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작과 끝 중에 어느 쪽에 신경을 더 많이 쓸지는 물론 개인의 선택이다. 기술력도 중요하지만 주변 환경이 엄청난 영향을 끼치는 퍼트, ‘비거리’라는 단어를 끌어안고 모든 골퍼가 평생고민하는 티샷. ‘시작이 반이다’와 ‘끝이 좋으면 모든 게 좋다’, 당신은 어느 쪽에 더 끌리는가.
골프 경기가 텔레비전으로 중계되지 않던 시절에도 사람들은 스루더그린에서의 플레이에 비교적 관심이 적었다. 스루더그린은 갤러리들이 플레이어를 따라다니며 관전하기 어려운 반면 티잉그라운드와 퍼팅그린에서의 플레이는 지켜보기가 용이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무릇 세상 모든 일에서 시작과 끝이란 왠지 중간과정보다 중요하게 느껴지는 법 아니겠는가. 골프에서 티샷은 시작이요 퍼트는 마무리이니 관심이 더 가는 것도 자연스럽다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골프가 인생을 닮았다는 말은 이런 의미에서도 진실이다.
대부분의 골퍼들은 티샷을 할 때 파3홀이거나 특별한 상황을 제외하면 드라이버라는 클럽을 사용하고, 퍼팅그린에서는 퍼터를 사용한다. 정규 홀이 18홀이고 규정 타수가 72타인 통상의 골프장에서 일반적으로 드라이버의 사용횟수는 14번이고 규정 퍼트 수는 36이 된다. 따라서 산술적으로만 살피자면 골프게임에서 퍼터의 중요성은 드라이버보다 월등히 크다고 해도 지나침이 없다.
더욱이 골프 경기를 중계하는 텔레비전 카메라는 티잉그라운드 주변보다는 퍼팅그린 주변에 훨씬 더 많이 설치된다. 그래서 퍼팅그린 장면이 훨씬 자주 화면에 등장한다. 이 때문에 시청자는 골프 경기의 승패가 퍼팅그린에서 어떤 플레이를 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처럼 여기기 일쑤다.
‘드라이버샷은 쇼(show)고 퍼트는 돈이다’라는 말이 있다. 이 역시 골프 경기에서 퍼팅그린 플레이가 가장 중요하다고 암시하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기라도 하듯 윌리 파크 주니어는 “퍼트에 뛰어난 사람은 언제나 승리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구성(球聖)’으로 불리는 보비 존스는 “골프 게임 안에 있는 또 다른 게임인 퍼트는, 골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했다. 그 외에도 퍼트가 게임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높이 평가하는 사람은 부지기수다. 필자는 그중 백미는 하비 페닉의 다음과 같은 일화라고 생각한다.
미국 골프계 최고의 문필가로 알려진 허버트 워렌윈드가 어느 날 하비 페닉을 찾아가 “골프백에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 클럽을 순서대로 꼽아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벤 호겐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졌더니 그는 드라이버, 퍼터, 웨지 순이라고 답하더라”고 전했다. 하비 페닉은 “퍼터, 드라이버, 웨지 순”이라고 답하면서 그 이유를 다음처럼 설명했다.“드라이버는 정규 라운드에 많아야 14번을 사용하지만, 퍼트는 컨시드를 제외하더라도 23~25번에 이른다. 1m50cm의 퍼트도 한 타요, 270야드의 드라이버샷도 한 타다.” |
그러나 필자는 하비 페닉의 견해보다는 벤 호겐의 대답에 공감한다. 벤 호겐이 왜 퍼트보다 드라이버샷이 중요하다고 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필자는 퍼트보다는 티잉그라운드에서의 플레이가 골프게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훨씬 높다고 믿고 있다. 그 이유를 들자면 대략 아래와 같이 몇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너무 멀고 험한 산, 퍼트
