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4월호

정권교체기 ‘토사구팽’ 공신학

범려, 한신 100명 나와도 ‘공적(公的) 숙청’은 계속돼야

  • 권삼윤 문명비평가 tumida@hanmail.net

    입력2008-04-04 13: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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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춘추전국시대 월나라 재상 범려, 한나라 태조 유방의 장수 한신, 명나라 주원장의 책사 호유용의 공통점은? 대업을 이룬 뒤 주군으로부터 ‘토사구팽’을 당한 인물들이다. 당대의 민심은 이들의 숙청을 안타까워했지만 후대의 역사는 국정 안정을 위한 ‘필요악’이라고 평가한다. 정권교체기 인사 시즌을 맞아 갖가지 논란이 무성한 이즈음, 권력자가 지녀야 할 공적 인사의 원칙을 새겨본다.
    정권교체기 ‘토사구팽’ 공신학

    한나라를 세운 유방(가운데)과 일등공신 한신(왼쪽), 장량.

    지금과 같은 정권교체기에는 자칭 타칭 ‘공신(king maker)’이 많이 등장한다. 그들은 하나같이 새로운 권력자가 자신의 공로를 제대로 인정해주기를 바란다. 성공 가능성이 희박한 시점에 대선 캠프에 뛰어들어 온갖 힘든 일을 마다않고 해낸 사람이라면 더욱 그러할 터다.

    하지만 현실은 그들의 기대를 충족시키기가 쉽지 않다. 성공의 대가로 주어져야 할 권력의 자리 수가 절대 부족하기도 하거니와 권력자에겐 권력자 나름의 계산이 있기 때문이다. 공신들은 ‘주군(主君)의 생각이 무엇이냐’에 목을 매지만, 권력자는 그들의 자리보다는 그들이 실제 무엇을 할 수 있느냐를 생각한다. 그들에 대한 권력자의 생각은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한 과정이자 방법일 뿐 보은 차원의 배려가 아니다. 이는 때론 권력자의 ‘생각 크기’를 말해주는 잣대가 되기도 하는데, 이 지점에서 주군과 공신 간의 가치 충돌이 필연적으로 일어나게 된다.

    공신 죽이는 과욕과 과신

    자칭 공신 가운데에는 자신에 대한 대우가 섭섭하다며 불평불만을 토로하는 자가 있을 것이고, 심한 경우에는 ‘나는 토사구팽(兎死狗烹) 당했다’고 생각하는 자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필자는 토사구팽은 ‘필요악’이라 생각하며 최고 권력자에겐 오히려 권장돼야 할 덕목이라고 믿는다.

    토사구팽이란 말은 대부분의 경우 부정적으로 사용된다. 써먹을 대로 써먹다가 더는 쓸모가 없다고 판단되자 바로 제거해버리는 것이니 의리 없는 처사임에 분명하기 때문이다. 춘추전국시대 월(越)나라 재상 범려(范?)가 처음 입에 올렸다는 토사구팽이란 말은 한신(韓信)에 이르러 널리 인구에 회자될 만큼 유명해졌다. 한신은 한나라 유방(劉邦)의 수하 장수로 막강했던 초나라 항우(項羽)군을 결정적인 순간에 대파해 유방으로 하여금 한(漢) 왕조를 세우게 한 일등공신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몸 바쳐 섬긴 주군, 즉 유방에 의해 제거되는 비운을 맞는다.



    유방의 수하에는 한신 외에도 장량(張良)과 소하(蕭何) 같은 공신이 있었다. 한신은 자신의 공로만 믿고 큰소리를 내다 희생의 제물이 됐지만 장량은 주군이 보위에 오르자 재빨리 그의 시야에서 멀리 사라진 까닭에 말년을 조용히 보낼 수 있었다.

