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전 정권과 차별화는 선거 때 끝냈어야”
- “북·미, 북·중관계 급진전되면 우리 입지 없다”
- “미국이 MB 정부라고 정보 더 많이 준다? 천만의 말씀!”
- “청와대 구성은 노(老)·중(中)·청(靑) 3자연합으로”
-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는 北엔 ‘쓰라린 추억’일 뿐”
- “‘비핵·개방 3000’은 장기 목표로만 남겨두라”
○1945년 만주 출생 <br>○경기고,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동 대학원 박사(정치학)<br>○국토통일원 조사연구실 보좌관, 공산권연구관, 남북대화사무국 대화운영부장, 조사연구실 연구관<br>○세종연구소 기획실·정치외교연구실 실장 ○민족통일연구원 부원장 <br>○1993~96 대통령비서실 통일비서관 <br>○1996~98 민족통일연구원 원장 <br>○1998.3~99.5 통일부 차관 <br>○2002.1~04.6 통일부 장관
하지만 정 전 장관은 기사에서 ‘사퇴하겠다’는 태도를 분명히 했다. 정부 입장과 다른 자신이 버티고 있으면 조직에 누가 된다는 게 첫째 이유였다. 기자는 정 전 장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 정부가 참 못나게 구네요.
“그래도 어쩌겠어…. 민화협 의장 자리가 뭐 대단한 자리인 줄 아나 보지.”
▼ 내친김에 ‘신동아’와 인터뷰 한번 하시죠. 제가 보기엔 이명박 정부에 들어와 꽉 막힌 대북정책에 조언을 해줄 분으로 정 장관께서 적임인 것 같은데….
“에이, 안 할래. 나는 전(前) 정부 사람인데, 괜히 나서서 지금 정부 쪽 사람들과 갈등을 일으키는 건 원치 않아.”
기자는 정 전 장관을 설득했다. “남북관계는 일개 정권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장래에 두고두고 영향을 끼치는 문제다” “이명박 정부 출범 후 남북관계에서 계속 악수(惡手)만 뒀는데, 이대로 두면 올해는 물론 내년까지 남북대화는 물 건너간다” “그러니 누군가 나서서 충심 어린 조언을 해줘야 하지 않겠느냐” 등등….
정 전 장관과 기자는 1990년대 초부터 아는 사이다. 정 전 장관이 김영삼(YS) 정부에서 청와대 통일비서관을 할 때 무교동 낙지집에서 만나 취재한 뒤 ‘YS-김일성 정상회담’의 가상 시나리오를 ‘신동아’에 쓴 게 첫 인연이었다. 당시 남북 간에 합의됐던 정상회담은 김일성 주석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무산됐다.
그 후 정 전 장관은 통일부 차관으로, 국가정보원장 외교안보특별보좌역으로 승승장구했다. 김대중(DJ) 정부 말기에서 노무현 정부 초기 시절을 이어가면서 통일부 장관을 역임하는, 보기 드문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남다른 관운(官運)의 비결이 무엇일까. 기자는 남북 문제에서 누구보다 해박한 그의 전문성이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때로 정치적인 줄타기를 불사해야 하고, 자칫하면 정치적 논란에 휩쓸리기 십상인 정무직 장관 자리를 그는 전문성을 무기 삼아 무난하게 넘겼다.
전화 통화에서 정 전 장관은 진보정권 시절에 남북관계를 주도한 자신이 이명박 정부에 대해 이런저런 발언을 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기자는 마지막으로 “나는 정 전 장관이 진보든 보수든 어느 한 편에 속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멘트를 날렸다. 그게 주효했던 것일까. 그는 “주말 동안 인터뷰를 할지 여부를 생각해보겠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6월9일 월요일 저녁, 인터뷰가 성사됐다.
南 실리 ≠ 北 실리
▼ 이명박 정부가 초기부터 무척 어려운 상황에 빠졌습니다. 대외적인 경제환경이 좋지 않은데다 남북관계까지 도무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네요.
“이명박 정부가 지금 조정기를 거치고 있어요. 이 고비를 잘 넘겨야 할 텐데 걱정이에요. 이번에 인적 쇄신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지만, 이를 계기로 외교정책과 대북정책에 부분적으로라도 조정이 있어야 하겠지요. 한 가지 말하고 싶은 것은, 지난 10년 동안의 남북관계가 전면적으로 부정당해야 할 만큼 문제만 있었느냐는 점이에요. 어떤 일이든 공과(功過)가 있고 명암(明暗)이 있는 건데 이 정부는 과(過)만 보고 공(功)은 못 보지 않았느냐, 그렇게 되면 결국 전부를 부정하게 되고 정책이 유턴을 해야 하는데, 지금 국제정세의 흐름이 그럴 상황은 아니라는 겁니다.”
정세현 전 장관은 북측에도 인정받는 협상 파트너였다. 2004년 5월8일 남북장관급 회담장에서 정 전 장관(왼쪽).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차별화를 내세우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봐요. 옳고 그름을 떠나 선거전략으로선 충분히 가능한 얘기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선거에서 이김으로써 끝냈어야 했어요. 지난 10년 동안의 남북관계를 인수인계해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면 그게 다 이명박 정부의 공이 될 텐데, 이 정부는 처음부터 ‘과거 방식으로는 안 하겠다’ ‘검토해보고 결정하겠다’ 이렇게 말했거든. 남북 간의 합의는 상대가 있는 문제입니다. 일방적인 자세는 결코 도움이 되지 않아요. 옆에서 보기에 ‘저렇게 하면 게도 구럭도 다 놓칠 텐데 왜 저러나’ 이런 생각을 갖게 됩니다.
