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성이 자기를 손가락질한다고 백성의 손가락을 잘라버린 왕들이 있었다. 지구를 통틀어 지금은 그런 왕이 한 명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자신 있게 단정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만약 백성이 자기를 손가락질한다고 백성의 손가락을 잘라버리는 왕이 있다면 백성들은 백성들 모두의 팔다리가 모조리 잘려 절구통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한이 있더라도 왕에 대한 항거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 -이외수 홈페이지에서
사람들이 작가 이외수(李外秀·62)를 절친한 친구처럼 편하게 여기는 이유도 다르지 않다. 그는 자신의 아픔을 독자에게 에누리 없이 보여준다. 동냥으로 청년시절을 보냈다, 어렵게 지방대학에 들어갔다, 나흘 동안 20원 하는 라면 하나로 버텼다, 이발과 목욕을 못해 기인처럼 다녔다, 개집에서 잘지언정 꿈은 품고 살았다, 돈이 없어 신혼여행은 어린이대공원 식물원으로 갔다, 소설을 위해 3년간 얼음 밥으로 끼니를 때웠다….
그의 얘기를 듣고 있노라면 마음의 빗장이 스스로 열린다. 못난 사람이 후진 땅 딛고 일어섰다는 사실만으로도 얼었던 마음이 녹는다. 독자가 이렇듯 방심한 사이 그는 작가답게 글이라는 무기로 또 다른 감동의 보따리를 남겨두고 떠난다. 그의 글에는 가식이 없다. 그의 말은 글보다 진솔하다. 그가 요즘 TV와 인터넷 언론에 자주 얼굴을 비친다. ‘1박2일’ ‘무릎팍 도사’에도 나왔다. 강원도 화천의 두문불출 거사가 이렇듯 오락 프로그램에까지 나간 까닭은 뭘까. 언론매체들이 그를 찾아 나선 이유는 또 무엇일까.
“나는 미제 쇠고기 먹고야 말 것”
이유는 단순하다. 요즘 우리 사회를 뒤흔드는 쇠고기 파동에 대해 그가 촌철살인의 말들을 쏟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 가려운 마음을 빡빡 긁어주는 까닭이다. 이외수는 자신의 홈페이지(www. oisoo.co.kr)에서 ‘광우병 걱정 없다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시는군요. 그럼요, 무식을 갑옷처럼 착용하고 계시는데 무슨 걱정이 있겠습니까’라며 위정자를 정면 비판한 후 ‘미국산 쇠고기, 수입하면 나는 먹고야 말 것이다. 완벽하게 피할 수 있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라고 개탄하기도 했다.
그가 쏟아내는 ‘권력 비판’의 근거를 직접 들어보고 싶었다. 누군가를 사랑해도 수많은 곡절이 있는데 무언가를 비판하는 데 하물며 왜 내막이 없겠는가. 그의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이외수 선생의 부인은 “인터뷰하는 건 괜찮지만 선생님은 예술하는 분이다. 그러니 정치 얘기를 나눠야 하는 인터뷰라면 사양하겠다”고 잘라 말했다.
화천이면 가까운 곳도 아닌데 예서 그냥 인터뷰를 접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그러자 이런저런 사념이 꼬리를 물었다. ‘정치하는 사람이 예술을 말하면 예술도 정치가 되지만, 예술가가 정치를 말하면 정치도 예술이 된다’ ‘하루도 타인과 관계를 맺지 않고선 살아나갈 수 없는 세상에 정치 아닌 게 또 무엇이란 말인가’….
보슬비 내리던 6월5일, 결국 그에게 달려갔다. 그가 사는 화천 ‘감성마을’은 산 좋고 물 좋은 곳에 자리 잡았다. 전방지역이라 군인도 많았다. 그가 직접 그려놓은 센스 만점의 표지판을 보는 순간, 피로가 싹 가시며 ‘만나러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살표를 대신해 입 벌린 물고기가 그의 집을 가리키고 있었다. 친절하게도 그는 거기에다 ‘물고기가 바라보는 쪽으로’라고 적어놓았다.
오후 2시 언저리, 그를 첫 대면한 후 포천 일동에서 사온 막걸리를 ‘뇌물’로 건넸다. 그런데 그는 “이젠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했다. 뇌물은 결국 사전취재를 하지 않았다는 증거물로 전락했다. 걱정된 나머지 에둘러 다른 질문들을 쏟아내느라 인터뷰는 오후 9시가 넘어서야 끝났다. 다행히 그는 세상 얘기하는 데는 주저함도 막힘도 없었다. 언젠가 읽은 그의 글이 떠올랐다.
