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빙벽에서 떨어진 빙하가 북극 바다에 흩어져 있다.
감정만이 아니다. 우리는 무엇이든 받아들이면 그것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상식이든 물건이든, 손때 묻고 닳고 닳은 것일수록 애착을 느낀다. 구관이 명관이라는 식으로.
과학자들이라고 다를 바 없다. 머릿속에서야 과학적 진리는 새로운 증거가 제시되면 번복될 수 있다고 되뇌고 있지만, 실제 행동은 그렇지 않다. 그들도 반증 사례가 무수히 쌓이고 누군가 탁월한 논리로 결정적인 타격을 가할 때까지 기존 진리를 고수하려는 경향이 있다.
인간은 일정 정도 미래를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 그렇게 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한다. 인류가 미래를 내다보기 위해 쓰는 방법 중 하나는 과거를 돌아보는 것이다. 과거 속에 미래가 있다는 말은 잘 들어맞을 때가 많다. 인간은 좀 더 정확히 미래를 내다보기 위해 여러 기법을 창안했다. 다양한 자료를 동원해 과거의 추세를 파악한다. 그 다음 추세가 가리키는 방향대로 선을 죽 긋는다. 그것이 미래다. 표본 조사, 확률, 통계는 미래를 예측하는 과학적 기반이다.
그러나 상식과 다른 결과가 나오면 거부감이 발동한다. 그럴 때 우리는 직관과 감정을 더 믿는다. 막연히 현 상태가 좀 더 오래 유지될 것이라는 태도를 취한다. 기후 추세에 대한 태도가 그렇다.
남극대륙의 얼음 기둥
1999년 장 로베르 프티를 비롯한 프랑스, 러시아, 미국의 공동 연구진은 남극대륙의 얼음 코어를 연구한 결과를 발표했다. 그들은 남극대륙 동쪽에 있는 러시아 보스토크 기지에서 드릴로 얼음을 뚫어 원기둥 모양의 얼음 덩어리를 채취했다. 소련의 붕괴, 혹독한 추위 등 갖가지 사정 때문에 10년이 넘게 걸렸지만 그들은 무려 3600m 깊이까지 얼음 기둥을 캐내는 데 성공했다. 42만년에 걸쳐 쌓인 눈이 짓눌려 생긴 얼음이었다.
눈이 내려 쌓이기 시작하면 떠다니던 먼지, 에어로졸 입자, 주위의 공기도 그 안에 갇힌다. 처음에 육각형 모양이던 눈은 짓눌리면서 싸락눈처럼 변하다가 이윽고 얼음으로 바뀐다. 연구진은 원기둥 모양으로 파낸 얼음을 녹지 않도록 하면서 톱으로 잘랐다. 그런 다음 오염이 안 된 중심부에 있는 얼음을 떼어냈다. 그 얼음을 진공 용기에 넣고 잘게 부쉈다. 그러자 갇혀 있던 공기가 빠져나왔다. 연구진은 그 공기를 채취해 분석했다.
얼음 코어로 분석할 수 있는 항목은 먼지와 에어로졸 입자뿐 아니라 이산화탄소와 메탄 같은 대기의 미량 기체, 각종 동위원소, 금속 성분 등 다양하다. 그 분석 자료는 과거의 기후 변화 양상을 알려준다.
프티 연구진의 논문은 지구의 기후가 장기간에 걸쳐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보여줬다. 42만년 동안 지구 기후는 추워졌다 더워졌다가 하는 주기를 네 번 되풀이했다. 한 주기는 10만년 정도였고, 그 주기 내에서는 추운 시기인 빙기가 80% 이상을 차지했다. 따뜻한 시기인 간빙기는 짧을 때도 있고 길 때도 있는 등 변화가 심했다. 현재의 간빙기인 홀로세는 약 1만년 전에 시작됐다.
이 논문은 기후와 대기 온실기체의 농도가 거의 완벽한 동조 현상을 보인다는 것을 밝혀냈다. 빙하기에는 기온이 낮고 온실기체 농도도 낮았다. 온실기체인 이산화탄소의 농도는 빙하기에 180ppm이었다가 간빙기 때 280~300ppm까지 높아졌다. 현재의 간빙기에서 산업사회로 들어서기 전까지 대기 이산화탄소 농도는 거의 280ppm을 유지했으며 가장 높았을 때도 300ppm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