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4월호

남북관계 ‘위기의 4·5월’ 온다

“쌀도, 비료도, 대화도 없다”(南)” vs “NLL 도발로 기선제압?”(北)

  • 송문홍 동아일보 출판국 전문기자 songmh@donga.com

    입력2008-04-08 09: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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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북관계 ‘위기의 4·5월’ 온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남북관계의 윤곽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출범 초이니만큼 아직 명확지 않은 구석이 있는 건 사실이다. 북·미 제네바 회의(3월 중순), 한미 정상회담(4월 중순) 등 눈여겨봐야 할 변수도 남아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나타난 단편적인 모습들로 ‘남북관계 기상도’의 앞날을 전망해 볼 수 있다.

    먼저 2월25일 정부 출범 이후 나타난 현상들부터 살펴보자.

    첫째, 침묵하던 북한이 입을 열었다. 북한은 “비핵·개방 3000은 비현실적”(2월29일 조선신보), “남조선 보수집권세력은 파쇼 독재정권의 후예들”(3월6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등으로 점차 대남 비판의 강도를 높여가는 추세다. 3월 초 한미 합동군사훈련 ‘키 리졸브(Key Resolve)’ 때엔 “핵전쟁의 불구름이 몰려온다”(우리 민족끼리) “비싸게 마련한 대응타격으로 맞받을 것”(인민군 판문점대표부)이라는 막말을 쏟아내기도 했다.

    둘째, 남측의 첫 대북 행동은 3월 초 제네바 유엔인권이사회에서 나왔다. 북한 인권상황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함으로써 새 정부의 대북정책이 전임 정부와는 기조를 달리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셋째, 남북 간 갈등이 심화될 조짐에도 대화 채널은 작동되지 않고 있다. 새 정부 대북정책을 북측에 설명하고 향후 대화구도를 논의할 고위급 회담이 추진되고 있다는 징후도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MB 정부는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취임식 참석 제안을 거절하기까지 했다(‘신동아’ 2008년 3월호 ‘한미 지렛대로는 남북 고비 못 넘긴다’ 기사 참조).



    크게 보면 남측 새 정부가 북측을 압박하고, 북측은 이에 반발하는 구도다. 보기에 따라선 ‘남=고자세, 북=저자세’로 읽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북측은 지난해 대선 전부터 남측의 새 집권 측에 대해 침묵을 지켜왔다. 2월 말 대남 비판을 시작한 뒤에도 ‘이명박 정부’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당분간은 신중한 자세를 견지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 남측은 ‘비핵·개방 3000’에 대한 후속 설명은 뒤로 미룬 채 북측의 비판에 오불관언(吾不關焉)하는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북측으로선 남측이 과연 대화 의지를 갖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수 있는 형국이다.

    이에 따라 지난해 말부터 진행돼오던 이런저런 현안 추진이 차질을 빚게 됐다. 당장 오는 8월 베이징올림픽 때 경의선 열차를 이용해 남북 공동응원단을 보내기로 한 총리급회담 때의 합의가 무산될 전망이다. 이 사안은 2월 초 실무협의에서 남북 합해 300명 규모로 보내기로 결정됐었다. 그러나 그 ‘조건’인 경의선 철로 개·보수를 위한 지원이 언제 시작될지는 감감무소식이다. 통일부 올해 예산에는 이 항목이 잡혀 있다지만, MB 정부는 이 돈을 일방적으로 집행할 의사가 없기 때문이다. 철로 개·보수에 걸리는 시간을 감안한다면 공동응원단은 이미 물 건너갔다고 보는 게 맞다.

    ‘MB 로드맵’ 기본인식 3가지

    MB 정부는 과연 출범 초기의 남북관계를 이런 식으로 몰고 가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전임 정권들의 경우 예외 없이 집권 첫해를 이렇다 할 대화도 해보지 못한 채 허송세월했다. 새 정부도 그런 전철을 되풀이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언가 나름의 ‘속계산’ 내지 ‘로드맵’이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3월 중순까지의 정황으로 볼 때, MB 정부는 남북관계가 한동안 ‘냉각기’를 거치더라도 결국엔 북측이 대화 테이블로 돌아올 것이라고 낙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MB 정부가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는 무엇일까. 반대로 상황이 새 정부의 로드맵대로 움직여주지 않을 때 예상해볼 수 있는 일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남북관계 ‘위기의 4·5월’ 온다

    3월 13~14일 북·미 제네바회담의 양측 주역인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위)와 김계관 북한 외교부 부부장.

