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연예인 X파일이 유출된 당일 한 선배 문화평론가에게서 연락을 받았다. 연예기획사와 제일기획에서 어떤 조치를 취하면 좋겠느냐는 것이었다. 필자는 간단하게 답했다.
“현재 X파일은 포털의 뉴스 댓글을 통해 광범위하게 유포되고 있으므로, 연예기획사와 제일기획에서 포털에 공문을 보내 댓글을 일시적으로 차단할 것을 요청하십시오.”
그러나 당일 저녁때가 지나서도, 파일은 댓글을 통해 계속 유포되고 있었다. 필자는 할 수 없이 직접 포털사에 연락을 취했다. “대체 왜 파일 유포를 차단하지 않습니까?”라고 묻자 포털사 측은 놀랍게도 “네티즌들의 자유로운 소통을 인위적으로 막을 수는 없습니다”라는 답을 되풀이했다.
사건이 대충 마무리된 후 한 방송사의 시사 프로그램에서는 당시 포털사가 연예인 X파일 유포로 정상 클릭수보다 30% 많은 추가 클릭을 얻었다는 결과를 보도했다. 포털사가 적극적으로 파일 유포를 막지 않으면서, 그들은 추가 클릭과 이에 따른 광고수입 등 사실상의 부당 이득을 챙긴 것이다. 그리고 이에 대해 법적, 도의적 책임을 전혀 지지 않았다.
연예인 X파일 사건 때 필자는 놀라운 일을 여러 차례 겪었다. 우선 X파일 유포에 대해 포털의 책임을 묻는 내용의 칼럼을 ‘한겨레’와 ‘경향신문’에 기고했지만, 이 칼럼이 포털로 송고됐을 때 핫이슈는 물론 주요 면에 배치되지 않은 걸 알게 됐다. 문화평론가 김지룡씨의 ‘동아일보’ 칼럼, 경원대 오미영 교수의 ‘경향신문’ 칼럼 역시 마찬가지였다. 더구나 포털사는 연예인 X파일의 유포책임에 대해 네티즌 설문조사에 나섰으나, 연예기획사, 제일기획 등만 항목에 올려놓고, 정작 가장 큰 책임이 있고 가장 큰 수익을 얻은 포털사는 배제했다.
또한 한 문화평론가는 인터넷신문에 역시 포털의 책임을 거론하는 칼럼을 기고했으나, 담당 편집자로부터 “포털과 거래하는 우리 매체 처지에서 포털을 비판하는 글은 부담스럽다”라는 통보를 받고 삭제당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즉 연예인 X파일 사건에서 포털이 책임을 비켜간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포털사가 뉴스 편집권력을 동원해 비판 여론을 차단한 것이다.
이상한 일은 이뿐이 아니었다. 포털사가 비판 여론을 막고 있어 정상적인 여론을 형성할 수 없다고 느낀 필자는 대표적인 언론개혁단체인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과 언론비평지 ‘미디어오늘’에 도움을 요청했다. 평소에 늘 대자본의 언론 장악 문제를 비판하던 이들이기에 당연히 협조하리라 예상했다. 그러나 이들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행태를 보였다.
민언련은 연예인 X파일 토론회 주 발제문에서 포털의 책임을 전혀 거론하지 않았다. 이날 토론회를 취재한 ‘미디어오늘’은 포털을 비판한 문화평론가 이문원씨의 발언과 실명을 누락했다. 심지어 토론회 사진에서조차 포털 비판자의 모습을 삭제했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민언련과 ‘미디어오늘’은 현재까지도 포털에 대한 규제 입법을 반대하고 있으며, 아무런 대안도 제시하지 않고 있다. 이들이 신문에 대해서는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규제를 다 동원한 것에 비한다면 논리적으로 전혀 성립할 수 없는 행태였다.
연예인 X파일 사건에서 연예인들의 법적 대리인이던 법무법인 한결 역시 석연치 않은 태도를 보여주었다. 한결의 담당 변호사 등은 제일기획의 책임만을 묻고 포털에 대해서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필자는 한결은 물론 담당 변호사들의 소속단체인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등에 여러 차례 이의를 제기했으나, 결국 그들은 ‘뉴미디어인 포털에 법적 조치를 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태도를 고수했다.
