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는 입사 초기에 “예스( Yes)맨보다 노(No)맨이 조직의 발전을 위해 진정 필요한 사람”이라는 상사의 발언을 곧이곧대로 믿고 쓴소리를 했다가 미운 털이 박히는 경험을 했다. 회사의 문제점을 비판하면 ‘불평불만자’로 낙인찍히는 사례를 체험한 뒤 ‘매사를 긍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조직인’으로 탈바꿈했다. 상사가 “까라”고 지시하면 ‘까야’ 하는 데 익숙해졌다.
덕분에 승승장구했다. 오너 눈에도 들어 측근으로 발탁됐다. 30대 후반에 임원으로 승진했고 40대에 사장이 됐다. 샐러리맨으로 출발해 이 정도 지위에 오르면 ‘성공한 인생’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K씨는 조직의 비리에 연루돼 실형을 살았다. 수의를 입고 법정에 끌려들어가는 모습이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가족들에게 면목이 없더군요. 조직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부속품에 불과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인생 헛살았다는 자괴감이 엄습했고…. 저 역시 최고경영자(CEO)로 재임할 때 부하들을 인간으로 보지 않고 생산요소의 하나로 본 측면이 있습니다. 어쩌면 제가 저지른 일에 대한 업보이지요. 인건비가 많이 나가면 사람 자를 일부터 생각했으니까요. 다시 태어난다면 ‘인간존중 경영’을 하겠습니다.”
대기업체 사장을 지낸 또 다른 K씨도 일밖에 모르는 직장생활을 했다. ‘잘나가는’ 수출 부서에서 줄곧 근무했기에 자기계발을 할 시간이 거의 없었다. 바이어 접대로 거의 매일 밤 룸살롱을 드나든 게 일과일 때도 있었다. 품위 있는 영어 대신 손짓발짓을 동원한 콩글리시로 외국인과 대화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고급 바이어들과 격조 높은 대화를 했더라면 훨씬 큰 성과를 낼 수 있었을 겁니다. 부하들에게 밤샘 근무를 밥 먹듯 시킨 점도 후회스럽군요. 수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부하들을 엄하게 질책한 것도…. 월말 수출목표액을 닦달하면 직원들은 다음달에 나갈 물량을 우선 수출한 것처럼 꾸밉니다. 변칙이 동원되는 셈이지요. 좋게 말하자면 목표지향 경영이지만, 나쁜 말로 하자면 인간의 얼굴이 실종된 ‘야수 경영’이지요.”
개발연대의 한국 기업에서는 두 K씨가 겪어온 조직문화가 당연시됐다. 집단주의가 강한 한국 사회에서 직장인은 조직논리에 묻혀 개성을 상실했다. 종업원은 감시하지 않으면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X이론’이 득세했다. 자발적으로 일한다는 성선설 계통의 ‘Y이론’은 교과서에나 있는 이론이었다.
“사람 투자가 가장 남는 장사”
제조업 중심의 산업사회에서는 X이론이 득세했다. 그러나 정보사회, 지식 기반 경제체제에서는 Y이론을 중시하고 적용해야 한다. 창의력, 상상력의 원천은 자발성에 있기 때문이다. 이를 요약하면 ‘인간존중 경영’ 또는 ‘인간중시 경영’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최근에는 한국에서도 인간존중 경영의 씨앗이 움트고 있다. 의사결정 속도가 빠른 우량 중견·중소기업에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진다. 학교, 병원, 공기업, 연구기관 등에서도 인간중시 경영을 실천하는 곳이 늘어난다. 구체적으로는 ▲조직원에 대한 평생학습을 통해 개인의 만족도와 업무 효율성을 동시에 높이거나 ▲삶과 일이 조화를 이루도록 하고 ▲여성인력을 잘 활용하는가 하면 ▲고령 인력을 적절히 쓰는 방안이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