    공신은 두 가지 잘못을 저지르기 쉽다. 첫째는 자신의 힘을 절제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위기 상황에선 한 가지 목표를 향해 물불 가리지 않다가도 딱히 힘쓸 일이 없어지면 심심해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큰일을 벌여 화를 자초한다. 둘째 과오는 자기 과신이다. 과거의 성공만 믿고서 내 생각은 늘 옳고 다른 사람의 생각은 모두 틀렸다고 생각하는 태도다. 심한 경우엔 내가 하는 일은 모두 성공한다고 믿고 일을 벌이곤 한다. 그러다 실패하면 자신을 냉정히 뒤돌아보면서 그 까닭을 살펴보는 게 아니라 남의 탓으로 돌리다 결국 화를 자초한다. 이런 태도는 보통의 인간에게서도 자주 목격된다. 하지만 일반인의 잘못은 그 영향이 국지적으로 끝나 큰 문제가 되지 않으나 높은 자리에 있는 자의 잘못은 그 타격의 진폭이 깊고도 넓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기존의 틀을 파괴하면서 인기몰이에 성공했고, 그 결과 무난히 청와대에 입성할 수 있었다. 성공은 그럴 만한 ‘특수한 상황’에서 일어나는 것이지 늘 반복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런데도 그는 그런 파격 효과를 너무 믿은 나머지 재임 중 틈만 나면 이를 이용했다. 그 맛이 너무 달콤했던 모양이다. 모두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겠지만 그 결과는 지지율 급락과 국론의 분열 등 국정의 혼란상으로 나타났다.

    지지율이 계속 떨어졌다면 냉정을 되찾아 차근차근 그 원인을 살펴보고 그에 맞는 적절한 대책을 내놓아야 했는데 노 전 대통령은 그러지 못했다. 국정은 오히려 혼란을 거듭했다. 그는 그 책임을 국민에게 돌렸다. 언론이 딴죽을 걸어서 그랬다는 둥 변명을 늘어놓기 일쑤였다. 결국 임기 말에 있은 대선에서 여권은 참패했다.

    주원장의 토사구팽

    정권교체기 ‘토사구팽’ 공신학

    이명박 대통령이 주재한 첫 국무회의. 그는 누구를 얼마나 ‘토사구팽’ 했을까?

    주군의 처지에서 공신은 어떤 존재일까. 권력자에겐 누구나 나름의 큰 꿈이 있다. 백성을 배불리 먹이고 등 따습게 해준다든지, 아니면 자신의 왕국이 영원했으면 좋겠다는 등의 일이 그것이다. 권력자는 공신 중에 그 꿈에 반하는 생각이나 행동을 하는 자가 있다면 그를 제거하고 싶어 한다. 역사는 역심을 품은 자나 그런 징후를 보이는 자의 말로를 사실(史實)로 전해준다. 그들에겐 ‘가차 없는 처단’이 기다릴 뿐이었다. 권력자로선 미래에 우환이 될 자를 살려놓을 까닭이 없다. 권력은 자식은 물론 부자간에도 나눠 가질 수 없을 만큼 냉혹한 것, 아무리 공신이라도 모반을 꾀한 자를 어찌 용서할 수 있겠는가.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공신을 일거에 제거하는 것은 실제 그리 쉬운 일일 수 없다. 그런데도 그걸 해야 되는 게 군주의 운명이다. 몽골족에 짓밟힌 한족의 자존심을 살리고자 원(元)을 몰아내고 새로이 명(明)왕조를 연 주원장(朱元璋) 홍무제는 여러 면에서 한 왕조의 유방과 닮았다. 주원장이 훨씬 심했지만 두 사람 모두 미천한 집안에서 몸을 일으킨 데다 배운 게 적었다. 다행히 충성심이 깊고 지혜가 남다른 참모들을 가까이 두어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두 황제의 한 가지 공통점은 등극 후 자신의 치세에 걸림돌이 될 공신들을 철저하게 제거했다는 점이다. 이 점에서도 주원장이 훨씬 가혹했다. 주원장은 모반을 꾀했다는 죄목으로 호유용(胡惟庸)을 처단하면서 그에 연관된 1만5000명을 함께 죽였다. 이어 군사 최고책임자 남옥(藍玉)까지 제거했다. 외부의 적이 토벌되자 피로써 피를 씻는 권력투쟁을 벌인 것이다. 주원장은 그에서 끝내지 않고 후계자의 안위를 걱정해 많은 공신을 또 살해했다. 그런 틈바구니 속에서도 탕화(湯和)와 유기(劉基) 같은 사람들은 살려놓았다. 필자는 이들 두 황제의 난행을 ‘토사구팽’이라 칭할 순 있어도 그 행위 자체가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비록 역사적 사례가 그러하다 해서 ‘토사구팽’을 부정적 처사로만 단정한다면 역사의 다른 한 면을 못 보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공신을 못 버린 죄