우선 골프에서는 경기력 못지않게 정신적인 측면이 아주 중요하다. 그런데 플레이어의 심리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퍼트보다는 티샷의 호불호다. 퍼트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사람들은 쇼트퍼트에 실패할 경우 플레이어가 다음 홀에서도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염려한다. 물론 영향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쇼트퍼트에 실패했다고 부가타를 받는 경우는 없다. 그러나 티샷에 실패하면, 즉 티샷이 OB가 나거나 해저드에 처박히게 되면 부가타를 받는다. 그뿐이 아니다. 연속해서 세 번쯤 OB를 냈다고 상상해보라. 그 플레이어는 캐디백을 챙겨서 집에 가버리고 싶어질 것이다. 즉 쇼트퍼트의 실패가 다음 몇 홀에 영향을 끼친다면 티샷의 실패는 그날의 게임을 아예 포기하게 만들어버릴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둘째로, 퍼트는 티샷이든 페어웨이샷이든 언제나 직전의 샷에 종속된다. 온그린이 되지 않으면 퍼트의 기회조차 없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세상에서 퍼트를 가장 잘했다는 스코틀랜드의 톰 모리스 주니어와 윌리 파크 주니어, 남아프리카의 보비 로크나 미국의 벤 크렌쇼 등이 10m 거리에서 한 번의 스트로크로 홀인을 시킬 확률보다는, 엄청나게 서투른 골퍼가 10cm 거리에서 홀인시킬 확률이 훨씬 더 높다.
보기 플레이만 할 수 있는 정도의 골퍼라면 스리퍼트는 퍼트가 서툴러서라기보다는 홀컵에서 먼 거리에 온 시켰기 때문에 나오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러나 볼을 깃대에 얼마나 가까이 세울 수 있는지는 퍼트 기술이 아니라 볼을 퍼팅그린 위에 올리기 위한 샷에 달려 있고, 그 샷은 다름아닌 티샷의 성공 여부에 좌지우지된다. 그러므로 훌륭한 티샷을 날리지 못하는 경우 퍼팅그린 위에서 한 타 만에 홀아웃을 할 개연성이 그만큼 낮아지는 것은 골프게임의 구조상 필연에 가깝다.
셋째, 이론(異論)이 없지는 않지만 퍼트 기술은 습득되는 게 아니라 천부적인 것이다. 비바람, 기온, 습도는 사람의 컨디션과 미묘하게 관련돼 있어서 스코어의 행방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그래서 좋은 골퍼가 되기 위해서는 기상학도 배워야 한다. 기상학에 대한 지식은 골프 가운데 특히 퍼트에 효용성이 있다. 퍼팅그린은 사람의 컨디션보다 기후 변화에 훨씬 더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또한 퍼트는 퍼팅그린의 언듈레이션(undulation)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퍼트를 잘하려면 잔디의 습성은 물론 지리학이나 지질학에도 조예가 있어야 한다.
골프장에 가면 확실히 어떤 사람은 본능적으로 브레이크를 잘 읽어 퍼팅라인을 귀신같이 찾아낸다. 이런 현상을 통찰한 보비 로크는 “퍼트에는 단 하나의 요령이 있다. 지나치게 노리지 않는 것이다. 직감에 따라 정해진 라인을 중시해서 대체적인 방향으로 치면 족하다. 똑바른 라인은 의외로 많다”고 가르쳤다. 스코틀랜드 골프 속담에 “퍼트에는 방법(method)도 없고, 정해진 형태(style)도 없다”는 말이 있다. 해리 바든 역시 “퍼트에는 골프의 다른 부문과 달리 매우 개인적인 요소가 있다. 따라서 그 방법도 각자의 개성을 살려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물론 퍼트를 숙달하려면 훈련이 필요하다. 그 훈련에 퍼트 기술의 습득이란 측면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당사자의 의도와 달리 퍼트 훈련은 직접적인 경기력 향상 효과보다는 집중력 향상 같은 심리적 단련에 더 큰 효과가 있다.