‘나는 근심에 대해 근심하지 않는다. 근심은 알고 보면 허수아비다. 곡식이 익어가는 들판으로 가서 허기를 채우려면 필연적으로 마주칠 수밖에 없는 복병들이다. 근심에 집착할수록 포박은 강력해지고, 근심에 무심할수록 포박은 허술해진다. 내가 왜 시간이 흐르면 100퍼센트 소멸해버리는 무기력의 표본 허수아비에 대해 근심하겠는가.’(‘그대에게 던지는 사랑의 그물’ 중에서)
스튜디오처럼 생긴 그의 집에는 큰 거실이 두 개 있는데 하나는 식사 공간이고 다른 하나는 차 마시는 곳이다. 가지런히 놓인 차 도구 뒤에 사람만한 붓대가 걸려 있다. 우선 거기에 달린 붓의 정체부터 물었다.
“새의 깃털로 만들어져 ‘익필’이라 이름 지었어요. 박경수라는 분이 개발했는데 사용자가 없어서 특허가 안 났었거든. 그 사람이 주기에 써봤는데 아주 독특해요. 그래서 개인전도 열고 했죠. 나 덕분에 특허 냈다고 들었어요. ‘무심필’이란 이름도 지었는데, 무심하게 사용하지 않으면 그려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먹을 잔뜩 묻혀 그리려고 해도 붓이 제멋대로 움직이거든요. 저놈이 아주 겁납니다. 저걸로 몇 년을 그렸는데, 정신을 하도 집중했더니 어금니 네 대 빠지고 뒤통수 다 하얘지고 그랬어요. 지금은 오디 먹고 다시 까매졌지만(웃음).”
그렇게 그린 그림 45점을 한데 모아 경북 포항에서 전시회를 연단다. 주제는 ‘한 소리로 한 하늘을 깨트리다’. 팸플릿이 시야에 들어왔다. 익살스럽게 생긴 메기, 새…그를 닮았다.
‘악질 미국과 야비한 정부’
산신령처럼 보이지만 이외수도 실상은 생활인이다. 그것도 깡이 아주 센. 장발단속에 걸렸을 때도 ‘옆머리는 귀를 덮지 말아야 한다니까 귀를 자르면 되고, 뒷머리는 상의 칼라를 덮지 말아야 한다니까 상의 칼라를 자르면 되겠지요. 이런 개떡 같은 세상에서는 살고 싶지 않아요. 그 가위 이리 주세요’(‘그대에게 던지는 사랑의 그물’ 중에서)라고 했다. 날이 서 푸르기까지 한 기세. 그런 그가 촛불집회에 대해 입을 열었다.
“촛불집회에는 순수한 쪽이 많아요. 자기 목적 달성하려는 이도 있지만, 아이 데리고 나온 엄마들 같은 평화적인 열망을 간직한 사람이 많습니다. 촛불집회는 나라가 잘되고 국민이 행복하길 바라는 사람들의 표현이에요. 그러니 불순분자라고 몰아붙이며 강공 일변도로 진압해선 안 됩니다. 이건 ‘국민 열망의 표현’이지 국가 전복을 위한 투쟁이 아니지 않습니까. 정부는 국민 안위를 생각해서 사과하고, 국민 요구를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 진심으로 생각하고 또 말해야 해요.”
그는 홈페이지에 자신의 생각을 밝혀 놓았다.
‘빌어먹을 색깔론이나 불순분자 배후조종설 따위로 아직도 물타기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콘크리안이 부지기수라는 사실에는 60이 넘게 인생을 살아온 작가의 한 사람으로서 놀라움을 금치 못하겠다. 물론 그중에는 소수의 불순분자도 섞여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저토록 많은 대중이 주관도 없이 불순분자들의 선동에 감화되어 촛불을 들고 거리로 쏟아져 나왔을까.’
그는 “지금 방식을 고수하는 한 정부지도자들은 자신들이 ‘콘크리안’임을 증명하는 꼴이 될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가 만든 단어인 ‘콘크리안’은 21세기에도 1960, 70년대 방식의 색깔론을 밀어붙이고, 빨갱이가 국가를 전복한다고 여기는 ‘뇌가 응고된 사람들’을 뜻한다.