    역사는 공공재다. 역사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만 그 문을 열기 위해선 ‘해석’이라는 열쇠가 필요하다. 해석되지 않는 역사는 사실(史實) 그 자체로 머물 따름이다. 역사를 해석하기 위해선 지혜가 필요하다. 그러나 인간은 혼자서 모든 일을 꾸미고 운영·통제하며 해결할 수 없다. 일이 클 경우에는 더욱 그러한데, 큰일을 하려면 조직이 필요하다.

    조직은 사람으로 구성된다. ‘인사가 만사’라고 한 대통령도 있었지만 스테디셀러 ‘좋은 기업을 넘어…위대한 기업으로’의 저자 짐 콜린스는 “좋은 기업에서 위대한 기업으로 도약시킨 CEO들은 위대한 기업으로 도약할 당시에는 변화의 규모를 깨닫지 못하고 나중에 가서야 되돌아보니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지적하면서 “그런 기업의 CEO들은 새로운 비전과 전략부터 짠 것이 아니라 뜻밖에도 적임자를 적절한 자리에 앉히는 일부터 시작했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적임자를 ‘버스에 태울 사람’이란 말로 표현했다. 운명공동체란 뜻이다.

    경영 관련 서적을 읽다 보면 기업의 성공 여부는 우호적인 외부조건이 아니라 경영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쉽게 발견한다. 경영을 주제로 한 책이니 당연한 결론이겠지만 이를 국가경영에 적용해도 무리는 없을 듯하다. 외부조건, 즉 안보상의 위협이나 통상압력, 자원결핍 등의 상황이 아무리 나쁘다 하더라도 경영을 잘해낸다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여기서 경영이란 자본, 인재, 자원의 적절한 믹스(mix)를 말하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인재를 지칭한다.

    조선조 일곱 번째 왕인 세조는 계유정난을 일으켜 어린 조카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 이른바 ‘왕위 찬탈자’다. 따라서 그에게는 챙겨줘야 할 공신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세조는 한명회, 신숙주, 홍윤성, 권람 등의 공신들을 등극 후에 제거하기는커녕 오히려 후하게 대우해 그들의 지위를 탄탄히 해주었다. 한명회 등은 그 후 성종이 보위에 오르는 데에도 큰 공을 세워 성종마저 그를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요즘 TV에 방영 중인 역사드라마 ‘왕과 나’에선 성종이 공신들 앞에서 자기주장을 제대로 펴지 못하고 쩔쩔매는 모습을 자주 드러내는데 이는 역사적 사실과도 일치하는 대목이다.

    조선 왕조의 총체적 비극은 세조 때 싹 터 성종 때 절정기를 이뤘다고 할 수 있다. 공신들은 기득권을 틀어쥐고 변화와 개혁을 외면한 채 국정과 왕실을 좌지우지했다. 이는 성종이 자기의지대로 국사를 펼치지 못하게 했고, 의지와는 무관하게 연산군의 생모인 왕비 윤씨를 폐출케 했으며 끝내 그녀의 사사(賜死)를 막지 못했다. 그 결과 보위에 오른 연산군은 모후를 죽음으로 몰고 간 죄를 물어 관련자들을 숙청하는 피바람을 일으켰다. 윤필상, 김굉필 등 수십명을 살해하고, 한명회는 이미 죽었지만 주검을 다시 파내어 부관참시 했으며, 그 일을 획책한 할머니(대왕대비) 한씨 또한 죽음을 면치 못했다.

    개국공신 사대부의 횡포

    정권교체기 ‘토사구팽’ 공신학

    2003년 2월25일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직후 청와대 비서관들에게 임명장을 주고 있다.

