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7월호

한국은 ‘24시간 팬옵티콘’

CCTV, 교통카드, 휴대전화, e메일 감시…누가 당신을 주시하는가?

  • 장여경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 della@jinbo.net

    입력2007-07-06 14: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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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라이버시’는 그냥 ‘사생활’이 아니다. 당신이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기록이 어떻게 수집되고, 관리되며, 활용되는지를 결정하는 것 역시 프라이버시다. 표지판 하나 없이 돌아가는 감시카메라, 이동경로 기록을 남기는 교통카드,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휴대전화 위치추적 서비스까지, 평범한 사람의 하루 24시간을 완벽하게 복구할 수 있을 정도로 촘촘해진 ‘시선’의 그물망을 콩트 형식으로 들춰봤다.
    한국은 ‘24시간 팬옵티콘’
    “저놈 저거, 차 안에선 담배 피우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는데….”‘잘나가’ 운수회사 김성동 과장은 모니터 앞에 앉아 투덜댔다. 지난밤 회수해온 하루치 CCTV 녹화 테이프를 3배속으로 돌려보고 있는 중이었다. 노동조합선거다 뭐다 해서 회사 분위기가 묘하니 동향을 꼼꼼히 살피라는 지시를 받은 터였다. 눈이 뻑뻑해지도록 화면을 노려보다가 운전사가 하품하거나 코딱지를 후비는 장면이 나오면 한두 마디씩 조롱을 던지며 지루함을 달랬다. 그러다 문득 ‘이게 뭔 짓이지’ 하는 생각이 스쳤다.

    1997년 시내버스에 CCTV가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반대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버스회사 운수요금 횡령 사건이 워낙 큰 물의를 빚어 요금 수납을 감시해야 한다는 여론이 만만치 않았다. 애초에 시내버스 CCTV는 현금 징수를 감시하기 위한 방안으로 도입됐고, 공공예산을 지원받아 급속도로 확대됐다. 버스카드가 일반화하면서 요금을 현금으로 받는 경우가 크게 줄었지만 회사로선 이런저런 다른 쓸모가 있어 CCTV는 그대로 남아 지금도 애용되고 있다.

    들여다보고 있던 CCTV 화면 속의 승객 한 사람이 멍하니 카메라에 시선을 고정한다. 그렇지만 그게 카메라인지는 모르는 눈치다. 화면 속의 그가 이제 김 과장을 쳐다보고 있다. 시선을 마주하고 있자니 김 과장은 어쩐지 불편한 심정이다.

    ‘CCTV가 언제 이렇게 많아졌지?’

    김 과장은 퇴근하며 잠깐 은행의 현금인출기 코너에 들렀다. ‘촤르륵~’ 기계가 돈을 세는 소리를 들으며 버릇처럼 고개를 들어 거울을 바라본다. 아마 저 너머에도 CCTV가 있고 누군가는 그 화면을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아파트에 들어서는데 주차장, 쓰레기 수거함, 엘리베이터에서도 검은색 반투명 유리 반구에 감춰져 있는 카메라가 보인다. 회사에서 하루 종일 CCTV 화면만 들여다본 탓인지, 오늘따라 유독 신경에 거슬린다.



    ‘언제 CCTV가 이렇게 많아진 거지?’

    집에 들어온 지 10분이 지났지만, 아들 준기 녀석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또 컴퓨터 게임 삼매경임이 분명하다. 이제 중학생이니 공부 좀 해야 할 텐데, 늘상 친구들하고 PC방이나 어울려 다닌다. 더 골치 아픈 건 곧이곧대로 털어놓지 않는다는 것. 조금 다그치기라도 하면 문을 쾅 닫고 나가버린다. 사춘기인가?

    김 과장은 고심 끝에 얼마 전 휴대전화 위치추적 서비스를 신청했다. 물론 아이 모르게. 아이가 잠자는 사이 미리 알아봐둔 대로 몇 번 키 조작을 거치자 금세 신청이 완료됐다. 덕분에 중간고사가 코앞인데도 녀석이 저녁때까지 집 밖을 헤매고 다닌 것을 알고 있다. 독서실에 간다더니. 오늘은 단단히 한 소리 해야겠다.

