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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교체기 ‘토사구팽’ 공신학

범려, 한신 100명 나와도 ‘공적(公的) 숙청’은 계속돼야

  • 권삼윤 문명비평가 tumida@hanmail.net

정권교체기 ‘토사구팽’ 공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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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원장의 토사구팽

정권교체기 ‘토사구팽’ 공신학

이명박 대통령이 주재한 첫 국무회의. 그는 누구를 얼마나 ‘토사구팽’ 했을까?

주군의 처지에서 공신은 어떤 존재일까. 권력자에겐 누구나 나름의 큰 꿈이 있다. 백성을 배불리 먹이고 등 따습게 해준다든지, 아니면 자신의 왕국이 영원했으면 좋겠다는 등의 일이 그것이다. 권력자는 공신 중에 그 꿈에 반하는 생각이나 행동을 하는 자가 있다면 그를 제거하고 싶어 한다. 역사는 역심을 품은 자나 그런 징후를 보이는 자의 말로를 사실(史實)로 전해준다. 그들에겐 ‘가차 없는 처단’이 기다릴 뿐이었다. 권력자로선 미래에 우환이 될 자를 살려놓을 까닭이 없다. 권력은 자식은 물론 부자간에도 나눠 가질 수 없을 만큼 냉혹한 것, 아무리 공신이라도 모반을 꾀한 자를 어찌 용서할 수 있겠는가.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공신을 일거에 제거하는 것은 실제 그리 쉬운 일일 수 없다. 그런데도 그걸 해야 되는 게 군주의 운명이다. 몽골족에 짓밟힌 한족의 자존심을 살리고자 원(元)을 몰아내고 새로이 명(明)왕조를 연 주원장(朱元璋) 홍무제는 여러 면에서 한 왕조의 유방과 닮았다. 주원장이 훨씬 심했지만 두 사람 모두 미천한 집안에서 몸을 일으킨 데다 배운 게 적었다. 다행히 충성심이 깊고 지혜가 남다른 참모들을 가까이 두어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두 황제의 한 가지 공통점은 등극 후 자신의 치세에 걸림돌이 될 공신들을 철저하게 제거했다는 점이다. 이 점에서도 주원장이 훨씬 가혹했다. 주원장은 모반을 꾀했다는 죄목으로 호유용(胡惟庸)을 처단하면서 그에 연관된 1만5000명을 함께 죽였다. 이어 군사 최고책임자 남옥(藍玉)까지 제거했다. 외부의 적이 토벌되자 피로써 피를 씻는 권력투쟁을 벌인 것이다. 주원장은 그에서 끝내지 않고 후계자의 안위를 걱정해 많은 공신을 또 살해했다. 그런 틈바구니 속에서도 탕화(湯和)와 유기(劉基) 같은 사람들은 살려놓았다. 필자는 이들 두 황제의 난행을 ‘토사구팽’이라 칭할 순 있어도 그 행위 자체가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비록 역사적 사례가 그러하다 해서 ‘토사구팽’을 부정적 처사로만 단정한다면 역사의 다른 한 면을 못 보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공신을 못 버린 죄



역사는 공공재다. 역사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만 그 문을 열기 위해선 ‘해석’이라는 열쇠가 필요하다. 해석되지 않는 역사는 사실(史實) 그 자체로 머물 따름이다. 역사를 해석하기 위해선 지혜가 필요하다. 그러나 인간은 혼자서 모든 일을 꾸미고 운영·통제하며 해결할 수 없다. 일이 클 경우에는 더욱 그러한데, 큰일을 하려면 조직이 필요하다.

조직은 사람으로 구성된다. ‘인사가 만사’라고 한 대통령도 있었지만 스테디셀러 ‘좋은 기업을 넘어…위대한 기업으로’의 저자 짐 콜린스는 “좋은 기업에서 위대한 기업으로 도약시킨 CEO들은 위대한 기업으로 도약할 당시에는 변화의 규모를 깨닫지 못하고 나중에 가서야 되돌아보니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지적하면서 “그런 기업의 CEO들은 새로운 비전과 전략부터 짠 것이 아니라 뜻밖에도 적임자를 적절한 자리에 앉히는 일부터 시작했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적임자를 ‘버스에 태울 사람’이란 말로 표현했다. 운명공동체란 뜻이다.

경영 관련 서적을 읽다 보면 기업의 성공 여부는 우호적인 외부조건이 아니라 경영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쉽게 발견한다. 경영을 주제로 한 책이니 당연한 결론이겠지만 이를 국가경영에 적용해도 무리는 없을 듯하다. 외부조건, 즉 안보상의 위협이나 통상압력, 자원결핍 등의 상황이 아무리 나쁘다 하더라도 경영을 잘해낸다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여기서 경영이란 자본, 인재, 자원의 적절한 믹스(mix)를 말하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인재를 지칭한다.

조선조 일곱 번째 왕인 세조는 계유정난을 일으켜 어린 조카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 이른바 ‘왕위 찬탈자’다. 따라서 그에게는 챙겨줘야 할 공신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세조는 한명회, 신숙주, 홍윤성, 권람 등의 공신들을 등극 후에 제거하기는커녕 오히려 후하게 대우해 그들의 지위를 탄탄히 해주었다. 한명회 등은 그 후 성종이 보위에 오르는 데에도 큰 공을 세워 성종마저 그를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요즘 TV에 방영 중인 역사드라마 ‘왕과 나’에선 성종이 공신들 앞에서 자기주장을 제대로 펴지 못하고 쩔쩔매는 모습을 자주 드러내는데 이는 역사적 사실과도 일치하는 대목이다.

조선 왕조의 총체적 비극은 세조 때 싹 터 성종 때 절정기를 이뤘다고 할 수 있다. 공신들은 기득권을 틀어쥐고 변화와 개혁을 외면한 채 국정과 왕실을 좌지우지했다. 이는 성종이 자기의지대로 국사를 펼치지 못하게 했고, 의지와는 무관하게 연산군의 생모인 왕비 윤씨를 폐출케 했으며 끝내 그녀의 사사(賜死)를 막지 못했다. 그 결과 보위에 오른 연산군은 모후를 죽음으로 몰고 간 죄를 물어 관련자들을 숙청하는 피바람을 일으켰다. 윤필상, 김굉필 등 수십명을 살해하고, 한명회는 이미 죽었지만 주검을 다시 파내어 부관참시 했으며, 그 일을 획책한 할머니(대왕대비) 한씨 또한 죽음을 면치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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