    연산군이 국정을 돌보기보다 모후의 죽음에 더 관심을 갖고 이토록 모진 피의 의식을 치르게 된 것은 따지고 보면 세조와 성종이 제때에 공신을 제거하지 못하고 그들을 기고만장하게 만든 탓이 크다. 그 후유증은 그리하여 두고두고 왕실과 조선 백성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했으니 조선 왕조의 비극은 여기서 시작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선 왕조의 정치 이데올로기는 주자학이었다. 주자학은 남송 때의 유학자 주희가 사대부 계급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고안해낸 이론으로, 이로 무장한 조선의 선비들은 왕을 ‘제1의 사대부’로 격하시켜 왕의 위엄까지 무너뜨렸다. 왕이 왕 노릇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셈이다.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의 권력계층으로 자리 잡은 사대부들은 공과 사를 구별하지 못하고 온갖 특혜를 누렸다. 조선 중기 김인후와 기대승, 송순, 정철, 이황, 이이 등과 교분을 나누면서 관직에 있던 미암 유희춘(1513~1577)은 ‘미암일기’에서 고향에 자기 집을 지으면서 지방수령에게 토지와 건축자재를 대달라고 했다는 사실을 떳떳이 밝히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조선조 여느 양반들처럼 납세와 국방의 의무도 면제받았다.

    정조가 탕평책을 쓰고 국정쇄신을 단행하자 사대부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이 위축되는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온갖 방법으로 왕권을 위협했다. 결국 정조 역시 자신의 큰 꿈을 제대로 펼쳐보지도 못하고 유명을 달리했다. 이렇듯 조선 왕조의 무능함은 그 뿌리를 캐다보면 공신을 버리지 못한 세조의 사욕, 단견과 마주하게 된다.

    불행하게도 이 같은 공신우대의 관행은 왕조시대가 끝난 후에도 계속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런 예를 따랐기에 국민은 혹독한 고충을 겪었다. 물론 ‘참여정부’만 그런 것은 아니다. 그 직전의 정권도 그랬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이 정권을 잡도록 공을 세운 이들로 비서진을 짜고, 내각 또한 그렇게 구성했다. 수족 노릇을 한 비서진은 그렇다 해도 공기업 수장에 대한 낙하산 인사는 도를 넘었다. 그는 흠이 있어 물러난 이들마저 얼마 지나지 않아 재기용했다. 과거의 끈을 과감히 뿌리치고, 경험 있고 비전을 가진 자들을 외부에서 대거 발탁했다면 정책의 우선순위와 타이밍을 제대로 살려 국민의 부담을 덜어주고 그들의 기대를 상당부분 충족시킬 수 있었을 터였다. 그는 대승적 국가 인사가 아니라 ‘인기’라는 눈앞의 이익과 ‘자기를 도와준 자들을 저버려선 안 된다’는 의리를 지키느라 부산했다.

    노무현과 세조의 비극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鹽野七生)는 한국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사랑하는 사람이 사라져갈 때 냉정하게, 혹은 눈물을 흘리면서 보내는 두 가지 선택이 있을 수 있다. 개인이라면 눈물을 흘리며 보내야 하겠지만 민족이라면 다르다”라고 했다. 여기에서 ‘민족’을 ‘공인’으로 치환하면 공신에 대한 인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이 나온다. 공신에 대한 토사구팽은 이처럼 의리를 저버린 행동도 충분히 이해될 수 있는 국가경영의 필요악이다.

    헌법과 법률은 대통령의 인사권을 제한하는 몇 가지 규정을 두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미국과 달리 대부분 자리에 대한 인사가 대통령의 자유재량에 맡겨져 있다.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국회의 권한이라 규정하고 있으나 형식에 지나지 않는다. 대통령은 눈치만 볼 뿐, 결국 자신의 뜻에 따라 인사를 할 수 있다. 견제장치가 부실한 우리의 경우 공신에 대한 대통령의 판단은 더욱 중요할 수밖에 없다.