지금까지 설명한 바와 같이 퍼트는 기술력에 좌우되기보다는, 퍼팅그린의 언듈레이션이나 브레이크 등 퍼팅라인에 영향을 주는 제반 요소나 결, 빠르기 같은 잔디의 속성, 온도 습도 바람 등 경기 외적인 측면에 좌우되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
세기의 빅 매치
그래서 필자는,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골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퍼트가 아니라 티샷이라고 믿는다. 연습장에 가서도 드라이버샷 연습을 가장 많이 한다. 대부분의 레슨프로들이 스코어는 쇼트게임에 달려 있다고 강조하면서 어프로치샷이나 퍼트 연습을 강조하지만, 필자는 그 말을 잘 믿지 않는다. 이러한 믿음에는 다음과 같은 역사적인 사건도 영향을 끼쳤다. 독자는 어떻게 느낄지 궁금하다.
윌리 파크 주니어와 해리 바든 사이에 매치플레이가 벌어진 적이 있다. 당시 파크와 바든은 각각 두 번씩이나 전영오픈에서 우승한 경력이 있었다. 파크는 퍼트의 귀재로, 바든은 드라이버의 귀재로 불리던 시절이었다. 이 때문에 영국의 모든 신문이 ‘드라이버 대 퍼터의 대결(Driver vs. Putter Match)’라며 이 경기를 대대적으로 보도했고, 골퍼들의 엄청난 관심을 끌었다.
경기에는 100파운드의 상금이 걸렸다. 파크의 홈코스인 노스버위크와 바든의 홈코스인 칸튼에서 이틀에 걸쳐서 각각 36홀씩 총 72홀을 도는 매치플레이였다(당시 최고 플레이어들끼리의 대결에서는 공평을 기하기 위해 쌍방의 홈코스를 모두 사용하는 관습이 있었다. 이를 골프용어로 ‘home · home match’라고 한다). 파크는 스코틀랜드 출신이고 바든은 잉글랜드 출신이라 경기에는 일종의 국가 대항전 양상도 엉켜 있었다.
경기는 1898년 7월15일 노스버위크에서 열렸다. 역사적인 대결을 보기 위해 개최지인 스코틀랜드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멀리 잉글랜드에서조차 1만명이 넘는 갤러리가 밀어닥쳤다. 이 때문에 페어웨이 양쪽에는 300야드에 걸쳐 줄이 쳐지고 14명의 경관이 경비를 섰으며 수십 명의 자원봉사자가 갤러리를 정리했다. 또 각 홀의 승부를 모든 갤러리에게 알리기 위해 파크 측에는 빨갛게 P자를 적은 하얀 깃발을, 바든 측에는 하얗게 V자가 드러나는 빨간 깃발을 각각 준비했다. 파크가 이기면 하얀 깃발을, 바든이 이기면 빨간 깃발을 내걸고, 비기는 경우에는 두 깃발을 다 거는 식이었다.
경기는 처음부터 문자 그대로 불꽃 튀는 접전이었다. 바든의 드라이버는 마치 골프 최고의 표어인 ‘Far and Sure’의 표본처럼 정확하기 이를 데 없었고 매번 파크를 압도했다. 반면 그린에서는 파크의 절묘한 퍼터가 계속 바든을 저지했다. 서로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오전 18홀은 올스퀘어로 끝났다. 오후에도 역시 뜨거운 접전이 계속 이어져서 14번 홀까지 올스퀘어가 됐지만, 드디어 15번홀과 16번홀에서 바든이 완벽한 드라이버로 승리함으로써 노스버위크에서 치른 제1전은 바든의 2up으로 종결됐다. 이날의 제1전이 얼마나 접전이었는지에 대해서 바든은 자신의 회고록에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내가 2up이 된 것은 내 일생일대 최고의 플레이 덕분이었다.”
경기를 관전했던 골프평론가 호레스 허치슨은 이렇게 적었다.
