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7월호

미국 드라마 ‘웨스트윙’ 통해 본 노무현 정부의 코드 정치

정적(政敵) 끌어들이는 포용력 대신 ‘야당에 떠넘기기’ 기술만 배워

  • 고재열 시사저널 정치팀 기자

    입력2007-07-06 11: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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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 초부터 즐겨 시청한 ‘웨스트윙’. 미국의 번영, 세계의 평화를 지킨다는 자부심으로 가득 찬 미국 대통령과 백악관 참모진을 보며 청와대에서는 무엇을 느꼈을까. 대통령이 선거정국에 ‘개입’하는 내용, 실수투성이 보좌진을 감싸는 내용을 적극 참고했을 법하다. 배려심 가득한 정치문화는 애써 도외시한 듯해 유감이긴 하지만.
    미국 드라마 ‘웨스트윙’ 통해 본  노무현  정부의 코드 정치
    정치부 기자로서 나의 꿈은 대통령을 만들어보는 것이다. 구체적인 로드맵도 정했다. 먼저 국회의원을 만들고, 당 대표를 만들고, 서울시장을 만들고, 마지막으로 대통령을 만드는 것이다. 국민의 뜨거운 성원과 함께.

    안타까운 점은 현실에서는 내가 대통령으로 만들어줄 만한 정치인이 없다는 것이다. 서울시장감도 없고, 당 대표감도 없고, 심지어 국회의원감도 없다. 그래서 꿈을 살짝 바꿨다. 정치 드라마에서 대통령을 만드는 것으로. 서울시장과 당 대표와 국회의원 역시 드라마 속에서 만들 예정이다.

    정치 드라마로 대통령을 만드는 꿈을 가진 내게 백악관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 ‘웨스트윙’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딱딱한 정치와 소소한 인간사를 솜씨 좋게 버무리고 국내 현안과 국제 정세를 숨 가쁘게 얽어내는 솜씨가 가히 천의무봉이기 때문.

    웨스트윙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며 본, 아주 유명한 인물이 한국에 한 사람 더 있다. 바로 노무현 대통령이다. 탄핵 판결이 나기 하루 전인 2004년 3월11일, 노 대통령은 ‘웨스트윙’을 예로 들며 대통령의 정치개입은 세계적인 상식이라고 역설했다. 그러나 현실은 드라마와 달랐다. 노 대통령은 탄핵 당했다.

    취임 초기에도 노 대통령은 웨스트윙을 자주 언급했다. 취임 1주년을 평가한 기획기사 ‘바뀐 청와대 신풍속도’(국민일보 2003년 2월25일자)를 통해 자신의 탈(脫)권위적인 모습을 묘사한 국민일보 남도영 기자에게 노 대통령은 기사를 읽은 소감을 e메일로 보낸 적이 있다. 이때도 노 대통령은 “요즘은 웨스트윙을 보면서 자유롭고 개방적인, 역동적인 리더십을 부러워하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대통령이 시작한 따라 하기

    노무현 대통령은 단순히 드라마를 감상하는 것을 넘어, 드라마에서 본 것을 실천에 옮겼다. 대통령 집무 공간을 대통령과 핵심 참모들이 모여 일하는 백악관의 웨스트윙처럼 꾸민 것이다. 신관에 있던 비서실장실, 국정상황실, 국가안보보좌관실을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본관 2층으로 옮겼고 대통령과 비서진의 청와대 내 이동통로도 일원화했다.

    노 대통령이 자신의 정치개입에 대한 논거로 삼으면서, 그리고 ‘광팬’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웨스트윙은 마니아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웨스트윙의 팬은 노 대통령뿐만이 아니었다. 청와대 참모들도 DVD를 돌려보았고 대통령이 되고 싶어 하는 한나라당 원희룡 의원도 이 드라마 팬이라고 밝힌 바 있다.