    ‘비핵·개방 3000’으로 집약되는 MB 정부의 대북 구상과 그 문제점에 대해서는 ‘신동아’ 2008년 3월호에서 포괄적으로 다뤘다. 요약하면 ▲‘한미동맹 복원’과 ‘북핵 해결’을 대전제로 내세우며 다른 모든 사안을 이에 종속변수로 놓을 경우 남북관계는 파행을 거듭하고 한국은 주도적 역할을 상실할 위험이 있다 ▲MB 정부의 남북경협 4대 원칙(북핵 진전, 경제성, 재정부담 능력,국민적 합의)에는 북핵 문제가 진전될 때 경협을 검토하겠다는 ‘공식’만 있을 뿐 경협을 어떻게 추진하겠다는 ‘각론’이 빠져 있다 ▲새 정부 내의 바뀐 역학구도에서 누가 대북 협상의 총괄창구 역할을 할 것인지 채널이 불분명하다 등이었다.

    이번에는 이 같은 MB 정부 대북정책의 근저(根底)를 이루는 ‘인식’의 실체를 추적해볼 차례다. MB 정부가 어떤 철학과 논리에 입각해 이 같은 대북구상을 입안했는지 따져보는 것은 정책의 성패를 가늠할 핵심 요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첫째, 남측으로부터의 쌀·비료 지원은 북측으로서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절박한 문제라는 인식. 이 같은 인식은 최근 정부 당국자들에게서도 표출됐는데, 북한은 이를 위해서라도 남측과의 대화에 나설 수밖에 없고, 일정 부분 양보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둘째, 그러므로 남측은 이 기회에 남북관계에서 확실하게 주도적인 지위를 확보해야 한다는 인식. 정권 초반에 어느 정도 기 싸움과 교착상태를 감수하더라도 ‘갑(甲)’의 지위를 확고히 해야만 앞으로 경협뿐 아니라 이산가족, 국군포로·납북자 문제 등 민감한 현안들을 남측 의도대로 끌고 갈 수 있다는 계산이다.

    셋째, 미국이 마음만 먹으면 가까운 시일 안에라도 북미관계가 좋아질 수 있고, 남북관계는 그 후에 추진해도 늦지 않다는 인식. 이른바 ‘한미동맹 복원→북미관계 개선→남북관계 진전’이라는 단계적 접근법이다. 이 과정에 4월 한미 정상회담이 긍정적인 기능을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있을 것이다.

    MB 대북정책의 저변을 이루는 이 같은 인식들에는 근본적으로 이전 정권들과 차별화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생각이 내포돼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이는 또 4월 총선 전략과도 연계된다. 최소한 총선 전까지는 북한과 거리를 두면서 보수적인 태도를 견지할 때 이전 정권과의 차별성도 부각되고 득표에도 더 유리하다는 계산이 서 있다는 얘기다. 대통령직인수위 시절부터 MB 대북전략 수립과정을 관찰해온 한 전문가의 말이다.

    “현재까지 드러난 MB 대북정책 역시 효율을 중시하는 ‘CEO 마인드’가 반영된 결과라고 본다. 불발로 끝난 ‘남주홍 통일부 장관’ 카드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 강경보수로 알려진 남씨를 통일부 수장 자리에 앉혀놓으면 쌀·비료 지원을 하게 될 경우 국내 보수진영의 거부감을 상쇄할 수 있다는 계산을 하지 않았을까.”