“파크의 퍼트는 확실히 절묘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러나 파크는 그 절묘한 퍼트로 거의 모든 홀에서 겨우 비기는 데 그칠 수밖에 없었다.”
제2전은 1898년 7월20일 바든의 홈코스인 칸튼에서 열렸다. 이날도 제1전에 못지않은 많은 갤러리가 모여들었다. 해변 코스인 노스버위크와 달리 칸튼은 전형적인 인랜드(inland) 코스였기 때문에 강풍이 없는 대신 커다란 기복이 있어 적응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곳이었다. 인랜드 코스에 익숙하지 않은 파크는 그만의 독특한 스로가 걸려서 탄도가 낮아 런이 많은 드라이버가 자주 전면의 벙커에 걸리곤 했다. 반면 바든은 높은 탄도로 캐리가 많은 드라아버샷을 구사해 멋지게 벙커를 넘겨가며 절호의 위치에 볼을 가져다놓곤 했다. 이 때문에 그린에도 이르기 전에 이미 거의 승부가 결정돼버리는 경우가 허다했다.
파크의 절묘한 퍼트가 도무지 찬스를 잡지 못한 채 버둥대는 동안, 바든은 초반 세 홀에서 연속 승리함으로써 5up으로 리드를 잡아 나가기 시작했다. 그 후로도 바든은 마치 기계처럼 정확하게 드라이버샷을 날려 착실하게 파크를 리드했고, 오후에 8번 홀에 이르렀을 때는 10홀이 남았지만 이미 11홀이라는 큰 차이로 앞서(11 and 10) 승부를 중도에 끝낼 수 있었다.
정말 소중한 것을 알아보는 안목
그 외에도 티잉그라운드 게임이 퍼팅그린 위에서보다 중요함을 입증하는 일은 여러 가지가 있다. 골퍼들이 드라이버를 자주 바꾸는 것도 그 한 가지로 들 수 있다. 골프만큼 다종다양한 소도구가 동원되는 스포츠는 드물다. 볼부터 시작해서 캐디백, 헤드커버에 그린포크, 볼마크까지 수많은 필수품이 넘쳐난다. 게다가 골퍼들은 윈드브레이커나 스웨터 등 불순한 일기에 대비한 각종 옷가지까지 코스에 가지고 나간다.
이런 도구들 가운데에서도 최고의 위치를 차지하는 건 단연 클럽이다. 특히 비거리에 대한 골퍼들의 탐욕은 그들로 하여금 평생 드라이버 선택에 시달리게 만든다. 자기에게 맞는 궁극의 드라이버를 찾고자 매달리는 것이야말로 골퍼로서 한몫을 하는 것이고, 나아가 골프는 자기에게 맞는 한 자루의 이상형 드라이버를 발견하려는 긴 여정이라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골퍼들은 드라이버에 골몰한다. 평생 한 자루의 퍼터를 사용한 골퍼는 있지만 한 자루의 드라이버만 사용한 골퍼는 찾아보기 어렵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절대로 옷을 제대로 입을 수 없다. 티샷은 첫 단추다. 잘못 되면 아무리 퍼트의 귀재라 해도 좋은 성적을 낼 수 없다. 그런데도 많은 골퍼는 텔레비전 카메라나 대형 경기 갤러리석 배치, 레슨프로 등 주위 사람들의 말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으며 골프의 진면목을 놓치곤 하는 것이다.
볼록거울이나 오목거울로 사물을 보면서 그 실상을 알아차리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카메라로 피사체를 클로즈업하면 그 사물의 진상이 왜곡되는 일이 생기는 것도 마찬가지 원리다. 필자는 그런 거울을 대할 때마다 언제나 다음과 같은 말을 떠올린다.
‘진실을 진실로 알고 거짓을 거짓으로 알면 비로소 참 진리를 아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정말 소중한 것을 소중하게 알아보는 안목을 갖도록 유의해야 한다. 인생에서 진리라면 골프에서도 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