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둑한 뱃살이 부(富)의 상징이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정반대다. 근육이 적당하게 붙은 마른 몸매가 가진 자의 기준이 됐다. 값싼 음식은 열량은 높고 영양가는 낮은 반면 정성스레 가꾼 재료로 만든 고급 음식은 건강식이 된다. 식탁 간 빈부격차가 분명해진 것이다. 이 때문에 미국에서는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은 소수인종의 비만도가 훨씬 높다. 음식 선택권과 건강조차 돈이 있어야 지킬 수 있다.
음식이 입에 맞지 않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혼자 사는 유학생인 내게 미국 먹을거리의 포장단위는 너무 컸다. 먹는 양보다 버리는 양이 더 많았다. 게다가 대부분 묶음 판매를 하는 통에 먹을 만큼만 구매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유학 초기, 아침에 먹을 식빵을 사러 슈퍼마켓에 들렀을 때였다. 서른 쪽가량의 식빵 두 봉지를 한 봉지 가격에 팔고 있었다. 일주일 남짓한 유통기한 안에 도저히 다 먹을 수 없는 분량이어서 한 봉지만 들고 계산대에 섰다. 어차피 버려질 것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가져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의아해하는 점원에게 서툰 영어로 짧게 설명했지만, 공짜를 마다하는 것이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 눈치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유통기한 내에 음식을 처분하기 위해 과식하는 날이 늘어갔다. 오랜만에 냉장고 청소라도 하는 날이면, 언제 사뒀는지도 가물가물한 쓰고 남은 식재료들이 쏟아져 나왔다.
마약중독보다 무서운 음식중독
물론 적은 단위로 포장된 물건이 아예 없지는 않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주로 계산대 옆에 소량 비치되거나 눈에 잘 띄지 않는 별도의 공간에 진열돼 있다. 또한 낱개로 물건을 구매할 경우 단가가 현격히 비싸지기에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묶음으로 구매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국에도 다량을 구매하면 덤을 끼워주는 판매방식이 있으니 별로 놀라울 게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 장을 보면서 받는 느낌은 사뭇 다르다. 미국에서는 많이 사면 보너스를 얻는 것이 아니라 적게 사면 페널티를 무는 기분이 든다. 대부분의 제품이 다량 포장으로 판매되기 때문이다.
과자나 음료처럼 유통기한이 긴 제품은 오래 두고 조금씩 나눠 먹으면 되지 않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그러나 ‘한번 열면 멈출 수 없다(Once you pop, you can´t stop)’는 미국 유명 과자 회사의 광고문구처럼, 일단 제품 포장을 뜯으면 빠른 시간 안에 소비하게 되는 게 사실이다.
감자칩과 같은 고열량 식품의 경우 대부분 1봉지에 2000kcal가 넘는다. 성인 1일 열량 권장량이 남성의 경우 3000kcal, 여성의 경우 2200kcal인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양이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제과업체들이 최근 100kcal 단위로 포장한 제품들을 출시하고 있지만, 그나마도 20개들이로 묶어 판매한다.
문제는, 식욕이 인간의 가장 큰 욕구인 만큼 억제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얼마 전 미국의 한 TV채널에서 방영한 비만 다큐멘터리의 내용은 꽤 충격적이다. 체중이 200~300kg에 달하는 초고도 비만 환자들의 일상을 다룬 이 프로그램에서 한 남성은 하루 3만kcal 이상의 열량을 섭취했다. 그는 내장지방이 폐를 압박해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어 산소호흡기를 달고 살아야 했지만 일반인의 10배가 넘는 양의 음식섭취를 멈출 수 없었다.
미국에서는 이들을 음식중독자(food addict)라고 부른다. 약물중독이나 알코올중독처럼, 단순히 개인의 의지로 고열량 음식을 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2000년대 들어 각종 패스트푸드 업체에 책임을 묻는 ‘비만소송’이 줄을 이었고, 비만을 과연 중독으로 볼 수 있는지가 논란의 중심이 됐다.
2003년 프린스턴 대학의 한 연구팀은 쥐실험을 통해 패스트푸드나 과자처럼 설탕과 지방이 다량 함유된 식품이 마약만큼이나 강력한 중독성을 가진다고 주장했다. 이는 소송을 제기한 비만환자에게 힘을 실어줬지만 아직까지 승소한 사례는 없다. 일각에서는 1990년대 ‘담배소송’으로 재미를 본 변호사 집단이 패스트푸드 업체를 다음 먹잇감으로 택해 소송을 조장하고 있다는 냉소적 견해도 있다.