또 한 가지, 남북관계에는 일반적인 대외관계와는 다른 특수성이 있어요. 외교상의 보편성을 유일한 잣대로 북한을 다루려고 하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요즘 실용주의를 많이 얘기하는데, 그 안에 ‘우리가 북쪽에 실리를 주면 북한은 우리말을 듣게 되어 있다’라는 판단이 개재돼 있다면 그런 실용주의는 의미가 없습니다.
남북대화란 게 명분에서나 실리에서 양쪽에 모두 윈-윈이 돼야 합니다. 다만 실리 면에서 우리가 북쪽에 주는 실리와 북쪽이 우리에게 돌려주는 실리가 똑같을 수는 없는 겁니다. 예를 들어 쌀 지원, 비료 지원 과정에서 북쪽이 남쪽에 내놓은 것이 단순히 이산가족 상봉만 있는 건 아닙니다. 2001년 이후 쌀·비료 지원이 시작되면서 북측이 비무장지대 바로 북쪽의 개성공단과 금강산을 개방한 것은 우리의 대북 지원과 경제협력에 대한 기대가 크게 작용한 덕분 아닙니까.
또 하나 예로, 2004년 6월4일로 기억하는데 설악산 켄싱턴호텔에서 열린 장성급회담에서 서해상에서 남북의 해군 함정들끼리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무선교신에 합의했습니다. 그 합의는 지금도 지켜지고 있어요. 그게 바로 그 시기에 평양에서 열린 경추위 회담에서 쌀 40만t을 지원하기로 한 덕분에 이뤄진 겁니다.”
남북대화 깨지면 北도 손해 커
▼ 북쪽도 드러내놓고 상호주의를 말하지는 않지만, 그런 식으로 암묵적으로 주고받는 게 있다는 얘기지요?
“그렇지. 2004년 장성급회담에서 양측은 명분을 잡은 겁니다. 우리는 북측으로부터 무선교신을 받아내고, 북쪽은 비무장지대에서 남측의 대북확성기 방송 중단을 약속받는 식으로 서로 명분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북측은 쌀지원이라는 실리를 챙기고, 우리는 또 거기에 상응해 이산가족 사업을 받아낼 수 있었어요.
남북대화라는 게 이렇게 명분과 실리를 주고받는 것인데, 이런 측면까지 감안한 실용주의가 된다면 이 정부에도 앞으로 국제 정세 흐름에 맞게 남북관계를 업그레이드시킬 기회가 분명히 올 것이다, 그런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 이명박 정부 100일을 되돌아보면 지난 10년간 어렵게 쌓아올린 것들이 한순간에 날아가버릴 수 있겠구나, 이런 걱정은 안 듭니까. 북측은 요즘도 남쪽 정부를 거칠게 비난하고 있잖아요.
“우리 쪽에서 계속 실수를 하다 보면 성과가 유실돼버릴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나는 북쪽의 속내가 남북관계를 완전히 끝장내버리겠다는 것은 아니라고 봐요. 그들도 지난 10년 동안의 남북관계 개선 결과가 떠내려갈까봐, 어떻게 보면 남한정부의 대북정책이 유턴하는 것을 견제하기 위해 그런 강수를 두는 것이 아닌가…. 말로는 ‘우리는 남쪽과 등지고 살 수 있지만 남쪽은 우리를 등지고 살 수 없을 것’이라고 해도 사실은 ‘이거 깨지면 우리도 손해가 크다’ 이런 판단을 하고 있을 겁니다.
내가 지난 5월 초 ‘겨레의 숲’이라는 단체의 대표 자격으로 평양에 갔다 왔는데, 북쪽에선 ‘혹시 남쪽 정부가 나를 통해 무슨 얘기를 간접적으로 전하려고 하지 않는지’ 하는 기대를 가졌던 것 같아요. 그렇지만 내가 이 정부에 미션을 달라고 할 상황도 아니었고…. 그때 내가 북쪽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새 정부는 이전 정부와 민주당을 비판하는 식으로 해서 선거에서 이겼고, 시간이 얼마 지나지도 않았다. 그런데 마치 대북정책에서 앞으로 기대할 것이 없는 것처럼 계속 비난하는 것은 나중에 퇴로를 없애는 일이다, 퇴로를 없애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할 것 아니냐. 또, 당신네가 통미봉남(通美封南)을 해서 득 될 게 뭐가 있는가. 미국이 작년 가을부터 쌀 50만t을 주겠다면서 협상했지만, 그게 얼마나 오래가겠느냐, 남쪽은 매년 주지 않았느냐. 그러니까 새 정부의 대북정책이 이상한 방향으로 꼬이지 않도록 여유를 좀 주는 게 좋겠다’ 이렇게 얘기했는데, 지금도 계속 남쪽 정부에 대고 욕을 하니까, 그것 참….”
▼ 정부가 ‘비핵·개방 3000’이니 ‘경협 4원칙’ 등을 이미 내놓은 상태에서 갑자기 태도를 바꾸기도 어려울 테니 무척 어려운 상황인 건 분명하거든요. 심지어 올 한 해는 이렇게 그냥 지나가버리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는데….
“정부가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올해뿐만이 아니라 내년 상반기까지 아무것도 못하고 지나가버릴 수 있어요. 미국에서 정권교체가 이뤄지건 공화당 정부가 계속 되건 간에 대통령이 바뀌면 동아태 차관보를 바꿔야 할 테고, 그 청문회가 끝나려면 내년 상반기가 그대로 가버리거든. 그런데 사실은 그게 우리에게는 농한기가 아니라 농번기로 활용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인데….
그러니까 미국의 흐름을 잘 읽어야 하는데, 미국 대외정책의 우선순위로 볼 때 북한 문제는 이라크나 이란 문제보다 비중이 낮기 때문에 이전 정부 정책의 연장선 위에서 그대로 갈 가능성이 커요. 만약 민주당 오바마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면 그가 김정일도 만나겠다고 했으니까 클린턴 정부 말기 때처럼 매우 빠른 속도로 북미관계가 진전될 수 있어요.”