그의 홈페이지에는 ‘넌 달관한 게 아니고 무식한 거야. 하룻밤 저 달이 지고 나면 제 목숨 다하는 줄도 모르고 춤만 추는 하루살이’라는 아주 자극적인 문구가 있다. 그에게 물었다. “혹 그 ‘하루살이’가 대통령이냐”고. 당당하던 그는 이 질문엔 즉답을 피했다. 대신 “시위가 일어난 건 단순히 쇠고기 때문만은 아니다”라고 말꼬리를 돌렸다.
“민영화, 영어몰입식 교육, 대운하 같은 걸 추진한다기에 불만이 컸던 국민들이 광우병 쇠고기에 대해서 너무나 쉽게 검역한다고 하니까 폭발한 겁니다. 생활 전반에 걸쳐서 ‘센서’를 장착하지 않는 이상 그런 소를 먹을 수밖에 없으니 거리로 뛰쳐나온 거죠.”
미국산 쇠고기가 위험한 이유도 덧붙였다. 느슨해 보이던 그가 눈에 힘을 주며 말했다. 덕분에 생물공부도 꽤 했다.
“정치적으로 조종당하는 과학자말고 순수한 과학자들은 위험하게 보고 있잖아요. 소뼈를 자르다 돼지까지 자르면 프리온이 거기로 옮겨간다는 것도 이미 상식이 됐고. 어떤 사람은 끓여먹으면 되지 않느냐, 안 사먹으면 되지 않느냐고 하는데 그것도 아니고. 또 먹지 않아도 화장품, 조미료, 분유에 함유될 게 뻔하지 않습니까. 아무리 남이지만 미국도 재고해야 합니다. 자기네 안 먹는 것을 우방에 수출하는 걸로 봐서 악질적으로까지 보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믿고 사인하는 사람들도 참 야비하지 않나요?”
글쟁이 문인과 정치 얘기만 나누다 보니 역시 눈치가 보인다. 그래서 뜬금없이, 아주 상투적으로 “이곳 생활이 어떠냐”고 물었다. “백수가 바쁘긴 뭐 바뻐”라는 답이 돌아올 줄 알았는데 의외로 그는 “바쁘다”고 했다. 요즘은 화천 지역에서 복무하는 사병들을 대상으로 ‘감성수업’을 한단다. “강의를 들은 뒤 밝은 얼굴로 돌아가는 군인들을 보면 마음이 짠해진다”고 한다.
‘대운하 욕망’을 버려라
작가 이외수 부부. 그는 아내와 감성마을에서 남은 생을 살려 한다.
무언가 꽉 짜인 규율과 강요된 일상에 대해서는 대놓고 욕을 퍼부을 것 같은 그가 “군대도 잘 견딘 사람들한테는 추억이 된다”고 했다.
“지가 생각해도 지가 자랑스럽거든!(웃음) 그러니 어떤 시련을 당해도 ‘내가 군대도 견뎠는데…’ 하면서 견디면 돼요. 고통, 절망, 난관…극복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나도 내 군대 생활을 떠올리며 견딘 적 많아요.”
그는 “복무 중 푸에블로호 납북사건(1968년)으로 제대가 무기한 연장돼 무진장 애를 먹었다”고 했다. 또 “잘 견디는 비결은 욕망이 아닌 소망을 추구하는 거”라 했다. 그의 책 ‘감성사전’은 ‘욕망은 자신만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소망은 자신과 타인이 함께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정의했다. 최근 출간된 베스트셀러 ‘하악하악’에서 욕망은 반드시 내다 버려야 할 그 무엇이다.
‘인생이라는 여행길은 멀고도 험난하니, 그대 배낭 속을 한번 들여다보라. 욕망은 그대의 발걸음을 무겁게 만들고 소망은 그대 발걸음을 가볍게 만드는 법. 젊었을 때부터 배낭 속에 들어 있는 잡다한 욕망들을 모조리 내던져 버리고 오로지 소망을 담은 큰 그릇 하나만을 간직하지 않으면 그대는 한 고개를 넘기도 전에 주저앉고 말리라.’
욕망 얘기를 하다 보니 한반도대운하에 대한 대통령의 욕망으로 주제가 흘러갔다.
“대운하로 누구는 돈 벌어 욕망을 채울 수 있겠지만 그게 어디 성공일까요? 물고기들은 불행해지고 자연에 미치는 악영향도 클 텐데…. 정 하고 싶다면 면밀한 검토를 하고 상당시간 연구를 선행해서 함께 공존하고 함께 진화하는 방안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의 말대로라면 정부의 대운하사업은 물질중독에 빠져 국민의 영혼을 갉아먹는 마약과 같은 사업인 셈이다.