    ‘삼국지’에 나오는 유비(劉備)는 끝까지 수하 참모들을 지켰다. 덕분에 그에게는 ‘덕장’이란 칭호가 따라다닌다. 이는 공신이나 참모들을 우대했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되는 게 아니라는 증거다. 공신이나 참모가 자기가 섬기는 주군을 바른 길로 인도하고 사욕을 챙기지 않는다면 나무랄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동양은 일찍이 유학을 숭상했기에 덕을 최고의 가치로 존중했다. 유학은 우주질서와 사회질서는 일치한다고 믿었으니 그렇게 굴러만 간다면 나무랄 게 없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우주와 사회의 질서는 따로 놀고, 권력의 그늘에 들어간 공신은 덕보다는 사리를 쫓는다. 인간은 욕심을 가진 ‘불완전 존재’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들이 주군의 생각만을 쫓고 거기에만 집착한다면 그는 주군도 죽이고 나라도 죽이는 죄를 범하고 만다. 주군 또한 이런 자들을 가까이 두면 자기도 죽고 나라도 죽이는 우를 범하게 된다. 이 때문에 부적절한 공신들을 초기에 제거해야 하는데 세조와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제때 제대로 토사구팽을 하지 못했다. 부적절한 공신이 빠져나간 자리를 새로운 인재로 채워 그들로부터 도움을 받고 혁신을 일으켜야 했다. 혁신이 일어나려면 창의성과 위험 감수의 노력이 요구된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는 이론이다. 현대 경영학의 대가 피터 드러커는 혁신에 대해 ‘목적과 초점을 갖고 조직의 경제적, 사회적 잠재력에 변화를 일으키려는 노력’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백성이 더 중요하다’

    경영학에는 ‘파이낸셜 레버리지 효과(financial leverage effect)’라는 개념이 있다. 타인에게서 빌린 자금을 지렛대 삼아 자기자본이익, 즉 순이익을 높이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의 저자 로버트 기요사키는 “좋은 빚은 우리를 부자로 만들고 나쁜 빚은 우리를 가난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이 원리는 금융 분야를 넘어 타인이 가진 지식과 정보, 경험 등에도 적용될 수 있는데, 이를 흔히 ‘소프트 레버리지’라 부른다. 따라서 외부 발탁 인재는 이런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하곤 한다.

    ‘사나이’들이 자주 입에 올리는 ‘의리’는 물론 중요한 가치다. 아직 정권을 잡지 못한 단계에선 그가 비록 정당의 지지를 받은 대선후보라 할지라도 넓은 의미에서 보면 사인(私人) 또는 개인에 불과하다. 사인의 단계에선 의리와 충성이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가치이므로 당연히 보호되고 존중돼야 한다. 하지만 대통령이 된 다음에는 사정이 다르다. 그는 헌법과 법률에 따라 행동해야 하기에 개인적 의리보다는 국민과의 공적인 의리가 더 중요하다.

    이런 자세는 국가의 최고지도자에게만 적용되지 않는다. 공적인 성격을 얼마라도 갖는 기업과 종교단체, 비정부기구(NGO) 등에도 해당된다. 우리나라 최대 기업과 내로라하는 대형 교회, 그리고 힘 있는 비정부기구들이 많은 이로부터 지탄의 대상이 되곤 하는 것은 ‘국민(소비자와 근로자, 신도, 회원)’과의 ‘공적 의리(약속 또는 기대까지 포함)’를 저버렸다고 생각해서다.

    정권교체기 ‘토사구팽’ 공신학
    권삼윤

    1951년 출생

    한국외국어대 무역과 졸업

    중동지역 등 60여 개국 여행

    저서 : ‘문명은 디자인이다’ ‘세계문화유산’ ‘나는 박물관에서 인류의 꿈을 보았다’ ‘꿈꾸는 여유, 그리스’ 등


    공인된 자의 처신이란 사적인 이익이나 관계를 뛰어넘어 국가 단위에서 판단하고 처결해야 한다. 명나라 주원장이 수족 같은 공신들을 처단하면서 남긴 말은 공적 토사구팽의 필요성을 단적으로 설명한다.

    “이제는 너의 공로보다 백성들이 내게 더 중요하다.”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가 국민에게 한 공약대로 국가의 위상을 높이고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자 한다면 임기 동안 국민의 지속적인 지지를 받는 게 필수다. 그 해답은 다름 아닌 인사에 있다. 벌써부터 ‘고소영 S라인’이니 ‘강부자 내각’이라는 우스개 말이 흘러나오는 이즈음, 대통령은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다’는 자세로 인사에 임해야 한다. 특히 공신의 거취에 대한 판단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것은 누구도 할 수 없는 오로지 대통령 그 자신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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