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7월호

생활의 발견, 남녀의 근본적인 차이

  • 김현미 동아일보 출판팀 차장 khmzip@donga.com

    입력2007-07-04 15: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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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활의 발견, 남녀의 근본적인 차이

    ‘그 남자의 뇌, 그 여자의 뇌’ 사이먼 배런코언 지음, 김혜리·이승복 옮김, 바다출판사

    첫딸을 낳았을 때 남편의 첫 반응은 “어떻게 놀아줘야 하지?”였다. 아들만 셋인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나 구슬치기, 딱지치기, 야구, 축구, 농구, 커서는 골프까지 주로 몸으로 놀아온 그가, 이 조그만 계집애와 앞으로 무엇을 하고 놀아야 할지 막막한 모양이었다. 어쨌든 한 가지 바람은 분명했다. 씩씩한 딸로 키우고 싶다! 하지만 아빠의 기대와 달리 딸은 아주 여자답게 컸다.

    한동안 집안에 바비 인형 세트, 바비 그림책, 바비 DVD, 바비가 그려진 옷과 신발, 시계가 넘쳐나더니 언제부턴가 헬로 키티로 옮아갔다. 부모가 아무리 연두, 파랑으로 유인해도 아이의 최종선택은 언제나 분홍색이었다. 다행히 ‘분홍 원피스 공주’도 유치원 졸업할 때쯤 되니 분홍에 질려버렸다.

    분홍 원피스 공주, 운동 마니아 아빠

    그 사이 남편은 온갖 종류의 공과 미니 농구대, 야구 세트, 자동차, 기차, 블록을 실어 나르며 딸의 관심을 끌어보려 했으나 소용없었다. 장난감 가게에 가면 아이는 인형 코너 앞에서, 남편은 블록 코너에서 서로를 불러댔다. 게다가 아이는 심각한 ‘몸치’였다. 공을 차보라고 주면 헛발질이요, 던진 공은 1m도 못 가 땅에 떨어졌다. 던지는 게 아니라 바닥에 패대기치는 수준이었다. 달렸다 하면 엎어지고, 인라인스케이트를 사줬더니 일어서지도 못해서 몇 년 동안 창고에 처박아둬야 했으며, 줄넘기 박자를 배우는 데 꼬박 열흘이 걸렸다. 그러니 휴일이면 아빠가 아이와 함께 놀아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울리는 일이 더 많다.

    하루는 남편이 이렇게 털어놓았다.



    “딸이라도 딸처럼 기르고 싶지 않았는데, 아이가 장난감 가게에서 인형만 고르니 화가 나더라. 그래서 일부러 장난감 칼이나 공을 사주며 사내아이처럼 놀아주려고 해도 애가 전혀 관심이 없었어. 정말 여자아이들의 세계를 이해하기 힘들어.”

    딸 가진 아빠들만 이런 고민을 할까. 몇 년 전 일하는 엄마 11명이 함께 쓴 ‘엄마 없어서 슬펐니’(이프)에서 본, 딸에게 첫 장난감으로 자동차를 골라주고 세 살이 될 때까지 곰인형은 사줘도 절대 날씬한 공주인형 따위는 사주지 않았다는 엄마 이야기가 생각난다. 양성평등주의자인 엄마는 공주인형이 여성성을 강화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인형을 사주는 대신 합기도를 가르치며 딸이 씩씩하게 자라주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웬걸? 점점 씩씩한 쪽과는 거리가 먼 소극적이고 소심한 아이가 됐다. 타고난 심성이 여려터진 것이다. 처음엔 못마땅했지만 어느 순간 엄마도 아이가 타고난 성품을 강점으로 잘 발달시켜주는 게 좋다고 생각할 만큼 성숙한다.

    ‘나’는 남자 말, ‘우리’는 여자 말

    왜 똑같은 밥을 먹이고 똑같은 환경에서 키우는데 딸은 딸이 되고, 아들은 아들이 되는 걸까?

    1960년대 이후 모든 남녀 차이는 사회화의 결과라는 주장이 강세였다. 남녀의 심리 차이는 각 성(性)에 작용하는 서로 다른 문화적 힘을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언급을 하는 것 자체가 남녀 차별로 여겨졌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여성이 남성보다 열등한 생물’이라는 주장을 진리로 받아들였던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변화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둘 다 틀렸다. 어떤 분야에서는 여성이 남성보다 우월하고, 또 어떤 분야에서는 남성이 여성을 능가한다. 특정 영역에서 상대적 강점이 있을 뿐 어느 쪽이 일방적으로 우월하진 않다. 다만 남녀 간에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케임브리지대 심리학과의 배런코언 교수는 이 차이가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궁금했다. 왜 남자들은 전화로 수다를 떨지 않고 용건만 말할까? 왜 남자들은 컴퓨터 게임이나 새로운 기계 장치, 최근 있었던 축구 경기 점수에 열광할까? 왜 여자아이들은 인형놀이와 애완동물에 열중하고, 몇 시간씩 여자 친구와 전화 수다를 떨까? 어떻게 여자들은 처음 만난 상대에게도 “옷이 정말 잘 어울려요. 어디서 사셨어요?” 하며 친밀하게 다가가는 걸까?

