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씨가 경찰에 들어간 것은 1962년. 이듬해 4월 서울시경찰국(시경) 외사계(정보4계)로 발령 났다. 1967년 치안국(치안본부의 전신) 외사과로 옮겨간 후 1994년 정년퇴직할 때까지 30년 가까이 한 번도 부서를 옮기지 않았다.
퇴직 당시의 계급은 경위. 1969년 경위로 진급했으니 만년 경위였던 셈이다. 퇴직한 후에는 민간인 연구관으로 외사부서에서 계속 근무했다. 컴퓨터 범죄수사에 투입된 그는 2000년 사이버테러대응센터 창설요원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경찰을 떠난 것은 2005년. 서울대 법대 출신의 수재로, 군 제대 후 순경으로 경찰에 투신해 만년 경위로 지낸 수수께끼 같은 그의 이력에 대해선 뒤에 자세히 설명하기로 한다.
윤씨는 최근 기자와 만나 경찰 재직 시절 취득한 한국 현대사의 비화를 털어놓았다. 시기적으로는 3공화국에서 5공화국까지고, 박정희 전 대통령과 관련된 얘기가 많았다. 기자는 첫 인터뷰 이후 세 차례 더 만나 증언의 구체성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가 들려준 얘기 중에는 일반의 상식을 뒤집는 게 많았다. 이를테면 박정희가 김대중을 후계자로 생각했고, 야권 지도자에게 정치자금으로 거액을 건넸다는 얘기는 좀체 믿기지 않았다. 6·10민주항쟁 때 안기부가 야권에 거액을 지원했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더욱이 김대중 납치사건과 김형욱 실종사건에 대한 증언은 정부기관의 공식적인 조사결과와 어긋나는 것이었다.
정보 비화인 그의 얘기가 어디까지 사실인지는 판단하기 힘들었다. 오래된 일인데다 관련자 중 세상을 떠난 사람이 많고 언론이 접근하기 힘든 권력기관의 내밀한 일이라 확인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얘기는 확인의 실효성이 없는 것으로 판단됐다.
청와대에 고급정보 보고
윤씨의 과거 동료들을 접촉한 결과 그가 경찰에서 어떤 일을 했고 어떤 평가를 받았는지 가늠할 수 있었다. 몇몇 전직 경찰 간부가 그의 존재를 확인해줬다. 옛 동료 한 사람은 그의 정보력에 대해 “FBI 첩자로 의심될 만큼 고급정보와 권력층 정보에 밝았다”고 평했다.
윤씨의 고유 업무는 외신과 국외 간행물 분석이었다. 그는 해외방송은 물론 북한방송까지 청취했다. 물론 정보업무의 일환이었다. 또 하나의 중요한 업무는 매일 외사정보를 취합해 정보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이었다. 외사정보보고서는 경찰 내 관련 부서 외에 청와대 종합상황실에도 전달됐다.
윤씨의 업무 중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별보(별건 보고)’라고 해서, 청와대 경호실과 비서실에 비공식적으로 특별정보보고서를 건넨 것이다. 여기엔 국내 정치상황과 관련된 정보도 담았다고 한다. 그가 이런 비밀스러운 일을 했다는 것은 옛 동료의 증언으로 확인됐다.
외사정보보고서는 요즘도 매일 작성돼 청와대에 전달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청 외사국 관계자는 외사정보보고서의 신빙성에 대해 “정보는 첩보와 다르다”며 “대체로 사실로 확인된 내용만 작성한다”고 밝혔다.
현대사의 이면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제기한다는 점에서 윤씨의 증언은 흥미로웠다. ‘사실’이 아닌 ‘정보’지만 그의 증언을 기사화하기로 판단한 데에는 그가 고급정보를 취득할 만한 위치에 있었고 제시하는 정황이 매우 구체적이라는 점이 고려됐다. 그가 들려준 얘기 중에는 당시 외사정보보고서에 적혔던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고 한다. 이제 그와 함께 현대사의 어두컴컴한 터널로 들어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