올드미디어로부터 피해를 보면 소송을 하지만 뉴미디어에 피해를 당하면 그냥 넘어가라는 뜻인가? 이렇게 포털의 법적 책임을 무마한 담당 변호사는 현재 네이버 측의 제안을 받고 ‘이용자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5년 연예인 X파일 사건 당시에 민언련, ‘미디어오늘’, 민변 등 이른바 진보개혁진영이 보인 포털 옹호적 태도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5월18일 법원은 포털의 뉴스와 댓글, 검색 등으로 명예훼손 피해를 본 김모씨의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포털이 뉴스를 자의적으로 배치하고 있다면 마땅히 그에 대한 책임을 지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겨레’를 제외한 모든 신문사와 방송사에서는 포털을 비판하고 나섰다. 유독 ‘한겨레’만이 이해할 수 없는 사설과 칼럼을 게재했다. ‘한겨레’는 5월21일자 사설에서 “포털 책임만 강조하다 보면 포털이 자유로운 책임과 비판을 가로막는 괴물이 될 것”이라며 강력한 규제를 사실상 반대하고 나섰다.
필자는 이에 대해 ‘한겨레’의 토론지면 ‘왜냐면’에 “자산 가치만 8조원이 넘는 거대 자본 포털에서 자유로운 토론이 가능할 것이란 발상이 어떻게 나왔는가. 이미 포털은 규제 없이도 포털에 불리한 뉴스는 철저히 통제하고 있다는 점을 한겨레만 모른단 말인가”라며 반론 글을 투고했다. 그러나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되지 않았다. ‘한겨레’의 사설 내용은 민언련의 논평에도 그대로 이어져, 역시 포털 규제에 소극적인 기존 민언련의 포털관(觀)을 반복했다.
‘한겨레’ 측에서는 사설로도 만족 못했는지, 그 다음날 민언련 정책위원이자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김재영 교수의 칼럼을 실었다. 그는 “창발적 속성을 지닌 인터넷 세계에서는 법과 규제가 능사가 아니다”라며 “거대 포털에 기대어 자사의 콘텐츠를 함부로 유통시킨 언론사들”에 대한 책임을 먼저 물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매일같이 거대 신문사가 신문유통시장을 다 장악한다고 비판하던 이들이 어째서 거대 포털의 뉴스 유통 장악에 대해서는 그저 언론사 책임만을 묻는단 말인가. 필자가 연예인 X파일 사건 이후 2년 반에 걸쳐 포털 문제를 제기하면서 아직까지 풀지 못하고 있는 미스터리는 바로, 왜 그간 거대 언론과 자본에 대해 싸움을 제기했던 진보개혁진영이 포털에 대해서만큼은 논리와 근거도 없이 규제를 반대하느냐였다.
필자는 지난 2년 반 동안 포털과 관련해 수많은 사람을 만났다. 물론 개중에는 진보매체의 언론인이나 언론운동가들도 포함된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왜 진보개혁진영에서 포털을 옹호하느냐”는 질문에 대해서 제대로 된 답을 들은 바 없다. 필자가 사석에서 다그쳐서 물어보면 대개 꿀 먹은 벙어리마냥 침묵을 지킨다. 할 수 없이 필자가 유추해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노무현 정권과의 유착이다. 포털은 정보통신부와 문화관광부의 통제를 받는다. 시행령 몇 가지만 개정해도 포털은 사업적 치명타를 받을 수 있을 만큼 덩치에 비해 약점이 많은 사업체다. 이런 거대 기업이 공정한 언론행위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실제로 노무현 정권은 유가신문은 죽이고, 포털과 지하철 무료신문에 대해서는 단 한 가지의 언론행위도 규제하지 않는 이중적 정책을 펴왔다. 포털과 지하철 무료신문 시장이 득세한다면 다음 대선에서 얼마든지 여론을 장악할 수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듯하다. 진보개혁진영이 이러한 노무현 정권의 대선 전략과 코드를 맞추고 있을 개연성이 있다는 것이다.
둘째, 아직까지 인터넷이 자본과 권력이 개입할 수 없는 순수한 공간이라고 믿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정권과의 유착이 전혀 없다고 평가할 만한 진보네트워크라는 단체가 그렇다. 이들은 포털을 규제하면 이것이 마치 네티즌의 자유로운 소통을 막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 걱정하고 있다.
그러나 포털은 존재 자체가 상업적이라는 점을 이들은 잊고 있다. 포털에서 블로그 하나 만들어 글을 써도 클릭수가 돈으로 환산된다. 그래서 포털에서 명예훼손성 글을 쓴 네티즌은 바로 포털과 경찰의 협조로 처벌받고 있다. 포털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주는 매체가 아니라, 표현의 자유를 빙자해 네티즌들에 과격한 글을 유도, 클릭수로 돈을 버는 매체이기 때문이다. 포털에서 표현의 자유를 누리겠다는 발상은 대기업 본관에서 집회의 자유를 누리겠다는 것과 똑같은 발상이다.