    열네 살 김준기는 요즘 한창 ‘왕잼나’ 게임 사이트에 빠져 있다. 특히 게임머니로 아바타를 꾸미는 데 단단히 재미가 들렸다. 문제는 게임 머니가 충분치 않다는 것. 안달이 난 준기는 자칭타칭 게임도사인 같은 반 동훈이에게 물었다.

    “휴대전화로 아이템을 결제해. 다들 그렇게 해.”

    “안 돼, 아빠가 알면 나 죽어. 다른 방법 없냐?”

    “있긴 있지.”

    동훈이의 말로는 게임 사이트마다 제휴한 사이트가 있단다. 거기에 회원가입을 하면 그 대가로 게임머니를 조금씩 충전해준단다. 그것도 공짜로! 신이 나서 제휴 사이트에 모조리 가입해버렸다. 게임머니가 든든해졌다. 그런데 그것도 며칠. 게임머니는 금세 바닥을 드러냈다. 이걸 어쩐다?

    동훈이는 또 다른 방법을 알고 있었다.

    “너 아빠 주민등록번호 아냐?”

    “알 수 있을 거야.”

    이 방법 역시 간단했다. 아빠 명의로 아이디를 만드는 것이다. 신규 회원에게 제공되는 게임머니에다 제휴 사이트 가입으로 보충하니 또 한동안 게임을 즐길 수 있었다. 게임머니가 바닥을 드러내면 다른 가족 명의를 동원했다. 아빠 다음에는 엄마, 엄마 다음에는 누나.

    가족들 모르게 만들었다는 점이 조금 찜찜하긴 했지만, 이렇게 위안했다.

    ‘뭐 어때. 기껏해야 게임 아이디인 걸.’

    “한 대리 일은 잘해?”

    다음날 오전 ‘왕잼나’ 게임 사이트 마케팅부 한정훈 대리는 ‘다팔아’ 쇼핑몰과의 통화에 매달려 있었다. 부실한 수익구조를 보충하기 위해 논의가 거듭되던 제휴 문제를 매듭짓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쇼핑몰 담당자는 제휴에 시큰둥한 태도였다.

    “회원 규모가 별로 크지 않군요.”

    “중요한 건 추세 아니겠습니까. ‘왕창따’ 사이트 정도는 곧 추월할 겁니다.”

    “회원 정보는 어떤 것이 제공됩니까?”

    “실명과 주민등록번호는 기본이고 주소, e메일, 휴대전화번호도 제공됩니다. 저희가 자체적으로 개발한 분석틀로 이용자별 이용 패턴 및 취향 분석 정보도 제공해드릴 수 있습니다.”

    “영업하다 항의를 받진 않겠지요?”

    “이용약관에 다 명시돼 있습니다.”

    “사람들이 이용약관을 읽어보나….”

    물론 이용약관을 꼼꼼히 읽어보는 이용자는 거의 없다. 그러나 이쪽으로선 할 만큼 한 것이다. 법적으로 문제 삼기 쉽지 않을 정도로.

    “좋습니다. 검토해보죠.”

    일단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한 대리가 전화를 끊었다. 동시에 휴대전화가 울린다.

    “여보세요?”

    “고객님 안녕하십니까? ‘일확’ 보험회사에서 새로운 상품을 안내해드립니다…”

    “됐습니다. 지금 바빠요.”

    건조하게 전화를 끊고서 최근 부쩍 광고전화가 늘었다고 생각한다. 다팔아 쇼핑몰과 계약을 맺으면 우리 회원도 비슷한 전화나 e메일을 받게 되겠지. 뭐, 서로 좋은 일이다. 우리 회사는 유료 서비스에서 기대만큼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다. 경영진에선 제휴업체를 확대해 수수료 수입이라도 챙기라고 닦달이다.

    어느새 점심시간이다. 동료들을 먼저 보내고 ‘모두모여’ 카페에 접속한다. 축구광인 그가 얼마 전 가입한 유럽리그 커뮤니티인데 요즘 한창 재미를 붙이고 있다. 다른 회원들이 올린 글을 꼼꼼히 읽어보고는, 그도 나름대로 공들인 분석글을 올리곤 한다. 오늘은 내일 있을 경기 결과를 예측하는 글을 하나 올렸다. 회원들이 어떤 댓글을 달지 자못 기대된다.

    “한 대리 일은 잘해?”

    마케팅부 송민수 부장은 인사총무부 성종근 부장과 함께 점심을 먹고 있었다. 송 부장이 대답한다.