    노 대통령의 팬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친노(親盧) 성향의 인터넷 웹진 ‘서프라이즈’는 2004년 5월22일 웨스트윙 시사회와 함께 좌담회를 개최한 적이 있다. 이 자리에선 웨스트윙 시즌1 가운데 에피소드 2편이 상영됐고, 유시민 의원과 영화배우 문성근, 서프라이즈 서영석 대표 등이 ‘웨스트윙을 통해 본 한미 정치 상황과 노무현 대통령 복귀 후 정세’를 주제로 좌담을 펼쳤다.

    노 대통령을 감동시킨 웨스트윙은 어떤 드라마일까? 1999년 처음 전파를 탄 이래 줄곧 NBC의 간판 드라마였으며, 미국에서 총 7편의 시리즈가 방영됐다. 2000년부터 4년 연속 에미상 최우수 TV시리즈상을 수상했으며, 작품성과 흥행성 두 마리 토끼를 잡은 드라마로 꼽힌다. 한국계 다이애나 손이 작가로 참여한 적도 있다.

    웨스트윙은 미국식 민주주의의 교본으로 쓰인다. 실제로 한 대학 정치외교학과에서 이 드라마가 교재로 채택된 적도 있다. 한 시간 동안 드라마를 보고 한 시간 동안 팀 토론을 하는 방식으로 수업이 진행된 것이다.

    미국 대통령 집무실과 비서진이 있는 백악관 서관, 웨스트윙을 배경으로 한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대통령(바틀렛)과 비서실장(리오 멕게리), 비서실 차장(조쉬 라이먼), 공보수석(토비 지글러)과 공보차장(샘 시본), 백악관 대변인(CJ 크렉)이다. 아주 짧고 간단하게 드라마 내용을 설명하자면 바틀렛 대통령과 그를 보좌하는 백악관의 독수리 5형제가 미국은 물론 전세계 평화를 지키는 이야기다.

    미국 드라마 ‘웨스트윙’ 통해 본  노무현  정부의 코드 정치
    노 대통령이 자신을 변호하며 예로 든 웨스트윙의 에피소드는 시즌4의 15회, ‘캘리포니아 의원선거’편이다. 재선(再選)에 성공한 민주당 바틀렛 대통령이 캘리포니아 47번 선거구에 하원의원으로 출마한 백악관의 샘 보좌관 지원유세에 참석해 마이크를 잡는 내용이었다. 노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드라마에선 끊어졌지만 연설했다는 것을 말하는 것 아니냐”며 국내와 미국의 정치상황을 비교했다(드라마에선 대통령이 유세연단으로 올라가는 장면에서 화면이 바뀐다). 미국이 현직 대통령이 드러나지 않게 뒤에서 개입하는 방법을 썼다면 노 대통령은 앞에서 개입하고 이를 정당화하는 방법을 쓴 셈이다.

    웨스트윙의 에피소드 중에서는 노 대통령과 관련된 일련의 정치적 논쟁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 많다. 알코올 중독과 약물 중독 문제로 사퇴 압력을 받는 비서실장 리오 멕게리를 보호하는 장면은 교육부총리에 임명됐다가 논문 표절 논란으로 낙마한 김병준 전 정책실장을 떠올리게 만든다.

    드라마 에피소드 중에서도 우리 정치 현실과 겹치는 부분이 많다. 멘도자 대법관 임명을 관철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대목은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지명자를 임명시키기 위해 청와대가 사력을 다하는 모습과 닮았다.

    라틴아메리카계 하층민 출신으로 뉴욕 경찰을 거쳐 판사가 됐고, 동성결혼에 우호적인 판결을 내린 전력 때문에 의회의 인준에 많은 어려움이 예상되지만, 멘도자를 마침내 차기 연방대법관으로 지명하듯 노무현 대통령도 여성인 전효숙 재판관을 헌법재판소장으로 임명한다.

    통치에 복속된 정치

    웨스트윙의 매력은 바틀렛 대통령의 부드러운 카리스마에 기반을 둔다. 웨스트윙의 크리에이터 아론 소킨은 영화 ‘대통령의 연인’의 시나리오도 쓴 작가다. 그는 인간적이면서도 강한 카리스마를 가진, 대다수 국민이 갖는 ‘지도자에 대한 로망’을 만족시킨다.

