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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외교관의 ‘한일관계 新패러다임’ 제언

日 국민성으론 반성 불가능, 대일 햇볕정책이 유일한 대안

  • 정연택 외교통상부 외교역량평가단 팀장 ytjeong91@mofat.go.kr

현직 외교관의 ‘한일관계 新패러다임’ 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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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외교관의 ‘한일관계 新패러다임’ 제언

일본인에게 천황을 부정하는 것은 일본인 스스로를 부정하는 것이다.

우주 삼라만상 가운데 위력을 발현하는 것은 무엇이든 ‘가미’가 될 수 있는데, ‘야오요로즈노가미(八百萬神)’라는 관념이 그것이다. 즉, 천체 산 들 강 바다 바람 비 등을 비롯해 새 짐승 벌레 수목 풀 금속 돌 등 자연현상이나 자연물에까지 ‘가미’라는 명칭이 붙여지는 것이다. 위인이나 영웅 귀족 등이 ‘가미’로 여겨지기도 하며, 자연이나 인간의 여러 능력이 신격화한 경우도 적지 않다.

신도는 대륙으로부터 전래된 불교, 유교, 도교의 영향을 받아 오랜 세월 수정과 변용을 거듭해왔으나 본질적 내용은 오늘날까지 일본인들 마음속에 계승되고 있다. 그러한 신도의 현실적 표상으로서 천황제(天皇制)가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천황제는 초기 일본의 국가 형태(씨족국가)에서 비롯됐다고 보이는데, 초기 일본 천황의 권력은 매우 미약했다. 그러나 율령국가시대를 거치면서 점차 그 권위가 확립됐다. 즉 씨족의 상징적 수장에서 유교적 이념의 근거를 지닌 율령적 천자(天子)의 모습으로 변화하게 된 것이다. 중세 및 근세 막부시대에는 귀족계급이 성장하면서 천황의 권위가 약화됐으나, 19세기 메이지 유신을 계기로 유신세력 집권을 위한 명분 및 근대국가 형성을 위한 국민통합의 상징으로 다시 권위를 회복했다.

천손강림

천황의 의미를 보다 정확히 이해하려면 지금도 천황 즉위식에서 행해지는 대상제(大嘗祭)를 살펴봐야 한다. 신도 행사로 진행되는 즉위식은 ‘센소(踐祚, 3종 신기 전수)’ ‘즉위의 예’ ‘대상제(즉위종교행사)’ 세 가지 절차로 진행된다. 이 중 특기할 만한 절차가 대상제다. ‘덴노레이(天皇靈)의 접착’이라 하는데, 일본의 기키신와(記紀神話, 천황가에서 정한 일본신화) 가운데 천손강림(天孫降臨)을 재현하는 의식이다.



이 의식은 새 천황이 되는 자가 한밤중에 아무도 들어갈 수 없는, 유기덴(悠紀殿)이라는 일본 전체를 대표하는 ‘덴(殿)’에 혼자 들어가 아마테라스(태양신)와 함께 그해에 난 신코쿠(新穀)를 먹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 후 천황은 니니기(일본의 개국 시조)가 강림할 때 뒤집어썼다는 마도코오후수마(眞床追衾)를 덮고 잠을 잔다. 즉, 천손강림을 재현하는 것인데, 이때 전임 천황에 접착하고 있던 덴노레이가 신임 천황에게로 옮겨 접착된다고 한다. 일설에 의하면 마도코오후수마라는 이불 속에서 신임 천황이 여신인 아마테라스와 성적인 관계를 맺는 의식이라고도 한다. 이것은 어느 누구도 참가할 수 없는 비의(秘儀)다.

이처럼 대상제는 선진국 일본의 국민 처지에서도 믿기 힘든 정령숭배(애니미즘) 의식이다. 하지만 그런 절차를 통해 천황은 자격을 얻고, 일본인이 요구하는 초자연적인 존재가 되며, 또 예배의 대상으로 발전해 아라히토가미(現人神)로 나아가는 것이다.

천황은 이른바 평화헌법에 의해 일본과 일본국민 통합의 상징이라고 규정되어 있으나, 실은 이전부터 그러한 상징이었다. ‘만세일계’의 천황이 일본의 상징이라고 선언하는 것은 일본이라는 국가와 민족이 아득히 먼 옛날부터 존재했다는 의미다. 일본이라는 민족의식, 국가의식이 성장한 것은 근대에 들어서면서부터이지만 천황은 이미 이러한 관념을 통해 일본문화와 역사의 상징이 될 뿐 아니라 스스로 그 존재 근거를 획득한다.

메이지 유신 이후 서양의 발달된 기술문명과 강력한 실력의 원인이 기독교에 있다고 생각한 일부 국학자들은 천황과 국체(國體)에서 기독교에 대한 대안을 발견했다. 따라서 천황은 순수하게 일본적인 것을 상징하게 됐으며, 특히 천황이 중심이 되는 신도는 순수한 일본을 상징하게 됐다.

역사상 일본을 크게 변화시킨 두 사건이 있다. 하나는 에도시대 300년간의 쇄국정책을 무너뜨린 페리 제독의 ‘흑선래항(黑船來港)’이며, 또 하나는 제2차 세계대전 패배다. 두 번의 혁명적 계기는 이전 시대와는 180도 다른 일본을 만들었다. 이런 극적인 전환을 가능케 한 정신적 힘이 바로 천황제에 있다고 일본인들은 느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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