▼ 클린턴 정부 말기에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하고, 평양 커뮤니케가 나왔을 때처럼 말이지요.
“그렇지. 부시 정부가 8년 임기 중 6년 동안 대북 압박정책을 써봤지만 효과를 보지 못했잖아요. 2년을 남겨놓고 행동 대 행동, 정확하게 말하면 행동 대 보상이지만, 이런 원칙을 내걸고 실제로는 북한이 해달라는 거 다 해주는 것 아닙니까. 북한은 처음부터 이렇게 하자고 했던 거고. 부시 행정부가 북한의 ‘나쁜 행동에 대해서는 보상이 없다’면서 6년간 압박을 하다가 이젠 북한의 좋은 행동이건 나쁜 행동이건 상관없이 보상(reward) 내지는 상(award)을 주는 식으로 문제를 풀고 있다는 얘깁니다.”
속도 내는 북·미, 북·일, 북·중 관계
▼ 부시 행정부는 자신의 임기 내에 핵신고 2단계까지 완료하겠다는 것인데, 다음 정부가 3단계부터 시작한다고 해도 부시 행정부가 해온 일의 연장선상에서 이뤄지는 것이지 뭔가를 새롭게 해볼 여지는 별로 없다는 겁니다.
“그렇죠. 새로 신고를 해야 한다, 검증을 더 까다롭게 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는 못 한다는 겁니다. 이것은 또 6자회담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과거 클린턴 행정부 때 했던 양자협상을 부시 행정부가 깰 수 있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상황이에요. 1994년의 제네바 합의는 양자간 합의였기에 어느 한쪽이 상대방에 책임을 전가하면 얼마든지 깨질 수 있는 것이었거든. 그러나 지금은 중국과 러시아, 일본이 관련돼 있고 한국도 지분을 가지고 있으니까. 결론적으로 다음번에 매케인 행정부가 들어와도 현재 페이스대로 간다, 오바마가 된다면 오히려 한 단계 업그레이드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면 여기서 공통분모는 북미관계 개선입니다.”
▼ 북미관계가 개선되면 북일관계에도 당연히 변화가 있을 겁니다. 최근 베이징에서 양자 접촉을 하는 등 벌써부터 그런 조짐이 나타나고 있지요.
“1972년 닉슨 미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한 후 미중관계가 빠르게 개선되면서 1979년 1월에 정식 국교수립으로 들어갑니다. 그 직전인 1978년 여름, 미중관계가 연락사무소 단계에서 정식 수교로 넘어간다는 게 분명해지자 일본이 몸이 달았습니다. 당시 다나카 수상이 미키 외상을 대동하고 베이징에 들어가 일중 평화조약을 체결하고 나왔어요. 일본 사람들은 미국이 북한을 때릴 때에는 그 뒤에서 마구 주먹질하고 고함도 더 지르다가 미국이 북한과 관계개선을 한다든지 하는 기미가 보이면 한발 앞서가려고 해요. 주변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는 마당에 한국이 무슨 재주로….”
▼ 주변국 얘기가 나온 김에 중국 얘기도 해보지요. 중국이 북한을 ‘동북4성(省)’으로 만들겠다는 의도를 갖고 있다는 건 사실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닙니다.
“동북공정(東北工程)이라는 것도 사실 남북관계가 굉장히 빠른 속도로 개선되는 와중에 나오기 시작한 겁니다. 중국은 남북이 손잡으면 반드시 영토 문제를 제기하고 나올 것이라고 보고 있어요. 특히 동북3성 중 간도, 지금의 옌볜 쪽 지역은 청나라 말기에 완전히 일본과 중국 간의 야합에 의해 넘어간 것이거든. 그런 대목에서 켕기는 게 있으니까 선제공격으로 나온 것이 동북공정이란 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남북관계가 북핵 문제 때문에 속도도 못 내고 있을 때, 더 구체적으로는 노무현 정부 후반기에 미국의 압력 때문에 남북관계가 풀리지 않을 때 중국은 북한에 말 그대로 경제적 침투를 했어요. 예를 들어 훈춘에서 나진·선봉까지 자기 돈을 들여가면서 고속도로를 놓아주는 식입니다. 지금 북한 인민들이 쓰는 생필품의 80% 이상이 중국 물자입니다. 남쪽 물건은 인기는 있지만 비싸서 시장경쟁력은 떨어져요. 이런 식으로 북한 경제의 중국화가 상당히 진척되고 있어요.”
‘디바이드 앤 컨트롤’
2006년 12월 민화협 행사에 모인 전직 통일원 장관들. 앞줄 왼쪽부터 임동원, 정세현, 이재정 씨.
“그렇게 되면 통일 자체가 어려워집니다. 왜냐, 남북통일은 경제공동체를 만드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남북 간에 경제적 의존성이 커져서 경제공동체가 되고, 그 다음 단계로 사회문화공동체가 형성되는 겁니다. 그 다음에 정치공동체, 군사공동체, 이런 식으로….”
▼ 그런데 북한 경제가 남쪽에 의존할 필요가 없다, 이러면 얘기가 달라지는 거죠.
“그러면 남북통일은 요원해진다, 이거야. 나는 북미관계가 좋아져서 북한 경제가 미국 경제의 영향을 받아 활성화하는 것은 괜찮다고 봐요. 또 일본 자본이 들어가 북한 경제를 일으켜 세우는 것도 필요한 일이고.”