“모든 생명체에는 정(精·물질), 기(氣·기운), 신(神·영혼)이 고루 발달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인간은 기, 신이 약해졌을 뿐 아니라 정에 사로잡혀 있어요. 물질적으로 풍요로운데도 지름신이 내려 그냥 질러버리잖아요. 충족이 안 돼 너도나도 중독에 빠지는 겁니다.”
그래서 그는 “균형을 찾고자 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방법은 우선 소망을 찾는 것”이라고 대안을 제시했다.
“산에는 소나무만 사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요소가 있어요. 그것을 알고 사는 인생과 그렇지 못한 인생에는 차이가 있죠. 산에 사는 나무랑 바위를 의식하지 않고 살면 무슨 소용이 있나요.”
“백수여, 소망의 끈을 놓지 마라 ”
이외수는 백수 중의 백수다. 또 백수의 위상을 한층 높인 사람이기도 하다. 실제로 그는 자신의 후배인 백수들에게 편지를 쓰기도 했다(‘날다 타조’ 중에서). 백수이던 기자도 그 글 덕분에 좌절하다가도 용기를 내곤 했다. 개집에서 자고, 라면 수프로 하루를 버티고, 냇가의 개구리를 잡아먹던 ‘백수 이외수’ 시절이 있었기에 ‘들개’와 같은 소설을 쓸 수 있었으리라. 그의 말대로 “해본 짓거리들이니 생생하게 쓸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시절을 어떻게 견뎠는지 물어봤다.
“그냥 그렇게 쓰러질 수는 없었어요. 누구나 잘되고 싶고, 행복해지고 싶어 하잖아요. 그런데 전 그때까지 행복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행복할 때까지만 버텨보자고 했던 거예요. 술을 그렇게 퍼마신 것도 인생을 버티기 위해서였고요. 그러다 개집에서도 잔 거고. 잘사는 집 개집은 크기도 제법 크고 개도 순해요. 사람들이 잘해주니까. 그래서 오가다 친해둔 개한테 가서 한숨 재워달라 했죠.”
말을 잇는 그의 눈에 뭔가 맺혔다. 아니, 뭔가 할 말이 있는 듯했다. 그래서 한때 노숙자였던 그에게 옛 동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고 물었다.
“게으를 수 있을 때 개인의 발전이 일어납니다. 월급 몇 푼 때문에 남의 일 해주느라 정작 자기 일은 못하고 살아요. 하지만 사람이 최고로 발전할 수 있는 시간은 바로 혼자 있을 때입니다. 남는 시간을 잘 쓰란 거죠. 그러니 노숙을 하더라도 의식을 놓지 말아야 해요. 단지 직장 잃고 빚 있다고 해서 온 생애가 없어진 것처럼 추구하는 거 없이 살면 안 됩니다. 얼마든지 다른 직업을 찾을 수도 있고 다른 걸 해볼 시간도 충분한데, 안 그래요? 끈만 놓지 않으면 돼요.”
사람들은 소설 ‘들개’가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이후 그의 인생이 잘 풀려나간 줄 알지만 이외수 선생이 들려준 실상은 그렇지 않다. ‘들개’의 산실은 서울 마포의 한 여관. 그가 폐인이 되기 전 소설이나 하나 받아놓자고 생각한 출판사는 그를 그곳에 가둬두고 매일 ‘원고검열’을 실시했다. 그가 얼마만큼 쓴 지 확인한 다음에 밥값, 방값을 주고 갔다. 그렇게 혹독하게 글을 다 써서 가지고 갔더니 사장은 어물어물 넘어갔다. 그날 그는 술병으로 방바닥을 가득 메웠다. 할 수없이 그 후에도 ‘외상 인생’을 이어가야 했다.
물론 그 후 책 몇 권이 잘 팔려 돈을 벌긴 했지만 큰돈을 만지고 살진 못했다. 도와줘야 할 친인척도 많은데다 선생이나 선생 부인이나 손이 커 남 돕는 데 인색한 편이 못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알지 못하는 이들이 돈 빌려달라고 하는 데는 눈도 꿈쩍 않는다고 한다.
살아가는 얘기를 하다 보니 대화는 자연스레 그의 ‘마누라’ 자랑으로 흘렀다. 그는 지난 화이트데이에 사탕 한 봉지를 부인에게 건네며 “녹여 먹는 다이아몬드야”라고 했다 한다. 물론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여자는 꽃 한 송이 받고도 천하를 얻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해요. 그만큼 진실 그 자체에 감동한다는 거죠. 자신에 대한 사랑이 식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면 여자는 목숨을 바쳐요. 전철 한 구간 지날 때마다 변하는 게 여자의 마음이라지만 어떤 경우에도 여자를 움직이는 건 사랑입니다.”