미국에서는 빈곤할수록 비만이 될 가능성이 높다. 패스트푸드와 같은 저가 음식은 열량만 높고 영양가는 부실하고, 건강식은 가격이 비싸기 때문이다.
미국처럼 개인의 의지와 노력을 중시하는 사회에서조차 비만은 개인의 힘으로 도저히 벗어나기 힘든 굴레인 것일까. 미 질병통제예방센터가 2004년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미국 성인의 33%가 비만으로 드러났으며 과체중 인구까지 합하면 66%나 된다. 1980년 비만인구가 15%에 불과하던 것에 비하면 엄청난 증가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의 통계에 따르면 미국은 비만인구에 있어 단연 세계 1위다.
‘프리건族’의 등장
비만의 책임을 업체에 돌리는 시각은 한국인에겐 아직 낯설다. 비슷한 사례로 담배소송이 자주 거론되는데, 2007년 한국의 1심 재판부는 흡연이 소비자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문제라고 판단해 업체의 손을 들어줬다. 그로부터 정확히 10년 전, 미 대법원은 피해 환자에게 승소판결을 내린 바 있다.
비만의 책임 소재를 놓고 치열한 법적공방이 진행되는 동안, 미국 사회에서는 쓰레기를 뒤져 먹고 사는 신인류 ‘프리건족(freegan族)’이 등장했다. 거지를 상상했다면 큰 오산이다. 이들은 대량생산·대량소비를 주축으로 하는 미국의 물질문명에 반기를 내걸고, 환경을 걱정하며 쓰레기를 뒤지는 ‘의식 있는 거지’들이다.
‘프리건’은 자유(혹은 공짜)를 뜻하는 ‘free’와 채식주의자의 일종인 ‘vegan’의 합성어로 1990년대 환경운동과 반세계화 운동의 지류로 시작됐다. 이들은 음식을 포함한 모든 제품의 구매를 거부하고, 버려지는 물건의 재활용 원칙을 고수한다. 프리건 운동에 동참하는 사람들은 주로 대학교육을 받은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이다.
‘LA타임스’에 보도된 넬슨씨 사례를 보자. 연봉이 수억원에 달하던 그는 몇 년 전 직장을 그만두고 프리건이 됐다. 그는 자원봉사자로 일하면서 끼니 때마다 쓰레기 더미에서 주워온, 그러나 누가 봐도 멀쩡한 식재료로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 매년 생활비로 10만달러(약 1억원) 이상을 지출했지만, 이제는 2만5000달러(약 2500만원)로 줄었다.
애리조나 주립대의 한 연구팀이 미 농무부(USDA)의 의뢰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미국에서 생산되는 식량 및 식품의 40~50%가 소비되기 전에 버려진다. 가정에서 배출되는 음식물 쓰레기만 연간 430억달러(약 43조원)어치에 달한다고 하니 쓰레기를 뒤져서 끼니를 해결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의 한 기자는 한 달 동안 프리건들을 동행취재하며 스스로 프리건 체험을 했다. 제과점에서 버려진 쓰레기 봉지 안에서 신선한 베이글이 쏟아져 나왔다. 프리건 운동단체인 ‘미국의 두 번째 수확(America´s Second Harvest)’은 이렇게 수거한 음식으로 1년에 250만명의 굶주린 사람을 먹인다고 한다.
누군가는 배불리 먹고 누군가는 쓰레기를 뒤지는 현실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부자가 배불리 먹고 빈자가 쓰레기를 뒤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 비만은 오히려 가난을 통해 대물림된다.
굶주림과 비만의 패러독스
미 농무부가 2002년 실시한 조사에서 빈곤선 이하 계층에 속한 가정일수록 비만아동의 비율이 월등히 높았으며 소득이 증가할수록 그 비율은 떨어졌다. 미 비만협회(American Obesity Association)에 따르면 흑인이나 히스패닉과 같이 백인보다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은 소수인종의 비만도가 훨씬 높다.
미국에서는 이를 ‘굶주림과 비만의 패러독스(hunger-obesity paradox)’라 한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돈이 없으면 충분한 음식 섭취를 할 수 없으므로 비만의 가능성이 줄어들어야 하지만, 현실에서는 더 굶주린 자가 비만이 되는 모순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는 패스트푸드와 같이 열량은 높고 영양가는 부실한 음식일수록 값이 싸고, 과일이나 야채와 같은 건강식품은 값이 비싸기 때문이다. 워싱턴 주립대 공공보건센터가 2004년 미국 임상영양학회지(American Journal of Clinical Nutrition)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비만을 단지 식습관의 ‘선택’ 문제로 보는 것은 잘못이며, 빈곤층은 경제적 비용 때문에 건강한 식단을 선택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달리 말해, 절약이 비만을 부른다는 것이다.