▼ 미국 자본이 북한에 들어간다는 것을 더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북한에 자유시장체제가 안착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렇지. 훗날 통일의 마지막 단계에서는 미국의 적극적인 지지가 필수입니다. 지금 미국의 신자유주의가 세계적으로 비판을 받는 등 문제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어찌 됐건 러시아와 중국, 베트남, 동유럽 국가들이 모두 미국 중심의 국제경제체제에 편입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 사회에 하루속히 시장경제원리가 들어가는 것이 남북 간 경제공동체를 만드는 데 촉매 노릇을 할 거라고 봅니다.”
▼ 미국의 한반도 정책에 대해선 이른바 ‘투 코리아 폴리시(Two Korea Policy)’를 쓸 거라는 얘기도 있지요.
“이른바 ‘디바이드 앤 컨트롤(Divide and Control)’이지. 하지만 그런 틀 속에서도 남북 간에 경제적 상호의존이 커져서 공동체로 발전하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을 겁니다. 그러니까 남북한이 하나의 경제공동체를 만드는 게 바로 통일로 가는 길인데, 이런 판세를 잘못 읽어서 북중 간의 경제공동체 성향이 강화되는 것을 방치한다면 남북경제공동체는 물거품이 되고 말 거라는 겁니다.
더욱이 중국은 요즘 들어와 노골적으로 이른바 대국굴기(大國·#54366;起)라는 것을 얘기하는데, 이건 한마디로 중국도 제국주의를 하겠다는 말이거든. 중화사상의 핵심은 지리적으로 주변국가들을 자기 세력권으로 완전히 편입시키는 것입니다. 과거 대제국을 건설했던 몽골 같은 나라들도 지금 중국의 소수민족으로 전락해 있잖아요. 그런 것을 보면 지금까지 독립성을 지켜온 우리 한민족이 참 대단한 사람들인데, 이런 것들을 활용해 남북 간에 동질화를 넓혀나가는 데 신경 쓰지 않고 ‘북한이 제 발로 걸어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상대를 해도 늦지 않다’ 이런 식으로 접근하면….”
▼ 지금 말씀한 한반도 주변 정세를 북한을 가운데 놓고 미중 간에 경쟁을 벌이는 구도로 해석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처음부터 남북관계를 대외관계의 종속물로 갖다놓았거든요. 예컨대 한미관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선 누구나 동의합니다. 하지만 미국의 처지에서 남북관계 축을 활발하게 가동시키고 있는 한국과, 남북관계 축을 방기한 한국을 다루는 방식은 엄청나게 다를 겁니다. 후자가 훨씬 만만해 보일 거란 얘깁니다. 어떻게 보면 요즘 쇠고기 파동에서 보여주고 있는 미국의 자세에도 그런 면이 나타나고 있는 것 같은데….
“이른바 강대국들은 주변국들을 디바이드 앤 컨트롤하려는 기본 속성을 갖고 있어요. 영국이 과거 유럽의 국제정치를 좌지우지하던 시절에 독일과 프랑스를 계속 싸움 붙이면서 자신의 우월적인 지위를 유지하지 않았습니까.”
“청와대에 브레인 있어야”
▼ 그러니까 우리처럼 상대적으로 작은 나라는 대미, 대중관계에서 남북관계 축이 일종의 레버리지(지렛대)가 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 정부는 그것을 포기했어요. 물론 이건 한미관계를 소홀히 해도 괜찮다는 얘기는 절대 아님을 전제로 한 말입니다만.
“이명박 대통령도 한미관계와 남북관계, 북미관계의 3자가 선순환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그 출발점은 한미관계가 아니라 남북관계라야 선순환될 수 있어요. 이게 어디서부터 시작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거든. 남북관계를 잘 이끌어 가면서 북한이 중국화하지 않도록 할 때 동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의 국가이익에도 도움이 될 수 있어요. 또 한미관계가 남북관계를 지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야지 한미관계를 앞세우면서 거기에 남북관계를 종속시키려고 하는 식으로 해서는 우리의 입지가 없어져버려요.”
2007년 10월2일 2차 남북정상회담 특별 수행원들이 남측 CIQ를 통과하고 있다.
“내가 이런 얘기를 하는 게 어떻게 보면 주제넘은 것일 수 있어요. 하지만 청와대 안에 북한을 포함해 동북아 국제정치에 대해 제대로 판독하고 그 속에서 우리의 국가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 대통령에게 얘기하는 브레인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일상적인 비서업무를 맡는 사람들 이외에.”
▼ 다시 말해 대통령을 교육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겠지요.
“현재의 수석비서관 체제로는 어려워요. 나도 과거에 청와대에서 비서관 생활을 해봤지만, 비서관은 대통령이 잘못된 지시를 내려도 그걸 그냥 전달하는 역할밖에 못 합니다. 대통령이 고함을 지르면 그걸 그대로 받아서 아래에 전달하는 것밖에 안 되는데, 그때 대통령에게 ‘잠깐, 이 사안의 득(得)은 이거고, 실(失)은 이거다, 그러니까 이쪽으로 가야 한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해요.”
▼ 하지만 진보정권 10년이 지나고 나서 보니까 보수 쪽에 사람이 참 없는 것 같더군요(웃음).
“왜요. 한나라당 안에도 찾으면 있을 겁니다. 그런데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지난 10년 세월 동안 이념적인 성향 때문에 오늘날 이런 식의 남북관계가 형성된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 세상이 그렇게 바뀐 측면이 있지요. 하지만 노무현 정부가 너무 강하게 자기 색깔을 드러낸 게 문제였잖아요.
“가령 한미관계가 오로지 노무현 정부의 반미성향 때문에 나빠졌습니까? 아니에요. 2000년대에 들어와 미국은 자기 뒷마당인 남미에서조차 거부를 당하고 있어요. 미국이 하면 뭐든 옳다고 하는 일방주의 외교정책 때문에 이라크 문제도 저렇게 되고 9·11까지 겪지 않았습니까. 그런데도 우리 쪽에선 한미관계가 불편해진 게 전부 노무현 정부의 반미성향 때문에 그렇게 됐다고 인식하고 있어요, 거 참….