    “그럭저럭. 왜?”

    “다른 게 아니라, 업무시간에 종종 딴 짓을 좀 하는 것 같아서 말이지.”

    한국은 ‘24시간 팬옵티콘’

    경찰이 압수한 개인정보 리스트 및 CD. 검거된 일당은 수백만 건의 개인정보를 빼내 판매했다.

    “무슨 딴 짓?”

    “인터넷 카페인가를 하는 것 같더라고.”

    “젊은 직원들은 다들 하잖아.”

    “그게 너무 빈도가 잦아. 그것도 업무시간에. 주의 좀 주라고.”

    송 부장은 알았다고 말하면서 속으로 혀를 찼다. 얼마 전 회사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하면서 설치했다는 인터넷 모니터링 시스템 때문임이 분명했다. 최근 많이들 도입한다는 말에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는 이도 없었다. 직원들이 언제 어느 사이트에 접속했는지 세세히 기록할 뿐 아니라 오고 가는 e메일 가운데 특정 단어가 포함된 메시지를 골라낼 수도 있다. 아주 편리한 세상이다. 인사총무부에서는 암암리에 모니터링 결과를 인사고과에 반영한다. 물론 직원들은 모른다. 알려서 좋을 일은 아니지 않은가.

    “꼭 그리 딱딱하게 하셔야겠습니까?”

    송 부장은 식사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에 구청에 들렀다. 여권을 갱신할 때가 됐다. 문득 곧 전자여권이 도입될 거라는 뉴스가 떠올랐다. 전자여권은 얼굴과 지문정보를 넣은 스마트 카드로, 미국과 무비자협정을 추진하면서 도입이 본격적으로 탄력을 받고 있다는 기사였다. ‘지금 갱신할 때 발급되는 것은 아니겠지?’ 안 그래도 얼마 전 미국 출장 길에 로스앤젤레스 공항에서 지문을 찍고서야 입국할 수 있었다.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하지만 기분 따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지 않은가. 내가 테러범도 아닌데 당연히 협조해야지.

    같은 시각 성종근 부장이 사무실로 돌아와보니 관할 경찰서에서 자료요청 공문이 하나 와 있다. 회사 사이트에 개설돼 있는 커뮤니티에서 말다툼이 있었는데, 한 이용자가 다른 이용자를 고소했다는 것이다.

    ‘필요한 자료 : 아이디 ○○○의 인터넷 로그기록 및 접속지 IP주소’

    인터넷 로그기록이란 누가 언제 어떤 게시판을 읽고 어떤 게시물을 썼는지 등 인터넷 이용상황을 전부 나타내는 기록이다. 모든 인터넷 서버는 로그기록을 자동으로 남긴다. 또 ‘255.456.255.2’처럼 4개 그룹 숫자로 돼 있는 IP주소는 어떤 사람이 어디서 접속했는지를 알려주는 위치 정보다. 인터넷은 특성상 컴퓨터마다 주소를 갖고 있기 때문에 IP주소를 알면 해당 접속자가 어느 지역, 어느 집에서 접속했는지 알 수 있다. 경찰은 전국 PC방의 자리번호까지 실시간으로 알 수 있다고 했다. 인터넷이 익명의 공간이라는 것은 잘 모르는 사람들의 착각일 뿐이다. 고소당한 사람도 그렇게 생각하고 아무렇게나 지껄였겠지.

    사실 이런 공문은 부지기수로 날아온다. 지난해에는 전국적으로 4만건의 인터넷 자료 요청이 있었다니까. 성가시니까 빨리 처리하자. 근데 어라? 법원 허가서가 빠져 있다.

    “신민규 경위님 계십니까?”

    “전데요. 어디십니까?”

    “네, 여기 ‘왕잼나’ 게임 사이트인데요, 공문을 보내셨더군요. 그런데 법원 허가서가 빠진 것 같습니다.”

    “꼭 그렇게 딱딱하게 나오셔야겠습니까? 간단하게 하나 써서 보내주세요.”

    “그래도 저희 절차란 게 있어서….”

    “거참, 알겠습니다.”

