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7월호

다시 다가온 정치의 계절, 재일 국민은 이번에도 선거에 참여할 수 없나?

  • 이민호 통일일보 서울지국장 doithu@chol.com

    입력2007-07-10 11: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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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은 재외 일본 국민에게 참정권을 준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한국은 딴판이다. 군대에 다녀왔고, 한국에서 사업을 하며 꼬박꼬박 세금을 내고 있는데도 일본 영주권자라는 이유로 선거권을 주지 않고 있다. 내 손으로 대통령을 뽑고 싶다는 재외 국민의 호소를 한국은 계속 외면할 것인가.
    다시 다가온 정치의 계절, 재일 국민은 이번에도 선거에 참여할 수 없나?

    재외국민 참정권 제한은 위헌이라며 헌법재판소 앞에서 시위하는 재일 한국인.

    신혜일(66)씨와 이수남(31)씨에게 이번 제17대 대통령선거는 그저 남의 일일 뿐이다. 정치에 무관심해서, 혹은 일이 바빠서도 아니다. 투표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혹시 외국인? 아니다. 두 사람 모두 엄연히 대한민국 국민이다. 신씨는 서울 충무로에서 영상물 대여업체를 운영하는 ‘사장님’이다. 이씨는 자원 입대해 3년 전에 제대한 예비역 병장으로 경기 김포의 한 수출업체에 다니고 있다. 두 사람이 보통 한국인과 다른 건 일본에서 태어난 ‘일본 영주권자’란 점뿐이다.

    일본 영주권자는 주민등록을 갖고 있지 않다. 신씨, 이씨와 같은 투표 무자격 국민이 무려 285만명에 달한다는 사실을 아는가. ‘재외국민’이라 불리는 이들은 외교관과 기업 주재원, 유학생 등 단기 체류자 114만명과 주재국 정부에서 영주허가를 받은 171만명으로 나뉜다(2005년 외교통상부 집계).

    “90일 이상 외국 거주자는 재외국민 등록해야 하나?”

    지난 5월10일 헌법재판소는 참정권 부여기준을 ‘주민등록 유무’로 하는 게 옳으냐 그르냐를 놓고 공개변론을 벌였다. 2004년 8월 오정명씨 등 재일 한국인 10명은 ‘국민으로서의 권리를 침해당하고 있다’며 헌법 소원을 제기했는데, 헌법재판소가 청구인과 피청구인인 정부 관계자를 불러 토론의 장을 마련한 것이다.

    공방은 치열했다. 청구인 측 대리인인 정지석 변호사는 “헌법은 참정권을 국민이라면 누구나 갖는 천부적인 기본권리로 명문화하고 있다”며 “주민등록이 있어야 투표할 수 있다고 한 공직선거법 규정은 명백한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피청구인인 정부도 찬동했다. 외교통상부 장관 대리인으로 출석한 국제법규과의 안국현 서기관은 “재외국민 참정권은 헌법에 규정된 것처럼 당연히 실현돼야 한다”고 말했으나 단서를 붙였다. “주민등록이 돼 있는 단기 체류자에게는 조기 시행을 해야 하나, 영주권자는 병역, 납세 등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논란이 일 수 있고, 선거 관리에 어려움이 있다”며 난색을 표시한 것이다.

    정 변호사는 바로 이의를 제기했다. 그는 “대부분의 단기 체류자가 주민등록을 유지하고 있는데 이는 법리적으로 잘못”이라며 “파병군인을 제외하고는 90일 이상 거주 목적으로 해외로 나가면 누구나 재외국민 등록을 해야 한다. 이때 주민등록은 자동 말소된다. 정부가 불법을 방조하려는 것인가”라고 질타했다.

    재외국민은 과연 의무를 불이행하고 있는 것일까. 2004년 12월 개정된 병역법은 ‘영주권자의 병역면제 규정’을 삭제했다. 원정출산에 의해 시민권(외국국적)을 취득하거나 영주권자 자격을 가진 채 국내에서 돈만 벌고 병역은 회피하려는 사람들을 제재하기 위해서였다. 이로써 ‘영주권자=병역면제자’의 꼬리표는 떨어졌다. 20~35세의 남자 영주권자는 국내로 들어오면 병역을 이행해야 한다. 해외 체류 중에는 ‘영장 소집 연기’의 혜택(?)만 누리는 것이다.

    납세 문제는 ‘이중과세 방지협약’에 따라 세계적으로 거주국에서 세금을 납부하는 것으로 통용되고 있다. 이 글로벌 룰에 따라 우리 정부도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에게 소득 과세를 하고 있다. 신혜일씨처럼 국내에서 영리 활동을 하는 재외국민은 관할 세무서에 세금을 납부한다.