“우리가 미국 이끌어야”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미래의 한미관계도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미국에도 할 말은 해야 한다는 겁니다. 특히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 그중에서도 대북정책에는 구체적인 안이 없어요. 그러니까 한국이 대북 문제에서 자신 있게, 책임감을 가지고 미국을 설득하면 미국은 우리가 하자는 대로 따라옵니다.
일각에선 ‘미국이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을 테니까 계획이나 정책도 구체적일 것이다’라는 선입관을 가지고 미국이 하자는 대로 따라가는 식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사실 미국으로선 북한에 대해 별생각이 없었는데 모른다고 할 수도 없고, 그러다보니 대외정책에서 가장 안전한 방법이 보수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거거든.”
▼ 보수적인 스탠스를 지키면 아무래도 욕먹을 일은 적어지겠죠.
“아무튼 대북정책도 우리가 미국을 설득해나가면서 끌고 간다는 생각 내지는 책임감을 가지면 미국은 우리를 따라와 주고 협조를 하는데, 그 대표적인 사례가 1998년 페리 프로세스(Perry Process)입니다. 당시는 클린턴 정부 시절이었지만 미국의 강경보수파들이 흘린 사진 한 장 때문에 미국은 북한에 식량 60만t을 지원했고, 나중에 보니까 아무것도 없었잖아요.”
▼ 금창리 사건 때 미국 대표단이 들어가보니 텅빈 동굴이었지요.
“우리였다면 아마 청문회를 열고, 관계자들을 감옥에 보냈을 거예요. 터무니없는 문제 제기를 통해 국익에 손해를 가져 왔으니까. 당시 미국이 보수 쪽으로 돌아서던 상황에서 북한이 난데없이 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강수를 두지 않았어요? 일본도 뒤집혔고…. 클린턴 정부도 햇볕정책에 대한 지지를 철회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뭔가 다시 한번 조정해보자 해서 국방장관 출신인 페리를 내세웠지. 당시 한국 정부는 페리를 찾아가서 ‘이 문제는 이렇게 풀자’ ‘저 문제는 당신네 방식으로 하면 생살을 떼어내는 결과가 된다’ 이런 식으로 일일이 개입하고 설득을 했습니다.”
▼ 그게 DJ 정부 첫해의 일입니다.
“당시 북한도 햇볕정책을 신뢰하지 못하던 상황에서 우리가 먼저 남북관계에서 민간 차원의 교류협력을 활성화시키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습니다. 그해 4월18일에 민간인의 북한방문 승인조건을 대폭 완화하고, 4월30일에는 민간기업의 대북투자조건을 500만달러에서 자기책임하에 1억달러 이상도 괜찮다는 식으로 대폭 완화시켰지. 이렇게 되니까 현대 정주영 회장이 1989년에 약속했던 금강산관광사업을 시작하겠다고 들고 나왔던 겁니다. 그렇게 민간차원의 연결고리를 강화해나가면서, 다른 한편으로 미국에는 ‘북한은 이렇게 다뤄야 한다’ ‘북한을 다루는 노하우는 우리가 가지고 있다’고 끈질기게 설득했던 겁니다.”
“사람들 많이 만나고 협조 구하라”
▼ 지금도 그런 방식이 통하겠습니까? 1998년과 지금은 주변 환경이 많이 다른데.
“나는 통한다고 봅니다. 중요한 건 우리의 자세예요. ‘이렇게 하면 북한은 우리 손아귀에 들어온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자신감과 노하우를 갖고 미국을 설득하는 겁니다.”
▼ 하지만 지금은 미국이 우리보다 더 많은 대북정보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는 상황인데요.
“미국이 정보는 많아요. 소위 과학정보…. 그러나 허허실실 전술을 찍듯이 찾아내고, 북쪽 사람들의 행동 패턴이라든지 미묘한 감정을 읽어내는 것은 우리만이 가진 강점입니다.”
▼ 더욱이 미국이 우리에게 충분한 대북정보를 제공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물론이지. 미국이라는 나라는 기본적으로 정보를 갖고 작은 나라들을 컨트롤하겠다는 자세를 갖고 있으니까. 노무현 정부이기 때문에, 김대중 정부이기 때문에 정보를 조금만 준 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이명박 정부라고 해서 미국이 더 많은 정보를 줄 거라고 기대하는 것도 천만의 말씀입니다.”
▼ 이명박 정부의 외교안보 라인 개편에 대해 좀더 조언을 해주시죠.
“청와대는 노(老)-중(中)-청(靑) 3자 결합으로 가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어요. 대통령의 수하들만 데려다놓아서는 안 돼요. 대통령과 비슷한 나이의, 혹은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들어가 대통령을 조언하는 기능을 해줘야 합니다. 그 다음으로 중(中)이 수석비서관급으로 있고, 행정관으로 청이 포진해야 합니다. 또 한 가지, 청와대야말로 진보와 보수가 다 포진해 있어야 합니다. 대통령이 이런 사람들의 의견도 접하고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 김대중 정부 말기에서 노무현 정부 초기 사이에 통일부 장관을 맡으면서 터득한 노하우도 상당하리라고 봅니다(웃음), 특히 당시는 햇볕정책에 대한 비판이 거셌던 시절이었잖아요.