유기농 전문 슈퍼마켓 체인인 홀푸즈마켓(Whole Foods Market)과 한국에도 입점한 코스트코(Costco)에서 동일한 제품의 가격을 비교해보면 이를 금방 확인할 수 있다. 스테이크용 쇠고기 가격이 2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홀푸즈에서 판매되는 고기에는 일일이 ‘항생제를 먹이지 않았음’ ‘사료는 먹이지 않고 풀만 먹였음’과 같은 안내문이 적혀 있다.
유기농 식품은 가격이 비싸 경제적 여유가 있는 상류층에 의해 소비돼왔으며 수천조원에 달하는 미국 식료품 시장의 2% 남짓을 차지할 뿐이었다. 그러나 2006년 대형 슈퍼마켓 체인 월마트가 유기농 작물을 저가에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이른바 ‘유기농 식품의 민주화’가 시작됐다.
월마트의 유기농 시장 진출은 여러 논란을 낳았다. 유기농 식품의 생산 자체가 화학비료나 농약을 쓰지 않고 자연 상태 그대로 작물을 재배한다는 윤리적 동기에서 시작된 만큼, 대형 마트에 의한 상업화는 본래의 취지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유기농 산업이 대형화하면 기존의 소규모 농가들이 도산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됐다.
유기농 작물이 넘쳐나면 유기농을 판가름하는 잣대가 모호해져 소비자가 혼란에 빠질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상류층만 누릴 수 있는 사치로 여겨졌던 유기농 작물을 보다 많은 사람이 누릴 수 있게 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라는 시각도 적지 않았다.
전체인구 1/3이 다이어트 경험
이렇듯 미국의 현실은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기 위해서조차 돈이 필요하며, 가난한 계층에게 ‘배부른 돼지’ 노릇을 덧씌우고 있다. 이쯤 되면 식생활과 그로 인한 비만은 개인의 습관 탓으로 돌릴 수 없는 문제임이 분명해 보인다. 이제야 나는 왜 미국이 비만환자를 단순히 자기관리에 게으른 사람이 아닌, ‘음식중독자’라 부르는지 알 것 같았다. 그들은 건강한 식단을 선택하려야 선택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그렇다고 해서 미국 사회가 비만의 모든 책임을 구조 탓으로 돌리는 것은 아니다. 미국은 노력하는 만큼 거둔다는 이른바 ‘아메리칸 드림’의 사회가 아닌가. 미국의 다이어트 산업은 비만을 개인의 의지로 극복할 수 있다는 믿음 위에 번성해왔다. 물론 비만치료에도 개인의 의지 이외에 돈이 필요하지만.
‘뉴욕타임스’의 한 기사제목은 이런 현실을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 이 신문은 2005년 ‘꿈과 약을 팝니다(Selling Dreams and Drugs)’라는 제목 아래 비만 클리닉의 실태를 보도했다. 현재 미국에는 2500명의 의사가 비만관리 시술을 하고 있다. 문제는 일부 의사들이 처방전을 남발하고 약사면허 없이 약을 판매하다 적발된 사례도 있다는 것. 비만분야는 아직 의료계 내의 주류가 아니라서 검증되지 않은 시술이 행해지는 것도 문제로 지적됐다.
보도에 따르면 상당수 의사가 크고 작은 의료사고에 연루된 뒤 원래의 진료과목을 접고 다이어트 업계에 뛰어들고 있다. 전문성에 대한 요구가 덜하고 스트레스도 덜 받기 때문이다. 게다가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현찰장사’라서 고수익을 보장받는다. 외과의사이던 슈워츠씨는 잦은 의료사고로 주 정부로부터 수술집도를 금지당한 뒤 비만 클리닉을 열었다.
미국의 시장조사 전문기관인 거슨러먼그룹(Gerson Lehrman Group)에 따르면 미국 다이어트 산업의 규모는 2007년 현재 연간 550억달러(약 55조원)로 전세계 다이어트 산업의 70%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미국 인구 중 7500만명이 다이어트를 경험했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세 명 중 한 명꼴로 다이어트를 한다는 얘기다.
