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4월호

이상득 국회의원

이 대통령의 정신적 지주

  • 송홍근(동아일보 주간동아 기자)

    입력2008-04-12 14: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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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득 국회의원
    이명박 대통령의 형(兄)으로 ‘측근 중 측근’이다. 코오롱에 입사해 초고속 승진 끝에 17년 만에 사장직에 올랐다. “나는 정치는 잘 모르는 경제꾼”이라는 말을 자주 하는 실물경제통. 13대 총선 때 고향(당시 영일군)에서 금배지를 단 이래 17대까지 내리 당선됐으며 당 원내총무와 정책위의장, 사무총장 3역을 모두 역임했다.

    5선 의원인 그는 당내 기반이 없던 이 대통령에게 사람을 모아주는 데 앞장섰으며, 대선후보 경선 이후엔 박근혜 전 대표를 지지했던 서청원, 최병렬 전 대표를 만나 화합을 부탁했다. 국회의원과 당원협의회장을 맨투맨으로 접촉하면서 이 대통령 지지를 부탁한 일화도 유명하다.

    그는 이 대통령을 움직이는 극소수의 사람 가운데 핵심이다. 이 대통령에 대한 그의 역할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단어는 ‘멘터(mentor·후견인, 조언자)’. 이 대통령은 후보 시절 어려운 상황이 생기면 “이 부의장하고 상의하세요”라고 말하곤 했다. 이 대통령이 이른바 ‘이명박 특검법’을 수용하겠다고 전격적으로 결정한 데도 그의 영향이 컸다는 후문이다.

    대통령의 친형이자 현실 정치인인 그에게 세간의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가 새 정부에서 요직에 앉으리라는 관측은 많지 않다. 막후에서 실세 노릇을 하리라는 것이다. 이 부의장을 필두로 한 포항 인맥이 막강한 권력을 휘두를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거의 없다.

    이 부의장과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으로 대표되는 ‘원로그룹’은 이명박 정부의 조각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 부의장은 국회부의장 비서실장이던 장다사로 씨를 정무라인의 핵인 대통령정무1비서관으로 진출시켰으며, 조각 작업을 실무 지휘한 박영준 대통령기획조정비서관은 이 부의장의 보좌관으로 11년 동안 일했다.



    이 부의장은 권부의 경쟁그룹으로부터 18대 총선 불출마 압력을 받기도 했다. ‘고령’ ‘다선’이라는 게 불출마 요구의 명분이다. 이 부의장의 공천 논란을 ‘이재오 대 이상득’의 대결로 보는 시각이 있는데, ‘이재오그룹’과 ‘소장그룹’이 한동안 연대해 원로그룹을 견제하리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 부의장은 이 대통령과 비슷한 삶을 살았다. 하교 시간 학우들을 상대로 붕어빵을 팔았고 신문배달을 하면서 학비를 벌었다. ‘목욕탕 수건 1장 쓰기’ ‘사무실 전기 소등 철저’ ‘화장지 1장 쓰기’ 등 그는 근검절약을 강조한다. 학비 부담을 덜고자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한 뒤 배구경기를 하다가 다쳐 2년을 수료하고 퇴교당한 일도 있다.

    李相得

    생년월일 : 1935년 11월29일

    출생지 : 경북 영일

    학력 : 동지상고, 육군사관학교 중퇴, 서울대 상대 졸업

    경력 : 코오롱 사장, 한국능률협회 부회장, 코오롱상사 사장, 코오롱호텔 대표이사 사장, 제13대 국회의원(경북 영일·울릉, 민주정의당·민주자유당), 제14대 국회의원(경북 영일·울릉, 민주자유당·신한국당), 제15대 국회의원(경북 포항남·울릉, 신한국당·한나라당), 한나라당 원내총무, 한나라당 정책위의장, 제16대 국회의원(경북 포항남·울릉, 한나라당), 한나라당 사무총장, 제17대 국회부의장

    상훈 : 동탑산업훈장, 국민훈장동백장, 1억불수출의탑

    종교 : 기독교

    취미 : 골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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