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양식의 옛 건축물이 즐비한 체코의 고도(古都) 체스키크룸로프.
신기한 마술을 펼치는 아이젠하임(에드워드 노튼)과 황태자의 약혼녀 소피(제시카 비엘)는 어린 시절 우연한 기회에 신분의 벽을 극복하고 사랑을 싹틔운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성인이 되어 다시 만난 이들이 아스라한 옛사랑을 재확인하는 장면을 촬영한 곳이 바로 체스키크룸로프다. 도입부에서 소피가 말을 타고 고즈넉한 골목을 빠져나가는 장면에 등장하는 자그마한 샛강과 사각형 돌이 촘촘히 박혀 있는 도로, 아치 사이로 보이는 화려한 벽화로 장식된 원형 첨탑, 아담한 석조건물이 늘어선 신작로가 모두 이 고도의 풍경이다. 영화 속 장면들이 말해주듯, 이 거리를 찾는 방문객은 누구나 시계를 19세기로 돌려놓아야 한다.
체스키크룸로프를 찾는 방문객들이 가장 먼저 달려가는 궁전에서는 어린 아이젠하임이 귀족의 딸 소피에게 카드놀이를 가르쳐주던 장면이 촬영됐다. 소피가 집사와 함께 이 궁전을 향해 마차를 타고 가는 장면도 등장한다. 13세기 중엽 보헤미아의 대표적인 부호 비테크가(家)에 의해 축성된 궁전은 뒤를 이어 집권한 로젬베르크 가문에서 증축해 75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그 형태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로코코 양식의 부속건물과 아담한 정원을 갖추고 있는 명실공히 남부 보헤미아를 상징하는 명소로, 원통 모양의 탑과 회랑, 화폐를 만들던 조폐창, 주요 행사가 열리던 넓은 무도회장, 극장과 동물원 등이 들어서 있다.
프라하의 명소인 옛 시청 골목을 시민들과 방문객들이 걷고 있다.(좌) 체스키크룸로프의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하는 시민들.(우)
영화에 스쳐 지나가듯 등장하는 오스트리아 빈의 왕궁.
그 가운데서도 도시를 내려다보는 원통형 첨탑은 ‘첨탑의 도시’라고 하는 프라하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모양을 자랑한다. 특히 탑에 그려진 벽화는 다른 말이 필요 없는 장관이다. 궁전과 부속건물도 하나같이 17~18세기에 그려진 화려하고 섬세한 벽화로 장식돼 있는데, 300년이 지난 지금도 완벽하게 아름답다.
영화에 등장하는 극장 주변 신작로 장면은 프라하 소지구에서 촬영됐지만 나머지 부분은 체스키크룸로프 성곽 아래의 라트란 지역에서 찍었다. 궁전에서 나무다리를 건너면 만날 수 있는 라트란 지역은 강에 둘러싸여 있는데, 골목을 따라 걷다 보면 영화 속으로 들어온 듯싶을 정도로 고풍스럽다. 낭만적인 분위기와 옛 정취가 공존하는, 워낙 매혹적인 곳이다 보니 동유럽을 찾는 방문객의 발길이 연중 끊이지 않는다.
영화에 등장하지는 않지만 라트란 지역은 위풍당당한 외관을 자랑하는 종교 건축물과 시청 광장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1309년에 세워진 성 비토 성당은, 하늘을 찌를 듯한 늘씬한 몸매를 자랑하는 후기 고딕 양식의 외관과 르네상스나 바로크 양식으로 꾸며진 내부가 독특하게 구별된다. 한 건물에서 여러 양식을 엿볼 수 있는 이 지역의 대표적인 종교 건축물이다. 과거 여러 지역에서 온 상인과 주민들이 물건을 거래하곤 했던 광장은 현재 주요 관청과 관광안내소, 호텔 등이 자리잡고 있다. 고개를 돌릴 때마다 저마다 다른 모양새의 건물을 만날 수 있어 중세 건축물을 감상하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다.
동화 속 풍경이 연상될 정도로 아름다운 체스키크룸로프 시청 광장.
프라하의 고풍스러운 거리를 찾은 젊은 관광객들. 체스키크룸로프 골목을 산책하며 관광을 즐기는 방문객들.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공간에서는 일상생활도 작품이 된다. 거리에서 한가한 시간을 보내는 시민들.(왼쪽부터 차례로)
프라하 몰다우 강변의 카페.(좌) 체스키크룸로프의 블타바 강에는 뱃놀이를 즐기는 시민과 관광객이 많다.(우)
체스키크룸로프와 함께 영화가 촬영된 주요 도시는 프라하다. 신기한 마술로 관람객을 사로잡던 아이젠하임이 소피와 재회한 극장, 아이젠하임과 매니저가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던 거리, 낙엽이 쌓인 길과 페르난디드 대공의 저택 등이 프라하에 자리잡고 있다. 프라하성 안의 일부와 비투스 성당, 소지구 등 아이젠하임과 소피가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옛사랑을 회상하는 장면들은 모두 프라하 구도심에서 촬영됐다. 소지구를 중심으로 주변에 흩어져 있는 골목과 고풍스러운 건축물은 ‘일루셔니스트’ 외에도 여러 영화의 배경이 된 곳으로 언제나 마니아들로 북적인다.
한편 황태자의 집을 배경으로 하는 장면은 페르난디드 대공의 저택에서 촬영된 것이다.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돼 있는 까닭에 내부를 볼 수는 없지만, 아이젠하임과 주민들이 소피를 찾아 걸었던 낙엽 쌓인 숲과 샛강 주변은 자유롭게 산책할 수 있다. 아침 안개로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 숲길을 걷노라면 21세기는 어느새 저만치 멀리 달아나버린다.
영화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거점지역인 오스트리아 빈을 배경으로 설정하고 있지만 실제로 빈이 등장하는 장면은 몇 초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모두 영화라는 마술이 빚어놓은 체스키크룸로프와 프라하 소지구의 환영이다. 마치 아이젠하임이 마술로 만들어놓은 도시가 아닐까 싶을 만큼 골목마다 독특한 분위기가 흐르는 거리에서, 관객은 행복한 환상에 젖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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