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너지 디자인’ : 창비, 바츨라프 스밀 지음, 허은녕·김태유·이수갑 옮김, 544쪽, 3만원
경제성장에 따라 에너지 소비도 더불어 크게 증가하고 있다. 대량의 화석에너지 사용은 필연적으로 자원 고갈과 환경 문제를 야기한다. 2000년 이후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에너지 가격 폭등과 기후 변화가 그 증거다.
산업혁명 이전 인류는 난방이나 취사, 조명 등의 열원으로 대부분의 에너지를 목재나 농가 부산물로 충당했다. 산업혁명과 함께 공장 가동을 위한 동력원으로 석탄과 석유 등 화석에너지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20세기 들어 에너지는 동력용뿐 아니라 자동차 및 항공기 등 수송에, 가정 및 상업 건물의 냉·난방에, 조명 및 다양한 기기 작동에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에너지 공급이 부족할 때에는 이것이 경제성장의 제약요인으로 작용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에너지 공급 및 이용에 대한 기술개발이 혁신적으로 이뤄졌다. 역사를 장기적으로 보면 에너지 공급 위기와 풍족한 시기가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최근의 에너지 가격 폭등은 에너지 공급 부족 또는 수요 증가 때문에 발생하고 있는데, 과연 이를 기술개발로 극복할 수 있을까. 또한 인류는 자원 고갈과 환경 재앙에 대비해 어떠한 선택을 해야 할까.
100년간 에너지 사용 패턴 분석
이에 대한 답변을 찾을 수 있는 저서가 바츨라프 스밀(Vaclav Smil) 박사가 집필하고 허은녕 교수 등이 번역한 ‘에너지 디자인’(원제: 갈림길에 선 에너지, Energy at the Crossroads)이다.
저자인 스밀 박사는 체코에서 에너지의 기원과 전환, 인류문명의 향상과 생물권의 변화를 아우르는 에너지시스템 연구를 시작한 학자다. 1969년 미국으로 건너가 에너지 생산과 기술혁신이 지구환경에 끼치는 영향을 연구했으며, 1970년대부터 중국의 에너지와 환경, 식량 문제로 관심을 돌려 개발도상국의 경제성장에서 나타나는 에너지와 환경의 연관관계를 분석했다. 저자는 40여 년에 걸쳐 에너지뿐 아니라 이와 관련해 환경, 식량, 인구, 경제, 공공정책을 포괄하는 광범한 학제 연구를 선도해왔다.
‘에너지 디자인’은 저자의 평생에 걸친 경험과 고민, 그리고 통찰력이 돋보이는 책이다. 저자는 석유와 석탄 등 화석에너지 자원을 중심으로 지난 100여 년간 세계 에너지의 사용 패턴과 에너지원의 선택과정(저자는 이를 ‘그랜드 디자인’이라고 한다)이 어떻게 형성되고 변화해 왔는지, 그리고 앞으로 남은 과제가 무엇인지를 방대한 자료와 엄밀한 논증, 그리고 명확한 표현으로 독자에게 전달하고 있다.
저자가 책 전반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바는 다음 세 가지다. ▶에너지 자원의 개발과 에너지 사용기기의 개선을 비롯한 기술발전이 인류문명에 끼친 공헌 ▶미국을 필두로 고소득 국가의 에너지 사용이 기술발전을 무색하게 할 만큼 지속적으로 증가해온 점 ▶온실가스 배출로 인한 기후변화가 인류의 미래를 어둡게 할 가장 심각하고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는 점 등이다. 이런 시각을 통해 저자는 기술개발만으로는 지구 온난화로 인한 재앙을 막을 수 없으며, 결국 에너지 사용에 대한 우리의 태도 변화가 필수적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저자는 풍부한 에너지가 경제발전에 기여하던 시대를 살아온 사람으로서 책 전반에 걸쳐 에너지의 중요성과 함께 지구 온난화 등 에너지에서 파생되는 문제를 보수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는 듯하다. 또한 경제적 분석을 하면서 저자는 자료의 통계적 분석을 기초로 하는 정량적 분석에는 적극 동의하나 모형화를 통한 계량경제학적 작업에는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저자는 또 복잡한 모형을 이용한 에너지 가격 예측이나 장기 전망이 모두 빗나갔다고 비판한다.
에너지는 21세기 지식기반 사회에서도 여전히 발전의 원천이며 선진문명으로 가는 필수적인 요소다. 문제는 이러한 화석연료는 한번 써버리면 다시 만들어내기 어렵다는 점이다. 식량이나 물, 공기가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재생 가능한 데 비해 화석연료는 단기간에 다시 생산되기가 거의 불가능한 고갈성 자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