    문제는 이 같은 인식들이 과연 올바른 상황 판단에서 비롯된 것이냐는 점이다. 단순히 ‘그럴 것이다’라는 추측에 입각한 판단은 정책 오류를 낳을 수 있다. 상대방이 있는 남북관계 속성상 남측의 행동에 대한 북측의 반응을 한 방향으로 예단하는 것도 위험한 일이다. 남북관계의 로드맵을 그리더라도 국면마다 돌발변수에 대한 대책과 대안들을 마련해놓아야 하는 이유다.

    그 3가지 인식의 오류

    첫째, 북한은 식량·비료를 받기 위해 마지막까지 대화에 매달릴 것인가.

    북한이 현재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는 것은 맞다. 북한 내 암시장 곡물가격도 지난 1, 2년 사이에 천정부지로 뛰었다고 한다. 올해는 국제 유가·곡물가 상승으로 더욱 힘든 고비를 넘겨야 한다. 하지만 사정이 어렵다고 해서 북한이 무작정 남쪽에 매달릴지는 좀더 두고 볼 일이다.

    북한은 1990년대 중반 식량위기 때 수백만의 아사자가 발생했음에도 버텨냈다. 2006년에도 핵실험 때문에 식량원조가 중단됐었다. 그런 북한이 제2, 제3의 ‘고난의 행군’을 다시 선언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북한이 남측의 식량·비료지원을 ‘독이 든(조건이 따라붙는) 사과’라고 본다면, 그것을 거부하고 대화를 끊을 수도 있다.

    남북관계 ‘위기의 4·5월’ 온다

    개성공단

    더욱이 적절한 지원을 위한 타이밍도 이제 거의 지나갔다. 비료의 경우 4월 전에는 북측에 전달돼야 농사에 제대로 활용할 수 있다고 한다. 식량의 경우 북한은 이미 연초부터 중국과 지원물량에 대한 물밑 협상에 들어갔다고 알려졌다. 여기에 미국과 핵 신고 문제를 둘러싼 협상이 급진전되면 미국 및 국제구호기구의 더 많은 지원을 기대할 수 있다. 남측 지원 양에는 못 미칠지 몰라도 북측 나름대로 대안을 강구하고 있다는 얘기다.

    둘째, 이번 기회에 ‘갑’의 지위를 확보하겠다는 MB 정부의 의도는 충족될 것인가.

    남북관계에서 ‘갑’의 지위란 간단히 말해 ‘주는 자’가 ‘받는 자’에 대해 갖는 우위다. ‘주는 자’로서 지원물량의 분배 투명성도 요구하고 이전 정권들이 꺼내지 못했던 과제들도 당당하게 제기하겠다는 게 MB 정부의 기대일 것이다.

    하지만 북은 그동안 남측 이외에 잠재적인 지원자를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꾸준히 해왔다. 만약 북이 국제적인 틀 속에서 핵 협상을 급진전시키는 한편 남측과는 대화를 단절한다면, 한반도 북쪽을 둘러싼 주변국들과의 영향력 경쟁 구도에서 남측이 오히려 소외될 수도 있다.

    셋째, 한미관계 및 북미관계가 개선된 뒤 남북관계에서 돌파구를 찾겠다는 구상은 얼마나 유효한가. 이와 관련, 이 대통령은 지난 3·1절 기념사에서 “남북 문제도 배타적 민족주의로는 해결할 수 없다. 우리 민족 내부의 문제인 동시에 국제적 문제로 봐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문맥상으론 ‘민족 내부 문제’와 ‘국제적 문제’를 동렬에 놓았지만, 최근 움직임을 종합해보면 명백히 후자 쪽에 무게를 둔 발언이다.

    여기서 짚어봐야 할 대목은 미국이 남북관계 진전에도 도움이 되어줄 것이라는 낙관론이다. 과연 그럴까. 지난해 초 북·미 베를린 협상 때 한국 정부가 미국으로부터 협상 내용에 대한 어떤 설명도 전달받지 못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3월13~14일 열린 북미 제네바 회담도 마찬가지다. 회담 전부터 1972년 미·중 간 상하이 코뮈니케를 참고로 하는 절충안을 채택한다는 얘기가 나왔고 비밀각서를 교환한다는 소문도 떠돌았는데, 한국은 그 내용을 미국으로부터 받으리라고 확신하는가.