일반적으로 보수적 관점을 가진 사람들은 규제 자체를 부정적으로 본다. 포털 문제에 대해 한나라당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지만, 보수적 자유주의의 관점으로는 포털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대표적인 사람이 단국대 영상학부의 손태규 교수라고 생각한다. 손 교수는 여의도연구소 주초 토론회에서 포털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다 짚으면서도 “신문법 등 법으로 포털을 규제하는 것은 악법으로 악을 해결하겠다는 발상이다. 나는 범시민사회의 힘으로 포털을 정화하는 데 노력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즉 신문이든 방송이든 포털이든 법으로 매체를 규제하는 것은 모두 반대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러면 결국 문제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다. 포털 문제는 거대 자본을 규제해온 진보의 원칙과 논리로 첫 단추를 꿰어야 하고, 이에 대해서 보수적 자유주의자들이 언론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동의해주면서 마무리돼야 한다. 그러나 신문과 대기업에 대해서는 ‘묻지마 규제’를 주장하면서 포털만큼은 규제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일련의 이상한 진보세력들과 공론장에서 어떻게 합의할 수 있겠는가.
법원의 포털 패소 판결 직후인 5월21일, 인터넷 언론계에서는 의미 있는 일이 벌어졌다. 진보와 개혁적 방향성을 제시해온 인터넷기자협회(회장 이준희)와 중도 및 보수매체들이 주축이 된 인터넷미디어협회(회장 지민호)가 포털 관련 공동성명을 발표한 것이다. 이들 협회는 “포털이 언론의 책임을 다할 생각이 없다면 뉴스의 편집 및 배치 등 언론 기능을 포기하라”고 촉구했다. 또한 포털 문제 해결을 위해 범시민적 사회운동에 나설 것도 천명했다. 가칭 인터넷경제정의연대를 출범시키겠다는 것이다.
두 협회는 신문법 개정안과 검색서비스사업자법 등 입법안을 준비하면서 참여 단체를 점차 늘려가는 등 포털 대응의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물론 이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다. 우선 양 진영의 이념적 정치적 대립의 골이 너무나 깊다. 현재까지 포털 관련 입법을 활발히 추진하는 쪽은 한나라당이다. 두 협회가 추진하는 법안 역시 한나라당의 김영선 의원이 협조하고 있다. 한나라당의 언론정책을 비판해온 진보단체들이 한나라당과 함께 입법안을 추진하기란 어색한 일이다. 또한 한나라당에 대한 불신도 깊다. 과연 한나라당이 강력한 포털 규제법안을 입법화할 의지가 있느냐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의 한나라당의 움직임에서 포털을 비판하면서 오히려 포털로부터 당근이라도 얻어내겠다는 자세가 자주 엿보이고 있다. 그렇다고 민주노동당, 열린우리당이 포털 문제 해결에 협조하고 있지도 않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진보 논객’으로 분류되다가, 포털을 비판하면서 어느새 ‘보수 논객’으로 분류되고 있다. 필자의 소속 협회 역시 인터넷기자협회가 아니라 인터넷미디어협회다. 역시 이상한 일이다. 거대 자본 포털을 비판한다는 이유 하나로 왜 나의 이념적 성향까지 바뀌었단 말인가.
원칙만으로 따지자면 손쉽게 해결할 수 있는 일이다. 그간 진보진영 측이 주장한 대로, 거대 자본의 언론권력 장악이라는 관점만 취한다면 포털에 대한 규제는 당연한 일이다. 언론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자는 보수의 관점이라 하더라도 타협의 여지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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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도 아니라는 포털이 언론권력을 누리는 이 상황이야말로 언론의 자유에 가장 큰 위협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두 가지 관점의 합의 없이는 실질적으로 포털 문제 해결은 불가능하다. 다시 말하자면, 진보와 보수가 대립해 갈등을 키워 나가도록 유인한 노무현 정권의 언론정책에 언론계 전체가 당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틈을 포털이 치고 들어와 언론을 장악해버렸다. 포털 문제를 해결해 인터넷시장과 언론시장을 회복시키겠다는 인터넷경제정의연대의 출범, 바로 포털 개혁 이상의 의미를 지닌 움직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