게다가 미국 아동인구의 17%가 비만이고 그 숫자가 점점 늘어나는 추세를 감안하면 다이어트 산업은 잠재적 소비자가 약속된 황금어장이다. 말하자면 대량소비를 유도하는 식품산업과 절제를 강요하는 다이어트 산업이 절묘한 공생관계를 이루고 있는 셈이다.
성인 인구의 절반 이상이 과체중이라면 표준 체형의 정의가 달라질 법도 한데, 여전히 그들의 욕망은 마른 체형을 향해 있다. 실제로 다이어트에 대한 미국인의 강박은 엄청나다. TV나 잡지에는 각종 다이어트 보조제 광고가 넘쳐난다. 최근에는 10대들의 거식증이 사회 문제로 대두되기도 했다.
심각한 것은 10대들의 거식증이 많은 경우 자발적 동기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이다. 10대 청소년들이 인터넷을 통해 ‘거식증 환자가 되는 법’을 배운다. 실제로 한 웹사이트에는 음식을 먹은 뒤 토하는 방법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으며 ‘손가락보다 칫솔을 이용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설명까지 덧붙이고 있다.
거식증의 90%는 12~25세 여성에게 발생하며 10대 인구의 1%가 거식증을 겪고 있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그러나 거식증 환자들은 대부분 자신의 병을 알리지 않으며 병원을 찾는 경우도 많지 않기 때문에 실제 환자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도 이미 ‘비만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보건복지가족부가 실시한 국민건강 영양조사에 따르면 2005년 한국의 성인 과체중 인구는 30%를 넘어섰으며 비만아동의 숫자도 7년 새 2배 이상 증가했다.
흥미로운 것은 저소득 계층 비만의 주범으로 소주와 라면이 꼽혔다는 점이다. 소주의 경우 특히 저소득층 남성의 소비량이 월등히 높았는데, 삶의 고단함을 값싼 술로 달랠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현실을 보여준다. 메뉴는 달라도 한미 양국 모두 빈곤층이 양질의 식사를 할 수 없어 비만이 되는 현실은 마찬가지인 셈이다.
일산백병원 윤영숙 오상우 교수팀과 아산병원 박혜순 교수는 2006년 위 자료를 토대로 한 공동 연구결과를 미국 비만학회지(‘Obesity’)에 실었다. 한국 남성의 경우 소득수준이 높을수록, 여성의 경우 교육수준이 높을수록 비만도가 낮았다.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른 건강의 양극화 문제에서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 비만의 주범은 라면과 소주”
수년 전부터 계속되고 있는 웰빙 열풍을 생각해보자. 물질적 풍요가 아닌 정신적 풍요와 육체적 건강을 도모하는 삶의 방식 그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 그러나 웰빙 열풍은 상류층을 겨냥한 업계의 상혼이 빚어낸 소비문화에 지나지 않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베블렌이 말한 상류층의 ‘과시적 소비’일 뿐, 삶의 태도와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1950~60년대만 해도 극빈국에 속하던 한국으로서는 불과 반세기 만의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다. 가난해서 비만이 된다니 먹을 게 없어 배를 곯던 전쟁 세대들에게는 기가 찰 노릇이다. 그러나 경제성장의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침투한 대량소비문화는 한국인의 체형을 급속도로 변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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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어서 못 먹는 극빈국의 빈곤층을 생각하면, 선진국의 비만 문제는 그야말로 배부른 걱정일지 모른다. 또 비만의 책임을 전적으로 가난의 탓으로 돌리는 것도 무리는 있다. 꼭 헬스클럽에 등록하지 않더라도 동네 한 바퀴를 조깅하면서 살을 뺄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반문도 가능하다.
그러나 비만을 단지 식습관이나 개인의 의지 문제로 환원시켜 자기관리에 힘쓰라는 것은 빈곤층에겐 공허한 주장으로 들린다. 건강을 위해 라면 대신 밥을 먹으라고 말한다면 이는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된다”는 말만큼이나 철없는 소리다.
비만이 선택의 문제라 해도, 빈곤층에게 주어진 선택의 폭은 부유층에 비해 좁다. 패스트푸드를 좋아해서 비만이 되는 것과, 패스트푸드말고는 먹을 것이 없어 비만이 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선택은 곧 돈이다. ‘프리건’이 되거나 ‘웰빙족’이 되는 것처럼, 우리는 삶의 철학을 선택하는 것조차 돈을 지급하고 구매해야 하는 세상을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