    단기 체류자에게만 선거기회 주려는 정부

    이를 근거로 장유식 변호사는 “의무 규정은 헌법보다 후순위로, 선(先)규정인 기본권을 제한하는 것은 선후가 뒤바뀌었다”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외교부와 중앙선관위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면 재외국민투표권은 제한할 수 있다며 ▲의무에 대한 내국인과의 형평성 시비 ▲재외국민의 정부 지원에 대한 기대심리와 과다한 모국 지향성 촉발 ▲한국 국민이지만 분단 때문에 그 권리와 의무를 하지 못하고 있는 북한주민 문제 ▲선거기술상 공정성 확보의 난점 등을 거론했다.

    정부는 이러한 한계 때문에 국내에 주민등록이 남아 있는 단기 체류자에게만 투표권을 주는 게 현실적이라는 의견이다. 이날 선관위원장 대리인으로 출석한 정훈교 위탁선거과장은 “영주권자는 검토대상이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다시 다가온 정치의 계절, 재일 국민은 이번에도 선거에 참여할 수 없나?

    일본 거주 한국인들이 제기한 참정권 제한에 대한 위헌 소송을 위해 헌법재판소가 연 공개변론.

    정부는 단기 체류자를 모델로 한 선거 준비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태스크포스팀을 만들어 12월 해외공관에서 500여 명을 대상으로 모의투표를 실시했다. 시뮬레이션까지 했다는 것은 정부가 이번 대선부터 재외국민의 투표권 행사가 이뤄질 것으로 내다봤기 때문일 것이다.

    정치권의 반응은 엇갈린다. 열린우리당은 정부의 손을 들어주고 있으나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 민주당은 ‘국민이라면 제한 없이 줘야 한다’는 주장이다. 대선주자인 이명박, 박근혜, 손학규씨는 최근 ‘동아일보’ 서면질의에서 ‘국민이라면 모두에게 줘야 한다’며 같은 목소리를 냈다.

    92개국이 재외국민 선거권 인정

    재외국민 선거권 제도는 이미 92개 국가에서 시행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이 제도를 도입하지 않은 나라는 한국과 터키뿐이다. 일본은 이미 1998년 5월에 선거법을 개정해 2000년 6월 참의원 선거부터 재외국민 투표가 이뤄졌다. 시행 초기에는 비례대표 투표로 제한했으나 해외 유권자들이 ‘국민차별’이라고 제소하자, 일본 최고재판소는 2005년 9월 “이는 평등권 침해로 위헌이다”라고 판결했다.

    해외에 있는 일본 국민은 공관을 방문하거나 귀국해서 투표하거나 우편으로 투표할 수 있다. 원양어선을 타고 있는 선원들은 선상 팩스 투표도 할 수 있다. 시행 7년째를 맞고 있지만 일본에서는 선거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지난 4월 미국 버지니아공대에서 발생한 총격사건의 범인 조승희 사례는 극단적이긴 하지만 한국인의 정서를 확인하는 기회를 제공했다. 당시 외교부 당국자들은 서울외신기자클럽(SFCC) 회원들과의 약식 간담회에서 “미국에서 교육받은 그린카드(미국 영주권) 소지자 개인의 광란극일 뿐이다. 단기 체류자 관리도 바쁜데 어떻게 영주권자까지 신경을 쓰겠냐”고 말했다.

    이에 대해 양창영 재외국민참정권연대 대표(호서대 교수)는 “‘거주·이전의 자유는 우리 헌법도 보장하고 유엔 인권헌장에도 있다”며 “영주권은 주재국 정부가 외국인에게 사회보장의 지위를 부여한 것이지, 애국심이나 조국과의 연대성과는 관계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R(레지던스의 약자)자를 박은 이민자용 여권과 주민등록을 가진 일반용 여권을 나눠 발행하는 나라는 아마 대한민국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본 최초의 외국인 변호사였던 김경득(2005년 12월 사망)씨는 이런 유언을 남겼다.

    “재일 한국인은 일본의 국적 차별을 견디며 본국 국적을 유지해왔다. 그럼에도 전후 60년간 본국 국정 참정권은 부정당해왔다. …재일 한국인들이 대한민국 선거에 참여한다면 본국에 대한 제언 등이 활발해질 것이다. 이것이 일본에서 우리가 한국 국적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동기다.”

    지난 4월 한국 국회에서 열린 공청회에서 90대의 한 재일동포 노인은 “내 손으로 우리 대통령 한번 뽑아보는 게 소원”이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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