“장관이 되고 나서 가장 먼저 햇볕정책을 비판하는 글을 많이 쓴 논객들을 찾아갔어요. 노재봉 전 총리, 김경원 박사, 서강대 이상우 교수 같은 분들이었지. ‘선생님, 제가 자리에 있는 동안에는 햇볕정책 비판하는 글을 좀 자제해주십시오’ 하면서 인간적으로 호소하는 겁니다. 어떤 분은 내가 찾아가겠다고 하니까 바로 내 의도를 알아차려요. ‘장관이 고등전술 쓰는구먼. 나보고 글 쓰지 말라는 얘기 아니오’ 이렇게 먼저 치고 나오거든. 이런 얘기해도 괜찮을지 모르지만, 인텔리들은 논리적으로만 접근해서는 안 됩니다. 정서적으로도 접근해야지….
청와대 비서관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청와대에서 비서관을 하던 YS시절 일인데, 이전 정부에서 비서실장을 지낸 분이 내게 ‘정 비서관, 요즘 주로 어떤 사람들 만나고 다니나’ 하고 물어요. 그래서 ‘통일비서관이 무슨 돈이 있습니까. ‘안 주고 안 받기’ 하자고 해서 비서관들은 활동비가 일절 없습니다. 그러니 누구를 만나 정부정책에 이해를 구하는 식으로 밥 살 돈도 없고, 반대로 통일비서관한테 밥 먹자는 사람도 없습니다’ 이랬더니 ‘그거 큰일이네, 비서관을 그렇게 놀리면 안 되는데. YS는 돈 안 받겠다고 했지만, 그 밑에 측근들은 계속 사람 만나고 밥도 같이 먹는 모양이던데’ 이러더라고. 우리 같은 ‘업계’ 출신만 찬밥으로….”
▼ 그렇죠. 정 장관께서도 ‘업계 출신’이지요(웃음).
“평생 이쪽 분야에만 있었으니까. 아무튼 청와대 비서관은 ‘우리 정책이 옳다. 반대하는 사람들이 나쁘다’ 이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들을 되도록 많이 만나면서 ‘우리도 고충이 많습니다. 말 못할 사정이 있습니다’라면서 이해를 구해야 해요. 언론에 대해서도 오프 더 레코드를 전제로 필요한 얘기를 해줘야 해요. 지금 정부의 청와대가 이런 일을 어느 정도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대통령비서실이 이런 역할을 잘해야 합니다.”
北에게 기본합의서는 ‘쓰라린 추억’
▼ 며칠 전 김하중 통일부 장관이 기자간담회에서 ‘북한에 옥수수를 주겠다고 제의했는데 아직 답변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좀 안쓰럽게 보이더군요. 북쪽에서는 김 장관과는 얘기 안 하겠다는 것 아닙니까.
“내가 국외자라 말하기가 조심스럽지만 상황이 어려운 건 맞는 것 같습니다. 북쪽의 입장이란 게 6·15, 10·4 공동선언을 무시하는 사람들과 무슨 얘기를 하겠느냐, 이거거든. 생각해보세요. 북한의 정치문화 속에서 김정일의 손길이 닿은 문서를 남쪽이 부정한다고 나올 때 그 밑의 대남부서들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는지. 거꾸로 이명박 대통령이 서명한 문서를 북쪽에서 무시할 때 우리 측 통일부 장관이 나설 수 있습니까? 외교부 장관이 나설 수 있어요? 역지사지(易地思之)로 봐야지.”
▼ 대신 우리 정부는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 얘기를 꺼냈지요.
“기본합의서에는 우리가 1970~80년대 남북 간에 적용하고자 했던 기능주의적 접근론에 입각한 사업이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 남북 간에 아무 접촉도 없고 통일 문제가 막연한 담론 차원에서 논의되던 시절에 남북에 만약 접촉의 기회가 있으면 이런 식으로 해야 하겠다고 한 것들이 기능주의적 접근인데, 그게 기본합의서 및 부속합의서에 다 들어 있어요.”
▼ 우리 처지에선 대단한 성공작이지요.
“우리 입장에선 성공인데, 북쪽 입장에서도 그럴까? 당시 북쪽이 기능주의적 접근에 의거한 사항들을 받아주는 대신에 필요했던 것은 1조에서 4조까지입니다. 상호체제 인정·존중, 내정 불간섭, 비방·중상 중지, 마지막으로 파괴·전복행위 금지입니다. 이 문서가 논의되던 1991년은 북한이 대단히 수세에 몰리던 시기입니다. 예를 들어 북한은 1988년과 1991년 신년사에서 ‘통일은 누가 누구를 먹거나 먹히는 방식으로 해서는 안 된다. 남북 간에는 느슨한 형태의 연방제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사실상 흡수통일에 대한 공포를 드러냈거든요. 북한은 기본합의서를 합의해가던 와중인 1991년 가을께 그게 불안해서 그전까지 그렇게도 외쳐대던 유엔 동시가입 반대 원칙을 깨고 우리보다 먼저 유엔 가입신청을 했어요. 저 사람들은 흡수통일을 막을 수 있는 방파제로서 1~4조가 필요했던 거예요. 그러니 이건 북한에는 쓰라린 추억일 수밖에 없어요.”
▼ 그러니까 남측이 기본합의서를 되살리자고 하는 것은 북쪽으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옵션이다….
“잊고 싶은 추억이다, 이거야. 당시로는 참, 죽지 못해서 억지로 받은 건데…. 그래서 6·15 정상회담 때 임동원씨가 합의문에 이것을 포함시키자고 했을 때 북쪽이 싫다고 했잖아요. 그때는 그때고 지금 새 시대가 왔는데 왜 자꾸 쓰라린 추억을 떠올리게 하느냐, 사업은 하자, 이거였거든. 또 한 가지, 기본합의서는 총리급에서 서명한 거고, 이제는 그보다 높은 급에서 서명한 문서가 있는데 이걸 무시하자는 거냐, 이게 북측 입장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장 김정일’의 이름으로 돼 있는 문서가 두 개 있는데 그보다 아래급 문서를 들고 나오니까 이건 마치 자기네를 능멸하는 것처럼 보일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래서 옥수수를 주겠다고 해도 6·15 공동선언과 10·4 공동선언에 대한 이행 의지를 먼저 확인하기 전에는 자기 쪽에서 먼저 나오지 못하겠다, 이러는 겁니다.”
