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구 신천을 따라 양쪽으로 만들어진 신천대로(왼쪽)와 신천 동안도로.
“대구는 사람 살 만한 도시가 못 됩니더. 내가 10여 년 전 대구를 뜰 때만 해도 이렇진 않았는데 다시 돌아와 수성구에 미용실을 냈더니 손님이 하도 없어 바로 망했지예. 먹고살 수가 있어야지예. 그래서 이렇게 먹고살 궁리를 하고 있는 것 아입니꺼. 박근혜가 더 좋긴 한데 실제로 찍으라면 고민 좀 해야지예. 당장 먹고살 거리를 만들어줄 사람을 찍어야 하니까. 언론에서 자꾸 대구를 ‘꼴찌 도시’ ‘절망의 도시’라고 하는 이유를 이제 알겠어예.”
지난해 3월 ‘월간조선’은 대구를 ‘성장이 멈춘 절망의 도시, 순환·경쟁·상호비판이 없는 동종교배의 도시’라는 분석 기사를 내보냈다. 그 근거는 1인당 지역내 총생산(GRDP)이 1993년 이후 단 한 번도 16개 광역지자체 중에서 최하위를 면한 적이 없다는 사실, 그리고 한 번도 정치적 지형도가 바뀐 적이 없는 보수성, 폐쇄성이었다. 또한 100명 이상이 희생된 2번에 걸친 대형 지하철 사고도 대구를 ‘절망의 도시’로 만든 재료가 됐다.
여기가 절망의 도시 맞아?
동대구로에서 택시를 타고 대구의 명소 중 하나인 수성못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잘 이해되지 않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외제차의 출현 빈도가 서울 강남에 버금갔고, 대낮에 혼자 차를 모는 여성 운전자는 서울보다 더 많아 보였다. 또 40층에 가까운 주상복합건물이 대충 헤아려도 7개가 넘었다. 택시 기사는 “곧 50층이 넘는 건물도 세워질 것”이라고 했다. ‘여기가 성장이 멈춘 절망의 도시 맞아?’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대구의 8학군으로 불리는 수성구의 한 쪽에 위치한 이곳은 밤에는 아베크족이 모여드는 데이크 코스, 낮에는 시민들의 산책코스가 된다. 점심시간 수성못 인근의 레스토랑, 식당들은 손님들로 북적거렸다. 서울로 치면 석촌호수쯤 되는 수성못의 야경은 한강 야경을 뺨칠 정도로 예뻐 밤에도 많은 사람이 이 일대에서 흥청거린다. 수성못이 한눈에 들어오는 식당에 자리를 잡고 삼겹살을 시켰다. 메뉴판을 본 기자는 깜짝 놀랐다. 삼겹살 4000원, 갈비살 10000원, 등심 12000원…. 동행한 대구 친구에게 “이거 뒤로 빼돌린 고기냐, 왜 이렇게 싸냐”고 물었다. 친구의 대답이 더 놀라웠다.
“대구에선 삼겹살이 5000원이면 비싼 편이고 갈비살도 이 집은 비싼 축에 속하는데 왜 그러냐? 마음에 안 들면 다른 곳으로 가고.”
대구의 물가는 얼추 서울의 60% 정도다. 집값도 제일 비싼 곳을 서로 비교하면 10배 이상 차이가 나지만 평균적으로 보면 서울의 30~40%다. 대구 사람들은 집값이 폭등하는 서울과 수도권 사람들을 부러움 섞인,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경멸의 눈초리로 쳐다본다. 다시 친구의 말.
“서울과 신도시 사람들은 집만 사놓으면 일 안 해도 먹고살겠다. 그렇게 한 해에 몇억씩 오르면…. 집 없는 사람들은 배 아파서 어떻게 사냐. 대구는 많이 올라봐야 몇천만원인데…. 대구에는 진짜 먹고살 게 없다. 자고 일어나면 음식점 간판이 바뀐다. 나는 그래도 일찍 자리를 잡아서 괜찮지.”
수성못 인근에서 24시간 편의점을 운영하는 친구는 한때 잘나가는 증권사 직원이었다. 기자가 “서울에도 망하는 음식점이 많다. 우리 회사 앞에도 1년이면 서너 번씩 간판이 바뀌는 집이 숱하다”고 했더니 그는 “아무리 그래도 대구 같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대한음식업중앙회에 확인했더니 대구의 음식점 휴폐업 비율은 다른 도시에 비해 평균 이하였다. 휴폐업 음식점 속출은 외환위기 이후 전국적인 현상. 대구는 언제부턴가 엄살이 심한 도시가 돼 있었다. 다른 도시가 함께 겪는 어려움을 과대포장하는 경향이 있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