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 돈, 명예, 건강…. 누군가 ‘인생은 몇 개의 공으로 굴러가는 저글링’이라고 했다. 저글링의 묘미는 ‘긴장’이다. 순간 방심하면 여러 개의 공이 뒤엉켜 모든 공이 바닥으로 와락 쏟아진다. 건강하고 균형감 있는 삶을 꾸려가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다. 여기, 일과 가정의 양 극단을 오가다 행복한 중간지점을 찾은 이가 있다. 세상의 전부이던 한 가지를 내려놓으니 더 많은 기쁨을 품게 됐다.
소나기가 오락가락하던 6월초,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삼성노블카운티 실내농구장. 25명 남짓한 아이들이 ‘끙끙’ 소리를 내며 농구공과 씨름 중이다. 한 손 드리블도 서툴러 제 공에 얼굴을 맞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제법 능숙하게 슛을 연달아 골인시키는 아이도 있다. 키도, 실력도 제각각이지만 표정만은 하나같이 진지하다. 아이들 사이에서 우뚝한 키의 반가운 얼굴을 발견했다. 전 국가대표 농구선수 정은순(鄭銀順·37)씨다.
“팔을 뒤로 뻗으니까 공이 빗나가지.” “잘했어. 자세가 좋으니 곧 골인도 문제없겠다.”
정씨는 모자란 아이에겐 따끔한 질책을, 잘 따라주는 아이에겐 따뜻한 칭찬을 건네며 꼬마 선수들을 진두지휘했다. 한국여자농구연맹(WKBL) 사상 최초의 트리플더블을 기록한 코트의 ‘왕눈이’는 그렇게 농구인의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수업이 없는 날에는 화단을 가꾼다.(좌) 슛 하나에 울고 웃는 해맑은 아이들을 보노라면 수업시간이 훌쩍 지나간다.(우)
남편 장재호씨와 일곱 살 난 딸 나연이. 지금도 매일 1시간씩 체력단련을 한다. 현역 시절 영광의 순간을 보여주는 트로피, 훈장, 메달이 빼곡하다.(왼쪽부터 차례로)
근황을 묻자 정씨는 “2, 3년 전부터 주로 아이들을 가르치며 지낸다”고 했다. 통틀어 200여 명을 가르치는데 그 일정이 만만치 않다. 토·일요일 각각 6시간, 10시간 동안 수업이 계속되는 주말에는 체력이라면 순위를 다투는 그도 녹초가 돼버린다.
한때 중계방송 해설위원으로 활동했지만 지금은 하지 않는다. 정확한 해설은 경기 내용뿐 아니라 선수들의 성격과 생각까지 읽어야 가능한데, 이제 아는 후배보다 모르는 더 후배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이제는 삶의 가장 큰 부분이 돼버린 농구교실을 열게 된 것은 이웃들 덕분이었다.
정씨는 “농구스타가 아닌 일반인으로서 이웃과 더불어 사는 요즘이 더없이 행복하다”고 말한다.(좌) 1주일에 한 번 서는 시장을 둘러보는 것도 중요한 일.(우)
정씨는 인터뷰 하는 내내 “너무 좋다”는 말을 연발했다. 6년째 거주하는 수원시 영통구 내 아파트 단지도, 한 울타리에서 허물없이 지내는 이웃들도, 1주일에 한 번씩 열리는 시장도 모두 감사하고 행복하단다. 농구가 세상의 전부였던 중·고등학교 시절과 20대를 보냈기에 지금의 일상이 더 고마운지 모른다.
“정말 농구밖에 몰랐어요. 또래들처럼 친구들과 놀러 다니는 것은 물론 예쁜 옷도, 화장도 생각하지 못했죠. 제일 거하게 논다는 게 노래방이었어요. 그렇지만 그 시절 최선을 다한 것에는 후회가 없어요. 정말 후회 없을 만큼 열심히 했거든요.”
그는 무엇보다 나연이 곁에 머무르면서 농구를 가르치는 현재에 만족한다고 했다. 한번 놓치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아이가 커가는 매 순간을 곁에서 지켜보고 싶다는 것. 멋진 미래를 위해 우리는 늘 계획을 도모하지만 훌륭한 계획은 충실한 현재에 숨어 있는지 모른다. 평범하지만 실천하기 어려운 삶의 과제를 정씨는 똑부러지게 풀어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