다는 둥 온갖 ‘고상한 철학’으로 자신을 포장하다보니 그게 또 다른 억압이 됐다.

틱 현상을 앓던 아들이…

‘자발적 가난’도 마찬가지. 돈을 많이 벌기보다 되도록 덜 쓰고 살자던 다짐으로 먹고 싶은 욕구를 억누르며 계속 자신을 몰아갔다. 그러나 생각을 바꾸었다고 바로 몸이 따라주는 건 아니다. 수십년 몸에 밴 습관을 하루아침에 버리기는 어려운 법이다. 도시 살 때는 학원 원장으로 꽤나 능력 있던 사람인데 어느 순간 자장면 한 그릇이 눈에 아른거리며 자기 설움에 북받쳐 울었다.

늘 가족이 붙어 지내다보니 서로가 서로에게 어떤 식으로든 민감할 수밖에 없다. 가족 가운데 한 사람이 울면 같이 슬프고, 한 사람이 웃으면 같이 웃게 된다. 양손이도 초록손이 가슴을 곧잘 태우곤 했다.

양손이는 예민한 성격. 몸이 약하고 자주 짜증을 냈다. 학교를 그만둘 무렵 그 증세가 심각했다. 아이는 온갖 짜증에 고개를 까닥까닥하는 틱(Tic) 현상까지 생겼다. 시골로 내려가, 가족이 함께하는 시간을 많이 가져보자던 꿈은 현실이 됐지만 집안은 늘 살얼음 위를 걷는 것처럼 위태위태했다.

가족이 서로 변하지 않으면 안 됐다. 우선 서로를 돌아보아야 했다. 양손이가 시골로 내려온 건 초등학교 1학년 때. 동네 골목대장을 할 만큼 친구들과 잘 어울리던 아이였지만 시골로 내려오자 양손이는 완전히 ‘도시촌놈’이었다. 아이들에게 곧잘 놀림감이 됐다. 그렇다고 부모가 아이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다. 부모부터 시골에 자리잡는 과정이 시행착오 투성이니 아이들을 찬찬히 돌볼 여유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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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화 농부 flowing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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