    웨스트윙은 ‘권력에 대한 로망’ 혹은 ‘백악관에 대한 로망’을 담고 있다. 거칠게 표현해서 대통령제에 대한 판타지라 할 수 있다. 내부 권력 투쟁도 없고 자기 사람 심기도 없다. 권력을 다루면서도 암투가 배제돼 있다. 모든 문제는 논쟁을 통해 결정하고 논리적으로 맞다면 정적(政敵)의 주장도 받아들인다. 드라마 속 대통령과 참모들은 늘 자신들이 소수자의 편임을 자부한다.

    정치철학과 관련해 웨스트윙은 정치부 기자로서 후한 점수를 줄 수 없는 드라마다. ‘내가 하면 정치공학, 남이 하면 정치공작’ 식으로 정치공작이 미화됐기 때문이다. 드라마를 보면 ‘정치 드라마의 탈을 쓴 마피아 드라마’라 할 만큼 기자와 뒷거래하기, 의원 협박하기 등이 무시로 등장한다.

    백악관의 참모들이 주인공인 까닭에 드라마에서 의회 정치보다 백악관 정치가 우선시된다. 정치보다 통치에 주안점을 둔 웨스트윙은 정치를 통치에 복속시킨다. ‘현대판 철인정치’를 구현하는 셈인데, 이는 현실과는 동떨어진다. 소수 정권이면서도 국회와 대립각을 자주 형성했던 노무현 정부 초기의 난맥은 혹시 이런 웨스트윙식 철인정치에 기반을 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웨스트윙을 보면 이 드라마가 대통령뿐 아니라 대통령을 따라 이 드라마를 애청한 청와대 비서진에게도 교본이 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당으로부터 ‘무슨 선도반이냐?’는 비난을 산 청와대 386 참모들의 적극적인 정치 개입 행태는 드라마 속 비서실 차장 조쉬와 공보차장 샘의 다양한 정치 공작과 겹친다.

    특히 이들이 부통령을 다루는 방식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백악관 참모들은 차기 경쟁자가 될지도 모르는 부통령을 철저하게 길들이려 든다. 이 장면은 청와대 참모들이 정동영, 김근태 전 의장 등 여권 대선주자를 다루는 방식의 교본이 된 것 같다. 집권기간 내내 대통령에게 끌려다니며 아직도 홀로서기를 통한 자기 정치를 하지 못하고 열린우리당을 나가지도, 안 나가지도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그들 역시 청와대에 길들었기 때문은 아닐까.

    소수파 의식을 공유한다는 점도 비슷하다. 이들에겐 사방이 적(敵)이다. 야당은 물론 여당 의원들도 적이고, 심지어 부통령도 적이다. 그러나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칼자루는 짧고 칼날은 길다. 하지만 칼날을 잡은 사람이 많다고 해서 칼자루를 쥔 사람이 다치는 것이 아니다. 결국 칼자루 쥔 사람이 칼날 잡은 사람을 베는 것이 권력의 생리다. 친노 정치인들은 이 평범한 진리를 외면했다.

    미국 드라마 ‘웨스트윙’ 통해 본  노무현  정부의 코드 정치

    ‘웨스트윙’ 출연진. 가운데가 바틀렛 대통령, 오른쪽이 정무비서관 조쉬 라이먼, 왼쪽은 공보차장 샘 시본. 대통령 위는 리오 멕게리 비서실장, 그 위는 공보수석 토비 지글러이며 그 왼쪽 옆은 여성 대변인 CJ 크렉이다.

    미국 드라마 ‘웨스트윙’ 통해 본  노무현  정부의 코드 정치

    문재인 비서실장은 대통령의 오랜 친구인 멕게리 비서실장, 안희정씨는 시본 공보차장, 유시민 의원은 독설가인 지글러 공보수석과 ‘닮은꼴’. 양정철 비서관은 의원들을 더러 협박하는 정무 비서관 라이먼과 ‘설정’이 겹친다.