“퍼주기였다고? 오히려 더 줘야 해”
▼ 지금 이명박 정부는 전임 정권들이 북쪽에 너무 많이 줬다, 그러니까 우리는 그렇게 안 하겠다는 게 기본 자세입니다. 한편으로 보면 과거 정권의 대북지원이나 경협이라는 게 겉으로 보기에만 폼 나는 것들, 정치적으로 그럴듯하게 포장해 내세울 수 있는 것들을 중심으로 추진돼 왔다는 한계도 있다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 이제는 뭔가 한 차원 높은 대북 접근, 남북경협의 모델을 모색할 시점이 아닌가 합니다.
“글쎄. 나는 새로운 모델을 찾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먼저 지난 10년 동안의 대북정책에 대한 평가와 비판을 봅시다. 대충 세 가지 로 정리될 수 있을 것 같은데 첫째는 퍼주기였다, 둘째는 북한에 끌려다녔다, 셋째는 이벤트성이었다는 거지요. 지금 이명박 정부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것 아닙니까?
첫째, ‘퍼주기 안 하겠다’에 대해서, 퍼주기라는 건 일방적인 지원이고, 일방적 지원의 반대는 상호주의입니다. 그런데 남북 간에 엄격한 상호주의를 적용하려고 들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어요. 이른바 상호의존성(interdependency)을만들어나갈 수가 없어요.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북한을 둘러싼 동북아 국제정치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살피면서 남북 간의 상호의존성을 구축해가는 것이란 말입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북한의 대남의존성이지. 이것을 하지 못하면 북한을 둘러싼, 매우 경쟁적인 국제정치 속에서 우리의 위치가 없어집니다.”
北의 무기는 ‘약자의 공갈’
▼ 북한이 우리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게 만들어야 한다….
“쌀과 비료의 지원 양을 오히려 늘려야 합니다. 중독이 되도록. 북한이 그런 문제에서 다른 나라에 의존할 필요가 없도록 해야 하고, 다른 분야에서도 예컨대 개성공단 같은 것도 여러 개 만들어서 북한 사람들이 기술을 배우더라도 기왕이면 남쪽을 통해 배우도록 해야 합니다. 마치 우리가 1970년대 초 마산수출자유공단을 열어서 일본 돈 받아가면서 기술을 배우고 수출을 했던 것처럼.”
▼ 다음은, 북한에 끌려다니지 않겠다, 북한은 도와줘도 고마워할 줄도 모르고 제멋대로 한다….
“그런 측면이 있어요. 그런데 그게 남쪽에만 그러는 게 아닙니다. 미국한테도 그렇게 해서 결국 미국을 끌어냈잖아요. 그러면 그런 버릇은 어디서 생겼느냐, 중소 분쟁이 시작된 1950년대 중반부터 중국과 소련을 상대하면서 몸에 밴 외교술입니다. 그러니까 벼랑끝 전술을 쓰면서 큰 나라를 가지고 놀려고 드는 버릇을 고치기로 했다면 중국과 소련이 먼저 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 했거든. 북한은 지금도 미중 간에 경쟁을 붙이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럴 수 있는 힘은 어디서 나오느냐. 외교에서는 강자만 힘이 있는 게 아닙니다. 약자도 공갈을 쳐요. ‘약자의 공갈’이라는 외교학의 기본 술어가 있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거 안 해주면 온 동네를 불 질러버리겠다…(웃음). 그래서 약자의 공갈에 끌려가게 돼 있어요. 이승만 대통령도 한국전쟁 후 한미 상호방위조약을 끌어내면서 약자의 공갈을 활용했어요. 북진통일하겠다고 했잖아. 일본도 1960년대 미일안보관계를 정립할 때, 약자의 공갈을 활용해 상당 정도 미국의 양보를 끌어냈습니다. 북한은 지금 잃을 것이 없기 때문에 약자의 공갈을 가지고 먹고 살고 있어요. 그러니까 북한이 그 짓을 못하게 하려면 북한이 잃을 것이 생길 정도가 돼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벤트성이었다…. 이벤트성이라는 것은 갖다 붙이기 나름인데, 사실 노무현 정부가 남북관계를 이벤트성으로 끌고 가려고 했다면 남북정상회담을 정권 말에 하지 않고 더 일찍 했어야 합니다.”
‘너희는 3만, 우리는 3000?’
▼ 2006년 10월에 북한이 핵실험을 하는 등 그 후로 죽 정상회담을 열 상황이 아니었잖아요.
“2005년 9·19공동성명이 채택된 뒤 바로 정상회담을 했어야 해요. 그렇게 해서 우리가 이후의 상황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갔더라면 방코델타아시아(BDA) 문제도 훨씬 빨리 해결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BDA 문제를 미국의 네오콘들이 터뜨렸는데, 그걸로 2006년 한 해가 다 가버렸으니 시간낭비만 한 셈 아닙니까. 그러다가 2007년 초에야 겨우 2·13합의를 하고 BDA 문제는 흐지부지돼버렸잖아요. HEUP(Highly Enriched Uranium Project)도 없던 일처럼 돼버렸고…. 그 사이에 우리가 남북관계를 제대로 끌고 갔더라면 지금 핵문제 해결과정에서 우리의 입지도 훨씬 높아져 있을 겁니다.”