    남자들이 자동차나 오토바이 정비, 경비행기 운전, 항해, 새의 종류나 기차 번호 알아맞히기, 수학, 컴퓨터 게임이나 사진 관련 일로 취미생활을 할 때 여자들은 친구들과 식사를 하며 인간관계에 대해 조언하거나 다른 사람 또는 애완동물을 보살피거나 전화로 도움을 청하는 익명의 사람과 상담하는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이런 차이는 회사 경영 방식에서도 나타난다. 여자 관리자는 협의하고 포용하고자 노력하는 반면, 남자 관리자는 지시적이고 과제 중심적인 경우가 많다. 또 여자들은 일을 협업으로 보고 ‘우리’라는 말을 자주 쓰지만 남자들은 다른 사람이 한 역할을 덜 인정하기 때문에 ‘나’라는 단어를 많이 쓴다. 도대체 이 차이가 어디서 나오느냐는 말이다.

    ‘그 남자의 뇌, 그 여자의 뇌’(바다출판사)의 원제는 ‘The Essential Difference’다. 배런코언 교수는 이 책에서 생물학적 측면에서 남녀의 근본적인 차이를 설명했다. 배런코언의 결론은 오랜 진화 과정에서 여자의 뇌는 ‘공감하기(empathizing)’에 더 적합하게 프로그래밍되고, 남자의 뇌는 ‘체계화하기(systemizing)’에 더 적합하게 됐다는 것이다.

    공감하기란 다른 사람의 감정과 생각을 이해하고 적절한 정서로 반응하려는 동기다. 즉 상대의 마음을 읽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사람의 처지에서 이해하고 정서적으로 연결되는 것을 뜻한다. 반면 체계화하기는 체계를 분석하고, 탐색하고, 구성하고 싶어하는 욕구다. 체계는 자동차, 동물, 식물처럼 구체적인 대상에 관한 것일 수도 있고, 수학이나 물리학처럼 논리적인 것일 수도 있으며, 정치·경제·법처럼 사회적인 것일 수도 있다. 이런 체계화는 사회적으로 유리할 것 같지만 정작 사람들끼리 상호 작용하는 데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배런코언 교수는 공감하기와 체계화하기가 단지 사회화의 결과물이 아님을 입증하기 위해 아기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 주목했다. 태어난 지 하루가 지난 아기 100명에게 웃는 여자 얼굴과 그 얼굴을 기하학적으로 재배치해 전혀 얼굴처럼 보이지 않는 모빌을 보여주고 아기가 어느 쪽을 더 오래 보는지를 관찰하면 여자아이들이 사람의 얼굴에 더 반응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비슷한 실험에서 생후 12개월 된 남자아이는 여자아이보다 자동차 그림을 더 오래 쳐다본다.

    공감맹과 체계맹

    흔히 여자는 언어 능력이 뛰어나다고 하는데 이것도 공감하기 능력으로 설명할 수 있다. 배런코언 교수는 여자들이 (남자에 비해) 더욱 수준 높은 언어체계를 갖추는 쪽으로 진화해왔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언어를 더욱 빠르고 재치 있게 공감적, 책략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여자들에게 생존의 문제였던 것이다. 부부싸움을 하더라도 말로는 아내를 당할 수 없어서 아예 입을 다물어버리는 남편들, 다 이유가 있었다. 그렇다고 이 세상 남자들이 기죽을 필요는 없다. 체계화를 잘 하는 남자들은 구름 모양을 보고 곧 폭풍이 올 것을 예측하고, 요동치는 주식시장의 변화를 잘 알아채서 언제 사고팔지를 판단한다. 나아가 여러 사람으로 구성된 집단을 하나의 체계로 보고 주어진 목표에 맞게 이끌어갈 줄 안다.

    배런코언 교수는 자폐증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남자아이가 여자아이에 비해 자폐증일 확률이 3배 이상 높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남녀의 근본적인 차이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는 자폐증은 사회적 관계가 손상돼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고 물건처럼 대하는 장애인데, 공감하기는 덜 발달해 체계화하기는 지나치게 발달하여 ‘마음맹’이 된 극단적인 남자의 뇌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반대로 공감 과잉에 체계맹인 극단적인 여자의 뇌는 아직까지 자폐증처럼 규정할 만한 장애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일종의 장애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개인적으로 ‘그 남자의 뇌, 그 여자의 뇌’처럼 뇌과학이나 심리학 분야, 이에 기초를 둔 조직이론 등에 관한 책을 즐겨 읽는 편이다. 그러나 재미있으니 읽어보라고 아무리 권해도 남편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대신 카메라 관련 인터넷 사이트를 들락거리거나 언젠가 꼭 사겠다고 다짐하며 ‘요트’ 화보집 들여다보기를 더 좋아한다. 막 학교에서 돌아온 딸은 “엄마, 우리 반에서 말로 나를 당할 사람이 없어”라고 자랑한다. 남자의 뇌, 여자의 뇌, 공감하기와 체계화하기를 실감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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