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은 1953년 한일회담 교섭 초기 구보타 간이치로(久保田貫一郞) 대표의 망언(“일본의 통치는 한국인에게 은혜를 베푼 것”)을 필두로 끊임없이 과거사를 미화하고 부정하는 태도를 보였다. 이제는 과거사로 인한 갈등이 연중행사가 돼 양국의 진정한 협력과 발전에 커다란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는 결코 양국관계 증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소모적인 외교전에 발전적 에너지를 낭비할 뿐이다.
한일관계는 아무리 양국 정상 간에 ‘한일간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채택하고, 표면적 우호를 유지한다 해도 과거사 갈등을 국민이 수긍할 수 있도록 명쾌하게 해결하지 않고는 진정한 협력을 기대할 수 없다. 또한 긴밀한 한일 협력 없이는 동북아의 진정한 평화도, 번영도, 안전보장도, 견고한 공동체 형성도 이뤄질 수 없다.
과거사 문제로 양국 간 갈등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데에는, 그러한 갈등을 생산하는 ‘깊은 원인’이 반드시 존재할 것이다. 또한 그 원인은 다분히 정신적인 것과 관련되어 있지 않을까 싶다. 필자는 이런 점에 유의해 다양한 자료와 문헌을 검토한 결과 한일 과거사 갈등과 연관된 것으로 추정되는 일본인의 정신적 요소(국민성) 다섯 가지를 추출했다. 일본인의 이 다섯 가지 국민성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국내외 학자가 연구한 바 있으므로 그 연구 성과에 기반을 두고 일본 국민성과 한일 과거사 갈등의 연결고리를 찾아보고자 한다.
이러한 접근이 타당한지에 대해 이론(異論)이 있겠지만, 과거사를 부정·미화하는 일본인의 성향을 특정해내는 데에는 상당한 효용성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왜냐하면 일본인에게는 우리와는 다른 성질, 즉 특성(trait)이 분명히 존재하고, 그것이 우리들과는 너무나 다른 과거사 인식 태도를 형성하고 있음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神道와 천황제
일본인의 정신 원형에 다가가려면 무엇보다 먼저 일본인의 정신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종교의식을 살펴봐야 한다. 일본인의 종교관엔 다른 민족의 종교관과는 다른 특이한 면이 있다. 일본인 개개인은 별다른 종교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대부분의 일상생활이 매우 종교적이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예컨대 신생아에게 신도(神道)사원의 축복을 받게 하고, 결혼택일은 불교승려로부터 받고, 결혼식은 기독교식으로 하며, 장례식과 제사는 불교식으로 한다. 또한 거의 모든 가정에 부쓰단(佛壇)이나 가미다나(神柵)를 비치해 조상과 영웅, 자연의 영들을 모신다. 특히 조상신이 집안을 보호한다고 생각하며, 각 가정은 지역의 신사나 절(불교 종파)에 소속되어 조상의 원혼을 기리고 숭배한다.
이러한 종교적 관용성은 원시시대 때부터 비롯됐다고 하는데, 그 중핵은 신도다. 일본 문화청에서 발행한 ‘종교연감(2006)’에는 ‘신도’가 “일본민족의 고유한 신 및 신령에 관련된 신념을 기반으로 발생 전개되어온 종교를 총칭하는 말이다. 또한 신과 신령에 관련된 신념 및 전통적인 종교적 실천뿐 아니라 널리 생활 속에 전승돼온 태도나 사고방식까지 포함한다”고 설명돼 있다.
그런데 신도의 가장 고유한 모습은 고신도(古神道)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일본어의 ‘가미(神)’는 어원상 ‘가미(上)’와 통한다. 그것은 선악 귀천 강약 대소와는 상관없이, 초인간적이냐 아니냐를 불문하고 어떤 의미에서든 위력 있는 존재를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