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좋은 책이란 다음에 읽을 책을 알려주는 책이죠. 김현 선생을 만나고 나서부터 문학서적을 섭렵하기 시작했는데, 마치 감자줄기에 감자가 달려 나오듯이 구체적인 세상이 제 앞에 나왔어요. 저를 문학의 길로 이끌어준 분은 책을 통해 만난 그분입니다.”
삶에 대해 전혀 무방비 상태인 여자가 책 속에서 자신의 길을 발견했다. 만약에 다른 길로 빠졌다면…, 지금의 조경란은 없다. 하여간 그녀는 그런 시절을 보내다가 스물세 살 어느 날 새벽에 일어나 부엌에 있던 개다리소반을 들고 와 그 앞에 앉아 노트를 펼치고 시를 썼다.
이 장면은 클로즈업되어야 한다. 햇볕을 받지 않아 그녀의 얼굴은 희고 여위었을 것이다.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지 않아 말투는 어눌했을 것이다. 주로 자기 자신과 하루 종일 이야기했을 것이다. 외출을 하지 않았으니 옷은 계절을 몰랐을 것이다.
힘겨웠던 실연의 아픔
그런 여자가 새벽에 일어났다. 물방울 속에서 태어난 비너스처럼 그녀는 세상을 향해 말을 걸었다. 세상은 그녀를 아름답게 보았다. 그녀가 입을 열어 주위의 것들을 둘러보면서 호명하기 시작한다. 그 최초의 언어가 시였다. 작가 조경란이 탄생하는 신성한 시간이다. 새벽빛을 응시하는 그녀의 둥글고 검은 눈동자가 떠오른다. 시간 역시 검고 풍성한 그녀의 머리카락처럼 길게 자라 있다.
외부로 향한 문을 걸어 잠그고 잠수함을 타고 심해로 내려가 살던 그녀를 곁에서 지켜보고 있는 식구들, 특히 부모의 심경은 어떠했을까. 그녀는 아버지를 이야기했다. 아버지는 시인이 되고 싶었던 목수라고 했다. 그때 아버지가 이런 말을 했다.
“그냥 내버려두자. 저렇게 놔두면 언젠가 뭘 하지 않겠나.”
그녀는 독신이다. 결혼에 대해서는 별생각이 없다. 지금의 삶에 변화가 오기를 바라지 않는다. 만약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주부가 되어도 잠시 행복했다가 생의 어느 순간 부엌을 뒤집어엎고 뛰쳐나오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다. 그건 또 다른 세계를 부숴버리는 일이고, 유리잔이 깨질 때 그 조각의 날에 베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하지만 인생은 알 수 없는 것, 만약에 운명적인 사내를 만나 결혼을 하더라도 부모님과는 같이 살고 싶다고 했다.
딸만 셋이었기에 다른 딸들은 다 부모 곁을 떠났다. 그래서 맏딸인 자신이 부모 곁에서 지내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이다. 부모 사랑이 각별한 것은 그 고통의 기간에 묵묵히 자신을 품어준 고마움에 대한 사랑이다.
그녀에겐 완벽주의자 기질이 있었다. 사랑을 하면 온전히 몰두하는 스타일, 그래서 10여 년 전 첫 연애에 실패했을 때 무척 힘겨웠다고 했다. 그 실연에 대해서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실연을 크게 해서, 다시는 그 뜨거운 불에 손 집어넣고 싶지 않다”고 했다.
실연을 해 처참하고 참담한 기분으로 일주일 이상 식음을 전폐하고 거의 죽을 뻔한 기억이 있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머리카락을 부여잡고 골방을 뒹굴 때, 이명처럼 들려오던 죽음의 노래들. 그 참담한 공간은 평면이 아니라 수직으로 끊임없이 떨어지는 입체다. 방바닥에 등을 대고 누워 있으면 한없이 가라앉는 것 같은 가위눌림.
그러나 사랑의 속성은 어찌할 수가 없다. 그것은 봄바람처럼 불어오는 것이기에, 방문을 열고 나간다면 다가오는 것이기에, 하늘을 올려다보면 빛나는 별빛이기에 어찌할 수가 없다. 그녀는 말했다.
“불타는 사랑을 하던 시간도 좋지만, 사랑을 하고 있지 않는 시간도 좋아요.”
“너, 시는 안 되겠다”
23세에 그녀는 다시 공부를 시작한다. 이 ‘공부’는 대학입시를 의미한다. 서울예전 문예창작학과를 25세 되던 1994년에 입학한다. 필자가 대학을 졸업하고 석사학위 준비를 할 나이에 그녀는 대학 신입생이 되었다. 그리고 이전의 시간을 보상받으려는 듯, 1학년 동안은 시를 열심히 썼다. 그때 같이 학교를 다니던 동기들은 조경란을 이상하게 보았다고 한다.
“동기들이 ‘경란 언니는 간첩이다’라고들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