그러고는 “여자들이 직업, 연봉 따지고 결혼하는 것도 안정적인 삶 속에서 안정적인 사랑을 받고 싶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의 말대로 여자의 궁극적 코드는 사랑이다. 그래서 그는 아내를 사랑하기 위해 아내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려고 노력한다. 외적인 아름다움만이 아니라 내적인 아름다움도.
“나도 대통령을 사랑하고 싶다”
“아내는 독자에 대한 식구의식이 있어서 한 달에 찾아오는 250명 손님도 기꺼이 받아줘요. 요즘 누가 그렇게 하겠어요. 보잘것없는 나를 알아봐주고, 높이 평가해주고. 우리 아내는 힘들어도 웃는 사람이에요. 그러니 더 사랑하게 되죠.”
이어 부부가 잘 지내려면 혼자 노력해서는 안 된다는 말도 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잘 안 풀릴 때면 하늘이 감동할 정도로 부부가 선하게 살면 해결된다는 것. 이제 그는 아내와 함께 감성마을에서 남은 생을 살려고 한다. 주변 약수터 길에 돌을 많이 늘어놓은 것도 시비(詩碑)를 만들기 위해서다. 999개의 시비에 시를 담아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감성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고 한다.
부부금실과 사랑에 대해 논하던 그가 돌연 “이명박 대통령을 사랑하고 싶다”는 말을 꺼냈다. 대통령과 국민이 부부관계 같다는 이야기일까. 어쨌든 그 ‘사랑’이란 단어 앞에는 너무 많은 전제 조건이 달려 있었다.
“이명박 정부에는 부도덕이 내재돼 있어요. 이명박 내각을 ‘강부자’ ‘고소영’이라고 하잖아요. 사람 뽑을 때 객관성이 결여된 게 사실 아닌가요? 비리 가진 이도 친하다는 이유로 장관 자리 주고. 쇠고기도 마찬가지예요. 이번에도 대통령은 도덕의식이 결여돼 있었습니다. ‘안 먹으면 될 거 아니야’ ‘배후가 누구야’ ‘위험하지 않다’고 말하는 대통령은 ‘어거지안(어거지 부리는 사람)’ 그 자체였어요. 얼마 전 제가 정부 비판하는 인터뷰 한 게 있었는데 그게 네이버에서 검색이 안 됐어요. 지운 거죠. 그러다 한참 후에 나오더라고요. 그렇게 정부 비판하는 거 막아두는 거, 그것도 부도덕한 겁니다.
그렇지만 저는 이명박 정부를 얼마든지 사랑할 수 있어요. 책임의식 갖고 사과하고, 재협상을 하든 뭘 하든 끝까지 최선을 다한다면 이명박 정부 지지할 거예요. 지지하고 말고요. 영어몰입식 교육을 하기 전에 한글 투자 먼저 한다면요. 저도 그렇지만 국민은 나라가 잘되기를 바랍니다. 위대한 지도자는 두뇌로 정치하지 않고 지혜로 다스렸어요. 솔로몬을 보세요. 아이의 부모를 알아낼 때 얼마나 지혜롭게 했어요(솔로몬은 서로 엄마라고 주장하는 이들에게 아이를 잘라 나눠가지라 했다. 친엄마는 아이를 포기했고 가짜 엄마는 그렇게 하라고 해 진짜 엄마를 가려낼 수 있었다) 정치는 국민 사랑하는 마음을 바탕에 두고 해야지 잔머리 굴려서 하는 게 아닙니다.”
“여자는 죽어서도 예쁘고 싶다”
사랑 타령을 시작한 김에 ‘여자 사랑하는 방법 좀 알려달라’고 그에게 부탁했다. 그는 ‘여자도 여자를 모른다’는 책을 쓸 만큼 자칭 타칭 여자 전문가이지 않은가. 무엇이 그리 겸연쩍은지 답변하는 내내 그는 껄껄 웃었다.
“여자를 이해하기 위해선 아인슈타인의 공식도 부족하지요.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여자는 목을 매달아도 이쁜 걸 추구한다는 거죠. 예쁜 밧줄 없으면 죽지 않는 게 여자입니다. 죽어서까지 예뻐야 하는 거지요.”