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먼저 2월25일 정부 출범 이후 나타난 현상들부터 살펴보자.
첫째, 침묵하던 북한이 입을 열었다. 북한은 “비핵·개방 3000은 비현실적”(2월29일 조선신보), “남조선 보수집권세력은 파쇼 독재정권의 후예들”(3월6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등으로 점차 대남 비판의 강도를 높여가는 추세다. 3월 초 한미 합동군사훈련 ‘키 리졸브(Key Resolve)’ 때엔 “핵전쟁의 불구름이 몰려온다”(우리 민족끼리) “비싸게 마련한 대응타격으로 맞받을 것”(인민군 판문점대표부)이라는 막말을 쏟아내기도 했다.
둘째, 남측의 첫 대북 행동은 3월 초 제네바 유엔인권이사회에서 나왔다. 북한 인권상황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함으로써 새 정부의 대북정책이 전임 정부와는 기조를 달리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셋째, 남북 간 갈등이 심화될 조짐에도 대화 채널은 작동되지 않고 있다. 새 정부 대북정책을 북측에 설명하고 향후 대화구도를 논의할 고위급 회담이 추진되고 있다는 징후도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MB 정부는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취임식 참석 제안을 거절하기까지 했다(‘신동아’ 2008년 3월호 ‘한미 지렛대로는 남북 고비 못 넘긴다’ 기사 참조).
크게 보면 남측 새 정부가 북측을 압박하고, 북측은 이에 반발하는 구도다. 보기에 따라선 ‘남=고자세, 북=저자세’로 읽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북측은 지난해 대선 전부터 남측의 새 집권 측에 대해 침묵을 지켜왔다. 2월 말 대남 비판을 시작한 뒤에도 ‘이명박 정부’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당분간은 신중한 자세를 견지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 남측은 ‘비핵·개방 3000’에 대한 후속 설명은 뒤로 미룬 채 북측의 비판에 오불관언(吾不關焉)하는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북측으로선 남측이 과연 대화 의지를 갖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수 있는 형국이다.
이에 따라 지난해 말부터 진행돼오던 이런저런 현안 추진이 차질을 빚게 됐다. 당장 오는 8월 베이징올림픽 때 경의선 열차를 이용해 남북 공동응원단을 보내기로 한 총리급회담 때의 합의가 무산될 전망이다. 이 사안은 2월 초 실무협의에서 남북 합해 300명 규모로 보내기로 결정됐었다. 그러나 그 ‘조건’인 경의선 철로 개·보수를 위한 지원이 언제 시작될지는 감감무소식이다. 통일부 올해 예산에는 이 항목이 잡혀 있다지만, MB 정부는 이 돈을 일방적으로 집행할 의사가 없기 때문이다. 철로 개·보수에 걸리는 시간을 감안한다면 공동응원단은 이미 물 건너갔다고 보는 게 맞다.
‘MB 로드맵’ 기본인식 3가지
MB 정부는 과연 출범 초기의 남북관계를 이런 식으로 몰고 가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전임 정권들의 경우 예외 없이 집권 첫해를 이렇다 할 대화도 해보지 못한 채 허송세월했다. 새 정부도 그런 전철을 되풀이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언가 나름의 ‘속계산’ 내지 ‘로드맵’이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3월 중순까지의 정황으로 볼 때, MB 정부는 남북관계가 한동안 ‘냉각기’를 거치더라도 결국엔 북측이 대화 테이블로 돌아올 것이라고 낙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MB 정부가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는 무엇일까. 반대로 상황이 새 정부의 로드맵대로 움직여주지 않을 때 예상해볼 수 있는 일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