    청와대 참모들의 교본

    귤이 유수를 건너면 탱자가 되듯이 드라마가 현실이 되면 감동은 비극이 되는 경우가 많다. 웨스트윙의 가치관이 우리 현실에 잘못 적용된 사례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그 정도로 영향이 컸을지는 자신할 수 없지만).

    웨스트윙에서 중요한 것은 백악관 참모들 사이의 팀워크다. 집단과 집단의 갈등을 통해 집단 내부의 단결은 강화된다는 사회학 고전 이론을 만족시키며 백악관의 독수리 5형제는 형제애보다도 더 끈끈한 우애를 과시하며 갖가지 평지풍파를 헤쳐 나간다. 그러나 이너서클에는 견제와 균형이 없다. 코드 정치의 강렬한 자장(磁場)을 형성한 청와대 참모들의 모습과 닮아 있다.

    마치 벼락치기에 의존하는 듯한 모습이다. 백악관의 수재들은 벼락치기로 실제 전문가를 압도하는 수준의 지식을 갖춘다. 그러나 이것은 드라마다. 비전문가들이 자료 몇 편 읽어보고 결정하는 것, 그것을 우리식으로 표현하면 ‘탁상 행정’이다. 이것이 드라마 속에서는 정당화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다.

    웨스트윙 인물들의 캐릭터를 하나하나 곱씹어보면 노무현 대통령의 참모들과 묘하게 겹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틀렛 대통령의 오랜 동료인 리오 멕게리 비서실장은 문재인 청와대비서실장을, 독설가 토비 지글러 공보수석은 유시민 의원을 연상시킨다. 공보차장 샘 시본을 보면 떠오르는 사람은 안희정씨. 드라마에서는 대통령이 샘 시본의 선거에 개입하는 장면이 나온다. 만일 안희정씨가 충남 논산 보궐선거에 나갔다면 노 대통령이 어떤 식으로 개입했을지 궁금하다.

    캐릭터 중에서 가장 재미있는 인물은 조쉬 라이먼이다. 다혈질의 조쉬와 양정철 비서관의 얼굴이 자연스럽게 겹친다. 드라마에서 ‘101번째 상원의원’으로 묘사되는 조쉬는 국회의원들과 벌인 설전에서 핏대를 올리며 대한민국 ‘300번째 국회의원’의 위상을 세운 양 비서관과 쌍둥이다.

    웨스트윙 학습효과

    양 비서관이 유진룡 전 문광부 차관에게 외압 전화를 걸어서 “배 째드리죠”라는 말을 했다는 주장이 일어 논란이 됐는데, 웨스트윙에도 이를 연상시키는 장면이 나온다. 총기법안에 서명하지 않은 캐츤모이어 의원을 만나러 가서 조쉬는 다음 선거에 백악관이 다른 사람을 지원할지도 모른다고 겁을 주며 “당신은 52%의 지지를 얻었지만 대통령께선 당신 선거구에서 59%를 얻었어요. 대통령께서 (당신의 지역구에서) 우리가 선호하는 한 지방 검사보의 어깨에 팔을 두르실 겁니다. 꼭 카메라를 가져오셔서 사진을 찍으세요. 그게 민주당에서 당신의 정치생명이 끝나는 순간이니까요”라고 말한다.

    조쉬 라이먼에 대한 바틀렛 대통령의 신임은 확실하다. 대통령 휴가 중 조쉬는 TV 토론에 나가 기독교단체와 토론을 벌이다 말실수를 한다. “당신이 믿는 신에게 세금이나 제대로 내라고 전하시죠”라고. 버틀렛 대통령은 사과받으러 온 기독교 단체 관계자들을 백악관에서 내쫓으며 조쉬에 대한 변함없는 신임을 보여준다.