    ‘그래도 찜찜한 건 찜찜한 거지’

    신민규 경위는 전화를 끊고 나서 담배를 한 대 물었다. 예전처럼 사람들이 고분고분하지 않다. 법원에 보낼 서류작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울화통이 터진다. 자기들이 놀고 먹을 동안 범죄자들 잡아들이겠다고 애쓰는데, 도와주진 못할망정 따지고들다니.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 모르겠다.

    더 화가 나는 것은 로그기록이 없다는 회신을 받을 때다. 이런 경우 인터넷 서버를 통째로 압수해서 들들 뒤져야 한다. 아니, 아예 그런 발뺌을 하지 못하도록 평소에 모든 인터넷 이용자의 이용기록을 모두 보관하도록 의무화해야 한다. 그중 어떤 놈이 어떤 짓을 저지를지 모르니 모두 잠재적 범죄자 아닌가. 다행히 그런 내용으로 통신비밀보호법이 개정될 예정이라고 들었다. 국회에서 빨리 통과돼야 할 텐데.

    “경위님 이거….”

    파릇파릇한 고진섭 경사다.

    “지난번에 자료 받았던 건인데요, 불기소 처분됐다고 하네요. 당사자에게 통보해줘야 하지 않을까요?”

    역시 신삥이다.

    “그걸 어떻게 다 일일이 통보해주나.”

    “그래도 법에….”

    “재주껏 해봐.”

    신 경위는 심드렁하게 대꾸하고 밖으로 나왔다. 근처에서 약속이 있다. 버스에 오르면서 1000원짜리 지폐 한 장을 요금함에 구겨 넣었다. 남들 다 쓴다는 후불제 교통카드를 그는 쓰지 않는다. 신용카드와 연결된 후불제 교통카드는 정산을 위해 이용 명세가 고스란히 카드회사 서버에 남는다. 언제 어디서 버스를 타서 어디서 지하철로 갈아탔는지 등과 같은 정보가 수년간 기록에 남는다.

    후불제 카드가 처음 도입되고 몇 년이 지났을 때의 일이다. 그는 절도사건 수사를 위해 사건 직후 인근 버스 정류장에서 카드를 사용해 승차한 사람들의 신원과 이동경로, 이후 이용 명세를 모두 뽑아보았다. ‘수사 참 편해졌다’는 생각은 잠시뿐, 낱낱이 기록된 사람들의 움직임에 등골이 오싹해졌다. 내가 들여다볼 수 있다면, 누군가 내 기록도 이렇게 들여다볼 수 있는 것 아닌가. 물론 나는 도둑이 아니라 경찰이지만.

    ‘그래도 찜찜한 건 찜찜한 거지. 최소한 카드회사 직원은 볼 수 있는 거 아냐.’

    이내 잡념을 떨쳐버린 그는 운전사 바로 뒷자리에 앉는다. 운전석 위에서 자기를 내려다보는 CCTV를 흘끗 쳐다보았다. 잠시 멍하니 들여다보는가 싶더니 금세 눈을 감는다.

    프라이버시의 새 정의

    ‘프라이버시’라는 외래어는 우리에게 익숙하면서도 여전히 낯선 개념이다. 이 단어는 다른 사람에게 보이길 원치 않는 내밀한 생활이란 어감의 ‘사생활’로 번역되곤 한다. 그렇기 때문에 ‘떳떳하다면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는 논리에 발목이 잡힐 때도 있다.

    그러나 프라이버시의 개념은 1970년대부터 크게 변화해왔다. 자신의 신체, 주거, 명예와 신용, 통신에 대한 사적 권리라는 의미를 갖고 있던 전통적 프라이버시권은, ‘개인정보에 대한 자기 결정권’이라는 의미로 확대됐다. 컴퓨터 기술의 발달로 개인정보 수집과 집적이 대규모로 이루어지면서 이로 인한 프라이버시 침해가 문제로 대두됐기 때문이다.

