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나 1970년대 김정일이 당 조직비서 사업을 시작하면서 모든 권력은 당 조직부로 집중됐다. 대남정책을 이용한 인민무력부의 권력주도 및 정책주도를 차단하려는 목적으로 김정일은 다른 부서와 마찬가지로 인민무력부의 대남정책도 당적 지도권에 소속시켰다. 이에 따라 상징적으로 존재하던 당 대남부서들은 정보수집, 대남침투, 인물포섭, 대남심리전 및 교란, 파괴 등으로 분류돼 전담부서들이 신설됐다.
이 시기부터 당에는 업무특성에 따라 대외조사부(현 35호실), 사회문화부(현 대외연락부), 작전부, 통일전선사업부 등이 생겨났고, 인민무력부 적공국도 당의 영도를 받는 하부기관으로 전락했다. 1970년대 이후 벌어진 주요 사건들을 인민무력부가 아니라 당 35호실, 대외연락부가 주관한 데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이 시기에는 당 대남공작부서들 가운데서도 직접침투나 남한내 지하조직 결성을 주도한 대외연락부나 35호실이 기본 역할을 했고, 통전부는 대남선전과 심리전, 남북협상과 같은 부차적인 일을 담당했다. 개별 간부들에 대한 김정일의 신임도는 곧 조직의 신임을 의미한다. 강관주 대외연락부장이나 오극렬 작전부장에 비해 통일전선사업부 제1부부장 림동옥에 대한 김정일의 신임도가 떨어진 것도 같은 이유라고 봐야 할 것이다.
사회주의 동구권이 붕괴한 후 북한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야 했지만, 외화(外貨)부족 현상으로 국제시장 침투나 합작사업이 불가능했다. 이 때문에 남한의 경제력을 이용하기 위해 ‘우리민족끼리’라는 이념을 부각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됐다. 또한 미국의 대북강경정책을 와해시키기 위해 한미갈등을 고조시켜야 할 필요성에서 남북 화해 카드가 필요했다. 결국 현재는 남북대화 자체가 대남전략 및 생존전략으로 전환된 셈이다.
이 때문에 최근 북한의 대남전략은 이전의 침투, 파괴 같은 강성수단보다는 대화를 앞세운 경제이익 창출, 인물 포섭, 정보 수집, 교란 같은 유연한 접근이 우선이다. 대남공작 부서 가운데 유일하게 통일외교 명분으로 합법성을 주장하는 통일전선사업부의 기능이 강조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종전에는 한국민족민주전선을 내세워 음성적으로만 대남사업을 진행해오던 통전부를 양성화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결코 북한의 궁극적 목표인 적화통일 정책과 대남공작부서들의 사명이 변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우리민족끼리’를 내세워 직접대화와 교류를 통해 적화 목적을 보다 구체화하고 현실화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햇볕정책 역이용 전략’의 목적은 크게 세 가지라고 볼 수 있다. 첫째 남북관계를 경제적 이익에만 국한시키는 것, 둘째 ‘우리민족끼리’ 이념을 통해 남한 내 북한 지지세력을 확산시키는 것, 셋째 남북화해를 전략화해 미군을 축출함으로써 적화통일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이전에는 한국 내 민주주의세력 확산을 목표로 대남심리전이나 공작을 전개했다면, 최근에는 친북·좌익·진보세력 확산이라는 보다 노골적이고 확대 지향적인 목표가 설정됐다.
남한의 민주화 기간에 통전부의 주요 전략과업은 민주화운동을 부추기는 한편 적화공간으로 활용하는 것이었다. 통전부가 남한 내 민주화세력을 중시한 것은 민주화운동 자체가 곧 반정부운동이었고, 민족의식을 자극해 반미(反美) 정서까지 이끌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시기 통전부의 기본 공작형태는 한국민족민주전선 중심이었고, 지금도 통전부는 평양시 중구역 연화동에 ‘평양주재 한국민족민주전선 대표부’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한편으로 통전부는 조국평화통일서기국을 앞세워 남한 내 민주화운동을 적극 부추기고 대남공작 목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조직을 세분화했다. 이들 공작부서 내 각 과와 연락소는 명칭을 숫자로 표기한다. 조직의 실체와 업무내용을 감추기 위한 일종의 위장이다. 연락소 명칭을 대체하는 숫자들은 조직을 신설할 때 김정일로부터 사인받은 날짜를 그대로 사용하게 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