    백악관 대변인 CJ 크렉과 견줄 만한 인물은 노무현 정부 초기 청와대대변인으로 임명됐던 송경희씨일 것이다. 송씨의 대변인 기용은 대표적인 ‘실패한 인사’였다. 여성이면서도 복잡한 무기 체계에 두루 통달한 CJ 크렉의 모습과 기본적인 것에서도 오류가 잦았던 송씨는 둘 다 여자라는 것 빼고는 공통점을 찾기 힘들다.

    웨스트윙에서 여성 정치인들은 각 분야에서 맹활약한다. 능수능란한 대변인 CJ 크렉을 비롯해 혈기방장한 정치참모, 청각장애자인 여론조사 전문가, 안보보좌관 등 권력의 중심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노무현 정부는 다분히 마초적이다. 닮았어야 하는 부분은 닮지 못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집권 후반기로 가면서 자주 등장하는 노무현 정부의 ‘꼼수’들을 웨스트윙에서 만끽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야당 자극하기 기술이다.

    ‘다발성경화증’ 은폐와 관련해 조사를 벌이는 특별검사의 수사가 지연돼 백악관을 괴롭히자 CJ는 그를 신뢰한다고 말하고 백악관 법률고문과 특별검사가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라는 걸 슬쩍 흘린다. 또 그들이 예일 법률학술지에 ‘대통령이 면책특권을 포기해도 일부 문서를 비공개로 할 권리가 있음’을 주장하는 글을 공동 기고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흘려 공화당은 결국 하원 청문회를 조속히 열겠다고 기자회견을 한다. 야당의 기자회견을 지켜보던 CJ는 유유히 맥주병을 따며 “와서 우릴 잡아가 보시지!”라고 비꼰다. 한나라당이 얼마나 자주 노 대통령의 낚싯밥에 걸렸을지….

    공 떠넘기기는 요즘 청와대가 자주 이용하는 전략이다. 바틀렛 대통령은 TV 토론에서 “감세(減稅)를 해야 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입니다. 미국 국민은 연방정부보다 돈을 더욱 현명하게 쓸 줄 알기 때문입니다”라고 주장하는 상대 후보에게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해결책을 열 단어로 정리하실 수 있으면 저는 당장 사퇴하겠습니다. 열 단어로 미국을 통치하기에는 우리나라가 너무나도 큽니다”라고 반박한다.

    웨스트윙을 열심히 봤으면서도 노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들이 배우지 못한 것, 그것은 바로 포용력이다. 백악관 공보부국장 샘은 교육정책을 토론하는 1대 1 TV 토론에 참석한다. 상대방은 처음 TV에 출연하는 미모의 금발 공화당원 에인슬리 헤이스다. 상대방을 얕본 샘은 에인슬리에게 된통 당한다.

    배우지 못한 것들

    충격적인 일은 그 다음에 벌어지는데, 바로 백악관이 에인슬리를 스카우트하는 것이다. 정적임에도 능력을 인정해 에인슬리를 끌어오는 장면은 청와대 386 참모들에게 코드를 맞추지 못해 밀려난 정태인 비서관의 모습과 대비된다.

    바틀렛의 위트는 노 대통령의 막말과 대비를 이룬다. 상대 당 대통령 예비후보를 비난하면서 바틀렛은 “357 매그넘 세상에서 22구경에 해당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구식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인데, 효과적으로 상대방을 타격한다. 노 대통령의 직설화법에 지친 시청자에게 바틀렛의 풍부한 은유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노 대통령은 바틀렛을 어디까지 따라할까? ‘다발성경화증’이라는 치명적인 질병을 가지고 있음에도 재선에 도전하는 레드 바틀렛 대통령처럼, ‘대통령 단임제’라는 제도적 한계를 딛고 정계 은퇴 없이 현실정치에 개입하겠다며 노 대통령은 고집을 부리고 있다. 이른바 ‘훈수 정치’를 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능가해서 노 대통령은 ‘흑기사 정치’를 하고 있다. 비유하자면 코치가 그로기 상태인 선수 대신 링에 올라가 싸우는 형국인데, 이것은 말 그대로 승부와 무관한 막싸움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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