    ‘출범 초부터 남측 정부에 마음이 상한 북한이 과연 남측의 의도대로 움직여줄 것이냐’는 점은 또 다른 문제다. MB 정부는 노무현 정권 때 합의했던 내용을 전면 재검토해 ‘우선 할 것’ ‘나중에 할 것’ ‘못할 것’으로 구분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북한 처지에서 6·15 및 10·4 공동선언은 누구도 범접하지 못할 ‘장군님의 위대한 업적’이다. 이를 부인하는 남측에 길을 열어주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북측 체제의 속성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발상이다.

    대화는 열리지만…

    결론적으로 현 정국을 다음의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①남측은 국내정치적으로 당분간은 보수적 태도를 견지할 필요성, 그리고 ‘때가 되면 북을 설득할 수 있다’는 낙관론을 바탕으로 대화 채널을 열려는 노력조차 없이 일방적인 대북 자세를 고집하고 있다.

    ②MB 정부에 대해 판단을 유보해오던 북이 본격적으로 남측에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③이 같은 남북 갈등구도 속에서 북·미는 꾸준한 물밑 접촉을 통해 핵 신고 문제 및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의 방북 건 최종 타결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그러면 이 같은 상황에서 가까운 시일 안에 벌어질 가능성이 있는 일들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

    [시나리오 1] 어찌 됐건 고위급 대화가 열리는 경우다. 이와 관련, 남북 간 장관급회담의 구성 문제는 지난해 11월에 열린 제1차 남북총리회담 합의서에 나와 있다. ‘남북경제협력공동위원회’(부총리급)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추진위원회’(장관급), ‘남북사회문화협력추진위원회’(장관급) 등이 그것들이다. 그러나 총리회담 합의서 자체가 발효를 위한 국회 승인을 받지 못해 회담이 열리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가까운 시일 안에 물밑 접촉 등을 통해 고위급 회담이 열린다면, 그 자리는 쌀·비료와 이산가족 안건을 교환하는 무대가 될 공산이 크다. 이 자리에서 MB 정부는 지원 조건으로 상호주의를 내걸고, 지원물자에 대한 분배 투명성을 요구하며, 국군포로·납북자 문제를 내걸 수 있다.

    이 경우 예상되는 북의 태도는 단 하나다. 쌀·비료를 받지 않는 대신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무산시키고 후속 대화도 단절한다는 것. 이와 관련, 한 정보 전문가는 “북한은 이미 대화 단절에 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북한이 대남 노선을 확정지을 분기점은 3월 중순께가 될 것이다. 북한 내부적으론 3월 초부터 중순까지 MB 정부에 대한 대남 관련기관들의 최종 보고가 진행됐다. 통전부 및 산하기구들, 대외연락부, 서기실 등 그동안 대남업무를 담당해온 모든 기관이 참여한 이 보고를 통해 최종적인 대남전략이 결정된다. 이와 동시에 3월 중순이라는 시기는 테러지원국 해제문제와 핵 신고 문제를 둘러싼 북·미 간의 기 싸움이 종료되는 시점이기도 하다. 중국으로부터의 식량·물자 지원과 관련해 최근 김정일 위원장의 중국대사관 방문, 저우언라이 띄우기 등도 이 시간표에 맞춘 것이다.”

    계획된 도발, 개성공단 카드…

    [시나리오 2] 서해 북방한계선(NLL) 주변에서 군사분쟁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다.

    서해 개발은 10·4 공동성명의 핵심 사안이었지만, 현재 진전된 내용은 아무것도 없다. 지난해 11월 열린 남북 국방장관회담에서도 이 문제는 합의를 보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김장수 전 국방장관이 퇴임 직전 ‘서해 쪽으로의 도발 가능성’을 경고한 것이 화제가 됐다. 한 정보 관계자의 말이다.

