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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실험’ 8년, 세종문화회관의 ‘고슴도치’ 길들이기

“실력부터 보여달라” vs “자유를 줘야 보여주지!”

  • 박성원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parker49@donga.com

‘기업실험’ 8년, 세종문화회관의 ‘고슴도치’ 길들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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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실험’ 8년, 세종문화회관의 ‘고슴도치’ 길들이기

노사가 극한 대립으로 치달은 2005년, 노조원들이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시위하고 있다.

한 사람의 연주자는 그 나라의 문화를 대표하는 하나의 기관이다. 예술인도 그렇게 생각하고, 그 예술인을 좋아하는 청중도 그렇게 생각한다. 연주자를 좋아하면 그 연주자의 일거수일투족을 알고 싶어하는 게 팬들의 마음이다. 그러나 우리가 카메라나 휴대전화를 좋아한다고 이 제품을 만든 사람마저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이 ‘예술품’과 일반 제품의 차이다.

기자와 예술인의 공통점은 또 있다. 자극하면 고슴도치처럼 빳빳한 가시를 사방으로 세운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업에서 홍보를 업(業)으로 하는 사람들은 기자를 거칠게 다루지 않는다. 때론 비굴해 보일 정도로 기자를 예우하는 척한다. 진짜 존경스러워서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니다. 기자의 특성이 그렇기 때문에 맞춰주는 것뿐이다. 노련한 홍보쟁이들은 기자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자신이 원하는 대로 기자를 컨트롤한다.

세종문화회관의 예술단원들도 마찬가지다. 개인적으로 만나보면 이런 특성은 고스란히 드러난다. 성격이 다혈질이어서 찻집에서 만나도 얼음이 듬뿍 들어간 사이다나 콜라를 주문해 벌컥벌컥 들이켠다. 가슴에 활활 타오르는 불을 안고 살기에 뿜어내지 않으면 자신을 태워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이들은 ‘필’이 꽂히면 밤을 새워서라도 연주하거나 노래할 사람들이다. 그러나 하기 싫으면 손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감성이 발동하지 않는데 어떻게 움직이겠는가. 이렇듯 까다롭고, 섬세하고, 때론 불 같고, 때론 얼음 같은 성격 때문에 예술단을 다루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세종문화회관이 1999년 재단법인으로 독립했다는 의미는 예술기관을 기업화하는 실험에 들어갔다는 뜻이 된다. 그러나 정작 이 기업에서 생산하는 제품이자 생산자인 예술단이 경영진과 마찰을 빚고 있다는 사실은 기업화 실험에 성공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세종문화회관의 한 고위 간부는 “8년 동안 실험한 결과, 남은 건 특색 없는 이름뿐”이라고 자조(自嘲)했다. 자조는 분노를 낳았고, 분노는 무기력을 낳았다.



‘천원의 행복’은 좋은 반응

세종문화회관은 서울시로부터 매년 200억원의 예산을 지원받는다. 이처럼 수입의 대부분이 서울시민의 세금이기 때문에 세종문화회관의 설립 목적은 ‘문화예술의 진흥 및 시민의 문화 향유 확대’에 맞춰져 있다. 따라서 예술단원들은 시민이 좀더 쉽고, 편하고, 값싸게 ‘문화 주사’를 맞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김주성 사장이 부임한 뒤 세종문화회관은 공익성을 확대하는 쪽으로 정책의 가닥을 잡았다. 시민을 찾아가 무료 공연을 하는 ‘함께해요 나눔예술’은 연간 240회로 확대됐다. 100회에 불과하던 과거에 비해 2배 이상이다. 봄과 가을, 세종문화회관 뒤뜰에서 무료 공연하는 ‘세종 뜨락축제’ ‘도심 별밤 페스티벌’ ‘서울숲 별밤 페스티벌’ ‘청소년 렉처 콘서트’ 등도 신설했다. 올해 들어서는 매월 한 차례, 1000원만 내면 멋진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천원의 행복’을 마련해 좋은 반응을 얻기도 했다.

“이럴 때 약이 오른다!”

예술단원들은 재단의 ‘공익성 확대’라는 목적에 대해 동의한다. 그러나 이들은 공익성 확대라는 명분으로 예술단을 순치(馴致)하려는 것은 아닌지 다소 불안해한다. 우석훈 성공회대 외래교수는 그의 블로그(economos.egloos.com)에서 “프랑스 (나폴레옹) 정부가 공익을 내세우면서 이데올로기 장치로 예술계를 포섭한 것이 (18세기 말엽) 코메디프랑세즈(프랑스 국립극장)의 재발족이었다”며 “이명박 서울시장 이후 세종문화회관에서 진행되는 일은 (예술인을) 자본 혹은 국가의 이데올로기로 포섭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의미심장한 지적이 아닐 수 없다. 이에 대해 예술단의 한 직원은 “그렇게 거대한 의미가 있는 줄은 몰랐다”면서도 “그러나 국회의원 행사 때나 특정 정당의 전당대회에 불려나가 노래를 부를 때면 비참한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이럴 때는 약이 바짝 오른다. 반항하고 싶어진다”고 털어놓았다. 코메디프랑세즈의 흐름에서 반항의 정신을 일컫는 ‘하드코어’가 태동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실증하는 셈이다. 구부리려고 하면 더 뻣뻣해진다고 할까.

예술단 직원들이 패배주의적 상황에서 허우적대는 이유는 또 있다. 재단법인으로 바뀐 뒤 8년 동안 예술계 출신 사장이 연임된 적이 없고, 예술단장도 계속 교체됐으며, 경영본부장이나 공연본부장 등 주요한 자리에 예술계 출신이 올라가지 못했다. 현재 공연본부장과 경영본부장은 삼성과 코오롱 등 모두 민간 기업에서 영입됐다.

이런 인사시스템은 서울시 감사에서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지난 2월 실시한 서울시의 세종문화회관 감사에서 “세종문화회관의 인사계획은 체계적이지 않고 투명하지도 않아 직원들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있다”며 “임원의 자격기준이 애매하고 내부 승진의 비율도 명시하지 않아 혼란스럽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 때문에 세종문화회관은 기관경고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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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원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parker4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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