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뭐요? 당신.”
수위가 제지하자, 사내는 서툰 조선어로 방문 목적을 설명했다.
“나…리이영요우…만나러…왔어”
“뭐라고?”
“리이영요우!”
사내는 ‘리이영요우’를 몇 번이고 반복해서 말하며 손가락으로 천장을 가리켰지만, 수위는 무슨 뜻인지 도통 알아듣지 못했다. 사내는 하다못해 종이에다 ‘李永祐’라고 적어 보여주었다.
“아, 이영우! 근데 이영우가 누구야?”
“여기…일해…리이영요우.”
“이보쇼. 동척 직원이라면 내가 모르는 사람이 없소. 그런 사람 없으니 썩 나가시오. 여기가 어디라고.”
사내는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뒤돌아서서 사옥 밖으로 나갔다. 세모를 앞둔 도심 거리는 인파로 북적였다.
폭탄 3용사와 폭탄기념일
오후 2시5분. 동척에서 쫓겨난 사내는 전찻길 남쪽으로 돌아 남대문통 조선식산은행 본점(지금의 외환은행 본점 자리)으로 들어갔다. 연말인데다 연휴 끝까지 겹쳐 은행 창구는 대만원이었다. 12월25일 크리스마스는 원래 공휴일이 아니었지만 다이쇼(大正) 일왕이 사망하는 바람에 26일까지 임시공휴일이었고 27일은 일요일이었다. 은행원들은 한꺼번에 몰려든 고객에 치여 아침부터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수위가 어지럽게 뒤엉킨 고객들의 줄을 정돈하느라 자리를 비워 중국옷을 입은 사내는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정문을 통과했다. 철책으로 둘러싸인 대부할인계 창구에는 김병조, 도시마(登島亮), 이토(伊藤貞澄) 세 명의 직원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퉁, 탁. 둔탁한 물건이 창구 철책을 넘어 날아와 대부할인계 뒤쪽 벽면 기둥에 맞고 바닥에 떨어졌다. 김병조는 고객과 상담하느라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 도시마와 이토 역시 뭐가 날아왔는지 살필 겨를이 없었다.
“이봐요. 뭘 던진 게요!”
창구 앞에서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던 아사히(朝日)양조 점원 나카무라(中村)가 중국옷 입은 사내를 가리키며 외쳤다. 사내는 아무 대꾸 없이 쏜살같이 은행 밖으로 뛰쳐나갔다. 나카무라의 고함을 듣고 수위가 달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