    “김 전 장관의 발언은 군 정보기관의 대북 통신감청에 근거를 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력도발은 북한 지도부가 자존심을 지키자고 결의할 경우 충분히 고려할 만한 대안 중 하나다. 양측 간 주도권 싸움에서 초전에 박살을 낸다는 것이다. 북측이 만약 실제로 무력도발을 해온다면 그 방식은 월경(越境)의 형태로, 시기는 4월9일 총선 이후부터 4월 중순 이 대통령의 방미 사이 어느 때쯤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는 과거 북한군의 대남 도발을 살펴보면 일정한 패턴을 발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도발 후 남측 언론의 보도 태도와 정부의 대응방식을 보고 후속조치를 강구한다는 것. 북한군으로선 남측 정부의 위기대응능력 및 한미공조를 테스트해보는 부수효과도 거둘 수 있다고 한다.

    [시나리오 3] 북이 MB 정부에 대해 6·15에서 10·4에 이르는 기존 합의사항의 이행 여부를 문의해올 경우다. 다시 말해 국가수반 사이의 약속을 이행하라고 남측을 압박할 가능성이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기존에 합의된 경협 사안에 대해 이미 4대 원칙을 제시해놓은 상태다. 문제는 이것이 북측과는 한마디 상의 없이 나온 일방적인 잣대라는 것. 여기서 남측의 답변이 역시 ‘전면 재검토’일 경우 대화는 그걸로 끝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북의 처지에서 기존 합의들은 ‘우리 민족끼리’를 내세운 김정일 위원장의 업적이다. 이를 부인하면 곧 김정일을 부인하는 것으로 북쪽 사람들은 받아들인다. 그럴 경우 저쪽 체제의 생리상 개인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물불을 안 가리게 된다. 대남 관련 기관이 총동원돼 남측을 공격하는, 이른바 충성 경쟁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시나리오 4] 북한이 개성공단을 새로운 ‘대남 카드’로 들고 나올 경우다. 예컨대 개성공단에서 일하는 북측 근로자들이 태업을 벌이거나 극단적으로 북 당국이 공단 폐쇄를 선언하고 나온다면 남측 정부로서는 문제가 보통 심각해지는 게 아니다. 개성공단 입주 기업들에 대한 정부의 책임 문제가 제기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 전문가의 말이다.

    “MB 정부는 북한이 최근 금강산 자가용 관광을 허용하고 개성공단을 유지하는 것을 ‘북측이 대화를 유지하고 싶어 한다’는 신호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건 큰 착각이다. 김정일 위원장은 지난해 2차 정상회담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만났을 때 개성공단에 대해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은 발언을 했다고 한다. 문제는 김 위원장의 이 같은 인식이 지난해 말 이후 민경련, 민화협, 통전 등 개성공단 담당기관에 대한 대대적인 사정(査正)으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이건 관계자들 개인 차원의 부패를 척결한다는 차원이 아니라 김정일이 개성공단을 ‘실패’로 규정지은 데 따른 당연한 수순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남측 정부가 개성공단 확장의 전제로서 핵 문제 해결을 내세우는 것은 북측이 보기에 현실을 한참 모르는 행태로 비칠 수밖에 없다.”

    남북관계에서 ‘실용’의 의미는?

    3월 중순 현재, 남북 양측이 앞에 소개한 우울한 궤도에서 벗어나 획기적인 돌파구를 모색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최소한 4월 총선 및 이 대통령의 방미 때까지는 그럴 것이다.

    MB 정부는 이상한 낙관론을 바탕에 깔고 ‘현장감각’이 떨어지는, 하지만 국민에게는 ‘오랜만에 듣는 시원한 소리’로 여겨질 법한 미사여구를 쏟아내고 있다. 북측은 그런 남에 대한 관망 자세를 털어버리고 바야흐로 직격탄을 쏘아댈 태세다.

    사실 첫 단추는 MB 정부가 김영남 상임위원장의 방남(訪南)을 거절했을 때 잘못 꿰어졌다. 이제라도 그것을 바로잡을 방법은 없을까. 늦게나마 실수를 바로잡지 못하면 5월 이후 감당키 어려운 위기를 맞을 수도 있을 텐데 말이다. MB 정부는 남북대화에서 실용이란 무엇을 의미하는지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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