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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일본 왕실 혈연 실체 발굴

日왕실 족보 “비타쓰왕은 백제 왕족” 백제 성왕 자손이 아스카 문화 꽃피웠다

  • 홍윤기 한국외국어대 교수·일본문화 senshyu@naver.com

백제-일본 왕실 혈연 실체 발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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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일본 왕실 혈연 실체 발굴

교토시 동쪽에 ‘百濟寺’란 사찰이 있다. 일본인들은 ‘햐쿠사이지’라고 발음하지만, ‘백제’라는 행정 지명을 간직하고 있는, 몇 안 되는 곳 중 하나다.

나머지 한 곳은 교토시 동쪽의 ‘히가시 오우미시 햐쿠사이지초(東近江市百濟寺町)’다. 이 이름은 일본 최대의 비와코 호수 너머 스즈카산(鈴鹿山) 등성이에 우뚝 서 있는 유서 깊은 사찰에서 비롯됐다. 이 사찰의 이름은 ‘샤카산 햐쿠사이지(百濟寺)’, 일본에서는 ‘百濟寺’를 ‘구다라 데라’라고 하는데 유독 이 사찰만은 ‘百濟寺’의 한자어를 소리 나는 대로 읽어 ‘햐쿠사이지’로 부른다.

1910년 일제의 조선 침략 이전까지만 해도 일본 각지에 ‘구다라고우리(百濟郡)’ ‘구다라손(百濟村)’ ‘구다라강(百濟川)’ 나아가 ‘구다라대교(百濟大橋)’ ‘구다라평야(百濟平野)’ 같은 행정지명이 널리 쓰였다. 일본 고대 지도인 ‘팔랑화도(八浪華圖)’는 지금의 오사카 지역인 난바(難波·‘나니와’라고도 부름) 일대가 ‘구다라스(百濟洲)’로 불렸음을 보여준다. 이 지도는 서기 1098년(承德 二年)에 처음 그려졌다. 지금으로부터 900여 년 전 지도에 표기된 ‘구다라스’ ‘난바지(難波寺)’ ‘구다라리(久太郞里·‘백제리’의 이두식 한자 표기)’ 등은 2007년 현재까지 오사카시내의 지명으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특히 당시 ‘구다라고우리(百濟郡)’ 지역은 지금의 오사카 중심 시가지인 히가시나리구(東成區)이다. 1937년에 편찬된 ‘일본고어대사전’은 ‘구다라고우리(くだら こうり)’의 ‘고우리’가 “한국어의 고을에서 파생된 말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오사카 중심지 일대는 한때 행정구역상 ‘기타구다라손(北百濟村)’ ‘미나미구다라손(南百濟村)’으로 분류되기도 했다.

그러나 일제가 조선을 강제 점령한 후, 백제와 관계된 대부분의 일본 지명이 다른 이름으로 바뀌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백제’가 지명으로 남아 있는 곳이 두 군데에 불과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 두 곳의 지명 또한 언제까지 이어질지 알 길이 없다.

“한국과 혈연이 있습니다”

일본의 구다라(백제) 불교문화는 6세기 초엽(538), 일본 나라 아스카(飛鳥) 지역에 자리 잡고 있던 백제계 왕실에서 꽃피기 시작했다. ‘일본서기’는 “백제 제26대 성왕(聖王·523~554 재위)이 일본에 백제 불교를 전파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성왕은 제27대 위덕왕(554~598 재위)에게 왕위를 넘기고 난 다음에는 아예 아스카로 건너가 긴메이왕(欽明·539~571 재위)으로 군림했다. 성왕은 알려진 것처럼 554년 신라군과의 전투에서 사망한 것이 아니라, 장남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일본 왕실로 건너갔다. 성왕은 이미 539년 센카왕(宣化王·536∼539 재위)이 서거했을 때부터 백제와 일본을 넘나들며 왜왕을 겸임했던 것으로 보인다. 일본사학자 고바야시 야스코도 “백제 성왕은 일본왕을 겸임했다”는 연구론을 펼쳤다.



성왕의 선대인 무령왕과 동성왕(479~501 재위)도 모두 백제왕으로 등극하기 전엔 왜 왕실에 살았다. ‘삼국사기’ 같은 우리 역사서엔 이 같은 기록이 없지만, ‘일본서기’에는 ‘동성왕과 무령왕이 각기 일본에서 귀국해 차례차례 백제왕으로 등극했다’는 내용이 있다. 그러니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백제계 왜 왕실에서 살다 귀국해 백제왕이 됐다는 사실만으로도 성왕이 어떻게 왜왕을 겸임할 수 있었는지 납득할 만하다.

한 가지 더 밝혀두자면 794년, 일본 왕실에서는 새 왕도가 된 교토에 성왕의 일본왕실사당인 히라노신사(平野神社)를 웅장하게 세웠으며, 현재까지 잘 보존하고 있다. 일본 고대 왕실에서 히라노신사에 제사를 드려온 사실은 10세기 초 제정된 왕실 법도 ‘연희식(延喜式)’에도 실려 있다. 히라노신사는 일본 제50대 간무왕(桓武·781~806 재위)의 칙명으로 헤이안경(지금의 교토시) 새 왕궁의 북쪽에 세워졌다.

2001년, 아키히토(明仁·1989~ 재위) 현 일왕은 간무왕이 백제인의 후손임을 인정한 바 있다.

“제50대 간무 천황의 생모는 백제 무령왕의 왕자 순타태자의 직계 후손인 화신립(和新笠) 황태후입니다. 이 사실은 일본 왕실 역사책 ‘속일본기’에 실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도 한국과 혈연이 있습니다.”

68회 생일을 맞아 기자회견을 열었을 당시 한 말이다. 천황의 이 같은 발언에 황거(왕궁)를 관장하는 궁내청 고관들이 매우 당황했다는 후문이다. 그 때문인지 일본 언론은 이날 기자회견 내용을 보도하면서 일왕이 언급한 한국과의 혈연관계 대목은 쏙 빼놓았다. 유일하게 ‘아사히신문’이 일왕의 발언을 기사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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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윤기 한국외국어대 교수·일본문화 senshyu@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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