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월11일 북한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1기 5차 회의. 핵심 권력에서 비켜 있던 전문 경제관료 출신의 김영일(63) 육해운상이 총리로 발탁돼 눈길을 끌었다.
이때의 담화를 계기로 자신과 당에 대한 충성심이 변하지 않은 혁명선배에 대한 존대와 예우는 김정일 위원장의 인사스타일로 자리잡는다. 1998년 헌법 개정을 통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명예 부위원장직(과거의 부주석)을 만들고 그 자리에 양형섭, 박성철 등 혁명 1세대 원로들을 배려한 것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2005년 연형묵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겸 자강도당 책임비서가 사망했을 때 ‘노동신문’은 그를 기리는 정론을 싣는 예우를 했다.
‘김정일 선집’ 제15권에 따르면, 김정일 위원장은 2001년 3월 노동당 중앙위원회 책임일꾼(간부)과 가진 담화에서 고령의 간부를 중용한 배경에 대해 “나는 수령님께서 몸소 키워주신 일꾼들이 나이가 많지만 계속 일하게 하고 아껴왔다”고 설명했다. 2005년 노동당 창건 60주년을 맞아 열린 열병식의 주석단 서열만 봐도 15위권 내에 드는 노동당, 군부, 외교, 경제 등 주요 분야의 실력자 대부분이 70세를 넘긴 고령의 인물들이다. 혁명선배에 대한 존대와 예우의 정치를 통해 김정일은 혁명 후배들의 충성과 지지를 유도해왔던 것이다. 따라서 충성심은 예나 지금이나 인사의 첫 번째 기준이자 원칙으로 자리매김했다.
변화의 조짐?
지난 4월 한 달 동안 북한은 국가 요직에 대한 인사를 단행했다. 내각을 책임지는 총리와 군령권을 가진 총참모장, 대남관계를 총괄하는 당 중앙위 통전부장에 대한 인사가 줄지어 나왔다. 한 자리 한 자리가 북한의 미래를 바꿀 수 있을 만큼 중요한 인사가 비슷한 시기에 앞 다퉈 이뤄졌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언론과 일부 전문가들은 일련의 인사를 세대교체의 신호탄으로 분석하며 지난 10년간 유지돼온 흐름에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2006년 8월 임동옥의 사망으로 공석이 된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에는 김양건 국방위원회 참사가 임명됐다. 김양건 신임 부장은 1997년 4월부터 노동당 국제부장으로 일하면서 김정일 위원장이 중국과 러시아의 주요 인사들을 면담하는 자리에 배석하기도 했다. 특히 2002년 고이즈미 일본 총리가 평양을 방문할 당시에는 막후조율을 맡았다는 보도가 나온 적이 있다.
이어서 우리의 합참의장에 해당하는 인민군 총참모장에 김격식 인민군 대장이 임명됐다. 김격식 대장은 김정일 현지지도 수행 대장 3인방으로 통칭되는 현철해 박재경 이명수처럼 잘 알려진 인물은 아니다. 그러나 현재 노동당 중앙위원이고 일찍이 1994년부터 2군단장을 지낸 군부 내 실세로 알려져 있다.
2군단은 전방 서부지역을 관할하는 부대로, 개성공단 합의 당시 이 지역을 담당하는 군단장이었던 김격식은 김 위원장의 뜻에 따라 현재의 공단지역에 있는 일부 군사시설 위치를 포기해 군부 내에서 ‘충성의 반역(위원장에게는 충성이지만 국가에는 반역이라는)’이라는 뒷말을 들었다고 전해진다. 1997년 4월 건군 65주년 기념행사에서는 열병부대 총지휘관을 맡기도 했다.
헌법상 북한 정부를 대표하는 권한을 가진 내각총리에는 김영일 육해운상이 임명됐다. 김 신임 총리는 전임자들에 비해 지명도가 많이 떨어지는 인물이어서 김격식의 승진 임명과 더불어 파격 인사로 분류할 수 있다. 1997년 9월 김정일을 총비서로 추대하는 교통위원회 당 대표회에 참가한 이력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