▼ 정리하면, 핵 문제 해결의 국제적인 축이 정지된 상태에서라도 남북관계 축이 가동됐더라면 상황이 바뀌었을 것이다….
“바뀔 수 있었던 거죠. 근데 네오콘의 압력에 굴복해서….”
▼ 제가 말한 ‘이벤트성’이란 건, 예컨대 10·4 공동선언만 보더라도 서해평화협력특별지구를 개발하겠다는 식으로 거창한 프로젝트를 내놨는데 이런 게 과연 얼마나 실효성이 있겠느냐는 겁니다. 차라리 ‘비핵·개방 3000’에서 말하는 300만달러짜리 수출기업을 100개 이상 만들어주겠다는 방식이 북한 주민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일이 아니냐는 거죠.
“그게 바로 우리 식으로 생각하는 방식의 맹점입니다. ‘비핵·개방 3000’에 대해 4월1일 노동신문 논평에서 비판을 했는데 저 사람들 말은, 비핵? 그건 우리랑 미국과 해결할 일이니 남쪽이 간섭할 일이 아니다. 개방? 우리가 언제 개방 안한다고 했느냐. 사실 북한은 경제·사회·문화적으로 이미 상당 부분 개방을 하고 있거든. 동아나 조선, 워싱턴포스트, 뉴욕타임스가 2003년 이후로 계속 보도해왔잖아요? 국민소득을 3000달러로 올려주겠다? 이건 북측으로선 정말 기분나쁜 얘기야. 왜냐하면 우리가 하지 왜 너희가 해주냐, 이거지. 300만달러 이상 벌 수 있는 기업 100개를 만들어준다? 국민소득 3000달러로 만들어준다? 그러면 너희는 3만달러 될 때 우리는 너희네 10분의 1도 안 되는 상태에 눌려 있으라는 얘기냐, 한마디로 자존심 상한다는 겁니다.”
▼ 그건 북한 쪽 생각이고, 우리로선 할 수 있는 얘기 아닙니까?
“대북정책이란 게 기본적으로 북쪽에서 좋다고 하면 우리 내부의 보수는 싫어하고…. 그러니까 적절한 선으로 가져가야 한다는 겁니다. 북쪽에서 거부하지 않을 정도가 되면서 우리 내부에서도 절반 이상은 지지를 받을 수 있는 내용, 거기에 더해 국제사회의 지지를 받는 내용이 돼야 합니다. 하지만 ‘비핵·개방 3000’은 지금 북쪽에서 분명히 ‘노’ 해버렸거든. 북쪽이 싫다고 하면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써먹을 수가 없어. 그러니까 그 정책이 미국과 일본에서 오케이를 받았지만, 중국에선 거절당했지.”
‘비핵·개방 3000’은 장기 목표로…
▼ 이렇게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까요.
“기본적으로 대북정책은 북한도 완전히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나쁘지는 않으니까 한번 해보자는 정도가 돼야 하고, 우리 국민도 ‘저게 북한만 좋게 해주는 것 같지는 않고 우리도 뭔가 득이 있을 것 같은데 한번 기다려보자’ 하는 정도로 만들어서, 제3국을 상대로 ‘우리가 이거 해볼 테니까 반대는 하지 마라’ 이런 수순으로 가야 해요. 다짜고짜 ‘우리 정책을 전적으로 지지해달라’고 하는 건 잘못이라는 겁니다.
일본에선 또 뭐라고 하는지 압니까? ‘북한 경제를 일으키는 자금을 모금하는데, 거기에 왜 일본이 북한한테 주려고 하는 100억달러가 포함되느냐’ 지난 5월 말 교토에서 열린 국제세미나에 갔더니일본 참석자들이 이럽디다.”
▼ 그러니까 정부로선 기왕에 내놓은 표현들을 되도록 쓰지 않으면서 서서히 방향전환을 해나가야 하는 것 아니냐….
“정부가 지금처럼 7·4에서부터 10·4까지 모든 남북합의서를 다 늘어놓으면서 그 이행 여부를 협의하자고 하는데, 그렇게 한다면 북한은 절대 안 움직일 겁니다. 정부의 한 관계자가 사석에서 ‘비핵·개방 3000’에 대해 ‘이건 당장 추진할 게 아니라 장기 목표다’라고 얘기했다는데, 그렇게 장기적인 목표로 그냥 놔두는 게 방법입니다. 창고 속에 처박아 넣지는 말고, 선반 위에 얹어놓은 채 북쪽에 이렇게 얘기하라고 권하고 싶어요. ‘6·15 존중한다. 그런데 10·4선언 이후 체결된 여러 합의사항 중 현실적으로 당장 실현하기 어려운 것들이 있다, 지금 당신네가 필요한 것과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것, 또 우리 입장에서 당장 했으면 좋은 것과 당신네 입장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들이 있을 텐데, 그런 것들을 모두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우선순위를 정해보자, 우리는 새 정권이니 허심탄회하게 한번 얘기해보자’ 이렇게 말입니다. ‘우리가 인수위 시절에는 이건 당장 할 것, 이건 시간을 두고 할 것, 이건 불가능한 것, 이런 식으로 얘기했지만, 들어와서 보니까 다르더라’ 이렇게 실수를 인정하고 들어가는 게 뭐가 부끄럽습니까.
북한 버릇을 고쳐놓아야 한다? 그건 북미관계가 개선되고 북한경제가 나아지면 자연스럽게 바뀌게 됩니다. 북한이 잃을 게 있는 상황이 되면 고쳐져요. 아무것도 주지 않으면서 버릇부터 고치겠다고 나서는 것은 비현실적인 생각입니다. 그런 자세를 견지하다가는 북중관계, 북미관계, 북일관계가 빠르게 개선돼가는 과정에서 남북관계만 정체되고, 그건 훗날 정말로 큰 후회를 남기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