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천일 관련 사건 동아일보 기사들. 일제 강점기 재판은 1심 지방법원, 2심 복심법원, 3심 고등법원 순으로 진행됐다.
“애고머니!”
인기척에 눈을 뜬 김씨가 놀라 소리쳤다. 괴한이 품에서 시퍼렇게 날이 선 식칼을 빼어들고 모기장을 향해 돌진했다. 김씨는 남편을 깨울 겨를도 없이 모기장을 빠져나와 괴한이 달려드는 쪽과 반대 방향으로 문지방을 넘어 달아났다.
“으악…으악…악…악…아…으….”
맨발에 옷고름 풀린 속옷 차림으로 마당을 가로지르던 김씨의 등 뒤에서 나이든 남자의 비명이 들렸다. 김씨는 입술을 질끈 깨물고 별채를 향해 내달렸다. 별채에는 오명보의 큰아들 오천일이 두 번째 첩 하복녀와 함께 자고 있었다. 오천일은 평양에서 정미소를 경영했는데, 어쩐 일인지 몇 달 전 고향에 돌아와선 그대로 눌러앉았다.
“천일이! 이봐, 천일이!”
오천일이 눈을 비비며 방문을 열고 나왔다. 서른다섯 살의 오천일은 김씨보다 네 살이나 많았지만 아버지의 애첩을 깍듯이 대했다.
“작은어머니가 이 시간에 웬일이세요?”
“가…가…강도가 들었어!”
김씨가 숨을 헐떡거리며 간신히 말을 맺었다. 오천일은 놀란 표정을 지으며 아버지의 안부부터 물었다.
“아버님은요? 아버님은 어떻게 되셨어요?”
어린 서모(庶母)는 난처한 듯 고개를 숙이고 이마에 맺힌 땀을 훔쳤다. 오천일은 대청 기둥에 걸어둔 낫을 들고 안채로 달려갔다. 안채는 쥐죽은 듯 고요했다. 괴한은 이미 달아났고, 오명보는 마구 찢긴 모기장을 뒤집어쓰고 검붉은 선혈을 흘리며 널브러져 있었다.
“아버지! 아버지!”
오천일은 핏덩어리가 된 아버지의 육신을 부둥켜안고 오열했다.
미궁에 빠진 살인사건
“젠장, 도대체 이 인간은 인생을 어떻게 산 거야!”
평양경찰서 사법주임 고야마(小山) 경부가 살해당한 오명보의 원한 관계 보고서를 들척이다가 책상 위에 거칠게 내던지며 분통을 터뜨렸다. 친인척 몇 명을 제외하곤 율리면 주민 태반이 오명보에게 앙심을 품고 있었다. 오명보는 율리면 일대 5만여 평의 토지를 소유한 대지주였고, 살해당하기 몇 달 전까지 그곳 면장으로 일했다. 소작료를 가혹하게 징수해 원성을 산 데다, 면장도 벼슬이라고 거드름을 피우다 인심을 잃었다. 수십만원에 달하는 재산으로 고리대금을 일삼다가 이웃들에게 미움을 받았고, 네 명의 첩을 거느리는 것도 모자라 수시로 젊은 아낙네들을 농락해 물의를 일으켰다. 금품 관계, 치정 관계가 난마처럼 얽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