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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관계 축소판, 이명박-이시하라 신타로 비교

경제회복 열망 VS 보수우경화 발판으로 성장, 대권 꿈은 누가 먼저?

  • 이창위 대전대 교수·국제법 chweelee@dju.ac.kr

한일관계 축소판, 이명박-이시하라 신타로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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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5월20일 이시하라 신타로 지사는 도쿄도로부터 1740km 떨어진 환초(環礁)인 오키노토리시마에 상륙했다. 그는 상륙하자마자 “이 섬(국제법적으로 엄밀하게 말하면 섬이 아니지만)은 엄연한 일본의 영토이며 배타적경제수역을 갖는다”고 주장했다. 그는 일본령임을 나타내는 경계표지 앞에서 일장기를 흔들며, “오키노토리시마는 일본의 섬이다, 불만 있냐?”고 외치며 단독 시위를 벌였다. 그리고 섬 주위를 수영하면서 노익장을 과시한 뒤 도쿄로 돌아갔다. 72세라는 그의 나이를 감안하면 대단한 퍼포먼스였지만, 이시하라의 극우(極右) 성향을 익히 아는 일본인들에게 그렇게 놀랄 일도 아니었다. 이시하라는 일본의 영토 문제에 대해 과격한 대응을 주장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운수성 대신이던 1988년에는 독도에 대한 불법 상륙을 주장하기도 했으나 다케시타 총리의 만류로 무산된 적이 있다.

이시하라가 오키노토리시마에서 선동적이고 유치한 시위를 한 것은 2001년부터 중국이 그 주변의 경제수역을 인정하지 않고 해양과학조사를 했기 때문이다. 오키노토리시마는 원래 매트리스 두 장 정도의 면적밖에 안 되는 환초의 하나였는데, 일본 정부가 1988년부터 보강공사를 해 현재 직경 50m 정도의 콘크리트 바닥을 가진 바위가 됐다. 일본이 이 섬에 집착하는 이유는 일본 국토 전체보다 넓은 면적(40만㎢)의 경제수역을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를 경영하고 싶다’

그러나 현행 국제법, 특히 유엔해양법협약 제121조 3항을 아무리 융통성 있게 해석하더라도 오키노토리시마는 섬의 지위를 인정받기 어렵다. 오키노토리시마는 단순한 바위로, 대륙붕이나 경제수역을 갖지 못하고 12해리의 영해만을 갖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럼에도 이시하라가 이 같은 억지스러운 퍼포먼스를 하는 것은 그러한 행위가 일본 내에서 상당한 파급력을 지니기 때문이다.



대선을 7개월여 남겨놓고 이명박 전 시장은 여전히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선두를 지키고 있으며, 박근혜 전 대표가 그 뒤를 달리고 있다. 두 후보의 지지율을 합치면 70%를 넘기도 한다. 야당의 두 후보가 6개월 넘게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는 건 과거의 대선에 비해 특기할 만한 상황이다.

이 전 시장에 대한 높은 지지율이 지속되고 있는 것은 경제 문제 해결에 대한 국민적 기대가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부동산 값 폭등과 양극화에 따른 서민경제 붕괴는 대다수 국민에게 좌절감과 배신감을 안겨주었다. 따라서 정치인의 요란한 구호나 공약만으로는 경제회복이 힘들 것이라는 인식이 전사회적으로 팽배하다.

이 전 시장측은 그런 점들을 고려해 기존 정치인과 차별화한 이미지를 전략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예컨대 이 전 시장은 ‘대권을 노린다’는 표현 대신 ‘국가를 경영하고 싶다’는 식으로 즐겨 이야기하는데, 그런 부분이 지지율 제고로 연결된 것으로 보인다. 이 전 시장은 세련된 화술을 구사하지는 않지만, 눌언민행(訥言敏行)의 이미지, 즉 말보다 실천이 중요하다는 인상이 오히려 국민에게 호소력을 갖게 한 것이다.

이시하라 지사도 기존 정치인과의 차별성을 부각해 국민의 지지를 얻었다는 점에서 이 전 시장과 닮았다. 1968년 참의원 전국구에 출마해 300만표라는 최다 득표로 당선된 것도 베스트셀러 작가로서의 인기 덕분이었다. 잘 알려진 대로, 이시하라 지사는 히토쓰바시대에 재학 중이던 1956년에 ‘태양의 계절’이라는 소설로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등장했다. 그 뒤론 영화감독이나 이벤트연출가로도 화제를 몰고 다녔기에 정치적 스타로 변신하는 데 별문제가 없었다. 1972년에 참의원 의원을 그만둔 이시하라는 도쿄에서 중의원 의원으로 당선됐다. 이후 중의원 의원으로 연속 8회 당선됐으며, 그 사이 환경청 장관, 운수성 대신을 역임했다. 1999년 도쿄도지사 선거에서 당선된 이후 2003년에는 308만표라는 사상 최고득표로 재선에 성공했으며, 이번 선거에서도 무난하게 3선에 성공했다.

무력한 일본 사회의 자존심

이시하라 지사는 여느 극우 정치인이나 포퓰리스트(대중영합주의자)의 범주를 벗어나는 과격한 언행을 일삼아왔다. 장애인을 무시하고, 외국인을 배척하며 여성을 차별하는 발언으로 악명 높다. 그뿐만 아니라 지난 지방선거 기간엔 호화 해외출장이 줄곧 비난의 대상이 됐다. 1999년 도쿄도지사 취임 후 2006년까지 총 19회 해외출장을 다녀왔는데, 그 목적이 올림픽이나 마라톤 관람 같은 개인적인 관심에 집중됐으며 별다른 성과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시하라 지사는 해외출장 때 미국(5회), 유럽(3회), 에콰도르(1회), 대만(6회), 인도(1회), 그 밖에 동남아지역(3회)을 방문했는데, 단 한 번도 한국이나 중국을 방문한 적이 없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이시하라가 그만큼 한국과 중국 양국에 떳떳하지 못하다는 얘기다. 지금껏 일왕의 한국 방문이 이뤄지지 않은 것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시하라는 중국에 대해 항상 비판적이며, 중국인을 멸시하는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 이시하라는 중국과 중국인을 지나(支那)와 지나인(支那人)이라고 부른다. 일제 강점기의 중국 비하 명칭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2005년 6월 영국 ‘타임스’와의 단독 인터뷰에선 베이징 올림픽 보이코트와 더불어 중국과 일본이 영토분쟁 중인 댜오위다오 문제로 포클랜드 전쟁과 같은 국지전을 벌일 수도 있음을 주장했다. 2000년 도쿄도 주도로 출범한 ‘아시아대도시네트워크21(ANMC21)’에 중국 도시가 배제된 것도 이시하라의 정치적 성향 때문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ANMC21은 도시들의 다자간 교류를 선호하는 이시하라의 의지가 반영된 국제교류협의체로 현재 방콕, 델리, 자카르타, 하노이, 콸라룸푸르, 싱가포르, 마닐라, 타이베이, 양곤, 도쿄, 서울 등 11개 도시가 참여하고 있으며, 서울 대표로는 서울시 부시장이 줄곧 참석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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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위 대전대 교수·국제법 chweelee@dj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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