    귀찮은 손님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던 광고 우편물이 사실은 자신의 이름, 주소, 심지어 재산 정도와 소비 취향까지 대규모로 집적한 데이터베이스에서 기인한 것이라면, 그것은 나의 주거 공간에 대한 문제일 뿐 아니라 개인정보에 대한 문제가 된다. 나에 대한 정보를 누가 언제 수집하고 어떻게 이용하는지에 대해 내가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문제가 사람들의 관심사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세계 여러 나라는 일찍이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독립적인 감독기구와 관련 법률을 마련해왔다. 이와 같은 제도하에서 개인정보 보호는 상당히 구체적인 규범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많아지면서 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졌지만, 아직 개인정보 보호를 기술적인 ‘보안’의 문제로 국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애초에 수집돼 집적되지 않았으면 유출도 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에서 개인정보는 먼저 ‘수집’ 단계에서부터 규제돼야 한다. 개인정보를 수집하는 사람은 당사자에게 명확한 목적을 밝히고 동의를 구해야 하는 것이다. 동의 없이는 수집할 수 없다는 원칙, 수사상의 필요 등으로 국가적 수준에서 국민의 개인정보를 수집할 필요가 있을 때는 반드시 법률적 근거를 가져야 한다는 원칙이 그 핵심이다.

    그러나 이러한 원칙이 지켜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우선 기술이 매우 빠른 속도로 발달하고 있다. 법률적 근거가 마련되기 전에 CCTV, 지문인식기, 스마트카드 등 감시기술이 확대된다. 과거보다 한층 편리한 방법으로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대규모로 집적할 수 있다. 더욱이 인격적인 접촉 없이 기술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둔감해지기 십상이다.

    10년째 아무런 법률적 근거 없이 대부분의 시내버스에 CCTV가 장착됐지만 이에 대한 문제제기는 거의 없었다. 자신의 모습과 행동을 녹화하고 녹음하는 것을 개인정보에 대한 권리 문제로 인식하기보다는, ‘떳떳하면 문제될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마련이다. 몇 년 새 직장에 많이 도입된 인터넷 모니터링 시스템은 ‘근무 시간에 열심히 일하면 된다’는 논리에 하염없이 밀린다.

    결국은 권력관계의 문제

    가장 심각한 상황은 주민등록번호에 대한 것이다. 한국정보보호진흥원 산하 개인정보침해신고센터에 따르면, 2006년 한 해 동안 신고된 개인정보 침해사례는 모두 2만3433건이고 이 중 60%가 주민등록번호 도용에 대한 문제다. 주민등록번호는 전 국민별로 고유하게 하나씩, 평생 단 한 번 부여된다. 따라서 한번이라도 유출됐을 경우 그 피해가 일생 동안 계속되는 매우 민감한 개인정보다.

    다른 나라에서는 주민등록번호라는 제도 자체가 일반적이지 않을뿐더러, 비슷한 개인 식별 번호를 부여하는 경우에도 그 수집과 이용을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다. 반면 한국에서는 주민등록번호가 매우 광범위하게 도용당한다. 주민등록번호가 보호받아야 할 개인정보라는 인식이 자리잡기 전부터 수많은 곳에서 주민등록번호를 수집해왔기 때문이다.

    마케팅처럼 상업적인 이유로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이용하는 일이 늘어날수록, 수집한 개인정보에 대한 식별성과 신뢰성을 높이는 데 주민등록번호만한 식별수단은 없다. 상업적으로 주민등록번호를 이용하는 데 아무런 제재가 없으니 대부분의 업체가 이용자의 주민등록번호를 요구한다. 공공기관 또한 꼭 필요하지 않은 경우에도 습관처럼 주민등록번호를 요구해왔다. 마구 수집되고 이용돼왔으니 그에 따른 의도적, 비의도적 유출도 많을 수밖에 없었다. 이 사태를 어디서부터 바로잡아야 할까.

    다소 추상적인 논의지만, 프라이버시는 권력관계의 문제이기도 하다. 아이가 부모를 감시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부모가 아이를 감시한다. 회사는 노동자를 감시하고 국가 권력은 국민을 감시한다. 여러 가지 명분이 있지만, 보는 사람과 보여지는 사람 간에는 객관적인 권력의 불평등이 있다.

    감시사회의 아이콘처럼 거론되는 벤담의 ‘팬옵티콘’은 죄수를 감시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었다. 간수가 죄수의 행동을 통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주시하는 것이다. 팬옵티콘적인 관계는 감시하고 감시받는 권력관계를 문제 삼을 때 해소될 수 있다. 내가 누군가로부터 주시받고 있다면 이를 당연한 것으로 수용하는 게 아니라 그 관계를 고찰하는 것. 우리 사회에는 이러한 권리의식이 시급하게 요구되고 있다. 누가 왜 나를 주시하고 있는가. 나는 주시당해야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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