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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재훈 시인의 작가 열전

강하고 아름다운 ‘배우’ 은희경

칼이 아닌 척하는 칼, ‘은희경 장르’의 미학

  • 원재훈 시인 whonjh@empal.com

강하고 아름다운 ‘배우’ 은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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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하고 아름다운 ‘배우’ 은희경
소설가 은희경(殷熙耕·48)을 처음 본 게 그가 등단한 직후니까 벌써 12년이 지났다. 소설이야 이미 평단이나 독자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고, 외모도 건강하고 매력적이다. 그는 행복해서 시계를 보지 않을 것 같다. 다운타운을 활기차게 걸어다니는 그 세련된 이미지도 크게 변하지 않은 것 같다.

작가를 만나기 전에 나는 궁금한 것들을 노트에 메모했다. 그는 어떻게 소설가 ‘은희경’이 됐는가. 작가의 이름은 그의 작품세계이기도 하다. 그래서 작가는 변신을 꾀하고 싶을 때 이름을 바꾸기도 한다. 에밀 아자르와 로맹 가리는 같은 사람이지만 독자와 평단은 아무도 짐작하지 못했다. 그러나 은희경은 그런 일을 벌일 것 같지 않다. 그는 자신의 이름 안에서 충분히 자유롭고 아름답다.

전화를 걸어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하자 그는 뭘 새삼스럽게 인터뷰냐면서 농담을 던지듯이 말했다.

“그냥 쓰지 뭘 인터뷰는 해요. 다 알잖아요.”

나는 속으로 반문했다.



‘나는 정말 은희경을 모르겠어요.’

문학 언저리의 흔적

기억을 더듬어본다. 그래 아마 봄날이었을 것이다. 나는 평론하는 형의 소개로 은희경과 전경린을 동시에 만났다. 이제 막 등단한 신인작가와 만나는 자리였다. 점심을 먹고 차를 마셨다. 그때 평론가 형이 말했다.

“아마도 저 두 사람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뛰어난 소설을 쓰는 작가가 될 거야. ‘새의 선물’이 나오면 꼭 읽어봐라. 재미있어.”

그리고 정말 그렇게 됐다. 지난 10여 년 동안의 우리 문학을 이야기할 때 은희경은 독보적인 존재로 거론된다.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과 같은 찬란한 탄생이었고, 우리 문학의 축복이었다.

은희경과 인터뷰를 하고 나서 내가 쓰는 3층 작업실에서 창문을 열고 비가 내리는 거리를 본다. ‘비가 내리면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고 쓰려다 ‘비가 내릴 때만 조금 보고 싶은 사람이 있지’라고 고쳐 쓴다. 조금 전에 은희경을 만나고 왔기 때문이다.

일산의 한 커피숍에서 한 시간만 이야기하자고 했다가 두 시간, 세 시간 이야기가 이어졌다. 딱딱한 문학 이야기보다는 사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편안했다. 나는 그의 문학을 이루었던 것들 언저리를 주로 물어보았고, 그는 즐겁게 대답해주었다. 이 글은 아마도 은희경의 문학 언저리에 묻어 있는 흔적을 더듬어가는 어설픈 산문이 될 것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저녁식사를 하러 가는 길에 잠시 횡단보도에 멈춰서서 어떻게 소설을 쓰는지 물었다. 그가 말했다.

“저는 초고를 쓰고 많이 고치는 편이에요. 예를 들자면 ‘술이 취하면 그가 그립다.’ 그런데 그건 너무나 상투적이잖아요. 그래서 ‘술 취했을 때나 그가 그립다’고 고치면 조금 낫지요. 다른 소설가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저는 초고는 절대 남에게 보여주지 않아요. 초고는 너무나 상투적이니까. 그걸 놓고 고치고 또 고치고 그래서 겨우 한 편 만들어내는 거죠.”

소설 쓸 때 퇴고를 많이 하냐는 우문에 대한 그의 현명한 답변이다. 퇴고 과정에서 상투적인 틀을 깨버리는 것이다. 세상은 상투적이지만, 결코 상투적인 생각으로는 읽어낼 수 없는 비의가 숨어 있다. 그래서 살 만한 것이고, 죽을 만한 것이다.

일필휘지로 한달음에 소설을 써내는 스타일의 작가가 있고, 보고 또 보고 나서야 겨우 한 편을 만들어내는 작가가 있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기 전, 나는 그가 전자의 작가인 줄 알았다. 그런데 정반대였다.

이렇게 나는 그에 대해서 모른다. 아니 우리는 누구나 서로를 모른다. 그것이 친구든, 부부든, 연인이든 모두 자신의 틀 안에서 상대를 끌어들이는 상투적인 사람이다. 그래서 좋은 관계는 그런 진부함을 깨어버리고 진정한 상대를 발견할 때 온다. 부처의 깨달음같이 어려운 일이다.

그를 오랫동안 만나서 조금 안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내가 알고 있는 것은 극히 사소한 것들이었다.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다면 어떤 사람도 잘 알 수는 없다. 물론 이야기 서너 시간 나누고 그를 안다는 것도 오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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