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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계 이너서클 ‘120일 초단기 권력투쟁’ 내막

이상득계 인사 독식에 이재오계·정두언계 ‘55인 선상반란’

  • 송국건 영남일보 정치부 기자 song@yeongnam.com

이명박계 이너서클 ‘120일 초단기 권력투쟁’ 내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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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두언, 처음엔 날았다

이명박계 이너서클 ‘120일 초단기 권력투쟁’ 내막

제18대 국회의원선거 다음날인 4월10일 경남 사천시 삼천포농협 앞. 접전 끝에 당선된 민주노동당 강기갑 당선자의 당선사례 현수막과 낙선한 한나라당 이방호 사무총장을 위로하는 현수막이 함께 걸려 있다.

이들 세 그룹은 지난해 12월19일 대선 직후부터 4·9 총선 직전까지 두 차례 격전을 치렀다. 1차 충돌은 대통령직인수위가 구성되고 새 정부의 골격을 짠 12월19일부터 2월25일 대통령 취임식까지였다. 이 기간에 각종 공직 인선에서 이상득계와 이재오계가 양립하는 가운데 정두언 의원이 간간이 힘을 행사했다.

첫 단계인 대통령직인수위 인선 과정에선 잡음이 일 정도의 힘겨루기는 없었다. 국지적 마찰은 있었지만 세 그룹 모두 어차피 한시적인 기구의 구성을 놓고 소모전을 벌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인수위 구성은 이 대통령의 의중을 잘 아는 MB 직계(정두언계)가 주도해 ‘실용적’으로 짰고, 이상득계와 이재오계가 몇 사람씩 밀어 넣는 형태로 이뤄졌다.

그러나 조각(組閣)과 청와대 인선 과정에서 본격적인 충돌이 벌어졌다. 세 계파가 한 사람이라도 더 요직에 포진시키기 위해 치열한 신경전을 펼쳤다. 결과는 이상득계의 완승이었다. 이 대통령이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준 결과다.

“5000명이 내 손에”



당시 국무총리와 대통령실장 이하 여러 요직의 발탁 대상자는 박영준 비서관의 손을 거쳐야 했다고 한다. 이상득 부의장의 보좌관 출신으로 서울시 정무국장을 지낸 박 비서관은 장·차관급, 나아가 국무총리와 대통령실장 인사에까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대통령당선인 비서실 총괄팀장 시절 인수위 기자실을 찾은 자리에서 “한 달여간 무려 5000여 명의 인사 파일을 들여다봐야 했다”고 털어놓았다.

당시 이재오계나 정두언 의원 측에서 올라온 명단이 박 비서관 선에서 차단되기도 했다. 물론 박 비서관은 재산 및 경력 검증 같은 기초 작업을 마친 인선안을 이상득 부의장에게 보고해 ‘재가’를 받는 절차를 거쳤다. 고려대 후배인 박 비서관에 대한 이 대통령의 신임도 각별했다. 이 대통령은 2002년 서울시장선거 때 형인 이상득 의원이 보내준 박 비서관을 곁에 두고 일을 시켜본 뒤, 그의 기획력과 조직구성력에 탄복했다고 한다. 인수위 활동을 끝낸 박 비서관은 대구 중-남구에 출마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이 붙잡았다. 한나라당 공천신청까지 마친 그를 불러 “곁에서 일해달라”고 2시간 동안 타일렀다고 한다.

이처럼 막강한 파워를 과시하며 새 정부 요직 인선을 독점하다시피 했던 이상득계는 치명적인 타격을 받는다. 각료와 청와대 수석비서관에 내정된 인사들에게서 각종 하자가 줄줄이 드러나면서 ‘인사 파동’이 몰아닥친 것이다. 그러자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이재오계와 정두언계가 반격에 나선다. 2월25일 대통령 취임식이 끝나고 공천심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된 시점을 분수령으로 친이 내부의 권력 추는 급격히 이재오계와 정 의원에게로 기운다.

이재오 의원은 정부 요직 인사권은 제대로 행사하지 못했지만 총선 공천권만은 놓칠 수 없다고 보고 이상득계인 이방호 사무총장과 정종복 의원까지 끌어들여 치밀한 전략을 짰다고 한다. ‘개혁공천’을 기치로 공천심사위를 장악한 것이다.

공천심사 과정에서도 이상득계가 ‘실세’인 것으로 오인한 수많은 공천 희망자가 이 부의장은 물론 최시중 위원장과 박 비서관에게 몰려들었지만 이들은 이미 인사 파동으로 힘이 떨어진 상태였다. 대신 이재오-이방호-정종복 라인이 공천을 좌지우지했다. 정두언 의원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이상득 부의장과 이재오 의원에게 공천 파동 책임을 지고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2선으로 물러나라며 압박했다.

쿠데타 실패와 靑 비서관 사임

이런 와중에 한나라당 수도권 공천자 19명이 3월23일 오후 한나라당 기자실에 떼지어 나타났다. 이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서민을 외면한 정책 혼선, 잘못된 인사, 의미가 퇴색된 개혁공천에 대해 청와대와 당 지도부가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 인사를 잘못한 청와대 관계자에게 책임을 묻고 사퇴시켜야 한다”고 요구했다. 나아가 이상득 부의장의 공천 반납을 요구했다.

이들의 기자회견에 동조하는 공천자가 속속 나타나 나중에는 동참자가 55명으로 늘어났다. 이른바 ‘친이 55인 친위 쿠데타’였다. 이 대통령은 자신의 측근들이 대국민 사과를 운운하고 형인 이 부의장 퇴진을 요구하자 단단히 화가 났다. 이날 저녁 주모자로 지목된 이재오 의원을 청와대로 불러 “대선이 끝난 지 얼마나 됐다고 이런 분란을 일으키느냐”며 호되게 꾸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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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국건 영남일보 정치부 기자 song@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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